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209)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212화(209/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212화
백면금모구미호(3)
코를 찌르던 술 냄새가 씻겨 내려가고, 빈자리를 청량한 바다 내음이 채운다.
동시에 난폭하기도 하다.
바다의 군주이자 폭군이었던 해룡이었기에, 사정없이 감각을 뒤흔들었다.
“큭!”
유성우는 정신을 다잡으며 체내 감각을 새로이 조정했다.
그만큼, 용광이 품은 바다의 전망은 인간의 몸으로는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것이었다.
용광을 꽂아 넣은 곳에서부터 전방위로 푸른 해일이 몰아쳤다.
하얀 포말이 올라오며 역겨운 살덩어리들과 독주가 쓸려갔다.
용의 바다.
용이 품은 거친 폭풍의 바다.
유성우가 처음으로 펼쳐낸, 완전한 심상의 고유세계.
‘느껴진다.’
용광이 무엇을 품고 있는지.
깊은 폭풍의 바다가 자신에게 무엇을 보여주려는지.
“뜻대로 하게 둘 것 같으냐!”
고유세계를 전개하려는 유성우를 향해 달기가 포효하더니, 신격을 이용해 찍어누르려 들었다.
열두 개의 꼬리가 여러 술법을 펼치며 유성우를 억압한다.
그러나, 이미 해일(海溢)은 완성되었다.
불어닥치는 폭풍의 파도는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쓸어버린다.
[고유세계] [해왕고룡광상곡(海王古龍狂想曲)]바다가 폭풍의 노래를 부른다.
유성우가 서 있는 곳을 제외한 모든 곳에 어느새 바닷물이 들어찼으며, 육림이 파도에 꺾이며 가려져 있던 하늘을 드러냈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
드문드문 엿보이는 천둥번개.
폭풍이 자아내는 풍랑이 빠른 템포의 종말을 연주했다.
바다를 지배하는 해룡은 바다 그 자체.
뒤척이는 것만으로 바다를 가르고, 그 바닥을 드러나게 한다.
“…좋은 울림이다.”
유성우는 바다가 연주하는 광상곡이 마음에 들었다.
정해진 형식 없는, 풍랑과 폭풍이 듣기 좋은 분노를 표현하니 머릿속에 들어찼던 자신의 분노마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
이래서 사람들이 바다를 보러오는 걸까…….
하지만, 아직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유성우─!!”
달기의 포효와 함께 몰아치던 파도가 갈라지고, 축축하게 젖은 그녀가 나타났다.
자신의 고유세계가 강제로 싹 쓸려나갔음에도, 여전히 건재한 모습은 수천 살을 허투루 살아온 게 아닌 듯했다.
‘그래봤자, 수천 살.’
유성우가 사냥한 해룡이 살아온 추정 세월은 최소 일만.
품은 심상의 깊이가 다르다.
그만큼 이 고유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소모한 오러와 신력은 어마어마했지만, 그 결과는 마음에 쏙 들었다.
유성우의 등 뒤로 작은 파도가 몰아치더니, 망토처럼 형태가 고정되었다.
누구에게는 세찬 파도지만, 누구에게는 권위 있는 망토가 되었다.
파도로 이루어진 망토를 두른 그가 용광을 들어 올리자 먹구름 사이에서 내려온 용오름이 바닷물을 빨아올려 모든 것을 찢어발기는 기둥이 되었다.
그런 것들이 수십 개.
용광의 형태를 닮은 물기둥이 모두 달기를 노리고 쇄도한다.
닿기만 해도 몸이 찢겨나갈 것만 같은 강렬한 회전을 머금은 물기둥.
“크아아아아아─!!”
하지만 달기는 그 정도에 당하지 않겠다는 듯, 소리를 내지르며 자신의 신력을 터트렸다.
빳빳하게 펴진 꼬리들이 물기둥을 꿰뚫어 부수고, 물보라를 빗방울로 만들었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이 전신에서 신력을 뿜어내며 술법을 전개한다.
그녀의 열두 꼬리가 그리는 수많은 술식이 유성우가 그려낸 고유세계를 파괴하려 들었다.
축 젖어 늘어진 머리칼을 쓸어올린 유성우가 용광으로 원을 그리자, 공중에 뜬 달기의 발아래 커다란 소용돌이를 만들어 빨아들였다.
‘신기한 감각이다.’
고유세계를 전개한 순간, 이 세계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이 힘을 다룰 수 있는지 깨달았다.
진정한 고유세계란 이런 것이었나. 마치, 전능감을 손에 쥔 것 같은 감각.
엄청난 흡인력에 의해 해수면 아래로 달기가 빨려 들어갔다.
물에 빠졌던 그녀는 그려내던 술식을 모조리 추진체로 사용해 길게 물로 된 꼬리를 만들며 해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물에 빠진 개새끼 꼴이 다 됐군.”
어쩐지 웃음이 나오는 모양새다.
유성우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자신에게 돌진해 온 달기를 향해 용광을 휘둘렀다.
달기의 손과 용광이 부딪히며 불꽃을 튀겼다.
어두운 폭풍 속에서 번개를 제외하면 유일한 광원.
달기가 연신 휘둘러대는 손을 막아내며 유성우가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네 최후가 어떨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나? 개대가리.”
“닥쳐라! 이런 곳에서 내가, 죽을 것 같으냐!”
“자신의 최후를 예상하지 못하는 이들만이 그리 말하지.”
달기는 인간의 형태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영영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있던 그녀의 얼굴은 여우의 것으로 돌아왔고, 가슴팍에서는 부숭부숭한 털이 돋아나 있었다.
“그리고, 내게 그런 말을 했던 놈들은 모조리 죽었다.”
강력한 찌르기로 달기를 저 멀리 밀어내는 그가 용광을 빙글빙글 돌리며 신력을 그러모았다.
세찬 소용돌이가 용광을 중심으로 몰아친다.
그리고, 그의 발아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바닷물로 이루어진 거대한 해룡의 머리.
“…오월, 용광.”
이계의 바다에서 가장 폭풍우가 거세던 날은 봄의 끝자락, 여름에 접어들기 시작하는 오월이었다.
항구 도시는 문을 걸어 잠그고, 해룡에게 바다를 잠재워주십사 제물을 바치며 한 달 내내 기도한다.
해룡의 분노가 자신들에게 미치지 않기를 바라며.
유성우가 용광의 고유세계의 심상 속에서 구현해 내는 것은 오월의 바다.
그것도 가장 격정적이었던, 유성우와의 일전.
서로의 생과 사를 두고 치열하게 싸웠던 폭풍우밖에 존재하지 않던 바다다.
먹구름에서 비가 쏟아져 내린다.
구름 속에서만 번쩍이던 번개가 바다 위에 떨어져 내리며 바닷속을 밝혔다.
점멸하는 빛들.
유성우는 떨어지는 번개 사이에, 해룡의 머리를 타고 선 채 용광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빗방울이 굵어져 더욱 거세게 떨어져 내리고, 번개가 사정없이 내리친다.
이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빗줄기와 파도였으나, 그의 붉은 눈동자는 저 멀리 날아간 달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간다.”
오월, 용광.
유성우의 영혼에 새겨진 다섯 번째 검의 끝으로 모든 마력과 신력이 한 점으로 수렴한다.
그렇게 완성된 것은 방대한 힘을 압축한 자그마한 점.
손가락 한마디만 할까.
푸른빛을 내며 용광의 끝에서 흔들림 없이 자리 잡은 광원.
유성우는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감각과 충격을 미래의 자신에게 유예하며, 천천히 용광을 뻗었다.
오검ㆍ극(五劍ㆍ極)
용아단절해격(龍牙斷絶海擊)
거센 폭풍우로 가득한 오월의 바다를 가르는 일격.
유성우의 고유세계에서 펼쳐진 극한의 찌르기는, 일순간 세계마저 멈춰 세웠다.
그의 찌르기에서 뻗어진, 한 점으로 수렴했던 오러와 신격이 뻗어나가며 바다를 가르고.
공기와 빗줄기를 밀어낸다.
허공에 일직선으로 그어진, 세계를 가르는 일격이 달기를 관통하고, 그녀의 근간마저 꿰뚫는다.
피할 새도 없이 벌어진 초속의 일격은 이내 완전히 그녀를 집어삼켜 버리고는, 온 시야를 뒤덮었다.
그리고 이내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유성우가 펼쳐냈던 고유세계는 사라졌고, 달기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느낄 수 있었던 건 달기의 소멸과 그녀가 가지고 있던 신력이 자신에게 흘러들어오는 것.
신력으로 몸을 조금 회복한 그는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어비스의 주체가 죽었으니 이제 곧 무너질 터.
이곳에 영영 갇히기 전에 빠져나가야 했다.
박살이 난 궁전을 빠져나와, 싸늘하게 식어 굴러다니는 천우공의 시신을 지나쳤다.
그리고 자신이 죄다 불태운 방을 지나오며 숨을 토하며 중얼거렸다.
“…지치는군.”
-지쳐?
그러자 들려온 어린 목소리.
유성우는 일생을 불러들여 손에 쥐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습이 보이지는 않는다.
기척도 느껴지지 않으니, 멀리서 텔레파시 같은 걸로 말을 걸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는 일생을 돌려보내고는 목소리를 무시했다.
텔레파시 같은 거라면, 정신 방벽을 더욱 두껍게 세우는 걸로 차단될 테니까.
텔레파시를 차단하니, 이번에는 그의 앞에 종이 한 장이 팔랑팔랑 떨어졌다.
어디서 온 건지 모를
무시했다.
그러자 두 장이 떨어졌다.
무시했다.
세 장이 떨어져서…….
무시했다.
유성우의 의지가 확고하자 어디선가 종이 여러 장이 떨어지더니 그의 앞에 글자를 만들었다.
영어라서 무시했다.
그러자 한글로 다시 만들어졌다.
한 번만 봐 줘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잠깐 글자를 쳐다보던 유성우가, 다시금 하늘에서 내려온 종이 한 장을 잡아채고는 내용을 확인했다.
“호오…….”
***
“일단락된 건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나온 놈들은 모두 잡았고, 어비스도 수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중 어비스에서 등장한 여우 괴물들을 어떻게든 처리한 사람들은, 휴식과 함께 부상자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쉽지는 않은 싸움이었다.
여우 괴물들은 하나같이 2급 어비스에 준하는 강함을 가지고 있었기에 쓰러뜨리기 어려웠다.
게다가 달기의 어비스로 인해 이미 많은 이가 죽거나 다쳐서, 더욱 힘들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이겨낸 이들은 살아남았음에 감사하며, 다른 싸움을 준비했다.
방금은 공통된 적이 있었으니 함께 싸웠지만, 놈들이 사라진 지금.
“이 개새끼가! 마교도 놈 주제에 어딜 감히……!”
“…지금 교주님에 대해 한 말을 취소하면, 더 하지 않겠다.”
“마교도 놈을 마교도라 부른 게 그리도 꼽나?”
오래 곪은 감정이 하루 만에 해결될 리가 없는 건 당연했다.
정파 무인 한 명과 마교 무인 한 명의 말다툼에 주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고 휘두를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런 두 집단의 사이를 바닥에서 갑자기 솟구친 두꺼운 나무뿌리가 막아버렸다.
근처에서 게임기를 깨작거리고 있던 슈아넬이 귀찮다며 마법으로 갈라버린 것이었다.
“이래저래 고생이군요. 모두가.”
“그래도 일이 끝나고 나면 가장 고생할 건 역시 저 아이겠죠?”
유월이 그리 말하며 서문영일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파천문의 문도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다친 이들을 치료하고, 사파와 마교의 지휘관급 이들과 향후 방침을 논하고 있었다.
묵천회의 회주, 영명은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휴식이 필요했다.
어비스 내부에서부터 계속 싸움을 이어온 탓이었다.
바토리에 의해 실려 나온 마교주 흑사향은 절대 안정이 필요한 상태였다.
천우공과의 전투로 몸이 많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
유월과 슈아넬의 귀가 거의 동시에 쫑긋거리더니, 아직까지 건재하던 어비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구멍에서,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머리칼, 날카로운 인상.
아티팩트로 모습을 바꾼 유성우의 모습이었다.
이곳에서는 ‘현월’이라 불리는.
오다가 주웠는지 입고 들어갔던 검은 로브가 아니라 누더기를 두르고 있었다.
어수선해서 그런지 그가 나온 지 본 사람은 없었고, 그는 곧장 기척을 죽인 채 유월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를 발견한 이들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으나, 그는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고는 말했다.
“볼일은 끝났다. 이제 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