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117)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117화(117/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117화
토마스 데 토르케마다(6)
유성우의 영혼에 새겨진, 검혼(劍魂)은 총 일곱 자루.
개중에서 현재 꺼낼 수 있는 건 네 자루였다.
일생(一生).
이계(二界).
삼정(三精).
그리고 흑사(黑四).
앞의 세 자루는 적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몇 번이고 꺼내서 쓴 적이 있다.
하지만 뒤의 한 자루, 흑사는 꺼낸 적도, 꺼내고 싶은 적도 없는 검이었다.
‘다른 검들의 수복이 느린 것도 이 새끼가 너무 많이 처먹어서 그런 거지…….’
욕심쟁이 검.
유성우의 여러 검 중에, 가장 욕심이 많은 검이자 ‘마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놈이었다.
유성우조차 이 검을 쥐기 위해서는 마음을 먹어야 할 정도로.
하지만 지금은 좋은 재료도 있고, 상황이 끝내주게 마련되어 있다.
흑사를 사용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는 토마스의 시선을 피해 커다란 못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더 엄청나군.’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공들여 만들어낸 것일까.
유성우는 못 위에 손을 올려 흘러들어오는 감정을 느꼈다.
살의와 증오, 부정의 감정.
오랜 세월 핍박받았던 마녀들의 살의가 농축되어 있는 대못은 잔느가 말했듯이 신화급의 물건이었다.
신을 죽이는 대못이라더니 그게 허언이 아니었다.
“끝내주는군.”
그리 작게 중얼거린 유성우는 심호흡하며 흑사를 불러냈다.
“내게로 오라, 흑사.”
흑사의 또 다른 이름은 흑사(黑死). 검은 죽음.
죽음을 형상화한 것만 같은 검은 안개가 그의 손에 모여들어 시꺼먼 검의 형태가 되었다.
빛조차 반사하지 않는, 흑요석으로 제련한 것만 같은 검이 검은 기운을 뿜어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손잡이를 쥐는 것만으로 막대한 기운이 빨려 들어간다.
지금은 그가 지배하고 있지만, 언제든 빈틈을 보이면 역으로 잡아먹으려 들리라.
“가만히 있어, 새끼야. 곧 좋은 거 먹여줄 테니까.”
유성우는 냅다 주먹으로 흑사의 검신을 두들기고는, 대못을 올려다보았다.
흑사의 힘의 원천은 ‘부정’이다.
부정한 감정, 부정한 기운, 온갖 부정한 것들로 벼려낸 것이 흑사라는 마검.
그렇기에 흑사는 최악의 마검이지만, 최강의 마검이기도 했다.
유성우가 있던 이계는 어딜 가든 부정함으로 넘쳐나는 곳이었으니까.
“자, 먹어라, 흑사. 오랜만의 포식이다.”
그리 중얼거린 유성우는 검을 그대로 대못에 꽂아 넣었다.
그러자 흑사가 웅웅 울어대며 신나게 대못의 기운을 빨아먹기 시작했다.
“큭!”
유성우는 대못의 힘을 빨아먹으며 점차 세를 불리기 시작한 흑사를 제어하려 오러를 일으켰다.
인상을 팍 쓴 채 흑사가 대못의 힘을 전부 빨아먹기를 기다렸다.
절제를 모른다.
흑사는 자신보다 거대한 힘을 지닌 대못의 힘을 기어이 전부 먹어치웠다.
사람은 이렇게 처먹으면 탈이 나는데, 흑사는 마검이라 이렇게 처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다.
대못의 형태가 재가 되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그곳에는 더욱 음울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한 흑사만이 남았다.
“이제 배부르냐?”
유성우는 다시 한번 냅다 오러를 두른 주먹으로 흑사를 두들겼다.
이놈은 주기적으로 패야 말을 듣는 놈이다.
주기적으로, 자신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지 않으면 정신을 못 차리는 놈.
“잔뜩 먹여줬으니, 밥값을 해야지. 목표는 저놈이다.”
그리 말한 유성우는 검 끝으로 토마스를 가리켰다.
대못이 사라지자 확실히 시선을 끌었는지, 토마스는 빠른 속도로 빛을 뿌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흑사가 울었다.
토마스에게서부터 느껴지는 신성이 태생이 불온한 마검을 자극한 것이었다.
흑사도 저놈을 썰어버리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듯했기에, 유성우는 흑사에게서 흘러나오는 힘을 받아들이며 눈을 감았다 떴다.
“…하아, 기분 진짜 더럽다니까.”
그의 눈동자가 검게 물들었다.
흰자위는 검고, 살짝 붉은 기의 동공은 노랗게 변해 세로로 찢어졌다.
그의 몸 곳곳에 비늘이 돋아났고, 지금까지 풍기던 기운은 좀 더 흉폭하고, 사악하게 변했다.
유성우는 가볍게 뛰었다.
이전과는 다른 속도로, 거의 날아가듯이 튀어 오른 그가 아래쪽에서 흑사를 퍼 올리듯이 휘둘렀다.
토마스는 이전처럼 그저 몸을 내주려고 하다, 불길함에 신성으로 이루어진 방벽을 펼쳤다.
쩌엉─!!
흑사와 부딪힌 방벽에서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성우는 연이어 검을 휘둘렀다.
이제는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였다.
토마스의 눈에는 한 번 휘두른 것처럼 보였으나, 유성우의 흑사는 수백 번이고 방벽을 두들겼다.
이내 신성의 방벽에 금이 쩌적 가더니 쪼개져 흩어졌다.
“이단자가 이제 불경한 힘까지 휘두르는구나! 너는 그 힘으로 멸망할 것이다!”
“그것보다 지금 여기서 너한테 죽는 게 더 싫어서 말이지.”
멸망하든 말든, 그건 자신의 일이고 말이다.
유성우는 공중에서 도약했다.
바닥조차 없는 곳에서, 물리법칙을 무시하며 가속해 토마스를 향해 검을 뻗었다.
눈앞에서 수십 갈래로 갈라지는 검로.
환상은 하나도 섞이지 않은 오로지 진실로만 이루어진 검격.
눈이 어지러워질 만한 공격에 토마스는 전방위에 방벽을 펼쳤다.
그러나 그것은 검과 부딪치며 다시금 산산이 부서졌다.
“그걸로는 부족해!”
유성우는 날카롭게 소리치고는 재차 검을 휘둘러갔다.
검로가 계속해서 분열한다.
한 개에서 백 개로, 백 개에서 천 개로.
토마스의 눈에 비치는 풍경은 검은색 검으로 빼곡한 지옥이었다.
검림지옥(劍林地獄)이 도래했다.
토마스의 방벽은 유성우가 휘두르는 검을 전부 막아내지 못했다.
무시무시한 검림지옥 속에서 펼쳐진 방벽은 그 형태를 일 초도 유지하지 못했다.
“부족, 하다니까!”
유성우는 싸움에 굶주린 사람처럼 계속해서 검을 부딪쳐왔다.
부서지는 방벽이 재건되면 그것을 다시 부수면서, 토마스를 압박했다.
갑자기 바뀐 전투 방식에 당황한 토마스는 사방에 광검을 만들어내 유성우를 찌르려 들었다.
그러나 수많은 광검의 숫자는, 유성우가 휘두르는 검의 숫자를 넘지 못했다.
“좀 더, 좀 더 나를 즐겁게 해봐라! 빌어먹을 신성 덩어리야!”
“완전히 미쳐 버렸구나! 반드시 네놈을 죽여 버리겠다!”
“나는 원래 미친놈이야!”
유성우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며, 그의 검이 검은빛을 사방으로 뿜어냈다.
토마스의 황금빛과는 대조되는 검은빛은 황금빛과 부딪치며 스파크를 연달아 튀겼다.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는 거냐! 이단심문관이라면서, 이단심문관이라면서 이 새끼야! 심문 좀 해봐라!”
유성우의 뻗어진 검이 토마스의 살갗을 갈랐다.
흑사에서 뿜어진 부정한 기운이 토마스의 재생을 막았다.
토마스에게서 지워진 ‘죽음’이라는 개념이 유성우에 의해 다시금 그 몸 위에 새겨졌다.
흑사(黑死)라는 이름에 걸맞게, 검은 죽음이 토마스에게 드리워졌다.
“진정한 신의 힘을 맛보게 해주마!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이를 악문 토마스는 양손을 펼치며 신성을 뿜어냈다.
그에 응답하듯이,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황금빛 번개는 그야말로 천벌.
몇 줄기의 번개가 유성우에게 작렬했다.
“죽어! 죽어! 죽어!”
번개가 계속해서 떨어진다.
세계가 연이어 번쩍거리니, 세계의 종말이 다가오는 듯했다.
그러나 유성우는 번개의 포화 속에서도 천천히 공중을 걸어 토마스를 향해 걸어갔다.
번쩍거리는 세계에서 그는 여전히 검었다.
“따끔해, 아주 따끔해…….”
흑사를 통한 강화.
흑사에 깃든 부정(不淨)함은 온갖 것들을 부정(不正)한다.
그것이 흑사의 본질.
아무리 신성이라고 하더라도, 흑사가 정한 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유성우는 떨어지는 번개 속에서 유유히 걸어 나오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흑사가 허공에 검은 선을 그리니, 번개가 모조리 반으로 갈라졌다.
“신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멍청아, 너는 놀아나고 있는 것뿐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유성우가 점차 다가오자, 토마스는 사방에서 금빛 사슬을 뽑아내 그를 묶었다.
그리고 커다란 빛의 검을 만들어내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하늘을 가르는 빛의 검이 유성우를 향해 떨어졌다.
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거대한 검을 휘두르려고 해도 기술이 있어야지. 그저 무식하게 휘두르기만 하면 쓰나…….”
물론 거대한 것만으로도 폭력적인 흉기지만, 기술이 담겨 있지 않은 단순한 휘두르기라면…….
투욱.
유성우의 흑사가 어느새 공중으로 치솟아 있었다.
그를 옥죄고 있던 사슬들은 전부 해체된 채, 유성우의 흑사만이 우뚝 서서 떨어지는 빛의 검을 받아냈다.
그저 약하게, 검 끝으로 그 궤도를 비트는 것만으로 빛의 검은 빗겨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제 곁으로 빛의 검이 떨어지자, 유성우는 입꼬리를 올렸다가, 이내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이제 재미없군. 네놈의 뒤에 있는 놈이 나왔다면 좀 더 재밌었을 텐데… 겁쟁이 새끼는 숨어서 나올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으니.”
그리 중얼거린 유성우가 거리를 좁혔다.
마치 공간 도약이라도 한 것처럼,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순식간에 토마스의 눈앞에 도착했다.
뒤이어 검은색 검이 그의 심장 부근으로 파고들고, 내부에서부터 낱낱이 해체해 버리기 시작했다.
죽음이 토마스를 덮쳤다.
그는 심장부터 토막 나고, 마지막에는 전신이 토막 나 부정에 검게 물들었다.
토마스에게 깃들었던 신성은 그대로 유성우에게 빨려 들어갔다.
“하아아…….”
유성우는 제게 흡수되는 신성이 흑사에게 먹히지 않도록 제어했다.
‘원래라면 이 신성은 토마스가 죽는 즉시 본인에게 돌아가겠지.’
하지만 유성우는 제가 직접 벤 적의 신성을 흡수할 수 있었다.
이게 왜 그런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토마스에게 신성을 준 놈에게는 타격이 있었으리라.
‘언젠가는 직접 만나서 그 목을 따버려야지.’
유성우는 더 날뛰고 싶어하는 흑사에게 다시 냅다 주먹을 날렸다.
떠엉, 하는 소리와 함께 진정한 흑사가 앵앵 울어댔다.
유성우는 흑사를 돌려보내고는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흑사의 부작용이 몰려왔다.
부정함을 몸으로 담아냈기에, 전부 소모하지 못한 기운이 정신을 침식하려 들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이럴 때는 한숨 자고 일어나는 게 제일이었다.
악몽은 꿀지언정, 현실에서 지랄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 * *
“이게 무슨 일이람…….”
바티칸 내부가 잠잠해지자, 잔느는 마녀들과 함께 다시 바티칸에 발을 들였다.
바티칸의 상태는 처참하다고밖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안 부서진 곳이 없었고, 곳곳에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사람들은 겨우 목숨을 건진 듯, 바싹 마른 채 겨우 숨만 쉬었다.
잔느는 일단 그들을 지나쳐, 유성우를 찾았다.
토마스를 쓰러뜨렸다면 연락이 왔을 텐데, 연락이 오지 않는 게 신경 쓰였다.
“아…….”
그리고 잔느는 바티칸의 대못이 꽂혀있었던 자리에서 유성우를 발견했다.
발을 헛디디면 머리를 열아홉 번은 부딪칠 것 같은 커다란 구덩이 한가운데에,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잔느는 그에게로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죽지는 않았고, 그저 잠들었을 뿐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잔느는 그를 데리고 가기 위해 손을 뻗었고.
유성우에게 손목을 붙잡혔다.
“꺄악?!”
그리고 들려오는, 평소 유성우의 목소리와는 다른 목소리.
“감히 누구의 몸에 손을 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