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157)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157화(157/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157화
흑사향
“이 귀여운 짜식들.”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다. 빨간 인간.”
“저도요. 아닌가? 잘 모르겠어요!”
“귀엽지만 싸가지도 없는 재밌는 자식들…….”
유성우와 유지우, 유월이 북유럽에 가 있는 동안, 집에 남은 슈아넬과 녹스를 보러 온 홍서화는 허탈하게 웃었다.
서연정은 한국에 남아 있기에 그녀가 둘을 돌봐주고 있었기에 딱히 홍서화가 올 필요는 없었지만.
그냥 귀여운 얼굴들을 보고 싶었기에 놀러 온 것이었다.
슈아넬은 한층 더 싸가지를 상실했고… 녹스는 그에 물들락 말락 하고 있었다.
‘인터넷 중독 하이엘프라…….’
정말로 별종이다 싶었다.
홍서화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거실을 돌아다니는 두 명을 바라보았다.
녹스는 슈아넬이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녔다.
슈아넬은 살짝 귀찮아 보이는 기색이면서도 거부하지는 않았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사이좋은 자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외양도 다르고 출신지도 다르지만, 유성우라는 이름 아래 묶여 가족이 된 이들.
둘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었다.
홍서화는 둘을 바라보다 입맛을 다셨다.
‘그냥 억지를 부려서라도 따라갈걸 그랬나.’
북유럽 원정.
엄청 재밌었을 텐데…….
끝내주게 재밌었을 텐데…….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끼지 못했다는 게 약간의 한으로 남았다.
적룡이라는 길드를 이끄는 이상, 검혼과 함께하는 일은 얼마 없으리라.
그것이 못내 아쉬웠던 홍서화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 무슨 고민 있어요?”
“어? 응, 아니 뭐… 없는데?”
“거짓말. 그런 얼굴을 하는 사람은 꼭 고민이 있더라고요.”
언제 왔는지, 녹스가 쫄래쫄래 다가와 홍서화의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척 보아도 고민이 있는 얼굴이라며, 걱정되는 게 있으면 자신에게 말해보라 재촉했다.
어린애한테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게 올바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런 걸 깊게 생각할 만큼 홍서화는 좋은 어른이 아니었다.
“나도 북유럽 가고 싶었단 말이야~ 그런데 그거 못 가서, 지금 이러고 있는 거지.”
“저희랑 있는 건 싫어요?”
“어? 응? 그건 아닌데.”
“그럼 됐죠! 놀이터 가요! 놀이터!”
녹스가 그대로 홍서화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녹스의 딴에는 그녀를 일으키기 위해 잡아당긴 것이었는데, 홍서화는 잡아당겨지자 무심코 힘을 주었고.
힘을 버티지 못한 옷자락이 부우욱 찢어져 버리고 말았다.
“어, 어…….”
“…….”
녹스는 홍서화의 안색을 살폈다.
옷을 찢어 버렸으니 화를 잔뜩 낼 거라고 생각했는지, 눈치를 보며 무언가 말하려는 때.
홍서화가 녹스를 향해 와락 달려들더니 안아 들었다.
“이 녀석! 누가 그렇게 힘이 좋으래? 옷 하나 버렸네.”
“죄, 죄송해요…….”
“뭐, 고의로 한 것도 아닌데. 대충 옷 갈아입고 놀이터 가자!”
“……네!”
녹스가 활짝 웃었다.
* * *
흑사향이 다시금 접근하리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거울을 보지 못했다고 시치미를 떼기는 했지만, 은연중에 거울을 가지고 있다고 어필하기도 했으니.
거래의 주도권을 끌어오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자신이 가져갔다고 확신하는 분위기는, 그 자리에 전투의 흔적을 분석할 수 있는 자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분석에 조예가 있다면 그 자리에 남은 흔적이 검흔이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알았을 테고.
놈들에게 꽤 중요한 물건으로 보였으니, 놈들이 조급해할 때까지.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모조리 내놓을 때까지 미끼를 내걸었다.
그리고 살랑거리는 미끼를, 흑사향은 덥석 물으려 했다.
이것은 분명, 추후에 중국에 진출하게 된다면 커다란 교두보가 될 테니.
“천마경이라… 마교의 신물이라고 그랬나?”
“그렇다. 천마경은 신교의 삼대 신물 중 하나. 오롯한 천마로 서기 위해서는 필요한 물건이네.”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란 말이지.
여지껏 무심한 얼굴이던 흑사향의 얼굴에 조급함이 떠오른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유성우는 흑사향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표정으로 드러나는 건 극히 적었지만,
“그래, 너희들이 말하는 천마경이라는 건 모르겠지만, 어비스 안에서 거울 하나를 줍기는 했지.”
거울을 주웠다는 말에 흑사향의 표정이 바뀌었다.
정말로 천마경을 네놈이 가지고 있었냐는 얼굴.
약간의 분노가 깃들며, 그녀의 몸에서 주체하지 못하는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유성우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집단의 수장이라는 자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서 쓰나.”
“……후우.”
그의 말 한마디에 정신을 차린 건지, 숨을 길게 내뱉은 흑사향은 살기를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본교의 신물을, 본교로 돌려주지 않겠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무엇이든 치르겠네.”
“안타깝게도 ‘무엇이든’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 이걸 주는 대신 마교의 교주직을 내놓으라고 하면, 줄 것도 아니잖나. 기준을 정해. 기준을.”
카페 가서 아무거나 시키는 놈이나, 무엇이든 해주겠다고 꼬시는 놈이나…….
그런 놈에게는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시켜줘야 하고, 무엇이든 해준다고 하면 목숨을 내놓으라 해야 한다.
모호한 기준은 사람을 열받게만 만드니, 유성우는 흑사향에게 정확한 기준을 내놓기를 요구했다.
그녀는 곧장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마교에서 내놓을 수 있는 것들이 뭐가 있는가.
그것도 천마경에 버금가는 물건이라면, 무엇을 내놓아야 하는가…….
“신병이기(神兵利器)는 어떠한가? 좋은 물건이 있네만.”
“이것보다 좋은 거 있으면 들고 오고.”
유성우는 일생을 소환해 그녀의 앞에 꽂았다.
흑사향은 일생을 보고는 인상을 굳혔다.
검에서 피어오르는 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마치 자아라도 가진 것처럼, 사방에 살기를 뿌려대니 마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일반인이 이 검의 손잡이라도 쥔다면, 검이 허락하지 않는 한 그 자리에서 미쳐버리고 마리라.
게다가 새빨간 붉은 검신은 얼마나 많은 피를 머금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 정도의 검이라면 본교의 신물인 ‘천마흑검(天魔黑劍)’에도 뒤지지 않겠군.’
마교의 어떤 신병이기에도 밀리지 않는 검이었다.
그렇다면 물건으로 거래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리라.
흑사향이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자, 유성우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신물이라며? 신물을 받아 가고 싶으면 신물에 상응하는 가치를 가진 물건을 내놓아야지. 그런데 꼭 그게 물질적인 물건일 필요는 없다.”
“그 말은…….”
“정말로 뭐든 받는다는 거지. 땅이든, 권리든, 영혼이든, 목숨이든… 너희들이 지불할 수 있는 최대치를 불러라.”
천마경을 얻게 된 이후, 공격대 내의 마법사들이 달라붙어 천마경을 분석했다.
유성우가 보았던 천마경은, 멀리 떨어진 이의 생명반응을 추적하는 기능이 있었다.
마력 폭풍이 거세면 수신 상태에 조금 문제가 생기는 하자가 있는 거울.
그러나 헤트리스와 마법사들의 분석은 그 외에도 다른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쓰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천마경에 새겨진 것들은 마법보다 주술에 가까웠고, 여러 조건을 만족해야만 사용 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즉, 유성우에게는 별로 쓸모없는 물건.
그러나 가치는 상대적인 것이다.
그에게는 별로 쓸모없는 것이라도, 마교에게는 천하에 둘도 없는 신물인 것처럼.
“…….”
“답하기 어렵나? 그럼 힌트를 주지. 나는 무림맹을 싫어한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언젠가 부딪치게 되겠지. 거기 S급 세 명을 내가 죽여버렸거든. 그 사실을 아는 놈도 하나 있고 말이다.”
이건 말실수.
유성우는 그리 덧붙이며 제 입술을 가볍게 두들겼으나, 흑사향은 그것이 말실수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최근에 무림맹에서 죽은 세 명이라고 한다면…….’
남궁현록, 남궁강, 선룡사태.
무림맹에 심어놓은 세작들이 보내온 정보에 의하면, 중국에서 연금술사들과 연구원들이 탈출할 때 죽었다고 했다.
무림맹 측에서는 그들이 심연혈, 어비스를 공략하다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나…….
‘이자였군.’
모든 조각이 맞아떨어졌다.
화경의 고수, S급 세 명을 죽이고 연금술사들과 연구원들을 데리고 특급 심연혈을 돌파할 수 있는 자.
그게 가능한 사람이 누구냐 묻는다면, 유성우밖에 없으리라.
흑사향이 그에 대해 아는 것은 편린에 불과했으나.
느껴지는 기세만으로도 자신보다 우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어비스 속에서, 흐레스벨그를 사냥하고 멀쩡히 돌아온 것만 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마음을 굳힌 흑사향이 입을 열었다.
“만약, 그대가 천마경을 본교의 품으로 돌려준다면, 본교, 천마신교는 그대의 배신하지 않는 우군이 될 걸세. 원한다면 본교의 직위라도 주겠네.”
“흠, 그리고?”
“…무엇을 더 원하나?”
“보통 무협지에서 보면 이럴 때 구명지은(救命之恩)이라면서 간이고 쓸개고 죄다 빼주려고 하던데…….”
유성우의 중얼거림에 흑사향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주먹을 날리고 싶은 생각이 샘솟았다.
그러나 살심은 접어두기로 한 바.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고는 말을 이었다.
“본교의 비고를 개방하겠네. 영약을 지원함은 물론, 비급도 얼마든지 대여해 주겠네.”
밑천을 털어서 주겠다는 소리였다. 마교는 그것들보다 천마경이 중요했으니.
비급과 영약은 나중에 보충할 수 있다.
마교는 더욱 세를 불릴 것이고, 안정된 이후에는 재료 수급에도 차질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유성우가 가지고 있는 천마경은 지금이 아니면 언제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녀의 선언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흑선무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지만.
제지하지는 않았다.
흑사향의 결정은 마교의 뜻.
그녀가 그러겠다고 하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성우는 입맛을 다셨다.
조금 더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짜 조금만 더 찌르면 좋은 거 토해낼 것 같은데…….
그러나 거기까지 가게 되면, 흑사향은 도리어 반감을 가질 듯했다.
저쪽에서 크게 물러났으니, 이쪽에서도 물러나야 하리라.
“그럼 나중에 마교에 한 번 초대해 달라고.”
“그 말은.”
“거울을 넘겨주지. 이런 쓸모없는 거울이 왜 신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유성우는 헤트리스에게서 넘겨받았던 천마경을 바지 주머니에서 쏙 꺼냈다.
천마경을 본 흑사향은 눈을 끔뻑였다.
세공은 화려하지만 볼품없어 보이는 거울이다.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써서 그런지…….
그러나, 흑사향은 알 수 있었다.
거울에 담긴 ‘마(魔)’를.
유성우는 거울을 좌우로 움직였다. 흑사향의 눈동자가 그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옛다.”
유성우가 거울을 내밀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거울을 받아 들었다.
그녀의 손에 닿은 거울이 작게 공명했다.
유성우가 가지고 있을 때는 벌어지지 않은 일이라, 그 또한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특정한 조건이라는 게, 뭐… 천마라던가, 그런 건가?’
확실히 실용성보다는 주술적인 의미가 강한 것 같았다.
유성우는 천마경을 품에 안은 흑사향에게 말했다.
“다음에는 마교를 털러 가주마.”
아주 탈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