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24)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24화(24/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24화
밤에 태어난 용(2)
녹스의 아파 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서연정이 제정신을 되찾은 듯 인상을 구겼다.
그 모습에 유지우가 유성우와 서연정을 번갈아 바라보며 당황스러워했다.
“뭐야?”
“드래곤의 패시브다. 이놈들은 기본적으로 카리스마랑 매력 스탯을 최대치로 찍은 놈들이라 면역 없는 일반인들은 가볍게 홀려버리지. 이걸 까먹고 있었군.”
“예, 엣? 제가 저 사람을 홀린 거예요? 제가요?”
“드래곤을 마주한 인간에게는 평범한 반응이니까 그것까지 제어하려고는 안 해도 되고. 나가게 되면 마스크랑 모자는 필수겠군.”
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서연정이 뚜벅뚜벅 걸어가 아동복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는, 녹스에게 꾸벅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메테오 인더스트리의 비서실장 서연정이라고 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노, 녹스예요. 드래곤이고요…….”
“녹스 님. 드래곤이시라고요.”
“언니, 너무 놀라지 마. 오빠가 불야성에서 데려온 애야. 흑성 지하에 잡혀 있었대.”
“흑성 지하에 잡혀 있었다고요?”
“오빠 말로는 이 애의 심장이 불야성의 코어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공략할 수 없는 어비스였던 거군요.”
서연정은 적응이 무척이나 빠른 여자였다.
순식간에 세 명의 인과관계를 파악한 그녀는 녹스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동용 속옷을 안 사 왔군요. 다시 다녀오겠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 문 연 가게가 있긴 했어?”
“24시간 영업하는 무인 옷가게가 있더라고요.”
“별 게 다 있네…….”
유성우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무인 아이스크림점, 무인 편의점, 무인 옷가게, 무인 호텔…….
언젠가는 무인 다이버도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 *
“제사장님, 오늘의 공물입니다.”
“그곳에 두고 가세요.”
지구에 발을 들인 이종족은 꽤 많았다.
국가와 협력해 귀빈 자리를 얻어낸 이들도 있고, 몰래 숨어든 이들도 있었다.
개중 영국과 협약을 맺고 북아일랜드의 숲의 자치권을 인정받은 종족이 있었다.
북아일랜드의 최북단에 있는, 바다가 보이는 호텔 최상층.
불이 꺼진 방 안에서 짙은 어둠을 품은 바다를 바라보는 이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가지런히 내려온 은백색의 머리칼. 그리고 아래로 내려앉은 토끼의 북슬북슬한 귀.
그들은 지구에 정착한 수많은 이종족 중에서도, 극소수에 속하는 ‘토월족(兔月族)’이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는, 그들은 ‘달토끼’라고도 불리는 희소한 종족이었다.
‘월문(月聞)’이라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토월족은 하늘에 뜬 달의 이야기를 듣는다.
달은 토월족의 신.
이른바, 신의 목소리를 듣는 일종의 ‘신탁예지’ 능력이었다.
그러나 개체마다 신탁예지 능력의 차이가 있기에, 가장 뛰어난 청력을 가진 토월족이 ‘제사장’이 된다.
현 제사장인 ‘유월’은 그 어떤 토월족보다 뛰어난 ‘월문’을 지녔다고 평가받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공물, 어비스의 코어를 슥 쳐다본 그녀가 손을 뻗어 쥐었다.
그러자 코어는 손 위에 스르륵 녹아들고, 아래를 바라보고 있던 유월의 귀가 쫑긋 솟았다.
달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토월족은 이 능력을 이용해 아일랜드에 나타날 재앙, 어비스에 대해 예지했고.
이를 토대로 북아일랜드의 자치권을 얻어냈던 것이었다.
눈을 감고, 귀를 쫑긋거리며 달의 목소리를 듣던 유월이 눈을 번쩍 떴다.
“드디어, 드디어 구원자가 강림하신 거군요. 너무나도 오래 기다렸습니다…….”
그녀는 양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금 중얼거렸다.
“뜻대로 하겠습니다. 머나먼 동방의 땅으로 바다를 건너야 할 시간이군요.”
* * *
“저건 뭐예요?”
“아이스크림.”
“저건 뭐예요?”
“와플 가게.”
“저건 뭐예요?”
“타코야키 가게.”
“저건 뭐예요?”
“……저건 뭐야? 취두부 튀김?”
별 이상한 가게가 다 있다.
유성우는 세현으로 귀환했다.
귀찮은 모래주머니를 달고.
물론 그 모래주머니가 남들과는 다른 무시무시한 귀여움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모래주머니는 모래주머니였다.
유지우는 사정상 녹스를 데리고 다닐 수 없는 데다가, 여차하면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유성우밖에 없었기에 자연스레 그가 녹스의 돌봄 담당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지구에 정착하기로 한 이상 사회교육이 필요하기에, 녹스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참이었다.
드래곤의 매력에 홀리지 않도록 얼굴이 안 보일 정도의 넓은 챙의 모자를 씌웠다.
오랜만에 잠에서 깼겠다, 배도 부르겠다.
호기심이 왕성한 어린이인 녹스는 눈에 보이는 것마다 족족 뭐냐고 물어왔다.
자신이 살던 곳에는 전혀 없던 것들이니 신기할 만도 했다.
유성우는 건성건성 답해주며 적당히 돌아다녔다.
손에 몇 가지 간식도 쥐여주니 조용히 우물거리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녹스가 물었다.
“그런데요, 저는 뭐라고 부르면 돼요?”
“뭐를?”
“지우 언니는 언니라고 부르는데…… 오빠?”
“절대 그렇게 부르지 마라. 부를 거면 그냥 이름이나 아저씨라고 불러.”
녹스의 말에 유성우는 호칭을 정해주었다.
녹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그를 아저씨라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이 세계는 인간이 정말 많네요. 어딜 봐도 전부 인간밖에 없어요. 그것도 엄청 많이.”
“지구에는 원래 인간밖에 없다. 최근에 다른 종족이 섞여들기는 했다는데 본 적도 없고.”
“정말로요? 얼마나 있는데요?”
“몰라. 내가 기억하는 건 70억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다니까.”
과거 대재앙으로 인해 많은 인구가 줄었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수십억대는 유지하고 있으리라.
수십억이라는 말에 녹스는 정말 벌레처럼 인간들이 징글징글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기억하는 인간이란 존재는 가축 비슷한 취급이었다.
애초에 별로 관심조차도 없었고.
그런데 지구에 와서 처음 만난 인간이 유성우라는 게 그녀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절대로 약한 인간이 아니다.
반신격인 엘더 리치를 토벌했다는 것도 그렇고, 느껴지는 기백만 해도 보통이 아니었다.
게다가 드래곤의 눈동자는 특별하다.
괜히 마법의 종주격이 아니다.
마력의 흐름과 영혼의 형태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지녔기에 유성우의 강함 또한 알아보았다.
보통 영혼의 형태는 외관과 비슷한 형태고, 기운에 따라 그보다 크거나 작거나 하다.
그런데 녹스의 눈동자에 보이는 유성우의 영혼은.
‘검…….’
정확하게는 온갖 검을 한데 녹여 만들어낸 덩어리 같았다.
여기저기 검의 손잡이가 튀어나와 있고, 그 색이 진홍색으로 무척이나 진했다.
영혼의 형태가 거대하지 않을 걸 보아 고도로 압축된, 농밀한 영혼이라는 뜻이었다.
녹스가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영혼의 형태만으로도 유성우가 얼마나 많은 고난과 시련을 뛰어넘어 온 역전의 용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 같은 어린 드래곤은 상대도 안 될 정도로.
그렇기에 그녀가 택한 것은 생물로서의 본능.
굴종하고 따르는 것.
그렇게 녹스가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할짝할짝 핥아먹으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성우 씨! 이런 데서 다 뵙네요.”
모자에 선글라스, 마스크까지 풀장착한 사람이 다가와 유성우를 불렀다.
유성우는 제 앞에 선 이를 보며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가, 이내 목소리가 기억났는지 말했다.
“백우동.”
“백우현입니다. 일부러 틀리시는 거죠? 그렇게 믿겠습니다.”
백우현은 선글라스를 벗고, 마스크를 살짝 내리며 웃었다.
그는 호감형의 꽤 잘생긴 얼굴이라 이 얼굴에 넘어간 사람이 한둘이 아닐 터였다.
S급 다이버라는 유명세도 겹쳐 웬만한 연예인급의 팬덤을 보유하고 있기도 했고.
물론 그런 이야기를 유지우에게 들었으나 유성우에게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다.
백우현의 시선은 유성우의 바짓자락을 꼭 붙잡은 채 뺏기지 않겠다는 듯 허겁지겁 손에 들린 것들을 먹어 치우는 녹스에게 향했다.
“이 아이는요? 설마 딸?”
“그럴 리가 있겠냐. 잠깐 맡게 된 귀찮은 놈이다.”
백우현은 무릎을 굽혀 녹스와 눈높이를 맞추고는 손을 흔들었다.
“안녕?”
“아, 안영하대여.”
“먹고 말해라. 먹고.”
꿀꺽.
“안녕하세요. 우동 아저씨. 녹스예요.”
“녹스? 외국 아이인가 봅니다. 그런데 한국어도 잘하네요. 그리고 우동이 아니라 우현입니다.”
“아까 아저씨가 우동이라고…….”
“우동은 먹는 거고요. 제 이름은 백우현입니다. 백우현. 그런데 진짜 한국어 잘하네요. 어디서 배웠어요? 녹스.”
“아저씨한테 배웠어요. 저 한국어 완전 잘해요. 아이스크림 존맛탱.”
“그런 단어는 어디서 배운 거냐?”
“아까 저기 상점 간판에 쓰여 있길래…….”
인터넷만이 아이를 망치는 게 아니었다.
유성우는 녹스의 언어습관은 나중에 바로잡기로 하고, 녹스와 인사를 나누는 백우현에게 물었다.
“애들 입단속 잘 시켰지?”
“당연합니다. 사실상 혼자 공략하신 거나 마찬가지이신데. 그 모습을 보고도 입을 여는 놈이 있으면 제가 잡아야죠.”
“뭘 그렇게까지. 그리고 나 혼자 한 게 아니라 함께한 거지. 군단장들 어그로 안 끌어줬으면 꽤 오래 공략해야 했을 테니까.”
“……감격스러운 말씀, 감사합니다. 아, 혹시 시간 있으십니까?”
“딱히 별일이 없기는 한데.”
“그렇다면 저희 본국검회의 도장에 한번 들리지 않으실래요? 마침 그쪽으로 가는 길이거든요.”
“본국검회?”
“예. 제가 속한 길드이자, 도장입니다. 무투계를 지망하거나, 현직 다이버들이 수련을 위해 속한 곳이죠.”
“댁은 검이 아니라 도를 쓰지 않던가?”
“본국검회가 꼭 검만 수련하는 곳이 아니거든요. 검법, 검술, 도법이나 창술도 가르칩니다.”
본국검회(本國劍會).
본국검회의 뿌리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본국검이란 승정원일기, 현종 14년 3월 11일 신사, 1673년 기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검술이다.
무예도보통지 3권에 수록되어 있는 뿌리 깊은 조선 한반도의 검술.
본국검회는 그런 본국검을 복원해내는 데 성공하며 이름을 알렸고, 전문가들과 함께 실전적으로 재해석 및 편찬에 성공함을 바탕으로 무투계 다이버들을 영입했다.
무투계 다이버들의 생존율이 본국검회의 출범 전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이전까지는 오합지졸에 불과했던 무투계 다이버들의 기초를 바로 세운 곳이 바로 본국검회.
대한민국 무투계 다이버들이 가장 많이 속해 있는 곳이고, 무력으로도 어디 가서 절대 꿀리지 않는 대형 길드.
막대한 숫자의 수련생을 바탕으로 자금과 인맥을 끌어모은 검과 돈에 미친 자들의 소굴.
백우현의 초대에 유성우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할 일도 없거니와.
시간을 죽이기 위해 뭘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본국검회라면 검을 수련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테니, 구경하는 맛도 좀 있을 것 같았고.
“상관없지?”
“네. 저는 아저씨 가시는 대로 가야죠…….”
어딘가 해탈한 듯한 말을 내뱉으며 녹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본국검회로 가자. 뭐 하는 놈들인지 구경이나 좀 해야겠다.”
“제가 바로 모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