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101)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101화(101/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101화
검은 신목(8)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그랜드 로터스는 천천히 죽어가기 시작했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기력이 다했기에, 뿌리내린 별과 함께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었다.
그랜드 로터스 홀로 죽는 거라면 또 모를까, 세계수 아래에 종속된 이들까지 함께 말라죽을 것이다.
그게 축복받은 이들의 제약이었다. 축복을 준 이가 있으니, 죽을 때 축복은 당연히 거둬지는 것.
베이오르간은 죽음이 두려웠다.
오래도록 살았지만 죽음은 끝이 아닌 저주의 시작이라 여겼다.
엘프들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부모 나무의 곁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날 삶을 준비한다.
하지만 부모 나무가 죽으면? 그렇게 되면 죽은 엘프는 어떻게 되는가?
베이오르간은 엘프의 장로로써 긴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고, 자신들의 앞에 홀연히 나타난 승천교와 손을 잡았다.
격을 한 단계 뛰어넘어 더욱 뛰어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설명.
엘프들의 부모 나무의 곁을 떠나 생존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부모 나무를 배신했다. 찬동하지 않는 자들은 마을에서 쫓아내고, 그랜드 로터스에서 힘을 끌어낸 뒤, 연결을 끊으며 존재를 확립했다.
그러고는 승천교가 지시한 대로 남아 있는 그랜드 로터스의 마력과 신성을 짓눌러 태초의 형태, 씨앗으로 만든 뒤에 지구로 향했다.
세계수에서 씨앗이 된 그랜드 로터스는 ‘가공’을 위해 승천교의 손으로 넘어갔고.
‘가공’을 끝마친 뒤 베이오르간의 손으로 돌아왔다.
베이오르간은 스스로가 세계수가 되기를 원했다.
그랜드 로터스의 신성과 마력을 이어받아 지성을 가진, 움직이는 새로운 신이 되어 엘프들을 다스리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결국 불태워지고 마는군…….’
아스라이 사라져간다.
붉은빛이 세상을 가르니 더는 존재를 유지할 수조차 없었다.
베이오르간은 마지막으로 자신을 가른 존재를 보았다.
그의 영혼이 보였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누구보다도 많은 흉터를 가진 영혼이었으며, 살벌한 검이 여러 자루 꽂혀 있는 영혼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신성.
마치 개화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은 작은 꽃봉오리.
영혼에 와닿는 순수한 신성은 누군가에게서 뺏은 것이 아닌, 본인의 노력으로 일궈낸 것이라는 게 느껴졌다.
인간의 몸으로, 하찮게 생각하던 그 인간의 노력만으로 신의 경지에 닿았다는 것인가.
베이오르간은 허망함과 동시에 안도감을 느꼈다.
어떻게 해도 자신은 완등할 수 없는 절벽이다.
특별한 자들에게만 허락된 곳일 테니… 자신이 이리 된 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라며.
마지막 자기합리화를 끝마친 베이오르간의 영혼이 서서히 흩어졌다.
* * *
“상태가 이상한데?”
“앞으로 조금만 더 버티면 될 것 같다!”
바깥에서 검은 나무를 막아내던 다이버들은, 주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력을 쏟아부었다.
그러던 중 검은 나무의 상태가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휘둘러대던 나무뿌리의 속도가 느려지고, 강렬하던 기세가 점점 죽어갔다.
그러다 이내 쩌적, 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나무의 위에서부터 아래로 반으로 갈라지는 커다란 균열이 생겨났다.
검은 나무가 활동을 멈추었다.
주변의 모든 생명력을 빨아먹던 행위가 멈추었고, 그에 따라 다이버들도 뒤로 물러서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뒤이어 균열 속에서 새빨간 빛이 뿜어져 나왔다.
주변을 완전히 뒤덮어, 하늘을 노을처럼 붉게 물들여 버리는 강렬한 마력의 빛이었다.
유지우는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유성우가 한 일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녀는 숨을 길게 내뱉었다.
몇 번인가 보았음에도, 여전히 믿을 수가 없다.
저만한 힘을 인간이 어찌 내보일 수 있단 말인가.
특급 어비스에서 튀어나올, 그런 괴물이나 가능할 힘이다.
아니면 과거에 이 땅에 내려와 모든 것을 파괴하려 들었던 드래곤이나 가능할 힘이다.
어마어마한 마력과 신성을 지닌 존재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반으로 갈라버리는 힘이었다.
그러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모두 보았으리라.
자신의 오빠의, 유성우의 능력을.
그 누구도 의심하지 못하도록,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뇌리에 새겨주리라.
자존심 높은 마탑과 오색무당회에게도…….
개인은 집단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집단을 뛰어넘는 개인은 드물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저 모습을 보았으니 적어도 국내에 있는 길드 중에서는 유성우를 적대할 생각을 하지 못하리라.
만약 건드렸다가는, 미친 귀환자에 의해 방금과 같은 꼴을 자신들이 당할 수도 있을 테니까.
검은 나무가 반으로 갈라지며, 이내 점점 재로 변해갔다.
그 몸을 구성하고 있던 마력과 신성이 낱낱이 해체되며 자연으로 돌아가고, 일부는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마력의 소용돌이 중심에는 분명히 유성우가 있으리라.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드니, 그곳에는 잔느를 옆구리에 낀 채, 공중에서 하강하는 유성우가 있었다.
‘아아…….’
나의 가족.
나의 오빠.
먼 길과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귀환한 최강의 소드마스터.
유성우는 과거에도 자신을 지켜주는 좋은 오빠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단 한 가지의 사실이리라.
그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은 유지우는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 속에서부터 북받치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심장을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
“오빠!”
유지우가 그리 외치며 뛰어나가고, 그녀의 뒤를 따라 두 명이 나섰다.
“스승님!”
“스승니이이임-!!”
이제는 스승이라는 칭호가 완전히 입에 붙어버린 백우현과 홍서화.
유성우가 그들의 앞에 착지하며 구덩이를 만들고 흙먼지를 피워올렸다.
그러나 그것을 한 손을 휘둘러 가볍게 걷어낸 유성우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말했다.
“수고했다. 이제 집에 가자.”
* * *
뒤처리는 유성우의 일이 아니었다.
그의 할 일은 검은 나무를 반으로 쪼개버리고, 엘프들에게서 북한산을 되찾는 것.
목적은 달성했다.
꽤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유성우가 해낸 일은 커다란 지지를 받았다.
여러 길드에서 보도자료를 뿌린 것도 있고, 정부 쪽에서도 별다른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군인들이 멍청한 짓을 해버린 덕분이었다.
유성우가 당장 군인들의 모가지를 죄다 썰어버리고, 그 윗대가리까지 죽여 버리지 않은 게 용한 일이었다.
물리적으로 자기 목을 보전하고 싶어서라도, 이번에는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판단한 덕분이었다.
나라를 위협하는 침략자, 엘프들에게서 나라를 지켜낸 진정한 애국자!
유성우의 캐치프레이즈였다.
정작 본인은 대한민국의 안위 따위 상관없었지만 말이다.
잔느는 일단 돌아갔다.
유성우의 의사를 전달하고, 정식으로 다시 방문하겠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세현시로 돌아온 유성우는 몇 주 동안 다시금 늘어지게 자고 먹은 다음에, 녹스의 학교로 향했다.
오늘은 녹스의 학교, 연암 사립 초등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리는 날.
요즘 운동회에 부모가 참가하는 일은 적었다.
다들 먹고 살기 바쁜데, 시간을 빼면서까지 참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연암초는 더더욱 그렇기에 부모들의 참가를 강조했다.
아이와 부모와의 유대감이 아이의 성장에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그렇기에 연암초 운동회는 성대할 뿐만 아니라, 부모들의 참가율도 높은 편이었다.
유성우는 녹스의 부모 자격으로 운동회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어느새 여름이 가까워지는군.’
봄의 끝자락.
더워지기 시작하는 여름이 오기 전에 열리는 운동회였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육백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벌이는 치열한 살육전.
“아무도 안 죽거든요?”
“요즘에는 그러냐?”
녹스의 딴지에 유성우가 입술을 씰룩였다.
예전에는 좀 더 살벌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피구 하다 금 밟고 죽고.
“아저씨는 여름 좋아해요?”
“별로 안 좋아한다.”
“왜요?”
“뭐든 빨리 썩어버리는 계절이라.”
그게 음식이든, 시체든.
음식이 썩으면 벌레가 꼬이고, 시체가 썩으면 마수와 까마귀가 꼬인다.
벌레는 기본 옵션이다.
게다가 더우면 갑옷도 입기 힘들어진다. 땀이 차고, 끈적거리고.
때문에 전투력이 떨어진다.
여러모로 여름은 싸우기에 정말로 좋지 않은 계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용병들은 대부분 여름에는 싸우는 일 말고 짐꾼 같은 일을 했다.
“뭐가 썩는데요?”
“알아서 생각해 봐.”
이대로 가다가는 질문이 끝이 없을 것 같아, 유성우는 대충 넘겨버리고는 이제 막 시작하는 운동회를 바라보았다.
선생님들의 사회와, 신난 학생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시끄럽기는 했지만 평화로운 광경.
다른 사람들을 살피다 자신들과 다른 점을 발견했다.
“너는 도시락 없냐?”
“도시락?”
“그래. 점심 도시락.”
다른 가족들은 전부 도시락 가방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가 오지 않은 학생이라도 도시락을 챙겨온 듯했는데, 아침에 나설 때 도시락은 코빼기도 보지 못한 유성우였다.
“아, 그건 언니가 어떻게든 해준대요! 점심시간을 기대하라던데요?”
“불길한 생각밖에 안 드는군.”
유성우는 그리 중얼거리곤 학생들이 준비한 장기자랑들을 구경했다.
아직 저학년인 학생들은 음악에 맞춰 귀여운 율동을 준비했다.
팔불출인 부모들은 아이들의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음은, 3학년 학생들의 포크댄스가 있겠습니다.
방송이 흘러나왔다.
방송을 들은 녹스가 자리에서 펄쩍 뛰어 일어나더니 말했다.
“저 다녀올게요! 잘 보고 있어야 해요, 아저씨!”
“그래.”
총총 뛰어 녹스가 다른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자, 유성우도 학부모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할 일은 이게 전부였다.
북한산에서 있던 일의 뒤처리는 여러 길드가 도맡아서 해주고 있었으니, 자신은 느긋하게 쉬면 되었다.
승천교에 대한 조사가 남아 있기는 했지만, 그 건에 대해서는 유월이 따로 조사 중이었다.
‘내가 움직이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유성우는 자신이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사람이었다.
정보를 모으는 건 다른 이들이 하고, 정보를 토대로 무력으로 뚫어야 할 곳이 있으면 그가 뚫는다.
다른 이들이 광산에서 금맥을 찾아내는 이들이라면 그는 금맥으로 향하는 길을 뚫는 사람이라는 뜻.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나설 때를 얌전히 기다렸다.
승천교, 놈들은 머지않아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낼 테고 마녀회와 손을 잡게 되면 그 실체를 파악하기 더 쉬울 테니까.
‘그리고…….’
그 또한 안정의 시간이 필요했다.
검은 나무, 그랜드 로터스였던 것을 베어내고 난 뒤 몸 상태가 찜찜하게 변했다.
나쁘게 변한 건 아니고, 흘러넘치던 마력과 신성을 일부 흡수한 건지 그걸 소화시키지 못해 거북한 느낌에 가까웠다.
막말로 너무 많이 처먹어서 배가 부른 상태.
게다가 뭔가를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 당분간은 세 명을 어비스에서 굴리기만 할 뿐, 직접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유월도 굴려야 하는데.’
슈아넬도 학교에 보내야 하고, 녹스 부모도 찾아줘야 하고…….
아무튼, 유성우는 이래저래 할 일이 많다는 걸 깨닫고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학부모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 혹시… 유성우 다이버 아니십니까? 이번에 북한산에서 활약하신 엘프 슬레이어 맞죠?”
엘프 슬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