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166)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166화(166/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166화
블라드 체페슈(3)
루마니아 대통령궁을 벗어난 유성우 일행은 본격적으로 도시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블라드는 너무나도 당당히 도시를 둘러보아도 좋다고 했다.
정말로 켕기는 게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일까.
“나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던데. 루마니아는 폐쇄적인 나라인가?”
“그런 편이죠. 이번에 북유럽에서 벌어진 어비스 쟁탈전에 루마니아는 발도 들이지 않았어요.”
유럽의 내로라하는 길드들이라면 모두 탐을 냈을 텐데, 루마니아의 블라드 패밀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도 블라드 체페슈가 보스의 자리에 앉아있었기에 충분히 탐을 냈을 만할 텐데도.
그것 말고도 여러 근거가 있었기에 폐쇄적인 나라라 단정 지었다.
“커피나 한잔 하고 둘러보죠.”
유성우 일행은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음식점과 마찬가지로 카페에는 사람이 없었다.
카페 주인은 오랜만에 손님을 받는 건지 아주 친절한 태도로 맞이해 주었다.
“이런데도 문을 닫지 않는 게 신기하군.”
“…최소한은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국이 시국이라.”
“힘들겠군. 블라드 패밀리에 대해 불만은 없나? 그놈들이 원흉일 것 아닌가.”
“왜, 왜 그런 걸 물으시는…….”
블라드 패밀리라는 이름이 나오자 카페의 주인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들어서는 안 되는 걸 들었다는 듯,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그런 거 묻고 다니시면 큰일 납니다! 정말로요!”
“조금만 조심해 주세요.”
바토리도 그러지 말라는 듯 주의를 주었다.
유성우는 대충 이해했다.
북한에 가서 ‘요즘 수령 동지는 좀 어떻습니까?’ 하고 물어보는 것과 비슷한 걸까.
블라드 패밀리는 루마니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다.
무력과 권력을 동시에 잡은, 공포정치의 화신이었다.
어디에나 눈과 귀가 있으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그대로 끌려가는 수가 있었다.
그리고 영영 빛을 보지 못하게 되겠지.
“정신 좀 차리고 살아라. 성우성우야.”
언제 일어났는지, 의자에 대충 던져둔 슈아넬이 해장이라도 하는 듯 유성우의 초콜릿 라떼를 단번에 들이켜고는 말했다.
“남의 땅에 도달했으면 그 땅의 도리를 따라야 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느냐.”
“흠, 맞는 말이지만 네가 하니까 개소리처럼 들리는군.”
유성우는 초콜릿 라떼를 추가로 주문했다.
그러고는 의자에 편하게 앉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어디서부터 조사할 생각이지? 무식하게 전부 돌아볼 생각은 아닐 테고.”
“네? 돌아볼 생각인데요?”
“둘이 해라.”
마법사인 주제에 더럽게 비효율적이었다.
루마니아가 얼마나 넓은데 그걸 전부 돌아보겠다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마법사라면 좀 더 스마트한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유성우의 선언에 바토리는 살짝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아, 아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마법사라는 놈이 왜 이리 일을 무식하게 하려고 드는 거냐? 그거 일일이 확인하다가는 늙어 죽을 거다.”
마녀한테 늙어 죽는다는 말은 효과가 없다는 걸 말하고 나서 깨달았지만, 유성우는 좀 더 합리적인 방법을 내놓으라는 표정을 지었다.
일일이 확인하는 방법 이외의 것을 내놓지 않으면 협조하지 않겠다는 얼굴이었다.
바토리는 어떻게든 그를 설득해야 했다.
“하지만, 이 방법밖에 없어요. 특정 구역만 조사하다가는 놓치기 마련이니까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이게 제일 확실한 방법이에요.”
“나는 여기에 체페슈를 상대하러 왔지, 루마니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기로 한 건 아닌데 말이지.”
시간을 오래 잡아먹는 건 사양이었다.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루마니아에서 몇 날 며칠을 죽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멍청이들. 루마니아를 조사할 생각을 하지 말고, 원흉을 조사하는 게 더 빠른 방법이 아닌가?”
“그게 가능하면 이러고 있지를 않겠죠.”
“풀벌레 정령을 붙여두었다. 무능한 너희들을 대신해서 이 위대한 하이엘프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체페슈는 슈아넬의 위장을 간파하지 못했다.
외부 활동을 할 때 슈아넬은 인간처럼 보이게 위장 마법을 걸고 다니는데, 체페슈는 그녀를 보고서도 위장인지 모르는 듯했다.
슈아넬보다 마법의 조예는 떨어진다는 뜻.
그렇다는 건 슈아넬이 붙여둔 정령도 들키지 않으리라.
“언제 그런걸.”
“이 몸이 괜히 가장 높은 가지인 게 아니다. 누구보다 현명하고, 누구보다 강한 엘프였기에 그런 것이지.”
‘잡기술만 늘었군.’
처음 봤을 때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유성우는 속마음을 굳이 내뱉지는 않았다.
슈아넬이 잘한 건 틀림없었으니까.
“역시 오래 사신 만큼 연륜이 남다르시군요!”
“…장생종의 지혜다.”
“나도 감쪽같이 속았군. 술에 취해서 침까지 질질 흘려대는 게 내일까지는 안 일어날 줄 알았더니.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고.”
‘아니, 진짜 잔 건 맞는데…….’
체페슈에게서 흘러나오던 불길한 마력에 본능적으로 한 거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유성우는 슈아넬을 다시 보았다.
조금 쓸 만한 게임폐인 하이엘프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게임폐인 하이엘프로.
“그럼 며칠간 관광이나 하면서 지켜보도록 하지. 체페슈의 움직임에서 뭔가 발견할 수도 있으니.”
“좋아요. 그렇게 하죠.”
그리고 사흘이 흘렀다.
* * *
“이놈, 대통령궁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데 말이다.”
“사흘 동안 처박혀 있다고? 슈아넬인가?”
“…….”
슈아넬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주먹을 쥐어 유성우를 두들겼다.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물었다.
“네 정령, 지하와 지상을 분간할 수도 있나?”
“그 정도도 못 할까 봐? 당연히 가능하다. 하지만 놈은 한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 다른 이들의 출입은 빈번한 것 같은데.”
“바토리, 어떻게 생각하지?”
“으으음… 이런 경우는 저도 잘.”
“잠깐.”
뭔가 걸리는 게 있었는지, 유성우는 잠깐 생각하더니, 바토리의 팔목을 잡아채더니 제 쪽으로 당겼다.
그러고는 머리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바토리가 황급히 물러나며 미친놈 보듯이 유성우를 쳐다보았다.
팔목을 놓아준 유성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냄새가 나는군.”
“…그, 그렇게 냄새가 많이 나나요? 정말로?”
“피 냄새가 난다. 바토리, 너도 뱀파이어였지.”
“네.”
딱히 비밀은 아니었다.
바토리 에르제베트.
그녀는 피의 권능을 다룰 줄 아는 고위의 뱀파이어였다.
유성우는 뱀파이어의 기본적인 특징들을 떠올렸다.
낮에 못 돌아다니는 건 하급 뱀파이어나 그런 거고.
날카로운 송곳니라던가, 창백한 피부 등.
대체적으로 밤에 활동하는 놈들이라 색소가 옅었다.
‘그리고, 짙은 피 냄새가 난다.’
고위의 뱀파이어일수록 더욱 짙은 피 냄새가 난다.
바토리에게서 나는 짙은 혈향은 피 비린내라기보다, 과일 향이 섞인 상큼한 느낌이다.
그런 식으로 뱀파이어마다 나는 냄새가 다르지만, 근본이 피 냄새라는 건 다르지 않았다.
몇 년간 피 냄새에 너무 익숙해져서 잊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뱀파이어들은 일반인보다 혈액량이 적게는 수 배, 많게는 수십 배라 피 냄새가 더욱 진하게 난다.
그러나.
“체페슈한테서는 피 냄새가 나지 않았다. 다른 향수 냄새도 나지 않았으니, 무향이라고 봐야겠지. 적어도 그 어린 신체는 뱀파이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특수한 방법을 써서 피 냄새를 지울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인위적인 향기라면 모를까, 뱀파이어의 체취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다. 너는 그게 가능한가?”
“…딱히 떠오르는 방법은 없네요. 향수를 뿌린다던가?”
“그럼 더 지독한 냄새가 되겠군.”
보통 인간에게 피비린내는 지독한 쪽에 속하는 냄새다.
유성우의 코는 특히나 더 예민한 축이었기에, 체페슈에게서 피 냄새가 났다면 바로 알아차렸으리라.
“대통령궁에 있는 건 인형이다. 뱀파이어는 매혹에도 능하니 정신계열의 마법이겠지.”
점점 윤곽이 잡혀갔다.
바토리는 유성우의 입에서 딱딱딱, 하고 설명이 줄줄이 나오자 내심 놀랐다.
만사가 귀찮으며, 검만 잘 쓰는 줄 알았더니 머리도 잘 굴러가는 인물이었던가?
그녀가 물었다.
“체페슈가… 무죄라는 결과도 있지 않나요? 대통령궁에서 얌전히 지내는 걸 보면.”
“무슨 소리냐. 나는 처음부터 그놈을 믿지 않았다. 딱 봐도 얼굴에서 뭔가 저지르고 있다는 티가 풀풀 나는데.”
유성우는 수십 년간 참 많은 놈을 상대해왔다.
아마 눈앞에 있는 바토리보다 그 생의 밀도는 더욱 높으리라.
하루가 멀다고 권력자가 찾아왔고, 유성우의 강함을 시샘한 이들은 사지(死地)에 보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놈들은 하나같이 얼굴에 욕심이 그득그득 차 있었다.
아무리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표정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는 없는 법.
소드마스터의 감각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만약 그의 앞에서 완벽하게 표정을 제어한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되었다.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었으니까.
사람인 이상 아주 자그마한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모든 표정근육이 일정함을 유지한다면 언데드, 혹은 괴물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게다가 유성우는 체페슈와 만났을 때 몰래 오러로 여기저기 찔러보기도 했다.
“기대하지 않으면 배신도 당하지 않는 법이지.”
“…그렇다면, 체페슈를 다시 한번 만나봐야겠군요.”
“그래야겠지. 그놈의 본체가 있을 곳을 무작정 들쑤시는 것보다는.”
“…그건 제가 미안하다니까요. 며칠째 그 소리 하는 거예요?”
바토리는 잔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유성우가 어떤 사람이냐 물었을 때…….
-묘한 부분에서 끈질기고 쪼잔해요. 정말로요. 진짜로요.
잔느는 그리 답했다.
그러나 그리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기에, 대충 어떤 느낌인지 감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같이 지내고 보니 더 모르게 된 것 같았다.
* * *
“블라드 전하, 저희는 이만 루마니아를 떠나 보려고 합니다.”
“그대들의 노고를 치하하겠다. 수고했군.”
유성우 일행은 다음 날, 체페슈에게 알현을 청했고.
대통령궁의 응접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신경 써주신 덕분에 루마니아가 얼마나 훌륭한 나라인지 둘러보고 갈 수 있었습니다.”
이만한 개판인 나라가 또 없었다.
그러나 그걸 체페슈의 면전에서 내뱉을 수는 없었기에, 바토리는 꾹 삼키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몇 가지 궁금증이 있어서 묻고 싶사온데, 질문을 허가해 주시겠습니까?”
“허가하마.”
“도시에 불운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외출을 꺼리고, 음식점은 대부분 문을 닫았더군요. 영민하신 전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이다. 불운한 기운은 금세 걷힐 것이다. 이 내가 진정한 절대자로 올라서는 그날에.”
바토리는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해 입을 놀렸다.
눈앞에 있는 어린 체페슈의 신체와 본체가 이어진 마력의 끈을 슈아넬이 잡아낼 때까지.
유성우도 심심해서 슈아넬이 하는 짓을 따라해 보았다.
마법을 섬세하고 세밀하게 조작해, 대기 중에 존재하는 미약한 끈을 찾아내는 것.
그의 경우에는 오러였지만, 눈을 감고 집중하니 꽤 많은 것을 볼 수있었다.
대기 중에 떠다니는 옅은 핏빛의 마력.
바토리에게서 흘러나오는 뱀파이어 특유의 마력이었다.
그리고 체페슈의 몸에서부터 이어진, 회색의 선.
‘…어라?’
그는 눈을 슬쩍 뜨고 옆을 바라보았다. 슈아넬은 아직 못 찾았는지 눈을 감은 채 끙끙대고 있었다.
어떻게 마법사인 주제에 검사인 자신보다 늦게 찾을 수가 있는가?
그의 마음속에서 슈아넬의 평가가 두 단계 하락했다.
‘이제는 그냥 식충이 귀쟁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