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174)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174화(174/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174화
고유세계(3)
그저 중력이 스무 배일뿐이다.
그런데 이 정도로 힘들어하는 꼴을 보면, 앞으로 참 갈 길이 멀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마력을 쓰지 말라고는 했지만, 고작 몇 발자국…….
이런 환경에서 움직이면 육체 단련도 되고 정말 좋을 텐데 말이다.
특히 슈아넬은 한 발짝을 내디디더니, 그대로 앞으로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대로는 말린 오징어 같은 꼴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일단 너희들은 중력에 적응부터 해야겠군. 진짜 수련은 다음부터다.”
유성우는 평온하게 걸음을 옮기는데, 그의 뒤를 따르는 이들은 죽을 맛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나도 무겁다. 다리가 삐걱거리며, 전신의 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
유성우는 대체 어떻게 이런 중력 속에서 자유로이 움직이고 있는 걸까.
마력을 쓰지 말라고 했으면서, 본인은 마력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살펴본 결과, 유성우는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안으로 들어가자, 유성우는 적당한 곳에 검을 휘둘러 평평하게 만들고는 말했다.
“자, 지금부터 기초 체력 단련 들어간다. 팔굽혀펴기 천 번, 윗몸 일으키기 천 번씩 한다. 카운트는 양심에 맡겨라.”
“주, 죽는 거 아니에요?!”
“안 죽는다.”
이곳에 끌려온 건 유지우, 백우현, 최아연, 홍서화… 그리고 유월과 슈아넬, 바토리.
검혼의 A급 다이버들.
드래곤인 녹스는 학교에 가야 해서 오지 못했다.
헤트리스는… 한 걸음만 내디뎌도 움직이지 못할 약체였고.
“쯧.”
혀를 찬 유성우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 여전히 그 자리에 엎어져 있는 슈아넬을 주워 들고는 안쪽으로 향했다.
“과, 관절! 관절이 삐걱거린다! 나서는 안 되는 소리가 나고 있다고 지금!”
“입술은 잘만 움직이는군. 지금도 힘든가?”
“…어라?”
슈아넬은 지금까지 제 몸을 짓누르던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느끼고는 의아해했다.
갑자기 왜?
무슨 차이가 있길래. 유성우가 딱히 마력을 움직인 것도 아니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슈아넬은 그가 하는 짓을 알아차렸다.
마력의 흐름을 읽어내고, 그 사이를 걸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중력이 스무 배나 되는 것은, 비정상적인 마력의 흐름으로 벌어지는 일.
유성우는 그런 비정상적인 마력의 흐름을 읽고, 틈새를 비집고 걸어가는 것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몸으로 실행하는 건 또 다른 영역.
마력의 틈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걸어간다는 건, 코끼리를 바늘구멍에 집어넣는 것과 같은 영역이다.
안 그래도 비정상적인 마력의 흐름이라 초에 수십, 수백 번이고 흐름이 뒤틀리는데.
그 모든 것을 읽어내며 나아간다는 건 얼마나 머리가 좋아야만 하는 것인가?
“어떻게 하는 거지?”
“감이다.”
…머리가 좋은 게 아니었다.
유성우는 경험과 무시무시한 초직관으로 마력의 틈새를 걸어나가는 것이었다.
슈아넬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기술이었다.
그는 적당한 곳에 도착하자, 슈아넬을 내려놓았다.
유성우의 곁에서 벗어나자 다시금 몸을 짓눌러 오는 중력에 바닥에 엎어졌다.
그녀의 앞에 쪼그려 앉은 유성우가 말했다.
“마법사라면 근성을 보여라. 언제까지고 식충이 로우엘프로 남아있을 생각이 아니라면.”
“…….”
그리 말한 유성우는 다른 이들도 쳐다보았다.
가장 근성을 보이는 건 백우현과 최아연이었다.
둘은 벌써 중력에 적응했는지, 팔굽혀펴기에 들어갔다.
백우현은 어릴 때부터 단련한 만큼 기초가 탄탄했고, 최아연은 까라면 까야하는 군인 정신에 가까웠다.
유성우가 좋아하는 타입의 두 명이었다.
과거 제자들을 가르칠 때도, 말을 잘 듣는 놈을 좋아했다.
안 듣는 놈은 뒈지게 팼다.
아무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남은 이들도 중력에 적응하며 힘겹게나마 단련을 시작했다.
바토리도 시작했는데, 슈아넬은 여전히 엎어진 채였다.
“숨쉬기 힘들지 않나?”
“…….”
“뭐, 멀쩡하니 이러고 있는 거겠지. 할당량 못 채우면 집에 못 간다.”
끔찍한 말을 내뱉은 유성우는 다른 이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들은 놈도 있겠지만, 못 들은 놈도 있을 테니 말해주지만, 이번 훈련의 목적은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이다. 조금으로는 안 돼. 너희들 또한 초월의 경지에 들어서야 한다. 마력은 다룰 줄 아니, 이제는 오러를 담을 수 있어야 하지.”
다들 재능이 넘쳐나니 천천히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닿을 경지겠지만, 찔끔찔끔해서 언제 닿겠는가.
좋은 원석은 몰아붙여야 더욱 예리한 칼날이 되는 법이다.
유성우는 일생을 꺼내 들고는, 오러를 주입했다.
검 위에 새빨간 오러가 넘실거리며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보이나, 오러가. 너희들이 도달해야 할 경지다.”
오러의 유형화는 명실상부한 소드마스터의 증명.
그의 밑에 있는 이들이 현재 가장 목표로 해야만 하는 경지였다.
유성우가 검을 천천히 휘두르자, 오러의 잔상이 허공에 남았다.
“오러는 그 자체로 힘의 증명이다. 자신이 얼마나 섬세하게 마력을 다룰 수 있는지 증명하는 것이지. 기술이 없다면 압도적인 마력을 압축시켜 만들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효율이 좋지가 않지. 너희들에게 그만한 마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로로 휘둘러진 검이 이번에는 세로로 움직였다.
허공에 십자 잔상을 남긴 오러는 이내 흩어지더니, 사방으로 퍼졌다.
“내 과거의 동료들은 모두 오러를 쓸 줄 알았다. 그것만으로 모두 소드마스터라고는 부를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한 명이 S급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었지.”
“동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팔굽혀펴기를 하며 이야기를 듣던 홍서화가 궁금했는지 물었다.
유성우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이내 말했다.
“전부 죽었다. 마지막 전투에서 살아남은 건 나 혼자였다. 마족이라 불리는 놈들과 사투를 벌였고, 우두머리에게 향하는 길을 내게 열어주었지.”
“…….”
“명예로운 죽음이었다. 밑바닥에서 시작했을지라도, 결국 세상을 구했던 건 우리였으니까. 누구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나만큼은 모두를 기억하고 있으니.”
유성우는 동료들의, 제자들의 이름을 다시 가슴에 새겼다.
잊혀 가던 이름들을 다시금 떠올리고는 잊지 않도록 머릿속에 단단히 박아넣었다.
하고 싶은 말은, 한 가지다.
“나는 너희가 그런 결말을 맞지 않기를 바란다. 살아남아라. 끝까지 살아남아라. 사지 한군데가 사라지더라도 살아남는 게 중요한 시대가 올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강해져야만 하지. 내 동료들도 그렇게 아스라이 사라져 갔는데, 지금 너희들의 수준이라면 단번에 쓸려나갈 거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지금 신격 하나가 강림하면, 이들의 수준으로는 막아설 수 없다.
흐레스벨그를 사냥할 수 있었던 것도 놈이 상처를 입어서였고, 유성우가 어그로를 모조리 끌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끌 수 있겠지만, 그 결과는 죽음이라는 형태로 돌아오리라.
사신의 낫이 이들의 영혼을 거둬가지 않기를 바랐기에, 유성우는 더욱 혹독히 굴릴 생각이었다.
“여차할 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으니까. 그렇기에 너희들이 오러를 완성하는 것과 고유세계를 완성하는 것을 도울 것이다. 고유세계는 소드마스터의 너머에 있는 경지…….”
고유세계. 일정 경지에 다다른 이들만이 펼쳐낼 수 있는 자신만의 ‘권역(權域)’.
내면의 의지를 표상하는 세계는 주인에게 전능감을 안겨준다.
검사라면 검을 휘두를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고, 마법사라면 그것만으로도 대마법.
그라고 마녀회의 말을 빌리자면.
“신이 되기 위한 발판이다. 자신의 세계를 펼친다는 것은 창조, 신만이 해낼 수 있는 권능. 도달한 사람은 본 적이 없지만, 나는 고유세계의 너머에는 ‘신역(神域)’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한다.”
유성우는 마신과의 전투를 회상했다. 고유세계를 펼쳐낸 유성우는 분투했으나, 마신의 세계는 그의 것보다 더욱 깊은 의지를 머금고 있었다.
아니, 인간들이 마계라 불렀던 땅 자체가 마신의 고유세계였으리라.
“그게,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저번에 보여주셨던, 그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백우현이 물었다.
유성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생을 바닥에 꽂았다.
“말로 하는 것보다 눈으로 보여주는 게 가장 빠르겠지.”
그리 중얼거린 유성우가 숨을 길게 내뱉으며, 자신의 오러를 전신으로 퍼트리며, 서서히 현실을 침식시켰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자신의 주변을 뒤덮는 기이한 힘에 숨을 멈추었다.
뒤이어 서서히 변해가는 풍경.
그들이 있는 곳은 동굴이었으나, 유성우의 의지는 세계를 굴절시키고, 현실을 뒤덮었다.
유성우가 꽂아 넣은 일생을 중심으로부터, 풍경이 뒤바뀐다.
일생의 주변이 돌이 아닌 잔디로 변하더니, 이내 그 크기를 점점 키워 동굴을 먹어 치웠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어스름한 불빛으로 가득했던, 중력 가득한 동굴은 붉은빛의 초원이 되었다.
세계를 붉은색으로 물들이는 건 능선 너머로 사라지는 피처럼 시뻘건 태양이었다.
그의 의지를 그대로 그려놓은 세계에는 무수히 많은 검이 혼재했다.
부러진 검과 금이 간 검.
능선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인간이 휘두를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 않는 검과, 유성우가 몇 번 휘둘렀던 검들도 눈에 들어왔다.
철을 두드려 만든 검의 세계.
수많은 검은 유성우가 지나온 길을 표현했고, 불타는 붉은 태양은 그의 심상이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이 풍경은 유성우만이 자아낼 수 있는 세계이리라.
고유세계를 처음 경험하는 이들은 눈을 크게 뜬 채 주변을 둘러보기 일쑤였다.
풍경이 변했을 뿐만 아니라, 몸을 짓누르던 중력까지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그와 다른 중압감이 몸을 짓눌렀다.
남의 세계에 발을 들였으니,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었다.
“…이것조차 완성이 아니라고요.”
바토리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유성우의 세계는 황량했고, 쓸쓸했으며, 동시에 아름다웠다.
그러나 유성우는 이것이 미완성이라 말하였다.
당장 체페슈의 고유세계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런 바토리의 생각을 읽었는지, 유성우가 바닥에 꽂아둔 일생을 뽑아 들며 말했다.
“고유세계의 완성은 의지의 표상이다. 자신을 얼마나 드러내느냐에 따라 그 완성도가 달라지지. 어떤 과거를 보냈는가, 무슨 현재를 보내는가, 어떠한 미래를 그리는가.”
유성우의 고유세계에는 과거와 현재가 있었다.
그러나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바라는 미래는 평화로운 일상임이 분명하지만, 그러한 미래가 세계에 섞이게 되면 불타오르는 투쟁심은 희석되어 붉은 태양은 완전히 져버리고 말리라.
그것을 경계한 유성우는 자신의 세계에 어중간한 미래를 섞지 않았다.
맞부딪혀야 하는 세계는 약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세계와 부딪히더라도 견고함을 내보이며 무너지지 않아야 하며, 어떠한 세계더라도 뚫어낼 날카로움이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유성우는.
자신을 더욱 몰아넣을 생각이었다. 이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것만이 정답일 테니까.
뽑아 들었던 일생을 한 바퀴 돌리며 다시 박아넣은 그가 말했다.
“…고유세계를 연 김에, 한번 해보지. 모두 덤벼라. 자신이 그리는 세계를, 의지를, 심상을 내게 모조리 부딪혀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