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27)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27화(27/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27화
토월족
-유월 제사장은 방한 이유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으나, 전문가들은 토월족인 만큼 ‘신탁’이 관련이 있지 않나, 추측하고만 있을 뿐입니다.
“오, 나도 저 얘기 들었는데. 토월족이 한국에 온다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유지우는 유성우의 옆에 녹스를 안은 채 풀썩 앉으며 말했다.
유성우는 처음 듣는 종족이었다.
엘프나 드워프 정도는 알지만.
“토월족이 뭔데?”
“말 그대로 달토끼. 공개된 정보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특이한 능력이 있대. 월문(月聞)이라고 해서, 달의 목소리를 듣는다더라.”
“그게 뭔 개소리야?”
“일종의 신탁이라나 봐. 달의 신에게서 듣는 목소리라는 거지.”
“사이비네.”
“마냥 사이비라고는 못하는 게 신탁으로 맞춘 게 많아서 어디든 모셔가려고 혈안이 된 곳이기도 하지. 예측률 100퍼센트의 경보기면 꽤 도움이 되잖아?”
“그래도 사이비다. 나는 신탁이니, 예언이니 더럽게 지긋지긋하거든.”
유성우는 더는 말하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신탁이니, 예언이니.
이계에 있을 때 너무나도 많이 휘둘리던 말이었다.
유지우는 그의 말에 유성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가 뭘 보냐고 눈살을 찌푸리자 그녀가 툭 내뱉었다.
“토월족이 오는 거 오빠 때문에 오는 거 아니야?”
“나 때문에? 왜?”
“북아일랜드에 틀어박힌 토월족이 직접 움직인다는 건 어지간히 큰일이 한국에서 터진다는 뜻이겠지. 아니면 이미 터졌거나. 그런데 한국에서 가장 크게 터진 일이라고 하면 오빠밖에 더 있어?”
“야, 듣기만 해도 싫다. 일 복잡해지는 건 사양이라고. 가뜩이나 본국검회 다녀오면서 머리도 복잡한데…….”
“본국검회를 다녀왔어? 오늘?”
“어. 시내에서 백우현 만나서 다녀왔다. 본국검 좀 보고 왔지. 그거 때문에 지금 생각할 것도 많은데, 달토낀가 뭐시긴가, 그것까지 엮이라고 저주라도 하는 거냐?”
“오빠가 뭐 생각할 게 많아? 뭘 보고 왔는데 그래?”
유지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녹스의 턱을 간질인다거나, 머리를 쓰다듬는다거나.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고단했던 스트레스를 풀어낸다.
까르르 웃는 녹스를 흘깃 본 그가 혀를 쯧, 차고는 말했다.
“본국검 말이다, 검술이 좀 이상해서 손 좀 봐주고 왔지.”
“그래서?”
“본국검 말이다, 그건 애초에 인간을 상대로 만들어진 검술이 아니다. 좀 더 크고 변칙적인 괴물들을 상대하기 위해 만든 거다.”
“과거에도 괴물이 있었다는 거?”
유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도, 아니, 한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괴물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기는 했다.
요괴(妖怪), 악령(惡靈), 괴력난신(怪力亂神)이라 불리는 것들.
설화든, 전설이든.
그런데 그것들이 정말로 설화나 전설이 아니라, 실재했던 것이라면.
본국검은 정말로 그런 괴물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창시된 거라면?
“……어비스라는 게 비단 현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군.”
대충 조용하게 생각을 끝마친 유성우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보았다.
끝내 전쟁터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곳이 다시 전쟁터라니.
잠시 생각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지우야, 내가 심각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
“뭔데?”
“오늘 저녁은 치킨으로 하자. 기름진 게 땡기네.”
일단 밥부터 먹어야 머리가 돌아갈 것만 같았다.
* * *
녹스가 유지우의 집에 온 지도 사흘이 지났다.
어느 정도의 사회 상식을 강제로 머릿속에 꾸겨 넣어진 녹스는 오늘, 유성우와 함께 외출했다.
외출의 이유는 녹스의 성능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
“여기라면 마음껏 힘을 써도 괜찮겠군.”
유성우와 녹스가 들어선 곳은 메테오 인더스트리 소속의 6급 어비스로, 아직 미숙한 다이버들의 훈련을 위한 용도로 사용하는 ‘조용히 우거진 숲’이라는 곳이었다.
등장하는 몬스터는 고작해야 중형견 정도 크기의 무리 사냥을 하는 늑대들이라 유성우나 녹스에게 별 위협은 되지 않았다.
“저쪽으로 브레스 한 번 쏴봐라.”
“저 그런 거 못 하는데요…….”
“드래곤이잖아?”
드래곤이면 당연히 브레스 쏘는 법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마법의 종주인 만큼 마법도 드래곤의 무기기는 하지만…….
드래곤의 브레스는 마법과는 궤를 달리하는 무기다.
마법은 마력을 끌어모으고, 마법진을 구축해, 방출한다는 세 가지의 단계가 필요하지만 브레스는 그런 것들을 일축하고, 단번에 막대한 화력을 뿜어내니.
드래곤의 상징과도 같은 기술로 자리 잡을 수 있던 것이다.
그런데 드래곤이 브레스를 못하면 드래곤이라고도 부를 수 없다.
드래곤 실격인 이무기 정도지.
브레스를 못 쏜다는 녹스의 말에 유성우가 노골적으로 실망하는 표정을 짓자 녹스의 꼬리가 씁쓸한 듯 바닥을 쓸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럼 폴리모프를 풀어봐라. 크기라도 좀 가늠해 보게.”
그의 말에 녹스가 양손을 꼭 쥔 채 안면근에 힘을 주었다.
꼬리가 빳빳이 서서 파르르 떨리고, 이내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는데.
녹스는 드래곤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안 되는데요.”
“할 줄 아는 게 없구만.”
“죄송해요…….”
“뭐, 딱히 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다. 어느 정도 예상하던 일이긴 했으니까.”
“네?!”
유성우가 생각하기로는 녹스의 폴리모프는 그녀 스스로 건 게 아니었으리라.
누군가가 강제로 녹스에게 폴리모프를 걸어 인간형의 형태로 고정해 둔 것.
유성우는 그게 녹스가 원래 형태로 돌아가지 못하는 원인이라 생각했다.
녹스 스스로 풀기에는 너무나도 강력하게 걸린 마법이라, 어느 정도 마법에 숙달되지 않으면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리라.
“아는 마법도 없지?”
“……부끄럽게도.”
“그럴 수밖에 없겠지. 지금까지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기억도 없고.”
드래곤은 만능에 가까운 존재로 태어나지만, 태어날 때부터 만능은 아니다.
타고나기를 마력의 흐름을 눈으로 볼 수 있고, 그것을 다룰 수 있으나 정말 천재가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배우는 수밖에.
녹스에게는 그런 것들이 결여되어 있었다.
기억을 잃었다 하더라도 배운 게 있다면 몸에 쌓여 있던 것들이 자연스레 튀어나올 테지만.
그런 것들을 배우기도 전에 부모와 헤어졌기에, 마법도 브레스도 못 쓰는 반푼이 드래곤이 되어버렸으리라.
“그렇다면 신체 능력이라도 좀 보자. 저기 나무를 향해 주먹을 휘둘러봐라. 전력으로.”
“전, 전력으로…….”
유성우의 말에 아름드리나무 앞으로 다가간 녹스가 앙증맞은 주먹을 꽉 쥐었다.
볼품없는 자세. 하지만 주먹에 자연스레 밀려드는 강대한 마력.
반푼이어도 드래곤은 드래곤인지, 심장에서 맥동하는 방대한 마력은 그녀의 의지에 화답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기를 가르는 주먹.
아름드리나무에 닿은 주먹은 ‘툭’ 소리를 내었지만, 그 결과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주먹에서부터 방출된 무절제한 마력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지더니, 나무를 부러뜨리고, 대지를 풍비박산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연비가 구렸다.
녹스는 주먹 한 번 내지른 걸로 헥헥대며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마력의 사용을 조절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에 가르쳐야 할 게 꽤 많겠다 싶었다.
“신체 능력은 쓸 만하군.”
공성용으로 써먹으면 딱 좋을 화력이었다.
브레스랑 마법을 쓰지 못하는 건 좀 아쉽지만, 나중에 다른 드래곤을 만나게 되면 두들겨 패서라도 녹스의 가정교사로 삼으면 될 일이었다.
어느 정도 쉬고 난 뒤 마력을 회복한 녹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자신이 만든 광경과 제 주먹을 번갈아 보더니 치켜들었다.
“이 정도면 되나요?”
“그래. 그 정도면 됐다. 그럼 다음으로는…… 밤드래곤, 네 특성을 좀 알아볼 차례인데.”
“나이트 드래곤이에요.”
“그래, 밤용아. 뜻은 똑같은데 뉘앙스가 틀린 걸 용케 알아먹네.”
“…….”
녹스가 눈을 유성우를 향해 부라렸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에 검을 빼 들었다.
핏빛 검신의 직검이 그의 손에 쥐어지자, 녹스는 커다란 눈을 끔뻑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 그걸로 뭘 할 생각이세요?”
“……본능이 가장 잘 드러나는 때는 목숨이 경각에 달해 있을 때라는 말, 들어봤나?”
“……아니요.”
“그래, 들어봤을 리가 없겠지.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엄마용이 이런 걸 가르쳐 줄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녹스는 직감했다.
유성우는 자신을 정말로 베어버릴 생각이라는 것을.
검을 쥔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그저 단순히 검을 느슨하게 쥔 채 자신을 바라보는 것뿐인데도.
무형의 살기가 풀풀 피어올랐다.
그가 피워올리는 살기는 무척이나 짙었다.
숲의 산새들이 놀라 도망갔고, 들짐승들 또한 이쪽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풀벌레들은 살기만으로 짓눌려 죽었다.
시끌시끌하던 숲이 단숨에 조용해졌다.
정적과 침묵.
유성우와 녹스의 사이를 가득 채운 것은 그것뿐이었다.
농밀한 살기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범인이라면 버티지 못하고 짓눌려 죽을 것만 같은 압도적인 기세.
‘모, 몸이 안 움직여…….’
녹스는 이 자리에서 당장 도망치고 싶었으나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히 위압감을 넘어서, 뇌리에 침투하는 감각은 마치 목덜미에 검을 들이댄 것처럼 날 선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을 초월한 자의 영역.
단순히 검을 들고 서 있는 것만으로 대기를 짓누르는 기백을 내보이는 자의 존재감이었다.
유성우가 천천히 검을 위로 들어 올렸다.
“이런 방식으로 네 본능을 끌어내는 걸 조금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녹스의 귀에 유성우의 중얼거림은 들리지 않는다.
그저 시선은 그의 핏빛 검신으로 향했을 뿐이며, 몸은 딱딱하게 굳었다.
뒤이어 찾아오는 예지와도 같은 직감.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죽는다.
떨어져 내리는 검에 무참히 반으로 토막 나 생명의 불꽃은 너무나도 손쉽게 꺼져버리리라.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방대하게 늘어나기만 하는 살기에 머릿속은 한 가지의 생각만으로 가득 찼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오랜 시간 종의 정점으로 군림해 오며 숱한 강자들을 쓰러뜨려 온 드래곤의 생존본능이 녹스의 안에서 눈을 떴다.
“캬아아아아악-!!”
“그래, 이래야지.”
녹스는 몸의 중심을 낮추며, 양손으로 땅을 짚고 네 발로 섰다.
자줏빛의 눈동자 속에는 금빛의 세로 동공이 자리 잡으며 살기를 피워올렸고.
등 뒤에서는 옷을 찢고 피막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목숨 간당간당하니까 본성이 제대로 튀어나오잖냐. 피어에 날개에.”
유성우는 그리 말하면서도 검을 내려놓지는 않았다.
아직, 아직이었다.
그가 녹스에게서 보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자극당한 본능에 이성을 잃은 드래곤이 아니라, 나이트 드래곤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용의 진가를 보고 싶었다.
“자, 더 보여봐라.”
유성우는 살기를 더욱 증폭했다.
이제는 무형의 살기는 날 선 검이 되어 녹스의 전신을 압박했다.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죽인다는 의지를 담아서.
그리고 그렇게 얼마간 압박하자, 녹스는 네 발로 선 채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혼절했다.
“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