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144)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144화(144/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144화
헤트리스(4)
편한 길과 고단한 길이 있다.
편한 길은 편하게 가지만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길이고, 고단한 길은 힘들지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한 길을 택하지만, 유성우는 반대의 사람이었다.
편한 길을 택해서 아무것도 없을 수 없다면, 고단한 길을 택해 많은 것을 얻어내는 사람.
흐레스벨그의 횃대는 인간의 도전 욕구를 시험하기라도 하는지, 루트마다 난이도가 제각각이었다.
어느 곳은 동굴로 향하거나, 좁은 절벽을 기어 올라가다시피 해야 한다거나.
검혼이 택한 길은 그런 곳이었다.
깎아지른 절벽을 클라이밍 해야 하는 루트가 대부분.
검혼의 길드원들은 서로를 밧줄로 묶고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길드원들 사이에서, 유성우는 홀로 두 발을 절벽에 붙인 채 유유자적 걸어 오르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두 손 두 발을 써서 올라가는 걸, 그는 뒷짐을 진 채 편하게 올라갔다.
“이 미친!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유지우가 제 옆을 느긋하게 걸어 올라가는 유성우를 보며 소리쳤다.
무슨 닌자도 아니고, 절벽에 발을 붙이고 걸어 올라가는가.
말도 안 되는 기행에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고, 유성우는 불어닥치는 돌풍에도 우뚝 서서 걸어갈 뿐이었다.
“빨리빨리 올라와라. 꼴찌 한 놈은 왕복이다.”
* * *
힘겹게 절벽을 기어 올라가던 검혼의 다이버들이 쉴 만한 공간이 나온 건 한 시간쯤 클라이밍을 한 뒤였다.
절벽에 툭 튀어나온 기묘한 공간은 꽤 넓어 전부 쉴 수 있었다.
“꼴찌, 왕복해라.”
“…저보고 떨어져 죽으라고 하시죠. 그냥.”
꼴찌는 당연히 헤트리스였다.
헤트리스도 B급 다이버이기는 했지만, 전투직이 아니라 생산직이라 신체 능력은 다른 다이버들보다 떨어졌다.
게다가 이번 원정에 참가한 다이버들은 죄다 A급 이상이었으니 그녀가 꼴찌를 하는 건 결정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유성우는 연대책임이라며 그녀를 발로 차서 절벽 밑으로 떨어트릴까, 생각하다 이내 그만두었다.
저 멀리, 하늘에서 무언가 다가오는 기척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오…….”
검혼을 향해 날아오는 괴조들.
구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4미터가 넘는 거대한 괴조들은 날개를 퍼덕이며 쏜살같이 날아왔다.
날개는 비늘이라도 되는 듯 빛을 받아 번쩍였고, 발톱과 부리는 강철처럼 보였다.
시뻘건 눈동자는 그들을 향해 확연한 적의를 드러내었다.
“전투 준비.”
아직 다른 이들은 괴조들의 기척을 감지하지 못했기에, 유성우가 툭 내뱉었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휴식하던 이들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너는 이쪽으로 와라.”
유성우는 헤트리스의 뒷덜미를 붙잡고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전투력이라고는 전무한 연금술사는 그의 손길에 질질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발판 안 무너지게 조심하고, 알아서들 처리해 보라고.”
그리 말하며 유성우는 헤트리스의 뒷덜미를 잡은 채 절벽을 척척 걸어 올라가 다른 쉼터로 향했다.
그곳에 헤트리스를 내려두고 오러로 기막을 펼쳐내, 기척을 숨겼다.
이 정도면 충분히 저 괴조들의 이목을 숨길 수 있으리라.
그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는 헤트리스에게 물었다.
“저 괴물들에 대해 짐작 가는 건 있나? 신화에 꽤 빠삭한 것 같던데. 아는 것 좀 있으면 말해봐라.”
“후, 하, 후… 일단 보기에는, 흐레스벨그의 자식들 같은데요?”
“흐레스벨그의 자식들?”
“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흐레스벨그는 거대한 새로, 북쪽 끝에서 산다고 하죠. 흐레스벨그의 날갯짓이 바람의 근원이라고 하고요. 바람의 근원을 다루니, 흐레스벨그의 자식들만이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날갯짓을 허락받았겠죠.”
“들어본 적도 없군.”
“기록되지 않은 신화도 있는 법이니까요. 대재해 당시 많은 기록이 소실되었으니, 아마 저희 가문만큼 가장 많은 기록을 가진 곳도 없을걸요?”
헤트리스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유성우는 괜히 데려왔나 싶어 잠깐 그녀를 쳐다보다 대꾸했다.
“그럼 저게 흐레스벨그의 자식들이라고 하면, 몇 살쯤 되는 것 같나? 앞으로 저런 것들만 잔뜩 나올 것 같은데.”
“이제 막 알에서 태어난 유체들 아닐까요? 흐레스벨그의 크기는… 자세히 서술되지는 않았지만, 바람의 근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면 어마어마하게 클 테니까요.”
“그렇단 말이지.”
유성우는 흐레스벨그의 크기가 얼마나 될까 상상하며, 아래쪽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린 괴조들은 강인한 발톱과 부리를 앞세워 그들을 위협했다.
그러나 열 명의 다이버들은 방진을 짜고, 최대한 발판이 무너지지 않도록 견뎌내며 공중에서 격추시키는 전법을 사용했다.
가장 큰 활약을 보이는 건 최아연의 비도와 유지우의 마법.
공중을 날아간 최아연의 비도는 어김없이 괴조의 목이나 눈을 꿰뚫어 격추했고, 유지우의 마법 또한 백발백중으로 괴조들을 격추했다.
“잘하는군.”
열심히 굴린 보람이 있다.
흐레스벨그의 유체들이라고는 하지만, 1급 어비스의 괴물들인 만큼 그 강함은 궤가 다르다.
그러나 열 명은 괴물들의 포화 속에서도 굳건하게 버텨내며 차근차근 쓰러뜨렸다.
괴조들의 숫자가 점점 줄고, 이내 단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유성우가 소리쳤다.
“자, 이제 다시 올라와라! 고생은 젊어서 하는 거다!”
아직 갈 길은 멀고도 험했다.
* * *
흑천룡은 검혼과 다른 루트를 택했다. 절벽 길이 아닌, 그나마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완만한 길.
가장 편하게 갈 수 있는 2번 루트는 아니고, 5번 루트였다.
“이쪽인 듯합니다.”
흑선무가 가장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은 천마신교의 신물, 천마경(天魔鏡)이었다.
흑사향이 진정한 천마의 경지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신물이 필요했다.
개중 하나는 이미 소유하고 있었고, 다른 하나를 찾기 위해 북유럽까지 온 것이었다.
그렇기에 입장 순서를 정하는 데에도 필사적이었고.
천마신교의 신물이 어째서 북유럽에 있는 어비스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천마신교 제사장의 인도에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검혼, 그들은 가장 험한 길로 간 것인가?”
“그런 듯합니다. 그가 말하길, 편한 길에 안주해서는 성장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현묘함까지 지니고 있군…….”
흑사향의 물음에 답한 흑선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길을 살폈다.
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흐레스벨그의 자식들이 날아들었으나, 발판이 비교적 안전하였기에 별 무리 없이 처리할 수 있었다.
흑사향이 나설 것도 없이 흑선무와 다른 다이버들 선에서 정리되었다.
“1급 심연혈치고는 그리 강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방심하지 말거라. 아직 초입이지 않으냐. 안으로 향할수록 더욱 강한 적이 기다리고 있겠지.”
“제가 실언했습니다.”
그들은 빠르게, 그렇다고 너무 빠르지도 않게 전진했다.
천마경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안전 또한 중요했다.
천마경을 얻기 위해 투입한 전력은 적지 않았으니까.
한순간의 실수로 잃을 수는 없는 전력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어비스의 공략보다 천마경의 회수.
너무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바위산을 오르던 흑선무가 말했다.
“…유성우, 그자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천마시여.”
“말도 안 되네. 천마경은 교의 신물, 그것을 어찌 타인의 손을 빌려 회수하란 말인가?”
“제가 실언했습니다.”
“천마신교는 우리들의 손으로 세워낸 곳이다. 누군가의 입김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근간이 흔들릴 테니, 앞으로도 그런 이야기는 자중하는 게 좋겠네.”
“알겠습니다.”
* * *
“여기부터는 길이 꽤 괜찮아져서 다행입니다.”
“올라오느라 정말로 죽는 줄 알았어요……. 저는 마법사지 전사가 아니라고요.”
백우현의 말에 잔느가 투정을 부렸다. 참을성이 강한 성격인 그녀는 보통이면 투정조차 부리지 않겠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강제로 끌려온 것도 모자라 강행군이지 않은가.
잔느는 툴툴거리다가 결국 유성우에게 꿀밤 한 대를 얻어맞고는 입을 다물었다.
“…다음부터는 안 도와줄 거예요.”
“그럼 마녀회에 항의해야지.”
“쓰읍…….”
잔느는 제 신세가 너무나도 불쌍했다.
마녀회를 대표하는 열두 장로 중 한 명인 자신이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한다니…….
하지만 한국에서 자진해서 오기도 했기 때문에 더는 무어라 반박할 수도 없었다.
“죄송해요. 저희 오빠가… 예전에는 안 저랬는데.”
“…예전에는 어땠는데요?”
“상냥했죠. 얼마나 상냥했냐면 제가 밤에 라면 먹고 싶다고 하면 자다가 일어나서 끓여줄 정도였다니까요?”
“그런 오빠가 세상에 존재하는 거였어요? 진짜로?”
잔느는 놀랍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고, 어느새 옆에 다가온 유월도 흥미진진하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
“와, 제가 아는 오빠란 존재는 뒤에서 막 칼로 찌르고 그러는 것밖에 없었는데…….”
“대체 어떤 세상이 그래요? 뭐, 꼭 틀린 건 아니지만…….”
그리고 또 유지우가 무언가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할 때, 유성우가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으, 으악! 내내, 내 머리!”
“네가 요리를 더럽게 못 해서 라면 하나 못 끓이니까 내가 끓인 거다. 네가 끓이면 분명히 부엌을 개판으로 만들 테고, 내가 그걸 치워야 했으니까.”
“아, 그런 비하인드가…….”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나 요리를 잘하는데!”
“네가 끓인 라면에서 달걀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달걀 껍데기가 씹히는 기분이 뭔지 알기나 하냐?”
유성우는 그녀의 머리에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힘을 주었다.
유지우의 비명이 잠깐 커졌다가, 이내 죽은 듯이 잠잠해지자 그는 손에 힘을 풀고는 말했다.
“그리고 긴장 풀지 마라. 아직 이 어비스는 시작도 안 한 것 같으니까.”
그리 말한 유성우는 절벽 쪽으로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꽤 많이 올라온 것 같은데, 출발한 위치와 그리 멀지 않게 보였다.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면 끝이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올라갈수록 돌풍은 점점 거세지는데, 뭔가 보이는 건 없었으니.
‘…신화에 관련된 어비스치고는 별 게 없는 것 같은데.’
아니면 아직 초입이라 그런 건가?
유성우는 위와 아래를 번갈아 바라보다 혀를 한 번 차고는 말했다.
“헤트리스, 흐레스벨그에 관련된 이야기는 더 없나?”
“아까 해드린 게 전부예요, 북유럽 신화에서 흐레스벨그를 자세히 다루는 것도 아니라서…….”
“그렇다면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다는 거겠군.”
오랜만에 느끼는 미지에 도전하는 감각이 되살아났다.
거기에 돌풍이 몰아치는 바위산에서 뭘 찾을 수 있을지 두근거리기까지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물론, 이 두근거림은 그런 것들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리라.
‘강한 놈이 있다.’
유성우는 고개를 들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어렴풋한 시선이 느껴졌다.
신화가 관련된 어비스라 그런지는 몰라도.
신에 준하는 존재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곳이 1급 어비스로 책정된 게 의아할 정도로 말이다.
“아주 재밌겠어…….”
즐거운 공략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