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23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229화(230/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229화
승천자 사냥(4)
언제쯤이었을까?
그 아이를 만나게 된 것은.
밤중에 산을 넘다 마주친 도적놈들을 모조리 썰어버렸을 때였다.
도적놈들은 이미 한탕 한 모양인지 근처에 마차들을 숨겨놓았다.
마침 여비가 부족했던 유성우는 프로 산적털기범답게 마차를 찾아 필요한 것들을 얻었고.
마지막 짐마차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마차의 천막을 걷어내자 안쪽에서 한 명이라도 데려갈 생각이었는지, 마차의 짐칸에서 작은 단검을 쥐고 튀어나온 소녀의 눈동자는 독기로 가득했다.
맨손으로 단검을 붙잡고 소녀를 제압한 유성우는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이름은?”
“이거 놔!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라고!”
“습격당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군. 상단을 따라 이동하던… 상단주의 딸이라도 되나?”
입고 있는 옷은 더러워졌지만, 꽤 고급이다.
짐마차의 숫자로 보니 꽤 규모 있는 상단인 듯했는데, 숫자가 꽤 되는 도적들에게 당한 모양.
도저히 진정될 기색이 없어 보이자, 유성우는 소녀를 일단 기절시켰다.
그리고 얼마 뒤 소녀가 깨어났을 때, 보게 된 건 모닥불 앞에 앉아서 수프를 끓이는 유성우였다.
소녀는 눈을 뜨자마자 무기로 쓸 만한 걸 찾았으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일어났나? 이리 와라.”
유성우가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자, 소녀는 기절하기 전의 일을 떠올렸다.
맨손으로 단검을 잡았음에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그만큼 실력자라는 뜻이었으니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리라.
거기까지 판단한 소녀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유성우의 곁으로 다가갔다.
“살아남은 건 너 혼자뿐이더군.”
소녀가 기절한 동안 유성우는 몇 가지의 조사를 거쳤고, 생각만 하던 것들은 확신이 되었다.
상단은 산을 넘는 도중 도적들에게 습격받아 전멸했다.
호위들도 있었지만, 그리 실력은 좋지 않았는지 호위들도 전멸하고 말았다.
아니면 도적들의 실력이 좋았던 건지…….
“먹어라.”
유성우는 수프를 담은 그릇을 소녀에게 내밀었다.
그릇을 조심히 받아 든 소녀는 스푼으로 조심스럽게 한술 뜨더니, 이내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그리고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엉엉 울어댔다.
유성우는 울기 시작한 소녀를 위로할 만한 말재주가 없었기에, 조용히 그릇에 수프를 더 채워줄 뿐이었다.
한참을 울면서 수프를 먹은 소녀가 그제야 진정한 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소녀의 이름은 베로니카.
꽤 큰 상단의 딸이었으며, 상단의 모든 걸 건 상행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아버지와 함께 산을 넘는 도중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도적이 습격했고,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죽여버렸다.
“나, 나를 노예상한테 팔아버린다고 했어. 개자식들…….”
“그런가.”
그리고 막 수습하고 떠나려는데, 유성우가 마침 지나간 것이었다.
고작 한 명이겠다, 빠르게 죽여버리고 가려고 했는데 그는 도적들이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거냐?”
유성우가 물었다.
하나밖에 없던 혈육인 아버지는 죽었고, 가족 같던 상단원들도 모두 죽었다.
복수를 하려고 해도 이미 유성우가 모조리 죽여버렸다.
의지할 구석도 없고, 살아가야 할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한순간에 모든 걸 잃어버린 어린아이.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까.
베로니카가 말했다.
“나를 죽여줘.”
“그럴 수는 없다.”
“나, 나는… 이제 아무것도 없어. 어째서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나를 죽여줘! 제발!”
“……아니, 아직 살아갈 이유는 아주 많지.”
유성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무 사이로 엿보이는, 하늘에 뜬 별들이 반짝였다.
점차 멸망으로 치달는 세계라는 것이 무색하게, 너무나도 아름다운 별들이었다.
“…이 산적놈들에게는 뒷배가 있다. 상당한 규모의 상단이던데. 그런 상단에서 고용한 호위들을 손쉽게 처리한 걸 보면 꽤 싸우는 도적들이라는 것이다. 그놈들은 대개 큰 곳을 뒷배로 두고 있지.”
“흑막이 따로 있다는 거야?”
“그래. 산은 베렌령이기도 하지만, 세레딘령을 접하고 있기도 하지.”
“세레딘…….”
다른 영지의 영주가 견제하기 위해 보낸 도적들일 수도 있다는 말에 베로니카는 이를 뿌득 갈았다.
아무것도 없던 소녀의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추가되었다.
이 일에 관련된 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것.
그래서 소녀는 자신을 죽여달라는 것 대신, 다른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럼 당신이 나를 강하게 만들어줘! 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릴 수 있도록!”
“…내가 왜?”
“당신, 강하잖아? 돈이라면 저기, 우리 짐마차에 있는 것들 모조리 가져도 돼!”
일이 귀찮아질 게 뻔했지만, 유성우는 결국 베로니카의 부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곳에 어린애를 혼자 두면 금방 죽어버리고 말 테니까.
적어도 밥값 정도는 할 수 있을 때까지만 키우고, 보낼 생각이었다.
그 정도면 제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을 테고…….
이 이후에는,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흔한 이야기였다.
베로니카는 유성우를 따라다니며 검을 배웠고, 강해졌다.
재능은 충만한 편이라 어딜 가도 지지 않을 실력을 갖췄을 때, 비로소 독립했다.
자신의 오랜 복수를 이루기 위해.
***
“…그때는 정말로 어렸지.”
‘지금이 더 어린 것 같은데…….’
오크 잔당을 군대가 일방적으로 섬멸하는 동안, 유성우는 아군 진지로 돌아와 오랜만에 재회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보랏빛의 단발머리.
날카로운 인상의 소녀는 이계에 있을 때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그래서 유성우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고.
“하지만 대장… 나는 이제 진짜 어른이 됐어.”
‘아니, 아직 어린애인데…….’
이계에 있을 때도 작기는 했지만, 지구의 베로니카는 그것보다 더 작았다.
겉보기에는 대충 중학생 정도의 키와 체구였다.
근육은 잘 단련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내가 이 세계에서 전생을 떠올린 지 5년… 대장, 나는 다시 대장을 만나러 왔어!”
“…여전하군.”
베로니카는 그리 말하며 옆에 놓아둔 베유의 머리를 주워 들고는 유성우에게 내밀었다.
“이건 선물! 오크 뇌 요리 좋아했잖아? 대장!”
“…내가 그딴 걸 좋아했다고?”
“아니야? 원정 갈 때 내가 요리할 때 꼭 섞었는데…….”
베로니카의 말에 유성우는 과거를 떠올렸다.
원정대에서 그녀가 요리했을 때, 무슨 재료로 만들었냐고 물어보면 주변인들이 모두 말을 돌렸다.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유성우는 베유의 머리를 빼앗아 그대로 불태워 재로 만들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아! 오크로드의 뇌가!”
“오, 오빠 그런 요리 좋아했구나…….”
“저는 이해해요. 식성은 특이할 수도 있는 법이죠…….”
수습을 끝마치고 돌아온 유지우와 잔느가 한마디씩 했다.
유성우는 혀를 차며 베로니카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도저히 감동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재회군. 베로니카.”
“에헤헤. 대장, 대장, 많이 보고 싶었어! 와, 진짜 죽은 줄 알았는데, 아니 진짜 죽기는 했는데.”
유성우가 손에 힘을 주자 베로니카가 비명을 질렀다.
두개골이 박살 나는 것만 같은 고통…….
“으갸갸갸갸갸갸─!!”
“그러니까 정리해 보자면, 너는 5년 전에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는 거냐? 그럼 지금까지 뭘 하면서 어디에 처박혀 있던 거지?”
“아, 아파아! 아파!!”
계속된 비명에 유성우가 손을 놓자, 베로니카가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수, 수련을 좀……. 그리고 나 스웨덴에서 왔단 말이야.”
“수련? 스웨덴?”
“스웨덴은 대재해로 피해가 가장 심한 곳 중 하나였지. 아마 아직도 복구 중일걸? 그래서 외부 활동도 거의 없어.”
“그래그래! 그거야! 그리고 내가 너무 약해서… 대장을 보러 가기 부끄러웠단 말이야!”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대장이 맨날 그랬잖아. 약한 놈은 가치가 없다고. 나, 나는 대장한테 버려지기 싫어서…….”
“오, 오빠 그런 말을 이런 어린애한테 했던 거야?”
“겠냐.”
자신이 그런 말을 했던가?
유성우는 이계에서 있던 일을 곰곰이 떠올렸다.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니, 베로니카니까 내가 한 말을 곡해했을 가능성이 크다. 상단주의 딸이면서 빡대가리니까…….’
그는 생각 끝에 떠올렸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설마, 강해지지 않으면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을 그렇게 들은 거냐?”
“같은 말 아니야?”
“…안심했다. 너는 여전히 빡대가리구나. 베로니카.”
유성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이계의 인연이 지구까지 이어졌다는, 자그마한 안도감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미소였다.
그 모습을 본 베로니카가 활짝 마주 웃으며 말했다.
“대장, 대장, 내가 1번이지?”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얘들 중에 내가 대장을 가장 먼저 찾아왔다고! 그렇지?”
“아니. 너보다 먼저 온 애가 하나 있기는 했지…….”
“누, 누가?! 어떤 년이……!”
“메이너드라고 기억하나?”
“폭하검의 메이너드?! 그 마족타락한 미친년은 또 어떻게 대장을……! 괘, 괜찮았어?!”
“별 거 아니었다.”
“오빠, 이제 그만. 둘이 아는 얘기는 그쯤하고 소개해 줄 때도 된 것 같은데.”
이야기가 왠지 길어질 것으로 보이자, 유지우가 사이로 끼어들어 말을 끊었다.
유성우가 아직 베로니카가 누군지 제대로 말을 해주지 않았다.
이만한 능력이 있음에도 지금까지 줄곧 스웨덴에 처박혀 있었다고 하니, 누군지 파악해둘 필요도 있었다.
“그래. 얘는…….”
유성우는 잠깐 고민했다.
그녀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이계에서 그녀의 이명은 아주 많았다.
오크 로드 살해자.
마족 머리 분쇄자.
파지자검(破地紫劍).
자색광견(紫色狂犬).
보랏빛 선봉장…… 등등.
그리고 개중, 가장 유명했던 건 역시…….
자광검성(紫光劍星)이라는, 보랏빛의 오러를 사용하는 것으로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했을 때 불리게 된 이명이리라.
그것들을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아진 유성우가 한 마디로 줄였다.
“이계에서 알던 빡대가리다. 내 원정대에 있었지.”
“빡대가리입니… 그게 아니잖아! 대장!”
베로니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의자 위로 올라가더니 팔짱을 끼며 웃는 얼굴로 스스로를 소개했다.
“말해 뭣 하랴, 자색(紫色)의 칭호를 받은 소드마스터, 그게 바로 나! 베로니카다!”
“자색의 칭호?”
“음,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들어서면 오러의 색깔로 칭호를 내려주는 제국의 제도가 있어서 말이다. 제국 소속은 아니었지만…….”
“그래! 내가 바로 자광검성(紫光劍星) 베로니카!”
“그렇게 말해도 여기 애들은 못 알아듣는다. 그리고 앉아.”
유성우의 말에 베로니카가 의자에 다시 풀썩 앉았다.
“어릴 때 내가 주워다가 좀 가르쳤다. 이게 지구까지 쫓아오네.”
“헤헤.”
“웃을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유성우는 손을 뻗어 베로니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옛날에 칭찬할 때 했던 것처럼, 조금 거칠지만 애정을 담아.
잊어버린 감각을 다시 되새기듯이 머리를 쓰다듬자, 베로니카가 밝게 웃었다.
더는 만질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거친 머리칼의 감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