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1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190화(190/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190화
유현월(6)
브로커들은 건드리지 않는 게 불문율이지만, 이번에는 건드려도 되는 합당한 명분이 있었다.
브로커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린 유성우가 말했다.
“전달받은 정보와 공장의 병력이 다르더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면, 이제 브로커 일은 못 하게 될 거다.”
“…진정하시오, 일단 이걸 놓고 이야기하지 않겠소?”
유성우가 브로커의 멱살을 잡아 올린 순간, 술집에 있던 낭인 표사들이 제 무기에 손을 올렸다.
그가 무슨 짓을 하면 곧바로 공격할 수 있도록 말이다.
유성우는 그들을 향해 흘깃 눈짓하고는 다들 들으라는 듯 말을 이었다.
“네놈이 준 정보는 지ㆍ상급이라고 하지 않았나. 경비 병력은 육십에서 칠십, 무인은 일곱. 대부분 일류고 초절정과 화경이 두 명이라고. 하지만 내가 향한 곳의 병력은 이백이 넘었고, 무인만 서른이더군. 초절정과 화경이 섞여서 다섯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술집의 낭인들이 무기에서 손을 떼었다.
브로커의 실책. 게다가 이건 죽으라고 보낸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의 말에 브로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해내지 않았소? 이걸 놓고 안쪽으로 따라오시오. 당신에게 해줄 말이 있으니.”
유성우가 멱살을 놓자, 브로커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카운터 근처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유성우와 유월이 따라 들어가며 문을 닫자, 브로커는 미리 끓여놓은 뜨끈한 차를 둘에게 따라 내밀며 말했다.
“이번 일은 실례했소. 인증이 필요하기에 이런 일을 벌였소.”
“인증?”
유성우는 차를 홀짝이며 브로커를 향해 눈을 흘겼다.
날카로운 그의 시선을 브로커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며 말했다.
“…그렇소. 당신의 출중한 실력을 보아, 고작 해 구역에서 일할 표사가 아니라는 걸 알았소. 운송 의뢰라고 해도 하루에 몇 건을 처리하는 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니오.”
“그래서?”
“당신, 천맹성채의 내부 사람이 아니더군. 사파 쪽에서 밀입국 차량으로 들어온 것 같소만.”
“…거기까지 조사한 모양이군.”
“정보에 둔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천맹성채이기 때문이오.”
“그래서 그게 인증과 무슨 상관이지?”
유성우의 물음에 브로커는 제 몫의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당신 같은 실력자의 이야기는 빠르게 퍼져나갈 수밖에 없소. 하루 여섯 건의 운송 의뢰만 보아도 그렇지. 당신이 향했던 운송지는 모두 치안이 최악에 가까운 곳. 그곳에서 아무런 상처 하나 없이 돌아왔으니.”
그리 말한 브로커가, 품속에서 태블릿 하나를 꺼내 유성우를 향해 내밀었다.
“현월, 당신은 위험 분자요. 해 구역의 질서를 어그러트릴 수 있다고 판단될 정도로.”
“그런가.”
“천맹성채의 해 구역의 표국은 모두 중개인과 표사들의 교류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오.”
브로커가 내민 태블릿에 떠오른 건, 해 구역에 존재하는 수많은 표국의 이름이었다.
유성우는 거기서 재미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표국과 연결된 여러 가문과 문파들의 이름이었다.
“애초에 표국은 구대문파와 오대 세가가 해 구역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건가?”
“그렇소. 해운표국은 무당파에 소속되어있지. 이번 일도 무당파에서 당신을 시험하기 위한 일이었소.”
무당파.
도가를 기본으로 삼는 문파였다.
또 천맹성채의 기둥 중 하나인 문파가 거론되었다.
그렇다면 이번 일은 팽가의 사업을 방해하기 위한 무당파의 수작이었단 말인가?
신선을 목표로 하는 놈들 주제에…….
유성우는 어이가 없어 코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고는 말했다.
“그래서, 인증은 끝났나?”
“이번 일이 완벽해도 너무나도 완벽하게 끝난 탓에, 오히려 의심이 깊어졌소. 이제 이 근방에 있는 표국에서 당신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
“그리고?”
“그래도, 의심이 간다고 당신과 같은 칼을 써먹지 못할 구석은 없다고 판단했소. 그러니까.”
브로커는, 유성우가 원하던 말을 꺼내 들었다.
지금까지 그가 바라마지 않던 일이었다.
“지 구역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시오. 무당파의 분파에서 당신을 보기를 원하고 있소.”
“그렇다면 갈 수밖에 없겠군.”
***
“자네가 나를 돕겠다고.”
“그래. 네 몸에 정착하려 드는 영성의 흉폭함을 억누르고 경험만을 온전히 받을 수 있도록 돕겠다. 이래 봬도 고고한 하이엘프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아니, 자네가 나를 도와야 하는 건 모든 영성을 이 몸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 줌의 흘림도 없이 모든 것을.”
“그랬다가는 미쳐버리고 말 텐데도? 아무리 초인적인 정신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수천 년 묵은 흉포한 영성 십수 개를 견뎌낼 수는 없을 거다.”
“아니. 천마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완성되는 것이다. 선대의 정신과 무학을 이 몸에 받아들여 하단전에서부터 상단전까지 이어지는 소우주의 완성. 그래야만 비로소 인간을 벗어나 천마가 되는 것이니.”
천마란, 인간을 벗어난 구도자.
무협지 속에서나 등장하던 천마라는 이름의 마신은 대격변이 일어나며 지구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마교라는 이름조차 모르던 한 소녀는 마신의 힘을 받아들여 천마의 자리에 올랐고, 진정한 천마의 업을 이룩하기 위해 가시밭길인 구도의 길에 올랐다.
“천마란 마신이다. 모든 교도들의 기도를 받아들이는 유일무이한 그들의 신이다. 이것은 스스로의 단조. 선대의 영성과 부딪혀 담금질하며, 인간을 탈피해 마신으로써 이룩하는 것이다.”
“…들을수록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군. 그렇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영계의 문을 더욱 크게 열어젖혀 의식을 가속하는 것뿐이다.”
“…나쁘지 않군. 이 모든 영성은 스스로가 감당해야 하는 것. 숲의 현자여, 영계를 열어라. 안 그래도 너무 느린 감이 없지 않아 답답하던 참이었으니.”
“정말로 미쳤군, 미쳤어…….”
슈아넬은 그리 중얼거리면서도 작은 몸을 일으켜 흑사향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귀를 쫑긋거리며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마력을 일으켰다.
슈아넬의 마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이내 흑사향이 뿌려내던 칠흑과 뒤섞였다.
조화의 마력.
엘프들이 타고나는, 자연 친화적인 마력이었다.
칠흑과 뒤섞인 마력을 그녀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며, 자신과 흑사향을 중심으로 원을 그렸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아주 작게 열려있는 영계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그 안에 있는 천마라는 영성을 모조리 흑사향에게 때려 박는 것이다.
“…시작한다.”
흑사향의 칠흑과 자신의 마력을 섞은 힘으로 그녀는 마법진을 그려냈다.
영계의 문을 더욱 크게 열어젖히기 위해 공간을 비틀어 현재 서 있는 물질계와는 다른 세계에 간섭한다.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불가능한 일.
존재 자체가 신에 가깝다 말하는 하이엘프이기에 가능한 기적.
슈아넬이 양손을 높이 들자 하늘에 칠흑보다 더욱 어두운 구멍이 열리더니, 그곳에서 흉포한 기세가 쏟아져 나왔다.
낡고 낡아 흉포한 본능밖에 남지 않은 천마의 영성들이 크게 열린 구멍으로 대가리를 들이밀자, 슈아넬은 칠흑으로 구멍과 흑사향을 잇는 커다란 깔때기를 만들었다.
그 순간, 흑사향의 몸이 크게 요동쳤다.
영계의 문이 열리고 드러난 흑사향의 육신이 전대 천마들에게 얼마나 먹음직스럽게 보였을까.
슈아넬은 이리저리 뒤틀리며 끔찍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흑사향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분명히 고통스러울 텐데 흑사향은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입을 꾹 다문 채 영성을 받아들이며 싸우기 시작했다.
슈아넬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여전히 입구 쪽에 앉아있는 최아연을 향해 말했다.
“물.”
“예?”
“물 가져오라고. 목말라.”
“네…….”
***
현월이라는 이름의 표사의 이름값이 갑작스럽게 치솟았다.
팽가의 비호를 받는 공장 부지에 침입해 초절정 고수를 죽이고 무사히 탈출했다.
팽가가 비밀리에 지원하는 곳이었기에 대놓고 그를 추적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정보를 쥔 표국의 브로커들은 그의 등급을 최상급으로 조정했다.
“굉장한 표사가 나타났군. 하지만 이제 곧 지 구역으로 간다는 소문이 있던데?”
“또 문파들이 채가려나 보지. 실력 있는 표사들은 죄다 세가나 문파로 들어가지 않나.”
“표사로 사는 것과는 대우가 천지 차이니까 그렇지…….”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지껄일 때, 유성우는 유월과 함께 지 구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브로커의 차를 타고, 관문을 지나 지 구역으로 들어서자, 해 구역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정말로 같은 땅에 존재하는 게 맞나 싶은 정돈된 길거리와 웃음을 머금은 사람들의 얼굴.
해 구역과는 완전한 딴판이었다.
그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자 운전대를 잡고 있던 브로커가 말했다.
“해 구역에서만 있다가 지 구역으로 온 이들은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이오. 당신도 그렇게 다르지는 않군.”
“성벽 하나를 지났는데 이리도 많이 변하니, 안쪽 놈들이 대체 얼마나 바깥 놈들을 등쳐먹는지 알만하군.”
“천맹성채에서는 실력이 전부니 그렇소. 약하거나 강호의 도리를 모르는 자들은 바깥으로 밀려나 찌꺼기를 먹고 살게 되는 법이오.”
“비정한 세계군. 참으로.”
“…강호는 약육강식. 견뎌내지 못하는 자는 밀려날 뿐이지.”
지 구역으로 한참을 들어간 브로커가 한 건물 앞에서 차를 멈춰 세웠다.
커다란 정원을 가진 건물.
브로커가 말하길 무당파의 분파로 ‘산무문(山霧門)’이라는 현판을 내건 곳이었다.
브로커가 창문을 열고 문앞을 지키는 경비병에게 말했다.
“마오준이 왔다고 전해주시오.”
마오준이라는 이름인가.
본명은 아닐 터였다. 브로커로서 사용하는 이름이겠지.
경비병은 내부에 확인을 하더니 이내 문을 열어주었다.
브로커는 차를 움직여 정원 내부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곤, 유성우와 유월을 이끌었다.
“지금부터는 행동거지를 조심히 해야 할 것이오. 분파기는 하지만 본문에서도 어느 정도 예의주시하는 자를 만나러 갈 테니까.”
“알겠다.”
유성우가 대답하고, 유월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장원의 안쪽으로 걷다 보니 어느새 양옆에 무복을 입고 허리춤에 검을 찬 이들이 따라붙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세 명에게서 무기를 받아 가고는 경계하듯 옆에 섰다.
목조 기둥이 늘어선 복도를 지나 내부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신선처럼 보이는 노인이 상석에 앉아 있었다.
노인의 주변에는 기선제압을 할 생각인지 흉흉한 기세를 내뿜는 무인들로 가득했다.
‘개폼…….’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속으로 삼킨 유성우는 브로커를 따라 노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노인은 순순히 부복하는 유성우 일행을 만족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해 구역에서 빌어먹는 천한 것들을 본문에 들이는 것만으로 영광으로 알게나.”
“…….”
“네놈들의 이름이 지 구역까지 들려오더구나. 현월, 용월이라고 했던가. 천한 것들이지만 어딘가 써먹을 구석은 있겠지.”
거만한 말투.
오만한 태도.
그 두 가지를 한 몸에 지닌 노인이 말을 이었다.
“본문의 칼이 되어라. 그리하면, 본문에서 너희들을 보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