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206)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209화(206/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209화
천우공(5)
천우공의 고유세계인 ‘화산월화비망록’을 뒤덮은 것은, 바토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아낸 세계였다.
[고유세계] [홍화무한평야(紅花無限平野)]그곳은 아름다우면서도 소름이 돋게 만드는 곳이었다.
드넓은 풀밭에 흐드러지게 핀 수많은 붉은색의 꽃들.
피로 이루어진 것들이 아니다.
피를 먹고 자라난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평화로운 무한한 들판만이 대지를 뒤덮었고.
찬란한 밤하늘에는 붉은 달이 떠 세상을 비추었다.
천우공의 세계보다는 밝았으나, 색채는 붉은 고유세계.
바람이 불어온다.
산들바람이 붉은 꽃을 흔들며 몰아치니, 꽃 몇 개가 꺾여 하늘을 유영했다.
하늘로 날아간 꽃들은 그대로 별이 되어 무수히 많은 별자리를 이루었고, 별자리들은 반짝이며 세계를 비추었다.
바토리는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를 한동안 넋 놓고 바라보았다.
자신이 심상 속에 정의를 내린 세계라지만, 이리 구체화되어 눈앞에 나타난 게 믿기지 않았다.
“네가 나타낸 세계를 믿어라. 그것이 너의 심상이고 너의 정의다.”
“네…….”
유성우는 바토리의 고유세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확신을 심어주고는 앞으로 나섰다.
자신의 고유세계가 다른 세계로 뒤덮이자, 심상을 유지하지 못한 천우공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다른 이에게 빌린 힘으로 정의한 고유세계로, ‘진짜’를 이기지는 못하는 법이지.”
“……허억.”
“너를 움직이게 하던 건 고유세계의 힘이었다. 그것이 없어진 지금, 뭘 할 수 있을까?”
유성우는 발로 천우공을 걷어찼다. 그의 몸이 힘없이 허물어져 꽃밭을 굴렀다.
시야가 빙글빙글 돌아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자신이 띄워냈던 달보다 아름다운 홍월(紅月)이 휘영청 떠 있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달이었기에, 반대로 소름이 끼쳤다.
자신은 이곳에서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끄윽…….”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가 줄줄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나, 천우공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내가 죽을 자리는 여기가 아니다. 내가 죽을 자리는, 그녀의 곁이어야만…….”
“낭만은 있군. 하지만 병신 같은 낭만은 접어야지.”
이번에는 제대로.
유성우는 손에 들린 일생을 빙글빙글 돌리고는 그대로 천우공의 목을 베었다.
둔해진 감각 때문에 자신의 목이 베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천우공의 눈이 한 번 깜빡이고.
그대로 목이 바닥에 떨어져 붉은 꽃들의 양분이 되었다.
일생을 돌려보낸 유성우가 고개를 돌려 바토리에게 말했다.
“이제 고유세계를 해제해도 된다. 확실히 죽였으니까.”
“…이거 어떻게 해제해요?”
“강력한 충격을 받으면 해제될 텐데.”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얻어맞고 기절하기 싫었던 바토리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뿌렸던 마력을 거둬들였다.
천천히 관조하니 이 세계가 어떻게 짜인 것인지 알 수 있었기에, 거둬들이는 가닥도 금방 잡을 수 있었다.
고유세계를 해제한 바토리는 그대로 축 늘어졌다.
고유세계는 그저 펼치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마력을 소모했기에,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어려웠다.
“해제했으면 밖으로 나가라.”
그러나 유성우는 그녀에게 쉴 시간을 주지 않았다.
바토리는 힘든 몸을 이끌고 벤치를 소환해, 그대로 타고 날아갔다.
홀로 남은 유성우는 궁전의 대문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문을 열지 그래. 네 이름도 알았겠다… 미뤄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거다. 달기.”
물론, 그런다고 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유성우는 대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가각, 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그의 검격에 잘려 나가 내부를 훤히 드러냈다.
문을 열지 않으면, 강제로 여는 수밖에.
대문을 넘어 궁전 안으로 발을 들이니, 지금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강렬한 악의가 몰아쳤다.
여기서부터는, 정말로 놈의 아가리 안이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아무리 그라도 당할 가능성이 컸다.
“…저 안쪽인가?”
궁전의 가장 깊숙한 곳, 왕좌에 말이다.
당영영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달기의 심상은 심플했다.
중국에서나 일본에서나, 권력자의 곁에 붙어 항거할 수 없는 권력을 쥐고 권세를 누렸다.
과거부터 몇 번이고 그러한 일을 자행해온 달기가 놓지 못하는 것들로 이루어진 세계.
“쉽게는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는 건가.”
안쪽에서 여우 괴물들이 수백 마리가 튀어나왔다.
무한한 방을 돌아다니던 근육질의 여우들도 있었고, 머리가 두 개 달려 의기투합이 되지 않는 놈들도 있었다.
유성우는 놈들의 숫자를 대충 가늠하고는, 한숨을 푹 내쉬며 넝마가 된 상의를 벗어 던지고, 신발도 벗었다.
맨발로 단단한 돌바닥의 감촉을 느끼며 일생을 굳게 쥐었다.
“일일이 상대해 줄 필요는 없겠지…….”
목표는 저 여우 괴물들이 아니라, 달기라는 것을 다시 상기한 그가 그대로 땅을 박찼다.
디딤발의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돌바닥이 쩌적 갈라지며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춘다.
그리고, 허공에 그어지는 일직선의 붉은 섬광.
그가 지나친 자리에 있던 괴물들은 모조리 반으로 갈라졌다.
“후읍!”
유성우는 가속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궁전의 문을 뚫고 지나갔다.
정면에 있는 문들을 모조리 부숴버리며 파죽지세로 나아간다.
여우 괴물들이 아무리 빨라도 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으며, 앞을 막아선다고 하더라도 반으로 잘려 나갈 뿐이었다.
그렇게 도달한 곳은 궁전의 가장 깊은 곳.
옥좌가 있는 대전.
멈춰 서며 숨을 길게 내뱉은 유성우는 전신에서 김을 모락모락 피워올리며 일생을 휘둘렀다.
그러자 달기의 모습을 가리고 있던 발을 모조리 갈라버렸다.
“쯧, 머리를 노렸는데.”
목표는 그 뒤에 있던 달기였으나, 그녀는 고개를 살짝 까딱이는 것으로 유성우의 검기를 피했다.
그녀는 제 뒤에 새겨진 검흔을 확인하지도 않고, 옥좌에서 내려오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천우공은 죽었군. 쓸모없는 남자야.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좋은 남자를 찾을 걸 그랬어.”
“그래도 너를 위해 죽은 남자… 아니, 내가 올려 쳐 줄 건 아니군. 이 쓰레기 커플들아.”
유성우가 검 끝으로 달기를 겨누었다.
당영영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천맹성채를 인신공양의 발판으로 삼아 신이 되려던 요괴.
백면금모구미호, 달기.
수천 년을 살아온 대요괴를 마주한 그는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역시 어마어마하군.’
수많은 생명을 잡아먹은 만큼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나도 거대했다.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인데, 천맹성채를 모조리 갈아 넣는 데 성공했다면 대신격의 끄트머리에 도달했을지도 몰랐다.
“…후우.”
“내가 두려우냐? 숨결 속에 숨길 수 없는 공포가 느껴지는구나.”
“두렵다. 하지만 그래서, 더 잘 싸울 수 있겠군. 달기.”
이만한 적을 두고 두렵지 않은 이가 있을까.
유성우는 신을 베었으나, 신에는 도달하지 못한 필멸자였고.
달기는 태생부터 인간을 초월한 괴물이었다.
수많은 생명을 취해 신격에 다다른 괴물 중의 괴물.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유성우가 물었다.
“…승천교냐?”
생각 끝에 닿은 가능성.
과거에 달기를 토벌하기 위해 많은 단체가 나섰으리라.
그런데 아무리 달기가 일천한 실력자라고 하더라도, 그만한 실력자들 사이에서 살아서 도망갔다는 건 누군가의 조력이 있었다는 뜻.
게다가 오랜 세월 숨어 살았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약해진 네 힘으로는 추적을 차단할 수가 없었을 텐데… 마녀는 기본적으로 음습해서 스토킹을 잘하거든.”
바토리와 잔느, 칼리가 들었다면 역정을 낼 말이었지만.
유성우의 경험상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런 마녀들의 추적을 끊고 숨어 살았다고?
말도 안 된다.
“그리고, 네가 사용한 인신공양 방식은 어디서 본 적이 있단 말이지.”
한국에서, 안드로를 상대할 당시.
그는 승천교의 지부에 있던 사람들의 생명을 빨아들여 악마로 변신했다.
그 정체는 솔로몬의 72악마에 등장하는 안드로말리우스.
본인은 아니었으나, 인신공양을 통해 본인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힘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방식이 너무나도 유사했기에, 승천교라는 이름에 도달했다.
이런 미친 요괴한테 힘을 빌려줄 놈들은 그런 미친 사이비 종교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하다, 놈들과 마주한 지는 오래됐지만, 나는 승천교의 주교, 달기라고 한다. 필멸자의 머리로 용케 진실에 도달했구나.”
“조금만 생각해 봐도 나오는 답이다. 개대가리.”
그리 대답하며 유성우가 검기를 내쏘았다.
붉은 검기가 달기를 향해 나아갔으나, 그녀는 손을 뻗어 검기를 소멸시켰다.
그 순간 유성우는 단번에 그녀에게 따라붙어 연속으로 검을 휘둘러댔다.
순식간에 수십 번 몰아치는 참격이 달기의 목을 노렸다.
그러나 그의 검격은 달기가 펼쳐낸 방어막에 막혀 튕겨 나갔다.
“불완전하지만 나는 신격에 도달했다. 필멸자가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달기가 펼친 손바닥을 밀어내자, 몸에 이상한 인력이 작용하더니 그대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벽에서 튀어나온 유성우를 달기는 다시금 벽에다 처박고는 웃었다.
“부족하지만, 완전하지 않지만, 지금의 내 힘은 과거를 능가한다.”
그럼에도.
유성우가 질리지도 않고 벽에서 튀어나와 달려들려 하니 그녀는 아예 그를 멈춰 세우고는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도 꽤 괜찮은 남자로구나. 나의 것이 되어라. 그리하면 너 또한 천하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달기의 권능이 펼쳐졌다.
과거 중국의 주왕(紂王)과 반족태자(斑足太子), 도바 덴노 무네히토(宗仁)를 매료했던 요괴로서 가진 최대의 권능.
신격과 고유세계의 상승효과를 얻은 힘은 올림포스의 아프로디테와도 비견되는 매력을 뽐내리라.
유성우의 움직임이 멈춰 서고, 손에서 검을 놓았다.
동공이 흐리멍텅하게 변해 매료에 당한 모습을 내보였다.
그 모습을 본 달기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리로 오라. 내가 너를 품어주마. 첫 번째 국서로 삼아 천하를 다스리게 하리라.”
터덜터덜.
그가 힘없는 발걸음으로 달기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달기가 마침내 그를 자신의 품에 안았을 때.
“꺄아악-!!”
“쯧.”
유성우의 손이 빛살처럼 움직여 달기를 베어냈다.
하지만 깊게 베지 못했다.
고작해야 달기의 옆구리에 길게 생채기를 냈을 뿐이었다.
한 손에 비교적 짧은 검인 이계를 든 그가 뒤로 물러나, 이계와 일생을 모두 돌려보내고는 흑사를 꺼내 들었다.
튀어나온 흑사가 웅웅 대며 우렁차게 울어댔다.
그때 먹었던 힘들은 모조리 소화를 시켰는지 곧바로 유성우를 침식하려 들었다.
하지만 유성우도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좀 처먹은 마검 상대로 침식당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그는 신력을 불어넣으며 바닥에 흑사를 꽂았다.
“처먹은 만큼 일해라. 흑사.”
그의 중얼거림과 함께 펼쳐지는 것은, 권능에 준하는 마검의 영역.
허가받지 않은 자들은 운신조차 불가능한.
극한저주지대(極限詛呪地帶)
어쩌면 그의 권능이라고도 볼 수 있는, 어비스처럼 심연과도 같은 색깔의 영역이 펼쳐졌다.
그 위에 선 유성우는 그 위에 삼정을 소환해 꽂았다.
그러자 삼정에서 피어오른 불길이 극한저주지대에 스며들더니, 이내 검은 불길을 피워올렸다.
이름하여.
절부정화(切不淨火)
다크니스 모드(Darkness mode)
“…그냥 절부정화 암(暗)이라고 부르는 게 낫겠군.”
다크니스 모드는 역시 좀 그런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