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70
(69)
“이쪽은 오늘부터 아른트를 도와 공작저의 전반적인 업무를 도와줄 아놀드 가의 아멜리아 양. 인사해, 아멜리아.”
“아, 안녕, 하, 아니, 잘 부탁. 드립니, 다.”
허둥지둥 인사를 하는 아멜리아를 보는 눈초리가 곱지 않았다.
아른트는 특히나 더 그랬다.
혼자서 팔짱을 끼고 다른 쪽을 노려보는 모습은 어딜 봐도 아멜리아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처사였다.
레안드로스는 언제나 그랬듯이 무감정한 얼굴이었지만, 묘하게 현타가 온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음.
“옛날에도 일을 한 적이 있었고, 또 너희보다 엄연히 연장자인 분이시니 다들 존중해주길 바라. 괴롭히지 말고,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내. ……얘들아?”
“…….”
“얘들아, 대답해야지.”
이 싸늘한 분위기 어쩔 건데.
결국 내가 아멜리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수도에서 볼 일은 없어서, 곧 공작저로 돌아갈 거야. 가지고 갈 짐은 더 있어?”
“아, 아뇨. 이, 이것만 가지고, 갈, 것같아서.”
그녀는 자그마한 짐가방을 들고 있었다.
아침부터 도와주는 시녀 하나 없이, 남작 영애치고는 단출한 짐만 꾸려서 타운하우스로 찾아온 게 놀랍기는 했다.
공작부인의 시녀였던 경험이 있기 때문인가.
“그럼 우선 방으로 안내할게. 공작저에서 다시 거처와 처우를 논의해보자. 그리고 이제 엄연히 이쪽 소속이니 말은 편하게 할게. 괜찮지?”
“네, 에.”
꿈쩍도 않는 아른트 대신 다른 시녀가 그녀를 위층으로 안내했다.
아멜리아가 계단 쪽으로 사라지고 나서 그 자리에 움직일 생각도 없이 서 있는 아른트에게 낮게 말했다.
“계속 그럴 거야? 공사 구별해.”
“하지만 공작님, 가문을 배신했던 사람을 다시 들이시다니요!”
“내가 판단하고 결정한 일이야. 과거에는 가문에 가장 충성스러웠던 사람이었고.”
“지금 어떤 흑심을 품었는지 알 수도 없잖습니까? 굳이 위험한 인물을 옆에 두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아른트는 딱딱한 어조로 답했다.
이걸 보면 아멜리아를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 제대로 반감을 품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이해한다.
집안 말아먹은 사람을 들여와서 따뜻한 밥 먹이는 꼴이지.
그걸 보면 누구라도 눈이 뒤집어지겠지만, 아른트를 위해 그녀를 들인 나로서는 아른트를 설득해야만 했다.
“어떤 사람이라도 가치가 있으니까. 앞으로 성의 내정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불렀던 거야.”
“공작님이 다정하신 분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러다가 저 사람이 나쁜 마음을 품으면요? 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그럴 일은 없어.
왜냐하면 아멜리아는 사랑에 빠졌거든…….
“네가 있잖아, 아른트. 그러니 내가 네 옆에 붙인 거야. 내정의 전권을 그녀에게 넘기진 않을 거야. 어디까지나 너의 업무 보조적인 부분을 위해서 둔 거고.”
“……이익.”
“유능한 부하는 싫어하진 않지? 수상한 행동을 한다면 네가 나에게 알려줄 거잖아.”
“그건 그렇지만요! 그래도 공작님은 절 너무 믿으시는 것 같아요.”
“너 아니면 내가 누굴 믿겠어.”
아른트가 약간 누그러들었다.
이게 바로 대리 짬밥에서 나오는 ‘싸운 팀원들 화해시키기 스킬’!
회사를 다니다 보면 팀원들의 갈등에 치여 머리털 빠지는 일이 많이 생긴다.
나는 극단적으로 싸움을 회피하는 성격이지만, 팀원들이 호전적일 때는 중재해주는 사람이 필요하긴 하다.
후임끼리 싸우면 포인트를 찾아서 달래주고 화해시키기, 선임끼리 싸우면 술을 퍼먹여서 말랑말랑하게 만들어놓고 둘이 화해시키기.
간단해 보이는가? 하지만 이걸 잘 해내는 사람은 의외로 별로 없으며, 잘못하면 오히려 자신에게 불똥이 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나는 팀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대리 찌끄러기나 어떤 부스러기 같은 존재라서 가능했던 거다.
……왜 슬픈 기분이지?
“그리고, 아멜리아가 성으로 오면서 아놀드 남작이 이런저런 조건을 제안했거든.”
“어떤 조건이요?”
“남작이 보유한 사병의 무기를 우리에게 의뢰했어. 약 500기 정도.”
“500기!”
이걸로 적자는 좀 면하려나?
그들은 혹시나 미래 사위가 될지도 모를 나에게 잘해주려고 제안한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미래 사위는 다른 쪽인 것 같다.
이 말을 들은 아른트는 손뼉을 치면서 좋아하다가 ‘이렇게 된 거 철저히 감시해 주겠다’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이쪽은 무사히 처리한 것 같고,
레안드로스는?
“공작님께서 그렇게 결정 내리신 일이라면 납득하겠습니다.”
“이야기가 빨라서 좋네.”
“다만.”
새카만 눈이 이쪽을 내려다봤다.
“왕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던 게 아닙니까?”
그 말에 가슴이 콕콕 찔리기 시작했다.
“으, 으응?”
“성에서 돌아온 직후 공작저로 서둘러 가실 것처럼 하시더니. 갑자기 아놀드 남작저를 방문하시고.”
레안드로스의 말은 느릿하게 이어졌다.
“아무리 거래 조건이 좋았다지만, 아놀드 영애를 제외하고도 충분히 무기 거래를 진행할 수도 있으셨던 분께서.”
“기분 탓이야, 기분. 너 요즘 상태가 안 좋았던 거 아냐?”
주인공 전매특허 스파이디 센서 오프! 오프!
간절히 속으로 외치던 걸 이 세계의 신인 동생이 들어주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레안드로스는 나를 빤히 보다가 눈을 깔았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다행이다.
레안드로스의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몸 관리하라는 둥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생각했다.
주인공 몰래 주인공 살리기 같은 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
* * *
유릭은 이야기가 절정에 치달았을 때 레안드로스를 죽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절정’은 대체 어디지?
시련을 해결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면서, 모든 이야기의 흐름이 한곳으로 모이는 때.
그때가 바로 이야기의 클라이맥스가 되겠지.
그렇게 따지면 이 종말을 배경으로 한 세상의 절정은 아직 찾아오지 않은 게 분명했다.
-팔다리는 제국의 각 지역마다 골고루 분배하도록 하지.
-여기서 죽으면 머리는 여기에 두고.
-이런 방식으로 공작을 거두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 몸은 요긴하게 쓸 데가 많거든.
첫 회차.
유릭은 내 머리를 동부에 묻으려 했다.
이때 유릭은 내가 죽었다 살아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정보는 대부분 알고 있었다고 봐도 되겠지.
머리와 사지.
다섯 개의 조각.
제국에 흩뿌려지는 신체들.
생각은 2회차로 넘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하단 말이지. 어인족을 전부 바쳐도 어려울 것 같았던 일이 그대의 눈알 하나로 이뤄진다는 점이.
동, 서, 남, 북.
동쪽의 구덩이.
남쪽의 해구.
서쪽과 북쪽은……
“공작님!”
“깜짝이야. 노크 좀 해줘.”
“죄송합니다. 루셀 나빌로프입니다!”
타운하우스에서 아멜리아까지 합류한 하르트만 일행은 공작저로 돌아갈 채비를 마쳤다.
그렇게 안락한 성으로 돌아온 지 오늘이 이틀째.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평상시와 같이 일을 했다.
레안드로스와 루셀은 교대로 돌아가며 경비나 호위를 섰고, 아른트는 아멜리아와 함께 성을 꾸려나갔다.
나는 디켄팅 무기 의뢰 건에 대해서 아이든에게 편지를 부치고 안면을 익힌 귀족들에게 편지로 영업을 뛰던 중이었다.
잉크가 묻어 검어진 손가락을 닦으며 물었다.
“벌써 교대 시간인가? 교대할 때마다 매번 인사하러 오지 않아도 돼.”
“아뇨, 손님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선배가 알려준 대로 공작님 곁에서 밀착 호위를 하려고요.”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루셀이 비키자 그 뒤로 안내해주는 하인과 함께 언젠가 한 번 봤던 방문객이 나타났다.
“이본느.”
캠프에서 한참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사람이 어쩐 일로 여기에?
이본느는 나를 보자마자 외쳤다.
“공작님, 저희 망했어요! 어떻게든 해 주셔야 해요, 안 그러면 진짜 쫄딱 망해서 거리로 나앉는다고요!”
“그게 무슨 소리야? 일단 안으로 들어와서 좀 앉으시죠.”
루셀이 씨근거리는 이본느를 접객용 의자에 앉혔다.
그 맞은편에 앉으며 이본느를 살펴보니 그녀는 이미 머리가 산발인 데다가 얼굴에는 기름이 덕지덕지 끼어있었다.
이본느가 심호흡을 하는 사이에 시종 하나가 재빠르게 차가운 차를 내주었다.
이본느는 그걸 단번에 마시고는 말했다.
“공작님께서 어젯밤에 대량 주문서를 위탁받아 넣어주셨다고 들었어요.”
“네, 맞습니다. 뭔가 문제라도? 대량 주문이면 더 좋은 일 아닌가요?”
“물론 고맙고, 적자를 기록하던 저희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재료가 턱없이 모자라요.”
“마수가 벌써 씨가 말랐을 리는 없는데요?”
“마수를 말씀드리는 게 아니에요, 다른 재료가 필요한데 당장 수급이 어려운 상황이라고요.”
“어떤 재료입니까? 에이슬링 상단이 구하지 못하는 재료가 있을 리가 없는데요. 아이든에게 부탁하면 어떻게든…….”
“다른 건 괜찮지만 수급이 어려운 재료는 바로 미스릴이라고요.”
미스릴?
눈만 꿈뻑이자 이본느는 한숨을 푹 쉬더니 설명했다.
“평범한 검은 연철과 강철을 섞어서 쓰지만, 마수의 일부가 들어간 검은 완전히 다른 재료가 필요해요. 마수의 이빨이나 발톱은 철을 숭덩숭덩 조각낼 만큼 단단하니까요.”
“그렇군요.”
“그래서 마수 무기에는 미스릴이 어느 정도 혼합되어 있어요. 미스릴이 광석 단계에서 어느 정도 마력을 내포하고 있어서 마수의 일부와 상성이 잘 맞기도 하고, 또 미스릴만큼 강한 광물은 이제까지 나타나지 않았거든요.”
“그럼 미스릴을 구하면 되는 게 아닙니까?”
“마수 무기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순도 높은 미스릴 광석은 드물어요. 질 좋은 미스릴을 얻을 수 있는 광산은 북부에 포진해 있고요.”
“북부에서는 에이슬링 상단 지부를 두지 않는 건가요?”
이본느는 약간 찡그렸다.
“제가 알기로는 그렇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에이슬링 상단은 왕국에서 내로라하는 상단이잖아요?”
“그것도 북부를 제외한 거죠. 북부와 왕국을 단절하는 디켄터 산맥 때문에 독립적인 문화가 발전했거든요. 그 때문에 북부가 자치령 특권을 얻고 있다는 사실, 모르셨어요?”
몰랐다.
애초에 북부에 대한 이야기는 원작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에는 쓸데없는 배경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있기는 했지만, 상단 진출이 어려운 곳일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십 년도 더 전에는 왕래가 좀 있었지만, 그것도 옛날이야기죠. 지금은 북부에서 활동하는 상단이 미스릴을 독점하고 풀고 있어요. 값이 어떻든 다른 상단들은 그걸 수락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해요.”
“값이 비싸더라도 저희 쪽에서 전부 사들이면 되는 거 아닌가요? 원가가 올라가겠지만, 어느 정도 다른 쪽에서 절충을 하면.”
“그게 문제예요!”
이본느가 갑자기 탁자를 치며 일어났다.
“북부에서 나오는 미스릴 광물의 수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요. 이대로 가다가는 아주 똑 끊길 판이에요! 저희가 현재 비축해둔 미스릴 광석은 고작 무기 300여 개 분량이에요!”
“지, 진정해요. 아놀드 남작에게 주문이 밀려 있어서 기한이 좀 걸린다고 양해를 구해볼게요.”
“그럼 남작의 주문에만 1년 걸려도 괜찮으세요? 참고로 그 기간동안 다른 주문은 못 받아요.”
“그건 안 되지!”
누구 사업 말아먹을 일 있냐!
이대로 가다가는 수입원이 사라져 레안드로스를 도박장에서 지내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도박하는 주인공이라니 누가 좋아하냐고!
“북부에서 미스릴을 유통하는 다른 상단은 없어요? 아니, 반대로 우리 쪽에서 북부에 진출하면 안 되나?”
“그게요. 그, 소문이 있어요.”
“무슨 소문?”
“새로운 지역에 진출하게 되면, 지부를 세우기 전에 시장 조사를 나가잖아요?”
“그렇죠.”
“그렇게 북부로 향한 시장 조사 파견단은 두 번 다시 안 돌아왔대요…….”
이본느의 말에 집무실 내의 공기가 싸늘해졌다.
“하, 하하. 이본느, 농담도 잘하네요.”
“진짜예요. 옛날에 다른 상단의 후계자가 직접 북부로 사람들이랑 갔는데 그 후로 안 돌아왔대요. 그래서 그 상단은 상단주가 죽고 후계자 문제니 뭐니 하다가 망했잖아요.”
“…….”
“그 후로 아무도 북부에 진출하려고 하지 않게 됐어요.”
……진짠가?
그냥 도시 괴담이라고 하기에는 이본느의 표정이 너무 안 좋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두 번씩이나 죽고 되살아나는 사이에 북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게 없었다.
“그러면 우리 미스릴은.”
“풀리는 미스릴이란 미스릴은 저희가 다 쫌쫌따리 사들이면서 1년 허송세월해야지 별수 있나요. 아니면 거래를 파기하실래요?”
“둘 다 안 돼!”
어떻게 들어온 주문인데, 이걸 포기하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허한 눈으로 주사위 홀짝을 맞추는 레안드로스를 상상하니 괴로워졌다.
자꾸 이렇게 도박장에 들락날락하게 되면 자의로 안 돌아올지도 모른다니까!
우리 애 도박중독 치료 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건강하고 행복한 엔딩을 보고 싶은 거지 ‘주인공, 도박에 타락하다 ~ED. 1~’ 같은 걸 보고 싶은 게 아냐!
한참이나 갈등하다가 결국 이본느 앞에서 뱉어버렸다.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그래, 어쩔 수 없지.
이런 거 해결하려고 공작자리에 앉아있는 게 아니겠냐.
결국 이본느가 돌아가고 난 후, 모두를 불러 모아서 사정을 대강 설명했다.
다행스럽게도 다들 이해해 주었다. 이제 남은 건 북부로 누가 가느냐의 문제였다.
“나는 꼭 가야 할 것 같고.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아른트와 루셀이 나와 같이 가는 게 어떨까?”
“공작님, 하지만.”
“레안드로스는 좀 쉬어야지. 나 없는 사이에 휴가를 지낸다고 생각해.”
아멜리아는 아른트가 없는 사이에 성 관리에 익숙해지면 좋을 것 같았다.
레안드로스는 내가 멋대로 내린 결정에 대해서 제법 불만스러운 눈치였다.
하지만 내 말이 끝나자마자 정작 입을 연 사람은,
“아, 안 돼요!”
“어?”
아멜리아가 양손을 불끈 쥐고 있었다.
그녀는 어쩐지 뺨이 붉게 달아올라서 외쳤다.
“제, 제가 갈, 갈게요!”
……대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