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268)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267화(268/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267화
녹스(10)
일본 열도 전체에 기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긴장감이라고 해야 할까.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관서, 오사카에서 1급 어비스 브레이크가 가까워짐에 따라 긴장감이 치솟았는데.
관동, 도쿄에서 각종 길드의 다이버들이 남하했다.
평소에는 교류도 없던 이들이 1급 어비스의 브레이크라며 내려온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모두 힘을 합쳐 어비스 브레이크를 막는 모양새지만, 내막은 알 수 없었다.
관동은 관서에 손을 거의 대지 않았다. 무슨 일이 터지든 지켜보기 다반사.
관서 쪽에서는 놈들이 순순히 도울 리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경계했고, 관동은 거들먹거리며 생색을 냈으니.
“저 새끼들은 뭐야?”
홍서화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옆에 있던 코유키가 말했다.
“관동의 다이버들이에요. 도쿄에서 온 것 같은데… 엉덩이 무거운 저 치들이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람?”
“관동? 도쿄? 외국 다이버들은 유명한 사람 몇 명 빼고는 모르겠다니까.”
홍서화는 어깨를 으쓱였고, 슈아넬은 앉아서 게임기나 두드리는 중이었다.
어차피 놈들이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할 일도 없었기에.
그러던 중 코유키에게 허리춤에 두 자루의 일본도를 찬 남자가 다가왔다.
“오랜만에 보는군, 코유키.”
“…야미오. 사무라이 협회에서 올 줄은 몰랐네요.”
“관서에서 그런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사무라이 협회 차원에서 나서야 하는 게 맞지 않나?”
“뭐요? 미야모토 무사시? 그 미친놈을 왜 당신네들이?”
“사무라이의 우상이니까! 하하!”
야미오라 불린 남자가 크게 웃었다. 일종의 길드인 ‘사무라이 협회’ 소속 S급 다이버.
관동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그들은 관서에 거의 발을 들이지 않았는데…….
“그리고 1급 흑문이 터진다는데 당연히 달려와야지. 우리는 같은 황국신민(皇國臣民)이 아니던가?”
“황국신민 같은 뭔…….”
코유키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21세기에 저런 덜떨어진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두통을 불러일으켰다.
야미오는 그녀의 옆에 있는 두 명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관서는 인재가 없어도 너무 없나 보군. 이런 외부 인력까지 끌어들여서 해결해야 하나? 이등 신민까지…….”
이등 시민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홍서화가 눈살을 찌푸리며 야미오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한 발짝을 내디디며 주먹을 날렸다.
뻐억!
묵직한 한방의 소리가 울려퍼진다. 야미오의 속도로는 대응할 수 없는 홍서화의 주먹이 얼굴에 정타로 꽂힌 것이었다.
야미오의 몸이 뒤로 밀려 바닥에 처박히자, 홍서화는 손을 탁탁 털며 말했다.
“이등 시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병신 새끼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무라이 코스프레 병신이…….”
“이, 이 자힉이!”
야미오는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입과 코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중이었다.
입을 우물거리던 그가 피를 퉤, 하고 뱉으니 이빨 몇 개가 딸려 나왔다.
앞니랑 송곳니가 부러진 모양.
홍서화는 킬킬 웃으며 그 꼴을 조롱했다.
“그딴 소리 안 내뱉었으면 처맞을 일도 없었을 텐데, 안 그래?”
야미오가 처맞자, 근처에 있던 사무라이 협회 다이버들이 모조리 칼을 뽑고는 홍서화를 겨누었다.
야미오 또한 허리춤의 일본도 한 자루를 뽑으며 중얼거렸다.
“이 미친 조센징 새끼가…….”
“허! 먼저 시비 건 쪽바리 새끼가 입은 살아 있네. 그냥 죽여 버릴 걸 그랬나?”
홍서화가 그리 말하며 전신에서 불꽃을 피워올렸다.
그녀의 초능력인 ‘발화(發火)’는 예전에는 그저 불을 두르는 것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능력의 숙련도가 완숙한 지경에 오르고 비약을 통해 마력도 S급 이상에 도달했으니.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불꽃은 단순한 불꽃이 아니게 되었다.
의지에 따라 무엇이든지 불살라버릴 수 있는 업화(業火)의 경지에 이르렀다.
사무라이 협회의 다이버들은 대부분이 A급이나 B급, 그리고 C급.
S급은 야미오를 비롯해 두 명밖에 없었는데, 다른 S급은 자리에 없었다.
그러니까, 즉.
그들이 아무리 용을 쓰더라도 홍서화 한 명을 쓰러뜨리기는 요원하기 짝이 없는 일.
그녀는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마력이 담긴 불꽃의 크기를 더욱 키워갔다.
더욱 화려하게!
더욱 뜨겁게!
마치 작은 화룡(火龍) 한 마리가 자리를 잡은 채 존재감을 키워가는 듯한 광경에 검을 빼 들었던 사무라이 몇몇이 견디지 못하고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그건 야미오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눈앞에 있는 다이버가 이만한 힘을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노려보았다.
홍서화는 칼을 빼 들지도 않았다.
그저 제 양주먹을 서로 부딪치며 놈들에게 말할 뿐이었다.
“뒈질 각오가 된 놈만 덤벼라. 뼈까지 불태워 줄 테니까!”
“거, 거기까지만 하시지요. 홍서화 님. 다들 알아들었을 겁니다.”
지켜보던 코유키가 일이 더 복잡해질 것 같자 그녀를 말렸다.
아직 괴물들은 튀어나오지 않았음에도 내분이 일어나 자멸하는 건 사양이었다.
코유키가 거의 애원하듯 매달리자 홍서화는 그제야 불길을 거두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 정도면 나름 됐겠지.’
그녀가 아까 야미오를 두들겨 패기 전 고민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건 일종의 선포였다. 원래 다른 나라 사람들이랑 일하다 보면 여러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 쉬우니.
자신보다 강하지 않으면 입 닥치고 있으라는.
그런 그녀의 선포는 아주 잘 먹혀들었다.
그녀의 위용을 보았으니, 어지간한 놈들은 손댈 생각도 하지 않을 터였다.
“아으, 스승님은 언제 오신대.”
가만히 서 있으려니 몸이 찌뿌둥했다.
어비스에서 괴물이라도 튀어나오면 조금 덜 심심하리라.
그리고 그런 그녀의 소망을 들어준 것인지.
“…브레이크 임박했습니다! 곧 튀어나옵니다!”
“전투 준비! 모두 전투 준비─!!”
차원파를 측정하던 이나리 신사 소속의 다이버가 외쳤고, 다른 다이버들도 곧 시작될 전투를 준비했다.
그러던 중 음양사 복식을 입은 여성이 사람들 사이로 걸어나오더니, 부적 몇 장을 던졌다.
날아간 부적이 원형을 그리며 어비스를 에워싸더니, 금빛으로 연결되어 결계를 형성했다.
“시간을 벌어주지. 준비를 보다 철저하게 마쳐라.”
부적을 날린 사람은 교토에 있는 야사카 마탑의 탑주, 나기 세오였다.
그녀가 드디어 정양을 끝마치고 다시 전장에 서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뒤에는 야사카탑 소속의 음양사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 위한 출진.
“씁. 조금 더 있어야겠군.”
검을 빼 들었던 홍서화는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스승님이랑 같이 들어갈걸.”
***
어비스 안으로 홀로 진입한 유성우는 가장 먼저, 오니의 대군을 마주했다.
카스가 산에서 보았던 흉악한 얼굴의 요괴들이 잔뜩 줄지어 서 있었다.
오니 말고도 처음 보는 여러 요괴가 살기를 내비치며 유성우를 쳐다보았다.
이것이 일본과 한국 요괴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국 요괴는 인간친화적인 설화가 많다. 공격한다고 해도 장난 정도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도깨비와 농부가 씨름으로 자웅을 겨루고 서로를 인정한 뒤 메밀묵을 나누어 먹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일본의 요괴와 오니는 다르다. 도깨비랑 비슷하게 생겼더라도 그 성격은 흉악하기 짝이 없다.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건 물론이고 잡아먹는 이야기도 많았다.
규키와 누레온나만 해도 그렇고.
오니들과 시선을 마주친 유성우가 툭 내뱉었다.
“거지같은 것들이 한데 모여 있으니 거지소굴이 따로 없구나.”
그리고, 오니들이 분노하기도 전에 이어진 참격.
붉은 섬광이 번뜩인다.
눈 깜빡할 사이, 그 이전.
아주 찰나의 순간.
길게 뻗은 붉은 섬광이 오니들의 목을 수확한다.
유성우가 뻗었던 검을 다시 허리춤으로 가져왔을 때, 떠올랐던 오니들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머리를 잃은 몸뚱어리들은 이내 도미노처럼 쓰러져버렸고, 유성우는 그 쓰러진 오니들의 몸통을 카페트 삼아 걸어갔다.
슈텐도지가 있는 어비스는 커다란 강이 흐르는 바위산이었다.
과거, 메이너드를 상대했던 환경과 비슷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흐르는 강에서 술냄새가 진동했다.
“어후.”
강 자체가 술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 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슈텐도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의 감각이 그리 말했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폭포.
그 아래에 슈텐도지가 있다고.
유성우는 급할 것 없이 느긋한 발걸음으로 바위산을 올랐다.
중간중간에 만나는 오니와 요괴들은 썰어서 강에 던져주었다.
“잘 먹는군.”
오니들의 시체를 던지자마자 거대한 뼈로 된 고래가 솟구쳐 그것을 받아먹었다.
저것도 어떠한 요괴의 한 종류.
유성우는 그런 놈들이 여럿 헤엄치는 모습을 잠깐 구경하다 다시 발을 떼었다.
그렇게 다시 한참을 산을 오른다.
그러다 사람의 머리 몇 개가 꼬챙이에 꽂힌 채 널브러진 것을 발견했다.
그 아래에는 파먹힌 듯한 사람들의 몸뚱어리가 자리했다.
이전에 슈텐도지를 공략하러 온 이들의 시체.
잔혹한 오니들의 특성상, 다음 도전자의 기를 꺾으려 이리 장식해 둔 것이었다.
“…….”
멍청한 오크들이나 할 법한 짓을 해두는 오니들의 모습에 웃음이 비식비식 새어 나왔다.
이런다고 겁을 먹을까.
이런 꼴은 이미 이계에서 질릴 정도로 보았다.
이 정도로 겁먹을 정도면 진즉에 뒈져버렸을 테고.
유성우는 다시금 산을 올랐다.
그리고, 이윽고.
폭포에 도달했다.
지독한 독주(毒酒)로 이루어진 폭포가,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는 대폭포가 그를 반겨주었다.
“어서 오게. 일단 한잔하고 시작하지 않겠나?”
폭포 아래에 있는 자그마한 바위.
그곳에는 반라의 오니가 있었다.
전신에 자리 잡은 우락부락한 근육과 구릿빛의 피부.
여기까지만 보면 인간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놈이 인간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은 관자놀이와 이마 정중앙에 솟은 뿔과 입술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날카로운 송곳니, 그리고 역안(逆眼).
흰자위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검은색으로 가득했고, 동공은 벽색이었다.
한 손에 붉은색 널따란 술잔을 든 그가 폭포를 향해 술을 받더니, 이내 쭉 들이켰다.
“캬아! 신편귀독주(神便鬼毒酒)는 희석해도 끝내주는군. 자, 어서 자네도 한잔하지.”
폭포가 어마어마하게 떨어지고 있음에도 목소리는 묻히지 않는다.
슈텐도지, 주탄동자(酒呑童子)라고도 불리는 일본의 대요괴가 사람 좋은 미소로 술을 재차 권했다.
한 번 마시면 너도 마음에 들 거라는 확신에 찬 얼굴로.
유성우는 피식 웃으며 검을 빼 들며 휘둘렀다.
마찬가지로 섬광이 번뜩인다.
세상을 절반으로 가르는 듯한 붉은 섬광이 떨어져 내리는 폭포를 반으로 갈라버린다.
갈라진 폭포가 시간이라도 멈춘 것처럼 뚝 멈춰 버렸다가.
이내 다시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칼로 물을 벤 유성우가 슈텐도지에게 말했다.
“시간이 없다. 빨리 시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