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197)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198화(197/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198화
천맹성채(6)
서문세가의 영역은 정갈한 고층 건물이 늘어선 곳이었다.
거기에 울타리를 두르고 커다란 대문을 세워두어 가문의 위용을 자랑했다.
“문을 열어라.”
경비는 이미 쓰러뜨린 뒤.
서문영일의 말에 유성우가 앞으로 나서서 철검을 들었다.
크게 검을 휘둘러 대문을 그대로 반으로 갈라 버린다.
굉음과 함께 박살이 난 문이 쓰러지고, 유성우는 다시금 검을 휘둘러 잔해를 치워 버렸다.
서문영일은 대문으로 당당한 걸음으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서문의 딸이 돌아왔다!”
우렁찬 외침이 서문세가의 영역 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유성우가 오러를 이용해 그녀의 목소리를 사방으로 증폭시켰기 때문이었다.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안쪽에서 일단의 무리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허리에 검을 찬 그들은 흉흉한 살기를 내뿜으며 갑자기 영역에 들어온 그들을 노려보았다.
가장 앞에 선 기골이 장대한 남자가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네놈은 뭐 하는 놈들이냐! 이곳이 서문세가의 영역이라는 것은 알고 이런 짓을 벌이는 거겠지?!”
“당연하다. 그리고 말하지 않았느냐. 서문의 딸이 돌아왔다고. 아버지를 불러라. 내가 직접 얼굴을 보아야겠다.”
“네년이 누구길래 서문을 칭하는 것이냐! 너 같은 건 본 적도 없다!”
“나는 파천문의 문주이자 서문제와 지화의 딸, 서문영일이다. 가주의 피를 이은 정당한 후계로서 가주의 자리를 차지하러 왔다.”
이름하야.
‘왕위를 계승 중입니다’ 작전.
서문영일의 말에 서문세가의 무인들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현 가주 서문제에게 숨겨진 딸이 있었다니.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가장 앞에 서 있던 남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서문의 이름을 사칭한 죄를 물어 이 자리에서 참하겠다!”
“아랫것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군. 치워라.”
서문영일은 유월이 알려준 대로, 거만한 문주를 연기했다.
이들 전체를 속여 버리는 커다란 연극. 오늘의 무대는 서문세가였고, 관객은 없었다.
그녀의 말에 유성우가 앞으로 나섰다.
앞길을 막아선 이들은 고작해야 A급에서 B급 수준.
땅을 지르밟으며, 빠른 속도로 쇄도한 그가 검은 잔영을 남기며 무자비한 칼질을 선보였다.
순식간에 수십 명이나 되던 서문세가의 무인들이 바닥에 거꾸러졌다.
하나같이 목덜미에서 피 분수를 뿜으며, 실 끊어진 인형처럼.
유성우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돌아와 서문영일의 곁에 섰고, 그녀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진중한 표정으로 시체 사이를 거닐었다.
그녀의 발걸음에 맞춰 다른 이들 또한 따라 걸으며 투지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더 걸어가자 다시 일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멈추어라! 여기가 어디라고 그 더러운 발을 들이는 것이냐!”
“너는…….”
서문영일은 앞을 막아선 이를 알아보았다.
직접 본 적은 없고, 유월이 건네준 자료로 확인했던 얼굴.
서문제의 장남인 서문청이었다.
서문영일은 포권하며 말했다.
“청 오라버니, 반갑습니다. 동생 영일입니다.”
“나는 네년 같은 천한 동생을 둔 적이 없다. 감히 그 더러운 발로 가문에 발을 들여? 네년의 목을 잘라 효수하는 것으로 값을 받아 가겠다! 물론 네년의 부하들도!”
“파천문입니다. 오라버니. 입에서 나오는 것이 온통 천박한 말뿐이니 대화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겠군요. 아버지를 불러주시겠습니까?”
“이것이 끝까지!”
서문청은 그리 외치며 빼 든 칼을 강하게 쥔 채 당장에라도 땅을 박차 돌진하려 들었다.
그러나.
“갈─!!”
뒤쪽에서 강렬한 기운과 함께 퍼진 목소리에 움직임을 뚝 멈추었다.
서문청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뒤를 돌아보곤 허리를 굽혔다.
“아버지.”
“가주님이라 부르라 하지 않았더냐. 이 멍청한 놈.”
뒤에서 느긋한 발걸음으로 걸어 나온 건 서문세가의 가주, 서문제였다.
서문영일의 유전자 제공자이자, 천맹성채를 건립한 다섯 가문의 수장 중 한 명.
서문영일은 앞으로 걸어 나온 서문제를 쳐다보았다.
‘저자가 나의 아버지인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얼굴은 중년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장대한 기골과 옷자락 속에 숨겨진 근육이 꿈틀거리니, 한 가문의 가주임을 여실히 증명하는 모습이었다.
서문영일은 포권도 취하지 않은 채, 서문제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딸 서문영일입니다.”
“그 계집년의 딸년인가. 해 구역으로 쫓아낸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뒈지고 살아 있었군.”
“…처음 보는 딸에게 못 하는 말이라고는 없으시군요. 아버지.”
“그 입으로 아버지라 부르지 마라. 잠깐의 여흥이었을 뿐이다. 찌꺼기에 불과한 존재를 자식이라 부를 수는 없다.”
서문제의 말에 서문영일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저 입에서 사과의 말이 나오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으나 사과는커녕 쏟아지는 건 험한 말들뿐이었다.
강경한 태도로 나온 서문제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그 옆에 있는 유성우에게 시선을 보냈다.
“자네가 저 계집년을 돕는 현월이라는 자인가?”
서문영일에게 말할 때와는 다른, 자애로움이 담긴 목소리였다.
서문제는 현월, 유성우에게 더욱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자네의 능력을 높이 보았네. 아무것도 없는 저 계집년을 천 구역까지 데려올 정도의 낭인 표사. 서문세가의 외인 무사로 일해보지 않겠는가? 저년에게 받는 것의 스무 배를 주도록 하지.”
유성우는 물론이고, 유월과 서문영일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제 앞에 있는 병력은 보이지도 않는지 유성우에게 구애하는 모습은 잠시간이지만 넋을 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내 제정신을 되찾은 유성우는 서문제를 보며 대답했다.
“아랫도리 간수도 못 하는 늙은이에게 듣고 싶은 말은 아니군. 노친네, 늙어도 곱게 늙어야지. 벌써 노망이 났으면 자식들이 수발들기 힘들잖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여기서 살아 나갈 유일한 방법이었을 텐데……. 전부 죽여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말고.”
서문제는 그리 명하며 몸을 돌렸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여럿의 강자와 수백 명의 무인이 모습을 드러내 파천문을 에워쌌다.
파천문의 무인들의 얼굴에 당혹이 어렸다.
자신들이 A급 다이버라지만 이만한 숫자를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승리하기는커녕, 살아 나가기 위해서는 결사의 각오로 전투에 임해야 하리라.
“문주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한 무인이 외쳤다.
서문영일은 무인의 외침에 입술을 짓씹으며 외쳤다.
“방진을 펼쳐라!”
그녀의 외침에 무인들이 그녀를 중심으로 둥글게 섰다.
조악한 방진. 연습을 해두기는 했지만 얼마나 큰 효용이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역시 병력을 더 끌고 왔어야…!”
그녀가 그리 말하는 동시에, 커다란 충격파가 대지를 진동시켰다.
유성우가 휘두른 검에서 뿜어진 검풍이 전방에 있던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검풍을 견디지 못하고 날아간 놈들이 바닥을 구르며 피를 토했다.
검풍에 섞인 오러를 받아낸 놈들이 충격을 온전히 해소하지 못한 탓이었다.
유성우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명령을 내리시죠. 문주님. 바라는 것이 있고, 이뤄야만 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서문영일은 이빨을 꽉 깨물었다.
유성우가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녀가 잠깐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유월이 옆에서 속삭였다.
“당신이 원하는 건, 반드시 이뤄 드리죠. 무엇이든지.”
유월의 말에 서문영일은 결심을 굳힌 듯, 숨을 작게 토해내고는 소리쳤다.
“현월! 서문제를 끌고 와 내 앞에 무릎 꿇려라!”
“존명.”
유성우는 컨셉을 충실히 유지하며 입가를 끌어 올렸다.
이제는 조금 자제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지켜보는 놈도 없으니, 빠르게 쓸어버리고 서문세가를 집어삼키면 되는 일이었다.
서문영일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유성우는 유월에게 눈짓하고는 곧장 앞으로 튀어 나갔다.
예전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하지만 최고 속도는 아닌.
놈들이 반응하지 못할 속도로만.
공기를 가르며, 검은 로브의 잔상만을 남긴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서 철검이 빛을 받아 번뜩일 때마다 길목을 막아선 이들의 목에서 피 분수가 솟구쳤다.
“어딜 감히!”
그러던 중 S급으로 보이는 이들이 속도에 반응해 검을 내밀었다.
서문세가의 검술로 보이는 형식이 공기를 가르며 펼쳐졌고, 유성우를 멈춰 세우려 들었다.
유성우는 자신을 막아선 검을 제 검으로 내려쳤다.
카앙, 하는 청명한 소리와 함께 끼어든 검을 내리 눌렀고, 그 반동으로 유성우는 뛰어오르며 핑그르르 회전했다.
“가주님에게 보낼 성싶으냐!”
“그럼 너부터 먼저 가라.”
S급 무인이 검을 위로 쳐올리며 유성우의 머리를 노려왔다.
그러나 유성우는 공중에서 고개를 슬쩍 돌리는 것으로 검을 피하고는, 제 철검을 무인의 검에 딱 붙인 채 그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뱀처럼 타고 올라간 검이 무인의 팔부터 어깨를 베니 피가 팍, 하고 튀어올라 무인의 시야를 가렸다.
갑자기 찾아온 통증에 무인은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걸 꾹 눌러 참으며, 눈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몸이 기억하는 대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무인의 검 끝에 걸리는 감각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허공을 휘두르는 허무함뿐.
“이제 가라.”
뒤쪽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경추에 서늘한 감각이 파고들었다.
철검이 뒤에서부터 목을 꿰뚫고 빠져나온다.
유성우는 허물어지는 시체를 뒤로하고 다시금 내달렸다.
목표는 서문세가의 가주.
서문제.
서문영일의 아버지이자, 가주 자리를 내줄 사람.
“아가씨의 뜻대로─!!”
크게 소리친 그가 재밌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둘러 댔다.
A급이나 B급밖에 되지 않는 무인들은 검 한두 번 휘두르는 것으로 썰어버리고.
길을 막아서는 S급들은 조금 시간을 들여 연기했다.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잠깐 심어주었다가, 산산이 박살 낸다.
그렇게 죽여 버린 S급이 세 명.
유성우를 지나치고 뒤쪽을 공격할 수도 있었지만, 이대로 유성우를 보내주면 안 될 것 같다는 본능이 그들을 붙잡았다.
“꽁무니 빠지게 도망치는 모습이 우습기 짝이 없구나! 네가 버린 여자와 죽어버린 동생의 칼을 받아라!”
종횡무진.
유성우는 미친놈처럼 외치며 무인들의 군집을 헤집으며 서문제를 쫓았다.
서문세가의 빌딩 안으로 들어가 부닥치는 병력은 모조리 썰어버리며, 최상층까지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렇게 도착한 고층 빌딩의 최상층. 서문세가의 식솔만이 거주하는 펜트하우스에는 서문제가 검을 빼 든 채 통창을 통해 바깥의 상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문영일이 끌고 온 전력은 약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부상을 입더라도 계속 싸우는 깡 좋은 놈들이었고.
유성우가 헤집었고, 유월이 버티고 있으니.
서문제를 반쯤 죽여놓고 끌고 가기까지 시간은 충분하리라.
“이제 딸한테 무릎을 꿇으러 갈 시간이다. 늙은이.”
유성우가 그리 말하며 검에 묻은 피를 고급스러운 카펫 위에 털어내자, 서문제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자네는 강해. 여기까지 홀로 올라온 것까지만 보아도 그렇지. 하지만 그렇기에… 오만하기 짝이 없군. 이런 함정에 걸려들고.”
그가 유성우를 보며 작게 웃었고, 무언가 이상함을 인지한 순간.
그의 발밑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