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128)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128화(128/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128화
흑웅
“녹스, 뭐 그리고 있는 거야?”
“드래곤!”
연암 사립 초등학교, 미술 시간.
각자 좋아하는 동물을 그리라는 말에, 녹스는 당당하게 드래곤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른 학생들은 개나 고양이를 그렸지만, 드래곤을 그린 학생은 녹스가 처음이었다.
“드래곤은 무서운 괴물이잖아! 그런 괴물을 어떻게 좋아하는 거야?”
열심히 드래곤을 그리는 녹스에게, 한 학생이 말했다.
녹스는 학생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드래곤은 무서운 괴물이 아니야. 강하고 상냥한 존재지.”
“거짓말이야! 엄마가 그랬어. 드래곤 때문에 사람들이 엄청 많이 죽었다고!”
학생의 말에 녹스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음성은 상냥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 드래곤은 오로지 자신 혼자뿐이었다.
정체를 드러낼 수도 없기에 드래곤은 본디 상냥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드래곤이라곤, 10년 전에 모습을 드러내 도시를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인 드래곤 밖에 없었으니.
대답하기가 싫어진 녹스가 입을 꾹 다물자, 옆에서 조잘대던 학생이 소리쳤다.
“선생님! 녹스가 괴물 그려요!”
결정타였다.
결국 참지 못한 녹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괴물 아니야!”
“괴물 맞거든! 그런 걸 좋아하다니, 녹스는 이상해!”
“괴물 아니라니까!”
* * *
유성우가 이번에는 서산으로 1급 어비스를 처리하러 간다는 소식에 대한민국에 들썩였다.
1급 어비스는 존재만으로 커다란 위협이었기에, 1급 어비스가 나타나면 근처에 살던 사람들은 고향에서 쫓겨나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즉, 유성우가 1급 어비스를 공략한다는 건 그들의 고향을 되찾아주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유성우를 비난하는 여론은 완전히 수그러들었다.
어디서 정보가 유출됐는지, 검혼의 의뢰비 얘기도 기사에 올라왔긴 했지만, 금방 묻혔다.
몇 번의 공략만으로 수백억을 벌어들인 유성우가 재단을 직접 설립해 기부한다는 소식이 퍼진 덕분이었다.
“뭐 어디 쓸 데도 별로 없고 말이지.”
이제 몇십억 정도는 써도 티가 안 날 정도였다.
그가 돈을 어디에 쓰는 타입도 아니었던 데다가, 메테오 인더스트리에서 파견한 전문 경영인도 추천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유성우가 1급 어비스로 향하는 날이 다가왔다.
들어가기 전, 유성우는 마지막으로 어비스의 자료를 확인했다.
1급 어비스, 절경(絶境).
어비스라는 이름에 잘 어울리는 어비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절경은 절망적인 환경이었다.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펼쳐지는 건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사람 같은 건 살지 않는 폐촌.
그곳에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커다란 구멍이 있다.
직경 수십 킬로미터는 되는 크기의 시커먼 구멍은 그야말로 심연으로 향하는 구멍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전에 절경을 탐사했던 다이버들의 정보에 의하면 구멍을 내려갈수록 점점 강한 중력이 작용하고, 그 끝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예상하기로는 구멍의 끝에 보스몬스터가 있을 것이라고.
‘유의해야 할 건 괴물뿐만 아니라 각종 독초 등… 위험하지 않은 게 없는 동네라는 거군.’
간단하게 축약한 유성우는 제 앞에서 웅웅대며, 들어오라고 속삭이는 듯한 시커먼 구멍을 보았다.
어비스에서 풍기는 불길함뿐만 아니라, 이질적인 기운도 느껴지는 걸 보아 그의 예상대로 누군가가 개입한 모양.
그러나 유성우는 주저하지 않고 어비스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의 몸이 이내 어둠에 삼켜지고, 시야가 뒤바뀌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보이는 것은 푸른 하늘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그리고 섬의 중심으로 시선을 돌리면 얼핏 보이는 검은 구멍.
그가 서 있는 곳은 커다란 섬의 어딘가였다.
“분위기 한번 장난 아니군.”
그리 중얼거리며 입구에서 조금 걸어가니, 폐촌이 나왔다.
이전 탐사대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는 폐촌은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읽을 수 없는 글귀와 무언가의 흔적들로 가득한 음산한 곳.
당장 귀신이 나와도 이상한 것 없는 광경이었으나, 그런 을씨년스러움에도 유성우는 폐촌 안으로 들어섰다.
한밤중에 언데드가 튀어나오는 공동묘지도 간 적이 있는데 이런 걸로 겁먹을 그가 아니었다.
‘별로 쓸 만한 건 없군.’
1급 어비스, 절경은 방치된 곳이었다.
내부는 위험하지만, 구멍 바깥으로 괴물이 나오려 하지도 않아서 주기적인 청소도 필요 없는 곳.
하지만 만에 하나를 위해 인근의 주민들은 모두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조용하다가 갑자기 활성화되는 어비스도 잔뜩이었으니.
“낚시나 해볼까?”
이번에는 빠르게 공략할 필요는 없었다.
연극의 막이 오르는 건 모든 배우가 모였을 때니까.
그는 느긋하게 그들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적당한 나뭇가지를 깎아 낚싯대를 만들고, 미끼도 대충 바닥을 기어 다니는 벌레들을 잡았다.
낚싯줄로는 예전에 탐사대가 사용하고 놓고 간 것 같은 밧줄을 이용했다.
적당히 채비를 끝낸 그는 섬의 끝쪽으로 가서 절벽에 걸터앉고는 낚싯대를 드리웠다.
낚싯바늘은 오러로 때웠다.
‘먹을 만한 게 낚이면 좋겠군.’
식량은 넉넉히 챙겨왔지만, 많을수록 나쁠 건 없으니까.
* * *
흑웅은 이번 일을 위해, 많은 인력을 투입했다.
상대는 그 유성우다.
홀로 1급 어비스를 공략해 내는 괴물이기에, 흑웅에서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전력을 데려왔다.
S급 세 명, A급 다수.
모두 암살에 능한 이들이었고, 순간적인 화력이라면 S급을 웃도는 A급들이었다.
S급 다이버 두셋은 순식간에 지워버릴 수 있을 정도의 전력.
그러나 유석형은 그만한 전력을 끌고 왔음에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상대해 본 적 없는 유형의 적이었으니.
“진입한다.”
유성우가 들어가고 꼬박 하루.
입구를 지키는 사람들마저 꾸벅꾸벅 졸 만한 야심한 새벽.
승천교에게 넘겨받은 정보를 통해, 정한 최적의 시간이었다.
아무리 유성우라도 하루 만에 절경을 공략해내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그가 어느 정도 구멍을 내려갔을 때 진입하는 것이었다.
승천교의 인사들은 이미 내부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으니, 적당한 때를 봐서 들어간 다음, 그들과 협공해 유성우를 죽이면 되었다.
흑웅의 암살자들이 입구를 지키던 이들을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은밀하게 펼쳐진 마법은 꾸벅꾸벅 졸던 이들을 완전히 잠재웠고, 그들은 아무런 소란 없이 입구로 들어설 수 있었다.
검은 구멍이 사람들을 집어삼켰고, 다른 차원으로 안내했다.
그들도 미리 1급 어비스에 대해 숙지해 둔 바가 있어 재빠르게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움직임은 이내 멈추어버리고 말았다.
“미, 미친 이게 뭐야?”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었다.
다른 이들도 겨우 말이 터져 나오려는 걸 참아냈다.
그도 그럴 게, 그들이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것은 거대한 문어였다.
아직 죽지 않은, 커다란 문어가 어비스의 입구 근처에 널브러져 있던 것이었다.
놈은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다리를 움직이더니 옭아매려 들었다.
“…함정이다! 놈이 함정을 팠구나! 그런데, 이런 괴물이 대체 어디서!”
그들이 아는 구멍 속의 괴물 중에 이런 두족류는 없었다.
대부분이 포유류인데.
“바, 바다에서 올라온 게 아닐지!”
“문어가 스스로 바다에서 기어 올라왔다고 하는 거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타코야키가 되고 싶었던 놈일지도……!”
“미친 새끼가!”
흑웅은 그리 소리치면서도 분주히 전투를 시작했다.
문어의 크기가 너무나도 거대해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으니, 재빨리 처리할 요량으로.
흑웅의 첫 번째 수난이 시작되었다.
* * *
“쯥, 이건 별로 먹을 게 못 되는군. 대왕오징어도 별로 맛없다더니, 문어도 마찬가지야.”
타닥, 타닥.
유성우는 낚아 올렸던 거대한 문어의 다리를 구워 먹어보곤, 이내 퉤 뱉었다.
곧 자신을 뒤따라올 놈들에게 몸통은 선물로 주고, 다리 약간만 잘라 온 것이었는데.
문어의 맛이 별로였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질겨서 제대로 씹히지도 않으니.
숙회 같은 걸로 만들더라도 못 먹기는 매한가지일 듯했다.
“흠, 그리고 왔나 보군.”
입구 쪽이 좀 소란스러웠다.
바깥은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 심야였지만, 어비스는 여전히 한낮이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태양은 여전히 중천에 고정되어있는 곳.
그러나 그 태양 빛마저도 삼켜버리는 거대한 구멍 속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가 되었다.
유성우는 구멍으로 향하는 절벽의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안력으로도 구멍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 있긴 하군.’
그래도, 안에 뭔가 있다는 느낌은 확실히 들었다.
안쪽에서부터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은 끔찍하기 그지없었으니.
머릿속에서 절경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구멍으로 직접 뛰어드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갑자기 몸을 짓누르는 중력과 공중을 날아다니는 괴물들에게 찢겨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정상 루트가 아니라 뛰어드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는 거겠지.’
빨리 가고 싶다고 고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격이지만.
유성우는 창문으로 뛰어내려도 멀쩡한 신체 능력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절벽에서 도움닫기를 통해, 최대한 중심부로 몸을 던졌다.
다음 생을 위한 원찬스 다이빙이 아니라, 이번 생을 위한 스카이 프리다이빙.
귓가에 바람 소리가 스쳤다.
살벌한 칼바람이 몰아치며 귀를 스쳐 지나가는데, 마치 검은 구멍이 질러대는 귀곡성처럼 들렸다.
“후읍.”
숨을 작게 들이켜며 호흡을 멈춘 그가 눈동자를 굴렸다.
점점 아래로 내려갈수록 몸에 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며,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하지만 아직 바닥은 보이지 않았으니, 한참은 더 떨어져야 하리라.
캐애애애애애액-!!
떨어지는 도중, 비명처럼 들리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는 괴조(怪鳥)가 날개를 펄럭이며 다가왔다.
기다란 부리, 균일하지 않게 자라난 털, 도르륵 굴러가는 네 개나 되는 눈동자.
날카로운 발톱이 기다랗게 자라나 위협적이었다.
이곳에 먼저 왔던 탐사대는 저놈들에게 ‘시체 먹는 흉조’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끊임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먹잇감을 탐하는 새였다.
먹잇감은 죽은 동물들의 사체.
그러나 영역 동물이기에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온 존재는 모조리 사냥하려 드는 새들이었다.
유성우는 점점 가까워지는 흉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입을 쩍 벌린 놈의 부리 위에 손에 얹은 뒤, 힘을 주어 한 바퀴 회전했다.
그리고 놈의 머리 위로 착지해 그대로 뇌가 있을 부분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그러자 정신을 잃은 흉조가 날갯짓을 멈추고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흉조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한 마리를 처리하는 동안 주변에 수십 마리가 몰려들었다.
캐애애애애애액-!!
캐애애애애애애애액-!!
캐애애액-!!
흉조들의 괴성이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구멍을 가득 채우려는 듯한 놈들의 울음소리에 유성우는 숨을 길게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새를 이렇게 보고 있자니 치킨이 먹고 싶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