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253)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252화(253/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252화
유해(8)
유지우는 정신이 혼미했다.
다른 이들도 비슷했다.
베로니카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진맥진했다. 툭 건드리면 쓰러질 것 같은, 좀비 같은 몰골이다.
이미 전신의 힘은 전부 빠진 지 오래다.
마력도 거의 거덜 났고, 남은 건 의지뿐이다.
근성과 승리하겠다는 투지뿐이다.
“이제 진짜 죽을 것 같은데…….”
유지우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20단계를 통과하고, 포기하려 했는데.
유성우가 밀어붙인 끝에 25단계를 방금 통과했다.
미친 듯한 강행군이다.
“이, 이제 그만하고 싶은데…….”
그런 생각을 담아 그녀는 VIP석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곳에 앉아 이쪽을 내려다보는 유성우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들이 더욱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표정이었다.
근데 그게 다이버들에게는 악마의 얼굴이나 다름없을 뿐이지.
그녀가 무심코 외쳤다.
“오빠는 몇 단계까지 갔는데 우리한테 이렇게 강요하는 거야?!”
유성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물음에 대답한 건 일부러 눈치가 없는 척을 한 파일리였다.
-이 위대한 도전자는 단신으로, 최고 단계인 39단계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네!
“사, 삼십…….”
자신들이 방금 25단계를 통과했다. 그것도 다 같이 죽을 듯이 싸워서 말이다.
그런데 유성우는 혼자서 39단계를 돌파했다고?
말도 안 되는 강함이다. 자신들이 백 명 정도 뭉쳐도 상대할 수 없는 강함이라는 뜻이 아닌가?
“베로니카, 저 말이 정말인가요?”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베로니카에게 물었다.
베로니카는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런 반응에서 파일리가 한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알아챈 유지우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금 전의가 불타오른다. 39단계, 자신들이 유성우의 곁에 서기 위한 최소한인가.
최고단계라고 했다.
유성우는 더욱 위로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적인 한계로 가지 못한 것이었다.
“저런 말을 들으면 더 할 수밖에 없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유지우의 옆에 백우현이 섰고, 다른 이들도 뒤따라 서서 자세를 잡았다.
그들을 바라보던 유성우가 만족스럽게 웃음과 동시에, 망령들의 환호성이 어비스를 가득 채웠다.
불굴의 투지가 망령들을 열광시키고, 그들의 열광은 도전자들의 투지를 다시금 증폭시켰다.
‘투사의 무덤’에서 볼 수 있는 투지와 광기의 순환.
투사의 무덤에서만 벌어지는 일종의 주술이다.
그렇게 다시금 싸움이 시작되었고, 의지와 근성만으로 이어진 다이버들의 전투는 30단계에서 막을 내렸다.
유자우가 기절하고, 백우현이 부상을 입어 뒤로 물러났다.
남은 마법사 셋으로는 전선을 유지할 수 없었고, 잔느가 쓰러짐으로써 파티는 완전히 붕괴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베로니카가 나서서 고대의 악마의 목을 베어버려, 30단계를 끝맺었다.
더는 그들이 다음 단계를 진행할 상태가 아니었기에, 베로니카가 대표로 도전의 끝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달콤한 보상 타임이었다.
다이버들의 눈앞에 상자가 하나씩 떨어진다.
그들이 보여준 열기와 투쟁에 대한 보상이 책정되었다.
-위대한 도전들이었다! 도전자들이여! 그대들을 이 투장의 챔피언으로 세우고 싶으나, 운명이 허락하지를 않는군!
파일리가 말했다.
챔피언으로 세우고 싶다는 건, 너희들을 죽여 어비스의 양분이자 부품으로 쓰겠다는 뜻이었다.
원래라면 그리했겠지만, 지금 옆에서 유성우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어 그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조금이다.
이제 곧 판이 뒤집힐 터였다.
치직, 치지직…….
투사의 무덤에 마력의 흔들림으로 인한 노이즈가 일었다.
그것을 눈치챈 것은 마력 흐름에 민감한 마법사들과 유성우뿐.
유성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이, 망령.”
-음, 무슨 일이지? 다들 훌륭한 보상을 받아 좋아하는 것 같군!
“개수작 부리면 가만 안 둔다고 했던 말은 까먹었나? 망령이라 기억력이 금붕어인가?”
-금붕어는 무슨 물고기지? 금이라니, 황금으로 만들어진 물고기인가!
“그렇게 나오겠다 이건가? 뭐,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봐라. 모조리 베어버린 다음에 너도 갈기갈기 찢어버릴 테니.”
그리 말한 유성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까지 많이 먹고 마셨으니 좀 움직일 때가 됐다.
노이즈가 점점 심해진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다이버들도 느낄 정도로, 마력 노이즈가 짙게 끼기 시작했다.
파일리가 소리쳤다.
-아! 그러고 보니, 그대를 위한 40단계가 준비되었다네! 며칠 동안 심혈을 기울여 구상했지.
“재밌겠는데.”
유성우의 감각은 그것이 함정이라 말했다.
투사의 무덤이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는지는 대충 파악한 바.
39단계에서 쓰러뜨린 놈보다 강한 놈을 며칠 만에 공수해 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생각하는 건 뻔하지.’
유성우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훌쩍 뛰어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닫혀 있던 철창이 열리며, 내부에서부터 강렬한 마력의 파동이 흘러나왔다.
“베로니카, 애들 챙겨서 뒤로 물러나라.”
지금까지 상대했던 적들과 마력의 밀도 자체가 달랐다.
전신이 마력으로 이루어지기라도 한 건지, 불길한 기운도 함께 풀풀 풍기며 걸어 나온 것은 기괴한 형태의 괴물이었다.
지금까지 투사의 무덤에서 상대한 괴물들을 찰흙 반죽처럼 섞어, 대충 발로 빚어낸 것 같은 형상이다.
유성우가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계약서에 상호불가침을 적어놓을 걸 그랬나.”
악마의 계약서의 효과는 분명히 굉장하지만, 한계가 명확하다.
보험약관 같은 구구절절 계약서를 작성할 수가 없는 게 흠이다.
그런 게 가능했다면 유성우는 파일리에게 종신형 노예계약을 들이밀었으리라.
그러니까.
지금은 놈이 믿고 내보낸 놈을 베어버리고, 누가 위인지 확실하게 알려주면 되는 일이었다.
다시는 발톱을 들이밀 생각도 하지 못하도록.
“아직 취기가 좀 남았나…….”
쉽게 취하지 않는 몸이지만, 독한 술을 열댓 병을 넘게 들이켰으니 조금 취할 만도 하다.
하지만 적당히 좋은 취기였기에 굳이 술기운을 몰아내지 않고 전투에 임했다.
누가 보면 대체 어떤 놈이 술 먹고 싸우느냐고, 미친 짓이라고 할 테지만…….
술은 예전부터 전사들에게 좋은 친구였다.
적당히 긴장을 덜어주고, 공포를 잊게 해준다.
떠나간 동료를 추모하는 음료이기도 하다.
“생명보험은 잘 들어뒀나?”
유성우가 기괴한 형태의 괴물을 쳐다보며 흑사를 바닥에 꽂아넣었다.
그의 신력에 반응한 흑사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콜로세움을 잠식한다.
[흑사(黑死)] [극한저주지대(極限咀呪地帶)]콜로세움을 뒤덮은 저주의 땅.
유성우는 그 가운데에 서서 알코올 섞인 숨을 길게 토해냈다.
그러고는 관중석의 파일리를 보며 말했다.
“너 이 새끼, 40단계 보상은 확실히 토해내야 할 거다.”
좀 비싼 대가가 되겠지만.
유성우는 양발을 탈탈 털어 신발을 벗고는, 맨발로 땅을 박찼다.
단숨에 괴물의 앞에 쇄도해 검이 아닌 주먹을 휘두른다.
놈이 손에 들고 있던 대검을 마주 휘둘러왔으나, 유성우의 교묘한 주먹은 대검의 경로를 뱀처럼 피해 턱주가리를 파고들었다.
모드레드가 입고 있던 갑주를 중심으로 여러 특성이 혼재된 괴물의 턱주가리에서 무언가 우득, 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유성우는 검술은 물론이고 체술 또한 단련했다.
검이 없으면 주워서 써야 하고, 그것마저 없으면 주먹으로 적을 깨부숴야 했으니.
웬만한 권사들도 그의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꽂힌 주먹이 한 단계 더 추진력을 얻어 놈을 콜로세움의 벽으로 처박는다.
-이, 이럴 수가…….
관중석에서 둘의 전투를 지켜보던 파일리의 허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성우를 쓰러트리기 위한 40단계의 괴물.
투사의 무덤에 존재하는 챔피언들의 장점을 융합해 타입 – 기사(Knights)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융합생명체.
보물고에 있던 보물을 사용해 탄생시킨 막강한 놈인데…….
검도 아니고, 주먹질 한 방에 나가떨어진다고?
콜로세움의 벽에서 괴물이 몸을 일으킨다.
한방을 강하게 처먹었음에도 멀쩡한 모습이다.
-그, 그래야지! 믿고 있었다고 챔피언! 40단계의 정의를 보여줘라!
“그냥 죽여 버리는 편이 나을까.”
계약이고 뭐고…….
하지만 투사의 무덤은 앞으로 요긴하게 쓰일 어비스다.
수련하기에 딱 좋은 곳인데, 그냥 없애버릴 수는 없었다.
-크어어어어어어어─!!
괴물의 입이 쩍 벌어지더니, 커다란 포효가 튀어나온다.
사람의 정신을 뒤흔드는 괴물의 외침이다.
‘14단계쯤에 나왔던 놈인가.’
예상이 맞았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놈들의 특성을 섞어 만든 키메라에 가까운 존재.
본 적 없는 놈들이 섞여 있기도 했지만, 그리 문제되는 건 아니었다.
걸쭉하게 포효를 토해낸 괴물이 땅을 박찼다.
몸을 극단적으로 낮춰서, 두 발, 그리고 한 손으로 내달린다.
반대 손에는 대검이 덜렁거리며 내달리는 괴물을 쫓았다.
기사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깝다.
놈의 등에 달린 위천사의 날개가 퍼덕거리며 추진력을 더하니, 덤프트럭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시무시한 돌진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속도를 그대로 실은 참격.
“흥.”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공격에 유성우는 콧방귀를 뀌고는 오월, 용광을 꺼내 들었다.
베는 것보다 찌르기에 특화된 원뿔 모양의 검.
랜스에 가깝다고 해도 좋다.
유성우는 용광에 오러를 불어넣어 단번에 나선의 폭풍을 구축했다.
[용광(龍光)] [용아관통해격(龍牙貫通海擊)]온갖 것들이 섞여 탄생한 괴물의 증오냐, 소드마스터의 검이냐.
둘 중 무엇이 강한지는 곧 결판나리라.
유성우의 검 끝이 괴물의 미간을 노렸다.
정확하게 머리가 있는 부분.
모드레드의 투구였을지도 모르는 부분.
괴물은 유성우의 검 끝에서 뻗어지는 푸른 빛을 보았다.
더없이 위험하다고 본능이 소리쳐댔다. 아무리 튼튼하고 강인한 자신이라도 정면에서 맞으면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걸 깨달았다.
판단과 동시에 움직인다.
몸을 틀어 내지른 참격의 궤도를 수정한다.
흉흉한 기운이 서린 대검이 유성우의 검이 서로의 탄착점에서 맞부딪친다.
뒤이어 찾아오는 것은 섬광과 굉음이었다.
순식간에 시각과 청각을 앗아가는 무자비한 빛과 주변을 완전히 침묵시키는 한발 늦는 굉음이 투사의 무덤을 뒤덮는다.
“이, 이게 뭐야!”
“배리어 최대로 펼쳐요─!!”
“이미 펼치고 있다고요!”
뒤로 물러나 있던 이들에게까지 미치는 여파.
콜로세움은 굉장히 거대했기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두 힘의 충돌은 그들마저 집어삼키려 들었다.
마법사들이 없는 마력을 쥐어 짜내 휩쓸리지 않도록 방벽을 펼쳤다.
단순한 힘의 충돌이 이렇단 말인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유성우는 그 힘의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폭풍이 걷힌다. 자연적으로 걷힌 게 아닌, 괴물이 휘두른 대검의 풍압으로 인한 것이었다.
-키아아아아아악─!!
전신갑주 여기저기에 금이 가 있는 흉한 상태의 괴물은 고통스러운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멀쩡한 모습의 유성우가 폭풍 속에서 걸어나오더니 괴물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시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