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26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259화(260/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259화
녹스(2)
깊은 어둠이다.
움직일수록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암흑이다.
녹스는 그런 암흑 속을 홀로 거닐었다.
빛 한 점 존재하지 않는 칠흑 속에서 소녀는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빛이 없는 세계임에도 녹스는 어디로 걸어야 할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걸음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수렁 속에 빠져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멈추는 순간 칠흑 같은 어둠은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늪 속으로 끌고 들어갈 테니까.
‘엄마, 언니, 아저씨…….’
자신이 사랑하는, 너무나도 소중한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소녀는 다시금 발걸음을 옮긴다.
그저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만을 인식한 채 아주 천천히, 느릿하게…….
수렁 속에 빠져들지 않도록…….
***
“사흘 전부터 일어나지 못했다고…….”
“그렇습니다. 갑자기 잠들 듯이 쓰러지더니,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깨우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으나 전부 실패했습니다.”
“의사한테는 보여줄 수 없었을 테고…….”
서연정은 한국에 남아 있던 헤트리스나 칼리를 데리고 와서 녹스의 상태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둘도 녹스의 상태에 대해 어떻게 조언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마법적인 공격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자는 동안 마력도 안정되어 있다.
둘이 내린 결론은 녹스 자신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강제로 깨워보기 위해 두 분께서도 여러 방법을 동원하셨으나, 결국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왜 바로 연락 안 했어?”
“해외에서 하시는 일에 방해가 될까, 독단으로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유지우는 무언가 말하려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연정의 판단은 알맞았다.
오랫동안 유지우와 함께 일하며 성향을 파악하고 있던 그녀였기에.
서연정을 질책할 수는 없었기에, 유지우는 녹스의 옆에 털썩 주저앉아 중얼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슈아넬도 좀 당황했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녹스의 옆에서 떠나지 못했다.
“녹스녹스야…….”
평소에는 들러붙으니까 좀 귀찮아하는 기색이 있었는데, 막상 녹스가 깨어나지를 않자 불안한 모양이었다.
유성우는 녹스를 내려다보다, 시선을 서연정에게로 옮겼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녀가 제일 잘 알 터.
서연정 본인이 아니라, 그 안에 잠들어 있는…….
그가 아무 말 없이 안방을 나와 제 방으로 들어가자, 서연정이 따라 나와 방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유성우는 오러를 끌어올려 방의 소리를 차단했다.
서연정 안에 잠들어 있는 존재에 대해 아는 건 그밖에 없었기에.
그의 물음에 서연정의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안경을 벗은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신성한 기운.
서연정 안에 잠들어 있던 신격이 겉으로 드러나며 서연정의 머리칼이 바람에 나부끼듯 찰랑거렸다.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신격이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군. 이전에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겠지요. 성신전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며 영향력이 더욱 강해진 탓에, 신격 또한 함께 상승한 겁니다.”
“그렇군. 그래서, 녹스한테는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이름 모를 신.
서연정 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던 신격. 서연정의 안에서 지금까지의 일을 지켜보았다면.
지금 상황을 누구보다 가장 잘 이해하는 건 그녀밖에 없으리라.
“…이상한 것들이 꼬이기 시작하더군요. 아무리 겉모습을 바꾸었더라도, 신들의 눈까지는 속일 수 없겠죠. 용족은 먹음직스러운 존재니까요.”
“흠…….”
드래곤, 용족은 태생적으로 마법을 다룰 수 있고, 어마어마한 마력량을 타고 난다.
하지만 그에 반해 필연적으로 멸절이 예견되는 종족이기도 했다.
마법의 종주기도 하고, 태생적으로 종의 정점에 서 있어 감히 상대할 자가 없지만.
태생이 완벽해서 그런지 발전하지 않는 나태한 종족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더욱이 먹음직스러운 존재다.
세뇌해서 사자(使者)나 사도(使徒)로 삼기에 딱 좋은 종족.
녹스는 아직 유체, 해츨링이라 꾀어내기도 더욱 쉬운 편이었다.
“녹스를 눈독 들이는 놈들이 있단 말이지. 눈치도 좋군.”
지금까지 잘 숨겨왔다고 생각했는데, 방비가 부족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저 아이가 눈앞에 어머니가 있다는 둥, 말을 하는 걸 보니 환상을 보는 것 같아요. 그렇게 영혼에 새겨진 기억을 이용해 세뇌 작업에 들어가는 게 아닌지…….”
“꽤 복잡한 짓을 하고 있군. 어디 성신전에서 작업치는 건지는 모르겠고?”
“그건 알 수 없더군요. 아이에게 간섭하려 하는 놈들은 대부분 제가 쳐내기는 했는데, 아주 약간의 흔적만으로도 저 지경이 된 걸 보면 꽤 커다란 신격일지도…….”
이름 모를 신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이 있었음에도 녹스가 저 지경이 되는 걸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하지만, 그것 또한 질책할 일은 아니었다.
서연정이든, 이름 모를 신격이든 제 할 일을 해냈다.
그러나 적들이 그 이상으로 해낸 것이었다.
“원래 도둑질도 도둑질한 새끼가 나쁜 거지, 방비 못한 집주인이 나쁜 건 아니다. 문단속도 잘했는데 뭘…….”
지금 생각해야 하는 건 질책이 아닌 해결책이다.
녹스를 어떻게 깨울 것이며, 이 짓거리를 벌인 놈들을 어떻게 찾아서 죽여 버릴지.
“…그놈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다시금 악마와 접촉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
유성우가 향한 곳은 과거에 한 번 간 적이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이었다.
그곳에서 단탈리안을 만났고, 계약을 맺어 정보를 지속적으로 전달받았다.
이번에는 서면으로 전달받는 정도로는 부족할 것 같아, 그녀를 접선할 수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을 다시 찾았다.
그때 했던 것처럼 지하로 내려가 촛불이 켜진 테이블 앞의 의자에 앉자, 어둠이 몰려오더니 책장을 넘기는 단탈리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악마라기에는 너무나도 소녀틱한 광경.
유성우는 짧게 숨을 내뱉고는 말했다.
“내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는 알겠지. 단탈리안.”
“자네에게 넘겨주었던 책만으로는 부족할 이야기를 하러 왔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단탈리안이 넘겨준 책을 통해 받았지만, 지금 할 이야기는 책만으로는 부족했다.
성신전에 관해, 승천교에 관해,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을 그녀의 지식이 필요했다.
“네 아이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일에 대해 상담하러 왔나?”
“이미 알고 있군. 그리고 네 아이라는 표현이 상당히 신경 쓰이는데.”
“음, 그렇다면 뭐라고 하는 편이 좋을까? 딱히 좋은 생각이 나지를 않으니 어린 용이라고 부르지.”
“그래.”
유성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단탈리안은 책장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은 그대가 생각하는 것만큼 심각한 일은 아니다. 어린아이라면 모두 겪는 사춘기 같은 거지. 이제 클 만큼 컸으니…….”
“사춘기? 그게 뭔 개소리지?”
“말 그대로다. 어린 용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도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간섭한 놈들이 있다, 이 정도인 거지.”
“쳐 죽여야 할 놈이 있다는 사실은 틀림없다는 소리군.”
유성우의 말에 단탈리안이 피식 웃으며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턱을 괴며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네가 지금까지 부모로서의 일을 잘 해냈다면, 어린 용은 별 탈 없이 깨어날 것이다.”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몸져누웠다는 뜻인가? 그걸 극복하면 깨어날 것이고, 극복하지 못하면?”
“놈들이 원하던 대로 누군가의 사도가 되겠지.”
“녹스의 정신력에 달려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부모로서 잘한 건 모르겠지만.
약하게 키우지는 않았으니까.
가끔 어비스로 데려가 싸우라고 내몰기도 했고…….
“그렇다면 이쪽에서 뭘 하지 않아도 알아서 깨어나겠군. 가끔 자장가나 불러주면 되겠어.”
“그대가 불러주는 자장가라니…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건 아닌가?”
유성우가 수도(手刀)를 들자 단탈리안이 황급히 양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투영 마법으로 대화하고 있는 것이기에 맞지는 않을 테지만, 왠지 유성우라면 공간을 뛰어넘어 정수리를 두들길 것 같았다.
언제나 쓸데없는 입이 문제였다.
유성우는 들었던 손을 내려 팔짱을 끼고는 말했다.
“그래도, 건드린 건 참지 못할 것 같으니 리스트를 만들어라.”
“리스트라 하면?”
“그 아이에게 손을 댔을 법한 성신전이나 신. 승천교 놈들이라면 더 좋고.”
“일단 말해두지만 네가 있는 한반도의 성신전은 아닐 거다. 그놈들은 ‘용’과는 상성이 별로 안 좋거든. 그에 관련된 전승이 워낙 많아야지. 오히려 잡아먹히지 않을까 고민해야 할 놈들이다.”
단탈리안이 무엇을 말하는지 유성우는 금방 깨달았다.
한반도에 ‘용’에 관한 전승은 많았다. 그런데 그것은 대부분 용을 신성시하는 것.
용은 물을 지배하는 수신으로서 신앙이 되기도 하고, ‘왕’이나 ‘황제’를 상징하기도 했다.
한반도 내에서 ‘용신신앙(龍神信仰)’은 깊고 오래된 역사가 있어 한반도의 오래되지 않은 성신전의 신격들은 도리어 녹스가 ‘용’으로서 신격을 얻으면 두려워해야 할 존재이리라.
“그렇다면, 용을 확실히 쓰러뜨릴 수 있는 전승을 가진 놈들이 녹스를 노린다고 볼 수 있겠군.”
“이야기가 잘 통하는군! ‘용’의 권위는 동양이 높고, 서양이 낮은 편이지. 유럽 등의 서양에는 용살자(龍殺者)의 전승이 즐비한 데다가, 그냥 깊은 곳에 처박혀 숨어 사는 탐욕스러우며 악독한 괴물 정도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괜히 판타지 소설에서 드래곤이 전투력 측정기 정도로 나오는 게 아니지.”
“오, 그러고 보니 그거 읽어봤나? 연암 작가의 ‘아카데미 드래곤으로 살아남기’라는 제목의 웹소설인데 …….”
“그게 재밌나? 드래곤인 게 들키면 해부당한다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설정이…….”
아무튼.
단탈리안이 말했다.
“내 생각에는 가장 가까운 성신전이 있는 일본 쪽이 아닐까 싶다. 중국도 용신신앙이 강한 데다가, 남미 쪽은 거리가 멀고, 거기도 용신신앙이 크게 남아 있으니.”
단탈리안은 그리 말하며 종이 한 장과 깃펜을 소환해 삐뚤빼뚤한 한글로 리스트를 적어주었다.
“일본에는 용살 신화가 남아 있는 데다가, 옛날부터 호시탐탐 한반도를 집어삼키려 들었으니까.”
단탈리안이 적어준 목록은 용살 신화에 관련된 신격들의 이름.
단탈리안의 살생부를 손에 넣은 유성우는 이름을 살펴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가 이렇게 많아?”
“일본에는 야오요로즈(八百万)라고 해서 팔백만이 넘는 토속신이 존재한다. 그러니 많을 수밖에.”
“이것들 하나하나가 전부 신이라고? 잡아 족치기도 힘들겠군.”
“그래서 일본이 신앙에 아주 민감하지. 신도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그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섬나라다.”
단탈리안은 그 외에도 이런저런 설명을 추가해 주었다.
모여든 사상력으로 인해 자신이 이런 모습이 되는데 한몫한 나라가 일본이라는 것과.
주의해야 할 신들까지.
설명을 전부 들은 유성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곧 검혼 길드 타워 옥상에 어비스 하나가 나타날 거다. 시간이 있으면 가보도록. 전 세계에서 모여든 투사들의 기록이 있을 테니. 거기 있는 망령에게 내가 보냈다고 하면 전부 불 거다.”
“……! 으헤헤, 그런 꿀정보를 줄 줄이야…….”
접한 적 없는 투사의 기록이라는 말에 단탈리안의 만면에 웃음꽃이 피었다.
유성우는 촛불을 끄고는, 방을 나섰다.
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일본으로 원정을 가야 할 판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이순신 장군님의 힘을 받아 가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