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17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170화(170/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170화
블라드 체페슈(7)
오래 사는 놈들은 하나같이 괴물들이다.
수백 년 동안 육체가 퇴화하지 않고, 건재함을 유지한다는 건 육신 안에 담긴 힘이 어마어마하다는 뜻이었다.
천 년을 넘게 사는 하이엘프가 그랬고, 수백 년을 사는 뱀파이어 또한 그랬다.
게다가 그들은 오랜 시간을 살아가며 그 힘을 몸에 쌓는다.
그런 작자들인데, 오랜 시간 힘을 길러온 진조 뱀파이어는 대체 얼마나 강할까.
종의 정점이라 불리는, 어지간한 드래곤들과 맞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오랜 세월 익혀온 고대의 신비와 마법을 제하고도, 종족 특성인 ‘피의 권능’.
자신의 피를 비롯한, 혈액을 지닌 생물들의 피를 조종하는 권능이었다.
저항력이 없는 이들의 피라면 그대로 전부 뽑아버려 죽여 버릴 수 있고, 나름 강자라 불리는 이들의 피도 전부 말려 버릴 수 있다.
유성우나 슈아넬, 바토리 같은 경우에는 저항력이 강해 피의 권능으로 조종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피까지 조종하지 않아도, 조종할 수 있는 혈액은 많았다.
지하에 저장해 둔 피와 권속들의 피. 그것들을 모조리 뽑아 올린 체페슈의 혈창(血槍)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유성우는 그 광경을 보며 옛날에 상대했던 뱀파이어들을 떠올렸다.
진조는 아니었으나, 고위 뱀파이어들이 모여 피의 권능을 행사했다.
그때도 이런 광경을 보았다.
하급 뱀파이어들에게서 뽑아낸 피로 각종 무기를 만들어 쏘아대던 풍경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그때는 어떻게 했더라.’
그때는 동료도 없던 때라서, 무작정 몸으로 받아냈던 것 같았다.
무기들의 틈을 파고들어 검을 휘두르고, 피할 수 없는 것들은 요령 있게 얻어맞았다.
몸이 거의 벌집이 됐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아 놈들을 도륙 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랐다.
동료들도 있고, 자신도 더욱 강해졌으니…….
벌집 신세는 면하겠지.
떨어져 내리던 창들이 멈췄다.
“오래 못 버텨요!”
체페슈의 권능에 저항해, 바토리 또한 피의 권능을 사용했다.
아주 잠깐뿐이지만 쏟아지던 혈창이 멈추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것은 찰나의 시간.
다른 이들이라면 눈 깜박이는 것만으로 넘겨 버렸을 시간이지만, 유성우에게는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혈창이 멈춘 순간, 유성우의 시간도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집중을 거듭한 그의 사고가 가속하고, 색채가 빛을 잃었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건 단 세 가지의 색깔.
흑백과 적색.
하늘에서 떨어지는 붉은 창, 손에 들린 붉은 검.
체페슈의 붉은 눈동자와 자신의 적의 실린 붉은 눈.
유성우는 땅을 박찼다.
멈춘 세계는 그리 길지 않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기 전에 쇄도해, 검을 들이밀었다.
천천히 흐르는 세계 속에서 체페슈의 눈동자가 유성우를 향해 굴러갔으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손이 빠른지, 눈이 빠른지.
논쟁의 결과가 자명한 사실로 드러난다.
일순(一瞬).
눈을 한 번 깜빡일 시간 동안, 먼 거리를 단번에 주파해 체페슈의 목에 일생을 들이밀었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히고, 유성우의 칼날은 자비 없이 휘둘러졌다.
아래에서부터 치솟는 칼날이 체페슈의 혈의를 갈랐다.
권능을 이용한 최강의 방어는 최강의 소드마스터에 의해 허물어지고, 안쪽에 있는 연약한 살갗 또한 칼날에 갈라진다.
유성우의 칼날이 체페슈를 갈라, 치명상을 입혔다.
그와 동시에 느려졌던 세계가 제자리를 되찾으며 멈추었던 창이 떨어졌다.
“컥!”
체페슈가 숨을 토해내는 소리.
치명상을 입으면서도 그는 손가락을 꺾어 창의 궤도를 바꾸었다.
자신과 유성우를 향해서.
“마음대로 하게 둘 것 같으냐!”
그리고 그 순간, 슈아넬의 마법이 펼쳐졌다.
권능마저 빗겨낼 강력한 마법 방벽이 유성우를 덮었다.
유성우는 씩 웃으면서 체페슈를 향해 중지를 올려주었다.
“엿 처먹어라. 새끼야.”
쏟아지는 혈창은 슈아넬의 마법 방벽으로 인해 모두 빗나간다.
중력을 뒤트는 고도의 마법이 유성우의 몸을 지켜주었다.
그러나 혈창은 체페슈를 향해 여지없이 꽂혔다.
자신의 공격에 되레 자신이 당하는 꼴이었지만, 유성우는 이것이 그에게 별 피해는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결국에, 피니까.
피의 권능으로 이루어진 무기는 시전자에게 꽂혀도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유성우는 다시금 검을 휘두르는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상처를 입은 체페슈의 반응이 느렸다.
그 부분을 집요하게 노렸다.
다친 데 또 때리는 건 기본적인 전술이었다.
“맨살! 맨살! 맨살!”
그의 입에서 광적인 목소리가 튀어나오자, 체페슈도 퍽 당황한 듯 반응이 한층 더 느려졌다.
하지만, 유성우는 체페슈의 숨통을 끊지는 않았다.
전신에 상처를 입혀 두고는 뒤로 물러나 시간을 주었다.
마치 무언가를 경계하듯이 말이다.
자신의 수가 통하지 않자, 체페슈는 더욱 커다란 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전신에 상처가 가득했다.
원래 이깟 상처는 금방 재생해야 하는데, 유성우의 기묘한 힘 때문에 재생이 먹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퍼뜨려둔 힘을 쥐어 짜내는 것이었다.
체페슈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대기의 마력이 일렁이기 시작하며, 체페슈에게서 뻗어 나온 회색의 말력 다발도 흔들렸다.
마력 다발은 이내 체페슈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권속들에게 퍼뜨려 두었던 마력과 권능을 회수하는 작업이었다.
그 하나하나는 보잘것없는 힘이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그것들이 전부 모이면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너희와 같은 천것들에게 사용할 힘이 아니었다.”
중세 놈이라 그런지, 말투가 꽤나 신분 차별적이었다.
유성우는 체페슈에게서 느껴지기 시작한 어마어마한 힘에 숨을 길게 내뱉었다.
‘진조는 진조인가.’
모기 새끼 주제에 너무 강하다.
모기가 레벨업을 얼마나 열심히 했으면, 종을 초월한 힘을 보유하게 되는 걸까.
‘이 정도면 이계의 진조 놈들한테도 안 밀리겠는데?’
오랜 시간 권속을 늘리고, 그 힘을 쌓아온 만큼 체페슈는 강했다.
하지만, 그 힘을 끌어모은 게 놈의 패착이 되리라.
유성우가 말했다.
“너, 이제 권속 없지?”
권속의 몸으로 영혼을 빼서 도망가기라도 하면 섭하다.
빙의도 가능한 놈이기 때문에 아주 불가능한
아주아주 섭섭할 거다.
그래서 놈이 모든 권속에게서 마력을 끌어모으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놈이 처음부터 권속으로 물량전을 펼쳤으면 이야기는 조금 달랐으리라.
겁쟁이처럼 몸을 빼면서 도망을 갔다면 아주, 기나긴 추격전을 해야 했을 테지만.
정신에 남아있는 왈라키아 공국 공작의 투쟁 정신은 도망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권속 없는 뱀파이어는…….
“이 권속 없는 찐따 새끼. 넌 이제 뒈졌다.”
유성우가 한 말이 아니었다.
바토리가 한 말이었다.
물론, 정답이기는 했다. 권속이 없는 뱀파이어는 그 성가심이 배로 줄어든다.
아무리 권속의 힘을 거둬들여 자신의 힘을 강화했다고 해도.
“네놈들을 전부 꿰뚫어 죽일 것이다.”
권속들의 힘을 거둬들였던 체페슈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유성우가 놈의 몸에 새겨두었던 상처들은 어느새 회복되었고, 몸에 둘렀던 제복 같던 혈의의 등에는 피로 이루어진 날개가 있었다.
피로 짜인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른 체페슈는 다시금 피의 권능을 발휘했다.
이전보다 강력해진 피의 권능이, 피의 파도를 일으켰다.
바닥에서 솟구친 검붉은 혈액은 대지를 뒤덮으며, 여러 괴물의 형태를 취했다.
흡혈박쥐, 늑대, 츄파카브라…….
유성우는 저 사이에 츄파카브라가 껴있다는 사실에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체페슈는 피의 파도를 일으키며 손에 들린 목걸이를 부수며 중얼거렸다.
지하에서 대부분의 아티팩트는 폭주시키느라 박살 났지만, 유일하게 소모하지 않은 아티팩트였다.
“대지를 피로 뒤덮고… 세계를 피로 물들게 하리라.”
체페슈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혈액이 세계를 뒤덮으며 의지를 현현시켰다.
경지에 다다르는 이들이 펼쳐내는 고유마법이자, ‘고유세계’.
‘영역’이나 ‘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경지에 다다른 이들의 세계는 의지의 표상(表象)이다.
구현화된 의지는 공간을 장악하고, 적을 압박한다.
의지가 발현된 세계의 주인은 잠시나마 신과 같은 권능을 내보이는 것도 가능했으니, 다른 이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는 것은 죽음에 한 발짝 가까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고유세계……?!”
바토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경지에 이른 자들만이 펼칠 수 있다는, 세계가 그녀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토리는 대마법사지만, 아직 고유세계를 펼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세계는 이미 진즉에 망가져 폐허가 되어버렸으니까.
표상할 의지조차 없는 뱀파이어.
슈아넬 또한 마찬가지였다. 엘프의 마을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그녀의 의지는 박약(薄弱)했다.
커다란 전쟁을 겪은 적도 없는 데다가, 강렬한 의지로 버틴 적은 있으나 표상하기에는 부족했다.
둘은 역변한 세계를 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설마 체페슈가 고유세계를 펼칠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다다랐을 줄이야.
그러나, 유성우는 당황하지 않고 소리쳤다.
“뭘 당황하나! 고유세계 한두 번 봐?! 그리고 아티팩트를 이용해 급조한 세계다!”
둘은 말만 들었지, 보는 건 처음이라고 반박하고 싶었으나, 그럴 틈도 없었다.
체페슈가 손을 들며 말했다.
“일어나라, 혈성(血城).”
놈의 중얼거림에 따라 등 뒤에 커다란, 왕성이 솟구쳤다.
피로 이루어진 왕성의 성벽에는 거대한 옥좌가 세워져 있었다.
체페슈는 옥좌에 앉아 다리를 꼬며 말했다.
“왕명(王命)이다. 너희들의 모든 피를 헌납하도록.”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지만, 그들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바토리와 슈아넬은 거대한 마력으로 저항하고 있음에도 제 손톱으로 제 손목의 동맥을 뜯어내려 들었다.
유성우는 혀를 쯧, 하고 차고는 발을 굴렀다.
그를 중심으로 오러의 파장이 퍼져 나가며 고유세계의 법칙을 뒤틀었다.
그제야 바토리와 슈아넬은 제 동맥을 뜯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저항과 방어에 집중해라. 나라고 계속 너희 둘을 제어에서 풀어줄 수는 없으니까.”
유성우는 그리 말하고는 일생을 꾹 쥐었다.
설마 체페슈가 고유세계를 펼칠 줄은 몰랐다.
토마스도, 안드로도 펼치지 못했던 고유세계였다.
선택받은 몇만이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펼치는 것이 고유세계.
유성우도 펼칠 수 있으나, 아직은 불완전한 세계였다.
알량한 생각으로 그런 불완전한 세계를 불러오면, 체페슈의 세계에 잡아먹히고 말리라.
‘아티팩트의 능력인 것 같은데.’
급조한 것치고는 완성도가 낮지 않았다.
급조한 걸로 이 정도면, 나중에 정말로 완성되었을 때의 세계는 어떠할까.
체페슈의 바람대로 세계는 피로 뒤덮여 피비린내만 나는 끔찍한 곳이 되리라.
숨을 길게 내뱉었다.
어차피 고유세계에 진입한 이상,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걸 한다.’
검사로서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바로, ‘베는’ 것이다.
유성우가 일생을 높이 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