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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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비를 처리한 후 민담집을 읽을 때, 민담집에서 나온 이야기가 겨울 나비를 제법 비슷하게 구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들어간 백색 고치.
다른 겨울 나비가 낳은 새끼들의 먹이.
그 안에 들어간 사람은 영영 깨어나지 않는다는 것까지.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변경백은 겨울 나비의 우화를 본 따 만들어진 인위적인 신성(神性).
그렇다면, 그것을 본뜬 다른 것들도 이 이야기와 동일하지 않을까?
이야기에 등장한 다섯 개의 북부 괴물들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극권의 군주’라 불리는 아품 자.
이 신은 소설 속 캐릭터가 아니라 동생이 이 세상에 집어넣은 신, ‘오리지널’이었다.
겨울옷을 짓는 나비, 이건 우리가 목격한 것처럼 신성화된 변경백이었고.
그럼 남은 건 세 개의 신.
‘눈보라 사이를 헤매는 거인.’
‘얼음을 뿌리는 애벌레.’
‘생명을 일깨우는 여름의 노인.’
이 중 어느 게 우리가 본 것일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눈보라 사이를 헤매는 거인.
이 거인에 대한 우화는 다른 우화보다 다소 추잡했다.
[한 사냥꾼이 있었습니다.사냥꾼은 마을에서 제일 활을 잘 쏘는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냥꾼은 한 처녀와 사랑에 빠졌는데, 안타깝게도 처녀의 집은 사냥꾼 대신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청년과 처녀를 결혼시키려고 했습니다.
사냥꾼은 처녀 가족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습니다.
사냥꾼의 간절한 구애에 처녀도 합세하자, 처녀의 가족들은 사냥꾼에게 한 가지 부탁을 들어달라고 했습니다.
“저기 산꼭대기에는 무시무시한 사슴이 살고 있네. 커다란 뿔로 돌을 부수고, 발을 한 번만 굴러 언 강을 뛰어넘을 수 있는 놈일세.
자네가 그 사슴의 가죽을 가져온다면 내 딸을 자네에게 주겠네.”
사냥꾼은 그러리라 약속했고, 처녀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밤까지 돌아오겠소. 혹여 내가 밤까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나를 찾으러 오지 마시오. 반드시 그대의 곁으로 돌아오리니.”
사냥꾼은 높은 산을 올랐습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자 포악한 사슴이 보였고, 사슴은 사냥꾼을 보자마자 도망쳤습니다.
사냥꾼은 사슴을 쫓아 달렸지만, 사슴이 어찌나 빠른지 해가 질 때까지도 사슴을 잡지 못했습니다.
어두운 숲속까지 들어온 사냥꾼은 사슴을 찾아 헤맸습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냥꾼은 주저 없이 아주 큰 활로 아주 무거운 화살을 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있는 것은 사슴이 아니라 사랑하는 처녀였습니다. 처녀는 밤이 되자 사냥꾼의 당부를 믿지 못하고 사냥꾼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죽어가는 처녀를 끌어안고 비통에 빠진 사냥꾼은 처녀를 쏜 자신의 화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숲속의 악령이 사냥꾼의 영혼을 가로챘고, 사냥꾼은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괴물로 변했습니다.
사냥꾼은 사랑했던 처녀를 잊지 못하고 눈보라 사이를 헤매다가 눈에 띄는 사람을 납치하고 괴물의 아이를 배게 했습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괴물을 죽이러 숲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사냥꾼이었던 괴물은 악령 때문에 어떤 무기로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마을 사람 중 하나가 날린 화살이 심장에 박히자 괴물은 도망쳤습니다.
그 후로 혼기가 찬 사람들은 눈보라가 치는 날이면 바람 속을 헤매는 거인을 피해 집 안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 북부식으로 결혼하지 말라는 뜻 아닌가.
어쨌든 이 민담에서 중요한 건 거인이 상처를 입었다는 대목이었다.
다른 어떤 무기로도 죽일 수 없지만, 활과 화살만은 거인의 상처 입혔다는 것.
전승을 따르는 신격체라면 가능했다.
딱 하나 있는 문제점이라면.
변경백 성의 침실에 누워있는데도 창문이 덜커덩거리면서 매서운 풍절음이 들렸다.
이 날씨에 화살? 한 번 쏴봐라.
분명 목표했던 곳에서 한 20m 벗어난 곳에 박힐 거다.
이건 고주몽이 와도 불가능한 환경이라고.
“공작님, 주무십니까? 말씀하신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냐. 깼어. 용병단 사람들은?”
“준비를 마쳤습니다. 더 필요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없어. 지금 나가지.”
북부는 여전히 밤낮을 분간할 수 없는 하늘이었다.
모래시계를 챙겨서 나가자 루셀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용병단에서 차출한 인원은 총 두 명입니다. 하나는 나이가 좀 있지만 실력은 보증하는 전투 용병입니다.”
“그렇군. 다른 하나는?”
“지도 제작에 도움을 줄 길잡이입니다. 그런데.”
루셀이 잠시 성호를 그었다.
“나이가 좀 어린 편이라 저어하실 것 같습니다.”
“몇 살인데?”
“열셋입니다.”
“……단장은 왜 그런 애를 골랐지? 다른 사람은 없나?”
“아이가 말을 못 한다더군요. 그러니 비명을 지르지 않을 사람이 필요하다면 그 애가 적임자라고 합니다.”
용병 단장치고는 상당히 냉정한 이유였다.
아니면 나한테 보내는 무언의 항의거나.
단장도 위험한 여정에 미성년자를 보내는 건 도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단원을 보내달라고 해. 보수는 최대한 협상해볼 테니까.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너 표정이 왜 그래?”
“다른 게 아니라……. 제가 얼핏 듣기로는 두 사람의 실적이 다른 단원보다 뒤떨어지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자기 발로 이 용병단을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본인들의 의사를 물어보시고 결정해보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 자식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루셀이 난데없이 고집을 부리자 골치가 아파왔다.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답했다.
“그 사람들 사정 봐줄 여력 없어. 거인을 쫓아가는 게 무슨 피크닉인 줄 알아?”
“하지만 공작님, 두 사람의 실력은 충분하지 않습니까. 대뜸 쫓아낼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 꼬마가 위험에 처하면 네가 구하러 갈래? 날 두고? 넌 내 호위잖아.”
“그러니 노련한 용병을 따로 하나 더 붙이잖아요.”
“……내가 가서 직접 두 사람에게 물어보지. 웬만한 사람들은 다 빠지고 싶어 할 테니까.”
한 번 봐줬더니 오냐오냐하는 데 맛이 들려서 눈을 세모나게 뜨고 대드는 꼴 좀 보게.
여기서 루셀을 설득하려고 해봤자 더 이상 소용없을 것 같았다.
그 용병들에게 직접 압박을 넣어야겠어.
나는 루셀을 두고 먼저 홀로 내려갔다.
다들 고기를 굽던 모닥불은 거의 꺼져갔고, 그 가장자리에 두 사람이 앉아있었다.
하나는 조그만 체구에 발장난을 하고있는 어린애.
다른 하나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서 눈가에 주름이 약간 잡힌 채 도끼 그립을 새로 감고 있는 용병.
한눈에 봐도 그들이 날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두 사람이 나를 따라갈 거라고 들었어. 그런데 미안하지만…….”
“감사합니다, 공작님.”
수염이 난 용병이 일어나더니 나한테 깊게 허리를 숙였다.
내 삼촌뻘 되는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나오자 나는 말이 턱 막혔다.
용병은 계속 허리를 숙인 채로 말했다.
“제가 실력에 비해 나이가 많은 편이라, 어찌저찌 용병단에 소속되었어도 곧 나가야 할 처지였죠. 그런데 공작님께서 사람이 필요하시다기에 제가 지원하게 되어 무사히 개인 실적을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그것 참 다행이군.”
“아, 제 소개를 드리지 않았군요. 저는 막스입니다. 평민이니 성은 없지요. 이 녀석은 제 아들인 요나스입니다.”
막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용병이 꼬마의 손을 잡아끌었다.
꼬마는 ‘요나스’라는 이름에 고개를 꾸벅해 보였다.
아니, 이 두 사람이 부자지간이라고?
나이 차이가 좀 심하게 나는 거 아냐?
하지만 두 사람이 부자지간이라면 더더욱 이런 위험한 여행길에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막스와 요나스, 알겠네. 그런데 내가 하려던 말은.”
“정말 다행입니다. 수도로 돌아가자마자 용병단에서 내쫓기는 줄로만 알았는데 말입니다. 그랬다가는 벌이가 순식간에 끊겨 정말 곤란해졌겠지요.”
“그, 그래?”
“예. 이제야 아들 녀석을 치료해주시는 의원님께 그간 밀린 치료비를 갚아드릴 수 있겠습니다. 돌아가면 이 녀석에게 새 옷도 한 벌 사줄 수 있겠지요.”
“미안한데, 저기.”
“정말 다행입니다. 저와 요나스는 계속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의뢰를 하시면 어쩌지 싶어 쉬지도 못했을 정도니까요. 허허허. 신께 간절히 빈 보람이 있군요. 그런데, 하시려던 말씀이?”
루셀을 보자 그는 이미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이런 젠장 할.
“……짐은 다 챙겼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해보라고.”
용병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여기서 나만 졸지에 인간쓰레기가 될 순 없었다.
* * *
“젊었을 적 용병 생활을 하다가 정착을 하려 했죠. 제 아내를 그때 만났습니다. 그런데 제 아들을 낳고 몇 년 후 숨을 거두었죠.”
막스는 이번 용병단 생활이 두 번째라고 했다.
젊었을 적 이름 좀 날렸다는 막스는 제법 큰 용병단에 들어갔지만 자잘한 제약이 많아 금세 뛰쳐나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모아둔 돈은 아내를 치료할 때 다 썼는데, 아들내미와 단둘이 남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저는 고작해야 힘쓰는 일밖에 몰랐으니.”
“그래서 다시 용병일을 하게 된 건가?”
“맞습니다, 공작님. 제 아들은 본래 마을에 맡겨두려고 했는데 아들내미가 꼭 따라나서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변경백의 성에 들러서 좋은 점이 있었다면 썰매를 만들 수 있었다는 거다.
막스가 제안한 아이디어였는데, 물자를 운반했던 수레가 그대로 남아있는 걸 보고 떠올렸다고 한다.
바퀴를 떼고 나무를 뾰족하게 다듬어 날을 세운 다리를 대신 붙이자 훌륭한 썰매가 완성되었다.
이러면 나도 물론이고 다들 앉아서 이동할 수 있었으니까, 체력 비축에도 용이했고.
슬레이가 썰매를 쓸고, 우리는 썰매 위에 옹기종기 붙어 앉아 막스의 이야기를 듣던 차였다.
“요나스라고 했지. 고향을 떠날 때는 무서웠을 것 같은데.”
“나이는 어리지만 얼마나 똘똘한지. 제 아들은 글을 읽을 줄도 알고, 간단한 셈도 가능합니다. 기억력도 굉장히 좋습니다.”
“글을 읽을 줄 안다고?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었나?”
“마을 신관님께서 기초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광고지며 수배지, 잡다한 걸 읽다 보니 알아서 깨우치더군요.”
그건 좀 대단한걸.
계층 간의 이동이 어려운 세상일수록 평민들은 학습의 기회를 많이 빼앗기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도 글을 배우고, 어린 나이에 지도 제작까지 할 수 있다니.
요나스는 제 아빠의 곁에 딱 붙어있었다.
막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런 요나스의 머리를 쓸어주고, 춥지는 않은지 담요를 꼭 덮어주었다.
그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가슴이 울렁거렸다.
“혹시 요나스는 날 때부터 말을……?”
“아내가 죽은 후 열병을 한 번 크게 앓았는데, 그 후로부터 말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아.”
“어린 것이 너무 상심한 게지요. 떠나보내는 저도 심장이 쪼개지는 것 같았는데, 제 어미를 보내는 아들의 마음은 또 어땠겠습니까.”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별소리도 다 들었을 텐데.
요나스는 그런 것치고는 의연해 보였다.
스스로 마음을 굳세게 먹을 정도로 의지가 강한 건지, 아니면.
막스를 흘금 보자 그는 아들의 언 뺨을 제 손으로 녹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떠돌아다니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봤자 지금 같이 제대로 된 의뢰는 거의 처음이지만요.”
“그래? 그런데도 무서워하지 않는군.”
“아들이 곁에 있고, 또 애비가 옆에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빙긋 웃는 막스를 보자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보통은 아내가 죽거나 하면 그 자식을 탓하게 되지 않나?
이 애를 낳지 않았으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 책망하게 되는 게 아니었나?
“혹시 요나스가…….”
막 입을 연 참이었다.
그 순간 눈바람을 헤치고 달리던 썰매의 속도가 느려졌다.
흐린 대기 너머로 어렴풋이 여러 개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굽은 자세에다가 늑대와 비슷한 헐떡이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인간만큼 크고 인간처럼 두 발로 걷지만 절대 인간일 수 없는 존재들.
내가 세 번째 죽음을 맞이하게 만든 마수.
네 번째 부활하고 나서 그들에게 붙여준 이름은,
“예티가 먹이를 찾으러 다니고 있었군.”
한때 무엇이었을지 짐작되지 않는,
설원의 떠돌이. 예티.
나는 루셀에게 뭔가를 속삭였고, 루셀은 잠시 놀란 듯 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썰매에서 훌쩍 뛰어내리자 막스는 함께 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그를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이런 녀석은 제 기사로도 충분합니다. 그보다, 요나스. 이번 의뢰가 첫 모험이라고 했지.”
요나스는 눈을 둥그렇게 뜬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손짓하자 그 애는 엉거주춤 다가왔고, 나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썰매 앞으로 나서는 루셀을 고갯짓했다.
그가 꺼내든 거대한 검은 눈보라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아이의 눈에 검게 반사된 반짝이는 빛이 깃들었다.
“한 번 봐두면 좋을 거야. 지도 제작도 좋지만, 가끔은 다른 곳에 눈을 팔아보기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