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1)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1화(1/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1화
귀환
“으, 으으……. 어째서 이런 일이…….”
갑옷과 검을 든 남자는 전신이 후들거렸다.
공포를 억누르려 필사적으로 정신을 부여잡아도 본능 깊은 곳에서부터 샘솟는 두려움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흉흉한 기운을 내뿜는 거대한 사자는 높은 위험도의 괴물이었다.
아직 신출내기인 남자가 상대하기에는 강대한 적이었다.
“왜 8급 어비스에 이런 놈이 있는 건데……!”
눈앞에 있는 사자는 그는 적수조차 안 된다는 듯 낮게 울며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는 듯했다.
이 사자는 이미 수 명의 신출내기들을 죽여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게 바로 이 남자.
“우, 우아아아아아아-!!”
남자는 죽더라도 명예로운 죽음을 위해 검을 치켜든 채 사자에게 달려들었다.
그에 사자는 가볍게 앞발을 들어 남자를 찢어버리려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사자의 머리가 바닥에 쿵, 하고 떨어지더니 육중한 몸뚱어리마저 옆으로 넘어갔다.
검을 휘두르려던 남자는 그대로 넘어지고,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시뻘건 피에 젖은, 알몸의 남자. 그의 손에는 마찬가지로 핏빛을 띠는 검이 들려 있었다.
그게 남자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여기는 지구가 맞나?”
뭔가 이상하다.
이계에 떨어진 지 수십 년.
제대로 세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40년 이상.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서 마신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이계의 신의 말에 사흘 밤낮을 넘게 싸워 마신을 쓰러뜨렸다.
마신의 심장을 통해 만들어진 차원문을 통해, 이계의 신에게 엿을 날리며 돌아왔다.
그리고 차원문을 넘어온 것까지는 좋았다.
자신이 도착한 곳이 지구라는 확신도 본능적으로 들었다.
그런데 왜, 눈앞에 자신이 있던 이계에나 있는 괴물들이 있는 걸까.
유성우는 깊게 고민할 것 없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새빨간 빛무리가 모여들더니 검의 형태를 이루었다.
“묘하게 검신이 좀 짧아진 것 같은데…….”
그리고 그제야 그는 제 상태를 확인했다.
알몸이다.
몸에 착용하고 있던 장비가 죄다 없어졌다.
일단은 깊게 생각할 것 없이 눈에 보이던 것들을 전부 베어 죽였다.
검신이 좀 짧아졌다고 해도, 이계에서 소드마스터라 불리던 그였다.
환상(幻像)을 베는 섬광(閃光).
거리의 한계를 극복한 그의 검술은 괴물들을 단번에 썰어버리기에 부족함 없었다.
용맹하게도 달려드는 괴물들도 몇 있었으나, 그것들도 이내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괴물들의 피를 뒤집어쓴 채 거닐던 그는 괴물들 말고도 사람들을 발견했다. 안타깝게도 죽임을 당했는지 갈기갈기 찢겨 죽은 채였다.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모습에 유성우는 그들의 눈을 감겨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얼굴을 보건대 한국인처럼 생기기는 했다.
그런데 대체 왜, 자신이 기억하는 한국이 아닌 걸까.
한국에는 이런 괴물들도 없었고, 이런 불길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주변에 느껴지는 인기척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다, 괴물에게 습격당하는 사람을 보고는 단번에 뛰어들어 괴물의 목을 베었다.
괴물의 목이 떨어지고, 괴물의 몸이 허물어진다. 그는 괴물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무사한 것을 보고 말을 걸려고 했으나.
“흐엑.”
남자는 그대로 고꾸라지며 기절하고 말았다.
남자를 깨워 몇 가지를 물어보려 했으나, 이내 이쪽으로 다가오는 수많은 인기척에 유성우는 곧장 자리를 빠져나갔다.
자신은 알몸인 데다가 피 칠갑까지 했다.
이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봤자 그리 좋은 평가는 얻지 못할 터였으니.
‘그리고.’
정보가 필요하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유성우는 기묘한 구멍을 마주했다.
그것은 자신이 넘어온 차원문과도 닮아 있었으나 차원문과는 다른 부류의 구멍이었다.
그 깊이를 알 수 없이 새까맸고, 안에서 흘러나오는 기운 또한 느껴본 적 없는 것이었다.
그저 어렴풋이 다른 차원과 연결되어 있겠거니, 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유성우는 일단 죽은 사람의 로브를 벗겨 제 몸 위에 둘렀다. 복수는 해줬으니 이 정도는 가져가도 괜찮으리라.
아니라면 나중에 돌려주러 오고.
그렇게 자리를 빠져나간 유성우는 일단 도심이 보이는 쪽으로 향했다.
자신이 지구로 돌아온 곳은 일종의 공원처럼 보였으니, 최대한 사람들의 눈을 피해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어, 도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몇 번의 도약으로 고층 건물을 타고 올랐다. 주변 지리를 확인해 이곳이 어디인지 알기 위해서였다.
“……여기는.”
어디지?
이런 씨X…….
유성우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처음 보는 도시였다.
건물이 죄다 새로 지은 것처럼 반짝거렸고, 자신의 낡은 기억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 구성이다.
순간 한국이 아닌가 생각했으나 곳곳에 보이는 한글 간판을 보면 한국은 맞는 듯했다.
“그렇다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자신이 아는 세계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아는 지구가 아니라, 2344번 지구에 떨어지기라도 한 걸까.
유성우는 잠깐 고민하다가, 일단은 찝찝한 몸을 어떻게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상태로 괜히 어디 잘못 걸렸다가는 범죄자로 착각 받기 십상.
게다가 지구의 괴물들을 자신이 쓰러뜨렸다는 걸 알아차릴 가능성이 컸다.
그의 목표는 지구로 돌아왔으니,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다.
고층 건물에서 다시금 도약 한 번으로 내려온 뒤, 학교로 보이는 건물 근처 음습한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폭력의 향기가 짙게 나는 곳이었다.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라도, 이런 곳에는 여전히 야만스러운 폭력이 만연했다.
뒷골목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낄낄대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잔뜩 움츠러든 학생들이 몇 서 있었다.
기합이라도 받는 건지, 삥이라도 뜯는 건지 사람을 세워두고 낄낄대는 모습이 형편없었다.
지구의 형태는 바뀌어도 다행히 요즘 애들은 바뀌지 않았구나. 그리 잠깐 안도한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담배 꺼라.”
불현듯 들려온 목소리에 학생들이 유성우를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맨발에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다.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학생들은 살짝 긴장을 머금은 채 대꾸했다.
“씨X, 뭐야? 이 꼰대 새끼는.”
“길 가던 노숙자 같은데? 뭐요, 담배라도 한 대 나눠줘요?”
“담배 끄라고 했다.”
유성우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눈을 번뜩였다.
살짝 핏빛을 띠는 눈동자가 로브 속에서 번뜩이자 학생들은 움찔하며 한두 발짝 물러나더니 조용히 담배를 껐다.
“됐죠?”
“그리고 폰 좀 빌리자. 슬리퍼랑 돈도 내놔.”
“…….”
가장 안쪽에 있던 학생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유성우에게 건네주는 척하더니 힘껏 던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땅을 박차며 주먹을 내질렀다.
“씨X, 나 분조장 있어! 분조장 알아?!”
“그건 나도 있어.”
분노가 넘치는 학생은 분노 조절에 실패했다.
유성우는 스마트폰을 받으며, 고개를 슬쩍 옆으로 젖혀 피하고는 주먹을 내질렀다.
그의 뻗어진 주먹이 불량 학생의 귀 끝을 스치고, 벽에 틀어박힌다.
그러자 벽돌 벽은 두부라도 되는 듯 그의 주먹에 부드럽게 뭉개졌다.
그와 동시에 달려들었던 학생이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했다.
뒤쪽에 있던 학생들은 순식간에 제압당한 학생을 보고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유성우가 어느새 자신들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섬뜩한 붉은 눈동자로.
“나도 분조장 있다고 했다.”
“……네, 네.”
“너희도 돈 좀 내놔 봐.”
남은 학생들은 자진 납세했다.
유성우는 쓰러진 학생의 품에서 지갑을 뒤져 현금을 탈취하곤, 슬리퍼도 빼앗았다.
알몸 로브에서 현금 알몸 로브 슬리퍼로 진화하는 순간이었다.
학생의 스마트폰의 안면인식을 뒷덜미를 잡고 들어 올려 풀어낸 그는 대충 필요한 정보를 검색했다. 일단은 근처의 목욕탕.
꽤 좋은 시설의 목욕탕이 있었기에 지리를 머릿속에 집어넣은 그는 스마트폰을 학생의 등 뒤에 올려놓았다.
“새끼들아, 착하게 살아. 착하게. 남 삥뜯지 말고. 새끼들이…….”
“차, 착하게 살겠습니다.”
“나중에 착하게 사는지 보러 올 테니까 약속 지켜라. 거기 서 있는 너희도 빨리 꺼져.”
유성우의 말에 쭈뼛거리던 학생들이 빠르게 사라졌고.
남은 불량 학생들은 기절한 친구를 데리고 뒷골목에서 벗어났다.
“요즘 애들은 현금을 별로 안 들고 다니네.”
세 명한테 삥을 뜯었는데 고작 오만 원이라니.
좀 많이 들고 다닐 것이지…….
만 원짜리 다섯 장을 팔락거리며 유성우는 목욕탕이 있는 건물에 들어섰다. 24시간 찜질방까지 겸하고 있는 곳.
“어른 한 명.”
입구에서 유성우가 그리 말하며 만 원짜리 두 장을 내밀었다.
접수원인 아주머니가 큰 키의 유성우를 잠깐 올려보다가 말했다.
“목욕만? 찜질까지?”
“찜질까지.”
“탕에 들어가기 전에 꼭 샤워하고 들어가쇼.”
아주머니는 초라한 행색의 유성우에게 그리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캐비닛 열쇠와 수건, 제일 큰 사이즈의 찜질복을 건네주었다.
유성우는 그것을 받아들고는 조용한 발걸음으로 목욕탕으로 향했다.
그는 오랜만에 따뜻한 물에 몸을 담글 수 있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뜨뜻한 물로 몸에 눌어붙은 괴물의 피와 체액들을 씻어내고, 느긋하게 사람 없는 욕탕에 몸을 담갔다.
“후…….”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게 대체 얼마 만이던가.
유성우는 돈을 주고 세신까지 마치고 난 뒤 밖으로 나와 물기를 닦고 찜질방 옷으로 갈아입었다.
제일 큰 사이즈였으나 살짝 끼었다.
어쨌든, 지구로 돌아오고 나서 처음으로 입는 제대로 된 옷이었다.
유성우는 터질 것 같은 가슴과 팔뚝 부분을 몇 번 매만지고는 찜질방 내부를 둘러보았다.
‘저기 있군.’
찜질방 내부에는 자그마한 PC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PC방에 들어선 그는 적당한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정말 오랜만에 조작해보는 전자기기였지만, 학창 생활을 허투루 보낸 건 아니었기에 컴퓨터 조작은 금방 익숙해졌다.
그는 곧장 인터넷 창을 켜서 가장 먼저, 날짜를 확인했다.
2022년, 10월 6일.
22년의 가을.
유성우는 날짜를 보는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지구는 자신이 이계에서 수십 년을 보내는 동안.
단 1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시간의 괴리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으나 어마어마한 세월의 차였다.
자신의 나이가 일흔을 넘어 여든에 가까워지는 동안, 지구는 고작 십 년.
그 사실은 그의 머릿속에 커다란 충격을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혹시 PC방 컴퓨터의 시계가 잘못된 게 아닌지 몇 번이고 확인했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과거에 이계에 떨어졌던 그는 수십 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10년 뒤의 지구에 도착했다.
“으음…….”
일단 시간의 괴리는 제쳐두기로 하고, 그는 알고 싶었던 정보들을 찾아보았다.
여기는 어딘지, 어째서 지구에 이런 괴물들이 있는지, 그 검은 구멍은 무엇이었는지.
누군가가 유튜브에 10분짜리 동영상으로 정리해 둔 게 있었기 때문에 유성우는 조용히 동영상을 시청했다.
“지구가 말세로군.”
동영상의 시청을 끝낸 유성우가 그리 중얼거렸다.
정말로 말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