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257)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256화(257/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256화
유해(12)
초원에 우두커니, 이질감 가득한 가제보 안에는 한 남녀가 마주 보고 앉아있다.
고급스러운 찻잔을 들고 마주 본 둘 사이에서는 기이한 긴장감이 흘러넘쳤다.
찻물을 한 모금 들이켠 유성우는 씁쓰름한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다.
“향이 참 좋죠?”
“그닥. 이런 차는 익숙하지 않아서 말이다.”
찻잔을 내려놓은 그가 여전히 품에 일생을 껴안은 채 여인을 살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다.
술식을 통한 공간이동의 좌표를 일그러뜨려 자신만을 이곳에 떨어트려 놓을 정도의 실력을 가졌고.
넓디넓은 공간을 창조해 유지할 정도의 힘을 가졌다.
유추해 낼 수 있는 건 여인의 모습과 주변 환경으로 보아, 이러한 전승을 가진 신격이 아닐까.
‘…닿을 수 있을까.’
저쪽에서 적의는 없어 보였기에 검을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만일을 대비해 언제든 검을 휘두를 준비를 끝마쳤다.
자신의 검은 닿을 것이다.
무력하게, 그저 쳐다만 보는 일은 없으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당신 같은 신격이 내게 무슨 볼일인지 모르겠군.”
“당신이 성신전들 사이에서 얼마나 인기인지 모르시나 보네요? 지구를 기반으로 삼은 성신전들이 모두 술렁이고 있는데도.”
“신들이 나를 주시한들 내가 알 바는 아니라서 말이지. 무슨 자격으로 나를 인정한다는 건지도 모르겠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유성우의 말.
신의 앞에서 내뱉기에는 너무나도 거만하다.
자신은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고, 오히려 너희들과 다름없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니던가.
그런데도 여인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도 정말로 인상적이었죠. 당신이 오디움을 베어내던 그 순간만큼은 대신격에 준하는 격이 느껴졌으니까요.”
“역시 보고 있었군.”
이제는 어딜 가든 지켜보고 있으니,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갈 판이다.
샤워라도 하고 있으면 모조리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명백한 사생활 침해다.
“당신의 활약은 모든 신좌가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 저는 그들 중에서도 유난히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신좌죠.”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썩 기쁜 관심은 아니다. 신들의 관심을 받는 자들의 결말은 하나같이 처참할 뿐이니까.”
“틀린 말도 아니군요. 신들의 관심을 받았다가는 툭하면 별자리가 되어버리니까.”
별자리라.
유성우는 여인의 태도와 말투에서 정보를 뽑아냈다.
신화 속에서 툭하면 뭘 별자리로 만들어 버리는 놈들이라면 그리스 신화일 터.
“당신은 좋으나 싫으나 이목을 끌 수밖에 없는 일을 행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나요?”
“모를 리가.”
충분히 알고 있다.
신들의 관심을 받아 본 게 한두 번이던가?
이계에서는 몇몇 교단이 자신을 향해 척살령을 내리기까지 했었다.
신탁이라는 이름으로.
유성우의 말에 여인은 찻잔을 내려놓더니 재차 아름답게 미소 짓고는 말을 이었다.
“아직 이름도 밝히지 않았군요. 제 이름은…….”
“알고 있다.”
유성우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드넓은 초원, 아름다운 가제보.
녹색 옷의 여인, 그리고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는 다과로는 새빨간 석류.
마지막으로 별자리.
이 정도로 힌트를 주었는데도 알아맞히지 못한다면 그게 이상한 놈이지.
“페르세포네(Persephone). 저승의 여왕이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지?”
어릴 때부터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책을 열심히 읽은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다.
그리스 신화의 대표격인 주신(主神) 제우스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자.
명계, 저승의 왕인 하데스를 남편으로 둔 틀림없는 대신격.
“제 이름을 알고 계시는군요. 요즘 아이들은 모두 역사 공부에 소홀하던데…….”
“한국에는 훌륭한 역사 선생님이 계셔서 말이다. 그리스 신화만큼은 빠삭한 이들이 많지.”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책의 특정 페이지만 너덜너덜하다거나…….
아무튼.
“본론이나 말하지. 페르세포네, 당신이 어째서 나를 찾아온 거지?”
“…많은 이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했죠. 저는 그리스 성신전의 대표로 당신을 만나러 온 거예요.”
그리스 성신전.
유성우는 한반도 성신전의 신좌들과 이미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은 각각 경고와 존경을 건네고 떠났다.
“그리스 성신전에서? 전령이라면 더 적합한 신이 있었을 텐데.”
전승상 페르세포네는 저승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지상에 올라오는 건 몇 번 되지 않는다.
“헤르메스는 많이 바쁘거든요. 요즘에는 몸이 다섯 개면 좋겠다고 하소연을 해오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 대신 오게 된 거죠.”
“…무슨 이유로?”
“그리스 성신전에서 당신을 영입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연고도 없는 먼 곳에서 오셨군.”
유성우는 그들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을 영입하러 꽤 커다란 성신전일 그리스에서 온 걸 보면, 신좌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름이 퍼지고 있다는 건 거짓이 아니리라.
“한반도 성신전에서 당신을 소신좌로 인정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그걸로 만족하지 못하겠죠. 그리스 성신전으로 오세요. 그리스의 전승으로 당신을 대신격으로 이끌어줄 테니.”
“그리스의 전승이라면?”
이건 또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듣기만 해도 그리스 쪽에서 괜찮은 딜을 건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공짜가 아닐 터.
저들이 자신이 해주길 바라는 게 있으니, 저런 조건을 내걸고 유혹하는 것이겠지.
“당신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검이지 않나요? 그렇다면 아킬레우스의 전승도 괜찮겠군요. 패배하지 않는 전사의 전승이죠.”
“발뒤꿈치에 화살 한 방 처맞으면 뒈질 텐데 무슨…….”
그리고 어차피, 유성우는 어딘가에 소속될 생각은 없었다.
그리스 성신전에 속해 그들이 주는 전승을 받아먹고 대신격이 된다고 한들, 그들에게 속박된 신이 되는 게 아닌가.
그리스 성신전을 적으로 돌리게 되는 일일 수도 있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거절하지.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리스 신화에 검에 대한 전승은 별로 없는 걸로 알거든. 차도 다 마셨으니 일어나 보겠다.”
유성우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페르세포네가 말했다.
“좋은 기회를 걷어차겠다는 뜻인가요?”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 하지만 이건, 너희들에게 좋은 기회지, 내게는 전혀 좋은 기회가 아니라 말이다.”
전승.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신이 되기 위해 걸어온 길을 말하는 것이다.
일구어낸 업적을 말하는 것이다.
신으로 태어났다면 모를까, 죽고 난 뒤 전승, 업적을 인정받아 신이 된 이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것.
인간은 자신의 전승, 걸어올 길을 기반으로 삼아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하고 신좌에 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업적이 아닌 다른 이의 전승을 받아 신좌에 오른다면, 본인의 전승이 혼탁해져 신격이 오히려 감소하는 결과를 낳게 되리라.
신격을 제 몸에 쌓으며 그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한 유성우는 그래서 그리스 성신전의 제안이 당기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직접 쌓은 신격 위에 다른 이의 신격이 쌓이면 그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될 테니. 너희들이 주무르기는 더 쉬워지겠지. 무슨 속셈인지는 다 안다.”
“벌써 신좌의 생리를 깨달은 건가요? 역시, 지금까지 탄생한 이들과는 다른…….”
페르세포네가 더욱 탐난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 얼굴은 음흉하면서도,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와도 같았다.
유성우는 반대로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페르세포네, 다른 신좌들에게도 말해라. 나는 어디 성신전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고. 초대한다면 응하기는 하겠지만, 소속될 생각은 없다. 내 신격을 오롯이 완성하기 전에는 말이다.”
“줏대도 확실하고, 인간의 몸으로 쌓은 신격 또한…….”
그녀는 무언가 재는 듯 중얼거리더니, 이내 활짝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요. 당신이 다른 성신전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확언했으니, 이번에는 순순히 물러가 보도록 할게요.”
그리 말한 페르세포네가 자리에 앉은 채 손뼉을 짝, 치자 태양 빛을 가리던 가제보의 천장이 사라지더니, 이내 지평선 너머에서부터 암흑이 찾아왔다.
순식간에 땅과 하늘이 밤으로 물들어버린다.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구분조차 사라지며, 남는 것은 암흑 속의 별빛뿐.
페르세포네가 말했다.
“남편이 저를 데리러 왔군요. 찰나의 순간, 너무나도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차를 마실 시간이 있으면 좋겠군요.”
“…하데스인가.”
명계의 왕.
저승에 군림하는 절대자.
플루토, 혹은 하데스.
온 세계가 그로 인해 물들어 가는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니, 페르세포네가 유성우에게 석류 몇 알을 쥐여주었다.
“이건 이별 선물. 그럼 정말로 다음에 봐요. 소드마스터.”
그리고 그 순간, 시야가 뒤바뀌었다. 그가 서 있던 페르세포네의 세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캄캄하기 짝이 없는 익숙한 어둠, 허수 차원이 드러났다.
“성우성우야, 이제 일어났나?”
“정신 하나 차리는데 왜 이리 오래 걸려요?”
그리고 그의 시야의 양쪽에서 슈아넬과 바토리가 한마디씩 건넸다.
유성우는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내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지?”
“1분 정도에요.”
“…그렇군.”
페르세포네와 차를 마신 시간은 30분 정도였는데.
그녀가 말한 것처럼 정말로 찰나에 불과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요.”
“별 거 아니다.”
유성우는 손안에 느껴지는 석류의 감촉에 자신이 본 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곤, 주머니에 석류알을 쑤셔 넣었다.
페르세포네가 선물로 준 것이니,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터.
그러고는 곧바로 나침반을 꺼내 들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성자의 유해 탐색을 시작하지.”
“이런, 말은 바로 해야죠. 탐색이 아니라 탈취요.”
“내가 탐색이라고 했던가?”
유성우는 피식 웃으며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있는 허수 차원은 이전에 한 번 온 적이 있는 곳이었다.
탑주회의를 위해 마련된 장소이기도 했고, 맥시멈의 고유세계가 펼쳐지기도 했던 곳.
허수 차원은 자정력이 강한 곳이었으나, 아직 그 잔해가 남아 우주 쓰레기처럼 떠돌고 있었다.
고유세계의 파편을 본 바토리가 말했다.
“여기가 승천교의 주교와 싸웠던 곳이군요.”
“아직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을 줄이야,”
그만큼 맥시멈이 지닌 의념이 강렬했다는 뜻이겠지.
작전은 전부 실패로 돌아갔고, 유성우가 그가 자폭하는 마지막까지 화려하게 도발을 날려주었으니, 죽어서도 편히 눈을 감을 수가 없었을 터였다.
그렇기에, 놈의 의념에게 이들은 불청객일 수밖에 없다.
“온다. 준비해라.”
“으, 징그러.”
안식을 취할 수 없는 의념의 잔재. 맥시멈의 증오로 똘똘 뭉친 불길한 덩어리들.
새로운 숙주를 찾아 떠도는 기생충과도 같은 괴물들.
맥시멈의 고유세계의 잔해 속에서 부정형의 괴물들이 허수 차원을 날아 달려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