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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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는 완전히 고집불통이었다.
루셀이나 레안드로스가 설득해도, 심지어 아른트가 항의해도 그녀는 굳건했다.
무슨 이유인지 따로 불러서 물어봐도 답해주지 않았다.
다만 아른트가 준비하는 만큼 내 여행길을 잘 준비할 수 있다는 답만 돌아왔다.
예민해진 아른트와 단호한 아멜리아를 중재한 건 놀랍게도 루셀이었다.
“뭐, 저에게는 공작님이나 아른트 씨, 아멜리아 양 누구든 지켜야 할 대상이니까요. 딱히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편인 건 다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아른트가 풀이 죽었더랬지.
결국 루셀과 아멜리아가 나와 동행하기로 했고, 북부를 향한 여정은 착실히 준비되었다.
그리고 떠나는 날의 새벽.
“공작님, 어지럽거나 힘들진 않으세요? 다리가 저리진 않으시고요? 가다가 목이 마르면 드실 수 있게 미리 차를 좀 우렸고요. 또 발 시리지 않게 토끼털로 밑을 채웠고, 또.”
“아른트, 혹시 공작님 아빠예요?”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다고요, 루셀 경!”
루셀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봤다.
“마음으로 낳은 자식, 뭐 이런 건가요?”
“둘 다 그만 해. 그리고 아른트,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아멜리아가 준비를 잘 해줬어. 건강하게 돌아올게.”
아른트는 완전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갑자기 뒤에 서 있는 아멜리아에게 척척 다가갔다.
아멜리아는 아른트를 보고 움찔했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아른트는 잠시 아멜리아를 아니꼬운 눈치로 쏘아보고 있다가, 제 허리에 찬 것을 풀어서 건네주었다.
내가 그를 위해 만들어준 단검이었다.
은색의 예쁜 단검집이 손에 떨어지자, 아멜리아는 안절부절못하다가 말했다.
“이, 이건, 어째서, 저, 저한테.”
“저는 공작님의 시종입니다. 시종의 의무는 공작님을 어떤 위험에서든 몸을 던져 지키는 거고. 공작님을 다치게 하면 성에 발끝도 못 들어오게 할 겁니다.”
“……! 네, 네. 여, 열심히, 공작님을 한 몸, 던, 져서 지, 지킬게요.”
……나는 죽어도 살아난다고 말해줘야 하나?
내가 고민을 하는 사이에도 단검을 꼭 쥔 아멜리아의 얼굴이 모처럼 환하게 빛났다.
아른트는 홱 고개를 돌렸지만 두 사람을 지켜보던 내 눈에는 새침 떠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루셀은 작게 휘파람을 불더니, 준비되어 있던 말에 훌쩍 올라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공작님은 말을 못 타신다고 들어서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고마워.”
내가 막 손을 뻗는 순간 루셀과 나 사이로 검은 주둥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건 또 뭐야.
“슬레이!”
-히히힝!
위풍당당하게 등장한 슬레이프니르는 약간 마른 것 같았다.
그래도 떡 버티고 서서는 내 머리를 입으로 쥐어박는 슬레이의 뒤로 레안드로스가 다가왔다.
“공작님께서는 말을 타시지 못하시지만, 이 녀석이라면 타실 수 있겠죠.”
“일부러 꺼내 온 거야?”
“조금이라도 더 똑똑한 말이 낫지 않겠습니까.”
처음에 레안드로스가 슬레이를 봤을 때는 내가 한 번 죽고 난 후였다.
그때는 레안드로스가 슬레이와 나를 꺼림칙해하는 것 같아서 슬레이를 마구간에 넣어두고 의식적으로 피했었는데.
일부러 꺼내 온 정성에 약간 감동할 것 같았다.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받은 기분이 이런 건가.
레안드로스가 미리 채워둔 마구가 있어 어렵지 않게 올라탈 수 있었다.
“허리를 펴시고 고삐를 잡으십시오. 어깨 힘은 빼십시오. ……잘하셨습니다.”
훌쩍 높아진 시야.
레안드로스와 아른트는 한 걸음 물러났다.
“공작님, 꼭 무사히 다녀오셔야 해요, 꼭이요!”
“위험하면 바로 돌아올게. 그리고 루셀 경도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레안드로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일행을 보다가 잠시 입술을 달싹였다.
“공작님, 무리하지 마십시오. 루셀, 언제나 지켜보고 있겠다.”
“서, 선배님?”
둘이 사이가 언제 저렇게 좋아졌대.
내가 손을 흔드는 걸 신호로 우리는 천천히 이동했다.
* * *
북동쪽에 있는 하르트만 공작령은 디켄터 산맥을 끼고 있었다.
북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산맥을 넘어야 했지만, 그 길은 하르트만 멸문 이후 오랫동안 왕래가 끊겼다.
여행자 없이 마수만 우글거리는 산맥에 자리잡을 도적도 없으니, 아주 조용한 길이 되었다는 말씀.
“그건 그렇고 굉장히 운치가 있네요, 공작님.”
“아른트가 북부 진입하는 길목까지는 길이 있을 거래.”
“길이 험한 것만 빼면 평탄한 여정이 되겠네요!”
루셀이 활기차게 말했다.
그리고 나도 거기에 어느 정도 동감하고 있었다.
주인공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수로 가득한 산맥을 혈혈단신으로 헤치고 온 기사가 있는데, 뭐가 두려우랴.
게다가 대하기 어려운 마수는 산맥 깊은 곳에 있을 테니, 다른 곳으로 빠지지만 않으면 어느 정도의 안전은 보장된단 말씀.
내 뒤를 따라오는 아멜리아가 생각나 돌아봤다.
“아멜리아는 말을 탈 줄 아네.”
“그, 고, 공작부인께서, 여자도, 마, 말을 탈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셔서.”
“예전 공작저에서 배운 거야? 굉장히 능숙하게 보여서.”
“과, 과찬이세요.”
천천히 말을 모는 그녀에게서 경험자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성에서는 단정한 회색 원피스만 입고 있다가 여행용으로 단순한 바지와 부츠를 입은 모습이 썩 잘 어울렸다.
게다가 아멜리아는 아른트 못지않게 시중을 잘 들었다.
내가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고 주로 차나 물을 권했으며, 산이라 기온이라도 떨어질라치면 망토를 씌워줬다.
아마 전 공작부인의 시녀였던 탓에 이런 게 습관이 든 모양이었다.
아른트가 알게 되면 좋아하면서도 싫어하겠지.
잡담을 나누며 얼마나 걸었을까.
산이라 해가 빨리 지는 바람에 잘 곳을 찾아야 했다.
아멜리아는 길에서 조금 떨어진 숲속 작은 공터를 찾았고, 루셀은 거기까지 나뭇가지나 수풀을 꺾고 눌러서 길을 만들었다.
자리를 깔고 불을 피웠다. 작은 천막이 금세 만들어졌고, 아멜리아가 행낭에서 자기 그릇과 은스푼을 꺼냈다.
저건 또 언제 챙겼대.
새삼스럽게 호화스러운 장비와 시중을 받고 있으려니 1회차의 여행이 생각났다.
마른 빵과 건량만 먹으면서 뚜벅이로 걷던 그 여행.
‘그때는 지금보다 더 느긋했던 것 같은데.’
일을 많이 벌여 놔서 그런가?
내 몫으로는 우유를 넣은 빵죽 조금, 두 사람분으로는 고기와 야채와 치즈를 듬뿍 넣은 스튜.
식사가 끝난 후 루셀은 말을 먹이겠다며 사라지고 아멜리아가 내 잠자리를 봐줬다.
첫날은 만족스럽고 쾌적한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는데.
“루셀, 이상하게 슬레이가 피곤해 보이지 않아?”
“그런가요?”
“응.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어느덧 성을 떠난 지 열흘째.
여행은 그럭저럭 계속되고 있었다.
북쪽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기후가 추워져서 다들 망토는 필수적으로 입어야 했다.
거기다가 나는 두꺼운 장갑에 겨울용 토끼털 장화까지.
사람도 이렇게 추운데, 말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마의까지 준비했지만, 점점 내려가는 기온은 아무래도 부담이 좀 있었다.
특히 슬레이프니르.
어디서나 건강하게 뛰어놀던 내 검은 말은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도 쉬는 시간만 되면 꾸벅꾸벅 조니 알아낼 길이 없었다.
“이러다가 쓰러지면 어쩌지.”
“괘, 괜찮습니다! 공작님의 말이 쓰러지면 제 말에 태워드리겠습니다.”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갈기를 쓸었더니 윤기 없는 털이 푸스스 흩어졌다.
이 녀석. 동부에서는 종횡무진하더니 산에 오르자마자 병든 닭이 되었다.
여기 수맥이라도 흐르나? 아니면 터가 안 좋은가?
아니면 다른 마수의 영역을 지나는 게 별로 마음에 안 드는 걸지도.
슬레이가 골골대는 걸 보니 마냥 안타까워서 오늘은 좀 일찍 쉬기로 했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식사를 마치고 지도를 펼쳤다.
하르트만 공작저에서 북부까지 직선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구불구불한 산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강원도 산길 저리 가라 할 만큼 길이 꺾이고 휘어져 있어서 여간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니었다.
시간을 좀 단축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역시.
“직선 주파밖에 답이 없나.”
지난 회차에서는 동부로 향하면서 산맥을 그냥 넘어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슬레이프니르의 컨디션이 유난히 안 좋았다.
게다가 루셀과 아멜리아는 아른트와 레안드로스 같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에 가까웠다.
그런 그들 앞에서는 더 조심해야 했다.
무심코 죽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루셀 같은 경우는 본래 신성기사단이었으니 나를 괴물로 규정하고 바로 죽일지도 몰랐다.
아, 어렵다. 어려워.
맘이 답답해 밖으로 나오자, 아멜리아가 피워둔 작은 모닥불이 반겼다.
정작 아멜리아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장작을 주우러 갔겠거니, 하고 불 가까이 붙어 앉자 온기가 따끈따끈하게 다가왔다.
“어흐. 좋다.”
아저씨 같은 소리를 뱉으며 두꺼운 망토를 여몄다.
산은 이미 밤이 되면 12월 초처럼 추웠다.
내일은 아예 겨울옷을 꺼내달라고 해야 할 판이었다.
북부 근처도 이렇게 추운데 북부는 얼마나 추운 거지.
미스릴 광석을 구하기 전에 얼어 죽지 않으면 다행이겠는데.
부지깽이로 불을 뒤적이자 불똥이 파르르하고 솟았다가 가라앉았다.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루셀이나 아멜리아가 돌아온 모양이었다.
“아멜리아. 내일 다들 옷은 두꺼운 걸로 입으라고 해줘.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눈이 내린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겠어.”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겠지만 앞일은 장담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여기서 감기라도 걸리면 더 큰일이니까.
“그리고 저 안에 지도 보면 알겠지만, 내일모레쯤에 북부 경계에 도착할 것 같거든. 미리 준비하면 좋을 것 같아.”
경비병이 있다고 해도 북부에서 공작저의 이름이 먹힐지 의문이었다.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표식도 따로 가져왔다고는 하지만 북부인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일지는 다른 문제지.
“그리고…… 아멜리아?”
왜 답이 없지.
고개를 들자 나는 잔가지를 들고 수풀을 막 건너오고 있는 아멜리아를 발견했다.
그녀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멜리아?”
아멜리아가 왜 여기 있지.
그럼 내 뒤에서 나던 소리는 루셀인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는 순간, 차가운 냉기가 훅 끼쳤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하얀 서리가 붙은 비늘이었다.
각각의 비늘이 쉴 새 없이 꿈틀거리고 있는데, 얼어붙은 얇은 얼음막은 녹지도 깨지지도 않았다.
나무만큼이나 크고 말 일곱 마리를 합친 것보다 큰 새.
털이 하나도 없는 해골 같은 머리 깊숙이 숨어있는 안와에는 녹색의 교활한 눈이 붙어 있었다.
뾰족한 부리는 청동색이었으며, 개미핥기 같이 긴 혀가 이따금씩 나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이 세계관에서 이런 묘사를 할 수 있는 생명체는.
“도망가!”
“고, 공작님!”
비늘을 두른 거대한 독수리 형태의 마수,
샨타크는 검은색 차가운 발톱으로 내 몸을 움켜쥐었다.
두꺼운 날갯짓 한 번에 강한 바람이 휘몰아쳐 모닥불이 꺼지고 천막이 넘어졌다.
날카로운 괴성을 내지른 마수는 바로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땅이 멀어지며 내가 있던 야영지는 작은 점이 되어 사라졌다.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지만 억센 갈퀴 같은 발은 단단했고, 차가운 바람이 입조차 얼게 했다.
숲 위를 나는 속도에 얼굴의 살이 밀려 아프기까지 했다.
맨몸으로 제트기에 매달린 듯한 기분에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공작, 님!!”
“아멜리아!!”
소리의 근원을 찾아서 겨우겨우 고개를 돌리자마자 내 눈을 의심했다.
미끌미끌하고 통나무보다 두꺼운 꼬리에 아멜리아가 매달려있었다.
대체 언제 거기에 붙은 거야!
“공, 작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냐, 오지마, 오지 마! 오지 마!!”
“곧 갈게요!”
“오지 말라니까 안 들려?!”
아멜리아는 꼬리를 기어올랐다.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과 풍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악착같이 기어올랐다.
꼬리, 몸통을 지나 샨타크의 목에 걸터앉은 그녀는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었다.
아른트의 단검이었다.
아멜리아는 단검을 뽑았다.
베일 듯한 날카로운 빛이 반짝였고, 다음 순간 단검은 샨타크의 눈에 박혀 있었다.
[-!]괴조의 몸이 격렬하게 움직였다.
내 비명, 괴조가 내지르는 소음, 아멜리아의 고함.
바람이 귀를 스쳐 가며 먹먹해질 찰나 샨타크의 몸이 기울어지며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씨발.
이번 회차는 이대로 죽는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레안드로스를 데려올걸.
다음 회차에는 이딴 식으로 개죽음당할 일이 없길 간절히 빌며,
나는 회귀를 대비해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