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27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269화(270/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269화
녹스(12)
유성우는 어비스 안에서 슈텐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슈텐도지가 적의를 완전히 거두었기에 그 또한 검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목적을 이루는데 협조해 준다는데, 굳이 싸워서 전력을 소모할 이유도 없고.
‘진짜 목적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슈텐도지는 협조적으로 나왔다.
이나리의 눈을 속이기 위해 어비스를 잠시간 감추기로 했고, 이후 유성우가 소동의 장본인을 치러 갈 때 협력하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금 차를 타고 돌아가던 중, 코유키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의 팔에 있던 이나리 님의 식신은 어떻게 된 거죠?”
“슈텐도지랑 싸우던 중 견디지 못하고 소멸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유성우와 슈텐도지 사이에서 몇 번이고 부딪친 기운은 신격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무리 신의 식신이라고 해도 견딜 수 있는 게 아니라, 그의 팔목에 있던 여우 문양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나리 님의 식신이.”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얼마간 차를 타고 도착한 후시미 이나리 신사, 본당.
이번에는 내실이 아니라 사람을 물린 본당이었고, 슈아넬과 홍서화도 함께 참석했다.
코유키가 본당에서 기도를 올리자, 바람이 몰아치며 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활짝 열린 뒤쪽의 문에서 빛이 들어차더니 저벅저벅,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발소리는 세 명을 지나쳐 가더니 이내 발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에도 보았던 여우의 귀와 꼬리를 가진 이나리 신이 세 명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런 고귀한 신의 모습을 봤음에도, 셋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유성우는 두 번째 보는 거라 그렇고.
홍서화는 뭐가 대단한 건지 이해하지 못했고.
애초에 슈아넬은 누구보다 신격인 ‘세계수’와 가장 가까웠던 하이엘프였다.
“…신에 대한 공경이라고는 쥐뿔만큼도 없는 놈들이로구나.”
“그런 거 있으면 뭐, 밥이라도 나오나? 오병이어 기적 보여주나?”
유성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 말대로 규키와 사토리, 슈텐도지를 처리했다. 겸사겸사 잡은 놈들도 있는데 그건 내가 아량 넓게 봐주지.”
그의 말에 이나리는 두통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손가락으로 제 미간을 꾹꾹 누르며 숨을 길게 내뱉더니 말했다.
계속 현신하고 있어봤자 신력만 빨릴 뿐이니, 빨리 용건을 처리하는 게 더 옳다고 생각한 그녀였다.
“그래, 그래도 약속은 지켰으니 말해주겠다. 자네의 귀엽고 귀여운 어린 용을 꼬드기는 건 타카마가하라의 삼귀자(三貴子) 중 한 명인 타케하야스사노오노미코토(建速須佐之男命). 스사노오라고도 불리는 군신(軍神)이느니라.”
“역시.”
“알고 있었나?”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일본 신화에서 용살(龍殺) 설화를 가진 건 스사노오밖에 없을 테니까.”
“바다 건너에서 온 주제에 일본 신화에 대해 잘 아는 모양이로구나. 그래, 스사노오가 자신의 화신(化神)으로 그 어린 용을 선택한 것이느니라.”
“좋아, 그렇다면… 스사노오가 있는 곳을 말해라. 이나리.”
“스사노오는 타카마가하라에서 나오지 않느니라. 가끔 자신의 신사를 통해 신탁만 내릴 뿐이지.”
“…그럼 타카마가하라로 가는 길을 열어주면 좋겠군.”
그의 말에 이나리는 그럴 수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타카마가하라는 일본의 성신전.
적법한 절차로 일본의 신격으로 인정받은 자가 아니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아무리 유성우에게 정보를 제공한다고 말했더라도 타카마가하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건 그녀로서도 월권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오면 내가 한 일에 비해 정보의 질이 너무나도 떨어지는 것 같다만. 거래는 언제나 등가교환이어야만 한다는 걸 모르나?”
아니, 알 리가 있나.
지금까지 공물이나 받으면서 군림해 오던 놈들이.
신도들의 중요성은 알지만 늘 불공정거래를 행해온 놈들이 뭘 알겠는가.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나리는 완고하게 거절했다.
스사노오의 이름을 언급한 것만으로도 큰 부담이었으니, 타카마가하라로 가는 길은 열어줄 수 없다고,
유성우가 슬쩍 말했다.
“그렇다면 쿠단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수밖에 없겠군.”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부터 나가서 교토의 모든 유적지를 부숴버릴 거다. 겸사겸사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나리 신사 본당도 전부 부수고, 눈에 보이는 신사란 신사는 모조리 부숴버릴 생각이다.”
“……!”
“신사를 부수면 너도 약해지겠지. 나를 잡아 죽이겠다고 진체를 일으키는 동안 그사이 도망가면 되고. 아, 신격이 인간계에 직접 개입하려면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하니 엄청나게 약해지겠군. 그 정도면 내가 직접 죽여 버릴 수도 있겠어…….”
유성우는 저울질을 시작했다.
약속을 어중간하게 지키고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것이냐, 아니면 타카마가하라로 가는 길을 열어줄 것이냐.
이전에 이나리가 한 번 당했던 수법이었으나 그녀로서는 물러날 구석이 없는 수법이었다.
“…이 자식.”
이나리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다.
인간보다는 여우에 더 가까운 얼굴이 된 이나리가 그르릉거리는 소리까지 내기 시작하자, 유성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다.”
“농담도 정도껏…….”
“이나리 신사는 건드리지 않겠다. 하지만 그 외의 신사는 모조리 부숴버릴 생각이다. 교토, 오사카, 나라… 더 부술 게 없으면 도쿄로 올라가서 부수면 되겠군. 거기에는 유명한 신궁이 있지 않나? 부수고 불태우면 아주 장관일 것 같은데.”
선택지가 달라졌다.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고 다른 신들을 내버려 둘 것인가, 아니면 모두를 챙긴다는 생각으로 타카마가하라로 가는 길을 열어줄 것인가.
어느 쪽이든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슬쩍 뒤쪽의 코유키를 쳐다보았다.
벌벌 떨고 있었다.
이것이 저 남자의 본질이겠지.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흉흉한 살기는 얼마나 많은 살육을 저질렀는지 가늠할 수 없다.
살겁(殺劫)으로 이루어진, 서슬 퍼런 칼날과도 같은 남자다.
자신의 기운을 슬쩍 드러내는 것만으로 일반인들은 할 수 있는 게 두려워하는 것밖에 없다.
현현인신(現顯人神).
영체가 아닌 인간의 몸으로 신격에 도달한 자이기에, 그 힘을 지상에 마음껏 휘두를 수 있다.
신들이 강림해서 합심하지 않는 이상 그를 막아낼 재간은 없을 터였다.
이나리는 머리가 아픈 걸 깨닫고는 말했다.
“그래! 내가 졌다! 내가 졌느니라! 타카마가하라로 가는 길을 열어주도록 하겠느니라!”
“그거 고맙군.”
“하지만 신들이 있는 구역으로 열 수는 없다. 금방 눈치채고 날아와 너를 도륙낼 테니.”
“배려도 고맙고.”
이나리의 마지막 남은 양심이었다. 확, 신들 한가운데에 떨어트려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도리가 아니었다.
그는 약속을 지켰으니까.
“그럼 문은 언제쯤 열면…….”
“길게 끌 생각은 없다. 내일 새벽에 출발하도록 하지.”
유성우의 대답을 들은 이나리가 모습을 감추었다.
꽤 길게 현신하고 있었으니, 들을 건 다 듣고 가버린 것이었다.
유성우는 홍서화와 슈아넬에게 가자고 눈짓했다.
어느새 고양이처럼 몸을 말고 자고 있던 슈아넬을 홍서화가 들어 올려 그의 뒤를 따랐다.
참 속 편한 녀석이었다.
***
다음 날 새벽, 유성우는 슈아넬과 홍서화를 두고 홀로 이나리 신사로 향했다.
둘은 다른 해줘야 할 일이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나리 신사를 걸어 올라갔다.
신의 영역에 들어서는 경계, 토리이(鳥居)에 들어서서 걷고 있자 어느 순간 발소리가 자신의 발에 맞춰 하나 더 들려왔다.
“…그대는 아직 채 백 년도 살지 못했음에도, 신격에 다다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느냐?”
“모른다.”
“자신의 생을 쏟아부었다는 뜻이다. 한 가지 일에 일생을 쏟아부어도 그것이 신격에 닿을지, 닿지 않을지는 불분명한 일이느니라. 재능이 하늘에 닿은 자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
“…….”
“네게 느껴지는 업(業)은 살업(殺業)이 대부분을 채우고 있느니라. 평범하게 살아서는 채우지 못하는 업이니,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다면 영원히 고통받게 되겠지.”
“그래도 상관없다. 내 목표만 이룰 수 있다면야. 죽은 뒤를 생각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으니.”
옆에서 같이 걷던 이나리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유성우가 돌아보자, 이나리는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감았다 뜨며 물었다.
잘 익은 밀색의 번뜩이는 눈동자가 그를 꿰뚫어 보듯 했다.
“살겁을 그리도 많이 쌓아두고 평화와 안녕(安寧)을 바라다니 분에 넘치는 소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이냐?”
유성우 또한 붉은 안광을 빛냈다.
살겁이 무엇이고, 업이 무엇이냐.
자신의 알 바는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싸웠으며, 삶을 쟁취하기 위해 남을 죽여왔다.
자신은 죽음으로 완성된 검이다.
이미 남의 것을 많이 빼앗아 왔는데, 조금 욕심을 더 부린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없다.
“원하는 건 손에 넣을 거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무슨 짓을 해서라도…….”
지금까지 쌓아온 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해도, 원하는 걸 얻는다면.
그것은 충분한 결과다.
그가 주먹을 꽉 쥐자, 이나리는 피식 웃으며 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러자 금빛 기운이 모여들더니, 사람 한 명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차원문이 만들어졌다.
“타카마가하라의 반대편, 명계(冥界), 지옥(地獄)으로 통하는 통로이느니라. 타카마가하라로 가는 문은 열어줄 수 없으니 이것으로 만족하거라.”
“거기서 타카마가하라로 가려면 얼마나 걸리지?”
“운에 따라 다르겠지. 운이 좋다면 하루, 나쁘면 십 년. 하지만 현계와 천계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니 그렇게 걱정할 것 없다. 운 나쁘게 백 년을 헤매도 백 일밖에 지나지 않을 테니.”
“그거 좋군.”
유성우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차원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나리는 꿈에도 모를 터였다.
지옥에 그의 조력자가 있으리라고는 말이다.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이나리는 차원문을 닫고는 계단에 걸터앉았다.
“에효… 나도 많이 늙었나.”
한숨과 함께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일출을 감상했다.
***
슈텐도지는 유성우보다 한발 앞서 지옥에 가 있었다.
야마타노오로치는 과거에는 요괴였으나, 지금은 엄연히 타카마가하라에 이름을 올린 용신.
‘잘 도착했으려나 모르겠군.’
그는 술병에서 커다란 잔에 술을 따라 마시며 유성우를 떠올렸다.
더럽게 강한 인간이었다.
오랜만에 호승심이 일게 만드는 강력한, 아름다운 검을 휘두르는 인간이었다.
자신을 죽인 인간 영웅이었던 요리미츠는 자신이 술에 취했을 때 목을 베는 비겁한 놈이었지만.
유성우는 오히려 같이 술을 마셔주는 진정한 전사였다.
그래서 좀 더 협조해 주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이나리에게 타카마가하라로 보내달라고 하면 지옥으로 보내 줄 거라고 조언했던 것도 그였다.
거기에서부터, 자신이 타카마가하라로 가는 길을 안내하겠다고 했고, 유성우는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옥이 워낙 넓어서 어디서 만날지 알 수가 없었다.
팔열지옥(八熱地獄)과.
팔한지옥(八寒地獄).
이 넓은 곳에서 그를 어떻게 찾아갈지 잠깐 고민하던 중, 부하인 오니 한 명이 허겁지겁 달려와 말했다.
“형님! 지금 중합지옥에 미친놈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
옳거니.
기다리던 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