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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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의 신전은 급이 나뉘어져 있다.
우선 가장 평범하게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은 신전의 위치와 책임 신관의 명성이었다.
무슨 논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신전은 접근성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높은 급으로 대우해주는 경향이 강했다.
반대로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도시의 신전 같은 곳은 건물이나 종사 신관에게 세속적인 때가 쉽게 묻는다고 저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신전을 대표하는 책임 신관도 중요했다.
신앙으로 이름이 드높은 자가 책임 신관직을 맡으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왔고, 자연히 기부금 역시 많아졌으니까.
그래서 유명한 신전에는 자신이 믿음으로 이름 좀 날려봤다 하는 신관이 배치되는 게 보통이었다.
그리고 대신전은 신전 중에서도 가장 최고로 쳐주는 신전이었다.
이런 신전들은 대부분 황무지 한복판, 사막 한가운데와 같은 척박한 곳에 지어졌다.
당연히 거기에 임명되는 책임 신관들도 이름만 들으면 내로라하는 신관들이었고.
하지만 소설에 따르면 대신전은 생각보다 많이 없다고 했다.
첫 번째로 그런 곳에 신전을 지으려면 아무리 작은 신전이라도 운반에 큰 비용이 들고.
두 번째로 어찌저찌 짓는다고 해도 대신전에 어울리는 성자급 신관이 흔하지 않으며.
마지막으로 신관들도 사람인지라 속세와 거리를 두긴 해도 자신이 참을 수 있을 정도로만 거리를 둔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기도 어렵고 인원 채우기는 더더욱 어렵다는 대신전을, 북부에?
초대받은 신관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루셀 형제님이 공작님께서 대신전의 설립에 지대한 관심이 있으셨다고 듣기는 했습니다. 깊은 신앙에 마땅히 찬사를 드려야 할 것이나, 어찌하여 갑자기 전대 공작님과 다른 행보를 보이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전대 공작님이라 하심은 저희 아버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좀 거북할 수 있지만, 전대 공작님께서 통솔하셨던 하르트만 공작가는 신전에 다소…… 소극적이셨지요.”
최대한 말을 돌려서 예쁘게 표현하려고 한 것 같지만, 저 말을 해석해보자면 이런 거다.
‘옛날에는 귀족인 주제에 기부금도 하는 둥 마는 둥, 코빼기도 안 비치다가 지금 왜 갑자기 이 난리냐.’
하긴, 하르트만은 독자적인 신앙 체계를 은밀하게 유지하고 있었지.
그러니 공작저 안에 예배당도 따로 만들어두었을 테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하르트만의 신앙은 이단에 속한다.
이런 사실을 신관들에게 알려서 좋을 건 하나도 없으니, 나는 최대한 루셀을 활용해보기로 했다.
“전대 공작님에 대한 기억은 저도 흐릿합니다. 관련해 찾아볼 수 있는 문서도 대부분 소실된 상태입니다.”
“크흠. 그렇다면 이유를 답하시지 못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사실 하나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겠군요. 루셀 나빌로프 경의 용기에 탄복했고, 그가 가진 용기의 원천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게 되자 자연스레 경외심이 생겼습니다.”
신관들은 서로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다시 물었다.
“루셀 형제님이 뭐라고 하셨기에 깊은 인상을 받으셨습니까?”
“교리를 따라 약한 이들을 지키는 것은 신께서 자신에게 부여하신 의무이며, 또 자신과 같은 성기사의 책임이라 했습니다. 이걸 듣고 저는 되물었습니다. 그 책임은 온전히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 텐데, 버겁지 않냐고.”
“그러더니……?”
“루셀 경은, ‘모든 이들은 신께서 창조하실 적 부여받은 사명이 있다.’라고 하더군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느릿느릿 걸었다.
내가 한 발짝을 걸을 때마다 신관들의 눈알이 굴러가느라 정신없었다.
“저는 공작가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을 겪고 세상에 회한을 느끼던 때였습니다. 제 선대는 부끄러운 죄명을 얻었고, 가문에서는 유일하게 저만 살아남았습니다. 제 존재 이유를 찾고자 오랜 시간 방황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루셀 경이 말한 겁니다. 모든 이들에게는 사명이 있노라고. 그것은 자신이 깨우쳐야만 알게 된다고.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 걸음이 딱 멈췄다.
이쪽으로 이목이 고스란히 쏠렸다.
꿀꺽, 하고 누가 침을 삼켰다.
“제가 살아남은 이유는, 제 가문의 죄에 대해 속죄하고 제 가족들이 깨끗한 영혼으로 씻김받아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요.”
“그런…….”
“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비록 세례도, 제대로 신전을 방문한 적도 없지만. 그래도 그날 이후로 저는 진심으로 참회하는 삶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끊임없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눈물을 닦는 척하자 신관들 사이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고개를 끄덕이는 신관들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직 어린 나이신데도 이렇게 마음이 고우시다니.”
“가족의 죄를 전부 짊어지겠다 결심하신 게 어디 쉬운 결정이었겠나? 내 자식 나이밖에 안 되셨는데도 참 생각이 깊으시군.”
좋아. 좋아. 이미지 한번 잘 잡았고.
나는 수심에 잠긴 채 다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그런 연유로 대신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대신전은 신께 가장 가까이 닿을 수 있는 장소라죠. 신전이 지어진다면 늘 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은 참으로 훌륭하십니다만, 공작님. 대신전 건축이라는 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짚어주시겠습니까?”
“우선, 대신전의 건축은 중앙 신전에서 관리하는 안건입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앙 신전은 전 교구에서 모은 헌금과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는바, 당장 대신전 건축 예산을 책정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예산이요?”
“가늠은 잘되지 않습니다만, 북부에 대신전을 짓는다면 넉넉잡아 10년은 걸리지 않겠습니까?”
10년을 무슨 개 이름처럼 이야기하는 신관을 보고 속으로만 한숨을 쉬었다.
대신전 짓다가 늙어 죽는 게 먼저겠군.
신관은 계속해서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것도 최소한으로 잡은 거라, 그보다 시일이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매해의 기부금 역시 달라지니까요. 공작님께서 건축에 어느 정도 지원을 하신다고 하셔도…….”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가 안 가는군요. 저는 하르트만에서 신전 건물을 지은 후 중앙 신전에 기부하는 식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집무실에는 일순 정적이 흘렀다.
“기, 기부…… 말씀이십니까? 대신전을? 하르트만에서?”
“네. 당연히 그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신전의 예산은 고려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제가 걱정되는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십니까?”
“제가 아무리 훌륭한 신전을 짓는다고 해도, 그게 대신전으로 승격이 되겠습니까? 제 간절함이 신께 닿지 못할까, 오직 그것만이 서럽습니다.”
“물론 북부라면 어느 정도 참작은 되겠지만.”
“참작이 아닙니다, 신관님. 저는 확실한 보증을 원합니다.”
내부 공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나도 그렇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도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었다.
손님을 주로 관리하던 아른트가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이 사람들은 남부부터 동부, 서부까지 걸쳐 규모가 큰 신전의 책임 신관이거나, 혹은 한자리하고 있는 유망주들이니까.
신앙과 믿음의 깊이를 논하던 자리가 비즈니스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는 아른트에게 눈짓했고, 아른트는 작은 비단 주머니 여섯 개가 올라간 은쟁반을 들고 신관들에게 다가갔다.
“신관님들, 우리 형제님들. 중앙 신전에서 대신전의 기부씩이나 되는 안건을 홀로 처리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분명 몇몇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시겠지요.”
한 사람당 주머니는 하나씩 돌아갔다.
다들 옆 사람의 눈치를 보며 주머니 입구를 살짝 열어보았다.
“헉……!”
신관 중 하나가 숨을 들이켜더니 주머니를 꽉 쥐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놀란 눈으로 주머니 안을 들여다보거나, 아니면 황급히 주머니를 닫고 점잖은 척 헛기침을 하거나.
대부분 예상했던 만족스러운 반응이라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제 작은 성의입니다. 저희는 신 앞에서 전부 형제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건 집안 동생이 형님께 드리는 작은 선물이나 마찬가지죠.”
“이, 이건, 하지만…….”
“형님들께서 설마 귀여운 막냇동생의 애교 어린 부탁 하나 못 들어주시겠습니까.”
혼란스럽겠지.
하지만 저 머리통 속에는 그 이상으로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팽팽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신관들은 인간이기에, 결코 오지에 있는 신전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계획해오던 순간이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해주는 것이 바로 욕망이니까.
그리고 나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욕망을 겨냥한 셈이다.
시간 차이는 조금 있었지만, 결국 모든 신관이 비단 주머니를 제 소매 속으로 집어넣었다.
뇌물을 수락했다는 머쓱하고도 어색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인지, 누군가가 슬쩍 던졌다.
“공작님께서 스스로를 막냇동생이라고 칭하시지만, 이래서야 저희 집안에서 가장 발언권이 센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게다가 가장 신실한 사람이 막냇동생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요.”
“신앙심도 북돋아 주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깊어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공작님께서 가족의 죄를 짊어지시고 참회하시겠다는데, 누가 그것이 그르다고 하겠습니까.”
“하하하, 그 말이 맞습니다, 형제님. 아주 옳으신 말씀입니다.”
내가 눈을 내리깐 채 웃고만 있어도 저들끼리 알아서 내 행동에 대한 면죄부를 만들어주었다.
겉으로만 화기애애한 회담이 끝나고 신관들은 서둘러 객실로 돌아갔다.
그들을 손수 배웅한 아른트가 나를 돌아봤다.
“일부러 여섯 명씩이나 고르신 겁니까?”
“단둘이 있을 때와 여럿이 있을 때 반응은 달라지는 법이지. 분위기라는 것도 쉽게 무시할 수 없거든.”
“공작님께서는 정말 치밀하세요.”
한국에서 정치 뉴스를 보다 보면 이런 건 쉽게 할 수 있게 된단다, 아른트.
나는 일어나 편지 두 통을 아른트에게 건넸다.
“에이슬링 상단에 보내는 건 가급적 빨리 보내 줘.”
“이건 어떤 내용인가요? 긴급한 사안입니까?”
“별 건 아니고, 북부 대신전 건축 관련해서 금화를 조금 빌려달라는 이야기야. 한 이천 닢 정도?”
“네에에? 이천 닢씩이나 말입니까? 도시 하나 사시겠어요!”
아른트가 금액을 듣더니 펄쩍 뛰었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나는 피식 웃기만 했다.
“미스릴 광석 건은 에이슬링이 나에게 빚진 거잖아. 계약서만 보면 나는 미스릴 광석을 조달할 책임이 없거든? 그런데 이본느가 울상 짓고 오니까 딱해서 해준 거지.”
“그 말씀은…….”
“광산을 재개발하기 시작하면 미스릴 광석이 다시 풀릴 거야. 단, 에이슬링 상단을 통해서만.”
아이든도 마냥 손해를 보는 성격은 아니라, 이 정도 보상은 줘야 금화를 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른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장 빠른 인편으로 부치겠노라고 약속하고 집무실을 나섰다.
성을 가득 채우던 신관들은 호화로운 대접을 받다가 사흘 후 성을 떠났다.
내가 몰래 불렀던 여섯 명의 신관 외에도, 하르트만 성의 후한 접대에 기분이 좋아져 언제든 조력하겠노라고 약속하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그리고 약 보름이 지난 후.
하르트만에는 두 통의 서신이 날아들었다.
하나는 에이슬링 상단에서 온 금화 대출 관련 서신.
아이든은 귀족들의 금전 감각은 환멸을 내면서도 내가 소유하게 되었다는 미스릴 광산에 대해서는 호기심을 드러냈다.
관련해서 논의하고 계약서를 수정하든 새로 작성해야 할 테니 공작저를 방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중앙 신전에서 온 것이었다.
편지에는 북부 자치령에 대해 일시적으로 권한을 얻었다는 내용과,
무너진 신전터를 보고 마음이 아파 더욱 성대하고 큰 신전을 지어 기부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적었다.
그리고 중앙 신전은 이에 대해 기꺼이 수락하겠노라고 답장했다.
이 정도면 판은 전부 깔린 거나 다름이 없었다.
하르트만이 북부 신전을 재건한다는 이야기는 순식간에 귀족 사이에 퍼졌다.
그리고 성체축일을 맞이해 귀족들이 수도로 올라갈 즈음에,
하르트만 공작가는 왕실의 대척점 중 하나인 신전파가 되었다는 소문이 무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