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299)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298화(299/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298화
성신전(8)
알맹이가 다른 서연정이 돌아가고 난 뒤, 소파에 앉은 유성우는 한반도 성신전의 초대에 대해 생각했다.
한반도.
자신이 나고 자란 땅.
분단되었기는 했으나 그 신화와 위인들의 업적은 그대로 남아 하나의 성신전을 이루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자그마한 땅덩어리를 가진 것치고 묘하게 위인이 많이 나오는 동네.
그들의 전력이 얼마나 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일본의 성신전인 타카마가하라를 다녀오고 나서 어느 정도 감을 잡기는 했지만, 성신전마다 그 한계는 다를 테니까.
‘일본의 성신전은 규모에 비해 약한 편이라고 보아도 좋겠지.’
일본의 성신전은 거대했다.
팔만이 넘는 신이 소속되어 있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메이저한 신과 마이너한 신의 격차가 너무 큰 게 문제였다.
신화 자체가 불분명하거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도 많은 데다가.
정확한 연원과 힘을 가진 신이라고 해봤자 타카마가하라의 4층과 5층에 거주하는 신들뿐이다.
열이 조금 넘는 그들이 일본의 성신전을 유지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특이한 점은…….’
타카마가하라에 일본의 위인처럼 보이는 놈들은 없었다는 것이다.
신화에 기록된 이들, 현재도 신앙을 받는 고대의 신들.
그리고 온갖 잡신들.
그런 이들만이 타카마가하라를 채우고 있었다.
일본의 성신전은 그런 이들만 신격으로 인정해 타카마가하라에 받아들인 걸지도.
‘하지만, 이전에 본 한반도 성신전의 신들은 전쟁에서 활약하던 무장도 있었지.’
무당의 몸을 빌려 자신에게 불쾌함을 내보이던 신격이 하나, 경의를 내보이던 신격이 하나.
이번 성신전은 회피할 수 없다.
미룰 때도 아니었고, 미룬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도 없을 테니까.
차라리 지금, 스사노오를 쓰러트려 주가가 최고조를 달리고 있을 때가 제일 적절하리라.
“일주일 뒤라…….”
과연, 자신의 지금은 한반도 성신전의 신격들에게 무슨 취급을 받을까.
걸림돌? 눈엣가시? 영입해야 하는 인재?
어느 쪽이든 그가 취해야 할 태도는 달라지지 않을 터.
목표는 정했고, 나아갈 길 또한 일직선.
“오빠.”
유성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고 있자, 맞은편의 유지우가 그를 불렀다.
“오빠, 나한테도 무슨 일인지 좀 알려주면 안 돼? 혼자 너무 끙끙 앓는 것 같은데.”
“…흠.”
유성우는 유지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오빠가 왜 전부를 말해주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서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처럼 보이지는 않아서 그래.”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
이건 일종의 정치 싸움이나 다름없다. 해결도 안 될 문제를 혼자서 끙끙 앓는 것보다, 여럿이서 논의하는 게 해결할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정치 싸움이라면 자신보다 유지우가 한 수 위일 터.
왜냐면 유성우가 주로 하는 건 무력 해결이었지, 논리나 정치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유성우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대략적인 상황을 들은 유지우는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가했다.
“음, 대기업 정도의 매출을 내는 1인 기업인데 인수합병을 당할지, 아니면 기업 규모를 늘릴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는 거구나.”
“그렇게 되나?”
“그런데 기업 규모를 늘리기로 하면 다른 대기업에서 적대적 인수합병을 무리해서라도 진행한다는 얘기겠지.”
“뭐, 그런가?”
“대답이 뭐 그래? 그렇다면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다른 기업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거겠지.”
“싸움을 붙인다라.”
유지우가 손가락을 튕기자, 테이블에서부터 홀로그램이 솟구쳤다.
테이블에서 솟구친 홀로그램에는 지금까지 유성우가 말했던 세력 구도가 그려져 있었다.
유성우를 중심으로 주위를 둘러싼 온갖 성신전들.
일본 성신전, 한반도 성신전, 북유럽 성신전, 그리스 성신전.
아직 뜻을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그 외에도 유성우를 노리는 성신전들.
“이만한 대기업들이 끼어든다면 자연스레 인재 쟁탈전에 가깝게 흘러갈 거야. 이번에 가는 한반도 워크샵에서 당당하게 선언하는 거지.”
“…대충 알겠군. 경쟁을 붙이라는 거겠지? 가장 큰 메리트를 주는 놈들의 성신전으로 들어가겠다고.”
“그거지, 그럼 꽤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그동안 오빠는 기업 규모를 키우면 되는 거지. 일종의 역면접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거야.”
확실히 유지우는 이러한 정치 싸움에 밝았다.
지금까지 끙끙대던 게 멍청할 정도로 순식간에 풀렸다.
물론 모든 일이 잘 흘러가기 위해서는, 유성우가 잘 해내야 할 일이겠지만.
이런 철두철미(?)한 계획이 세워진 이상 실패할 리가.
유성우가 만족스럽게 웃자, 유지우가 따라 웃으며 말했다.
“어때? 오빠. 같이 논의하는 편히 훨씬 일이 잘 풀리지?”
“너도 이제 어린애가 아니구나. 역시.”
“오빠랑 나이 차이는 더 벌어졌을지라도, 나도 배우기는 많이 배웠다고.”
유성우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지우는 성장했고, 어떻게든 자신의 힘이 되어주려 노력하고 있다는 걸.
지금까지 유성우가 오빠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해왔다면, 유지우도 동생으로서 할 일을 하려 들었다.
“…지우야, 많이 컸구나.”
“적어도 오빠 등 밀어줄 수 있을 정도는 컸지.”
“나쁘지 않군. 내가 성신전을 세운다면 너를 첫 번째로 받아주도록 하지.”
“그거 참 영광입니다, 그려.”
***
그리고 한반도 성신전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기까지 일주일.
유성우는 그동안 밀려 있던 일을 처리했다.
단탈리안과의 계약을 지키기 위해 여러 이야기를 묶어 서면으로 전달한다거나.
마녀들을 불러모아 성신전을 새로이 구축할 물밑작업도 시작했고.
정보는 많을수록 좋으니, 한반도에 있던 여러 신화와 성신전에 있으리라 생각되는 위인들도 조사했다.
“한국사 시험을 본다면 백 점을 맞을 수 있을 것 같군.”
“근대는 공부 안 해서 개털리는 거 아니야?”
“…근대는 빼고.”
아무래도 근대의 인물들이 성신전에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신격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그 이야기가 입에 오르내려야 하고, 그만한 위업이 필요하다.
일본의 유명한 대검호인 미야모토 무사시도 준신격에 그쳤으니, 아무래도 근대의 위인들은 그 기간이 짧아 성신전에는 없지 않을까.
있다고 해도, 성신전에 오를 정도의 위업이라면 유성우가 모를 리도 없고 말이다.
“아무튼, 오늘밤 가는 거지? 조심해서 다녀와.”
“그래.”
“아저씨,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녹스가 유성우의 다리에 매달린 채 그리 말했다.
일주일간 녹스와도 좀 놀아준 그였다. 주로 어비스 안에 들어가서 용이 갖춰야 할 덕목을 가르쳤다.
유지우가 뭐라고 했지만, 뭐, 녹스도 즐거워했으니 된 일이다.
“그래서, 거기는 어떻게 가는 거야? 데리러 오나?”
“서연정이 길잡이 역할을 할 거다.”
“언니가… 그런데 나 일부러 안 물어보긴 했는데, 결국에 언니 안에 있는 신격은 누구야?”
“나도 모른다. 이름이 잊힌 신격처럼 보이는데 지금까지 자아를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꽤 널리 퍼졌던 토속신 정도는 되는 모양이지.”
그 정도가 아니라면 서연정 안에 있는 알맹이는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보름달이 뜬 날.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서연정이 어느 순간 거실에 서 있었다.
“아오, 깜짝이야!”
서연정이 갑자기 나타나자 놀란 유지우가 소리를 빽 질렀다.
인간보다 신에 가까운 이질적인 모습의 서연정.
그녀가 말했다.
“성신전으로 향하는 길이 곧 열릴 거예요. 향할 준비를.”
“이미 준비는 끝마쳤다.”
유성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장은 늘 입는, 편한 복장.
셔츠 한 장에 바지 하나.
그리고 허리춤에는 일생을 끼워 넣은 채였다.
웬만하면 뽑지 않는 게 좋겠지만, 언제든 뽑을 수 있도록.
“…그럼 출발하면 되겠군요.”
이윽고, 보름달이 떴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 뜬 보름달은 고고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서연정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거실의 한쪽 구석이 일그러지더니, 벽이 해체되어 계단이 되었다.
달까지 이어진 계단.
유성우는 잠깐 머릿속으로 지구와 달까지의 거리를 생각했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그 거리를 저 계단으로 가자고 하지는 않을 테니…….
“제가 먼저 가도록 하죠.”
서연정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희끄무레한 기운이 빠져나오더니 형체를 이루었다.
마치 유령처럼, 반투명한 모습.
무당과 같은 복장의 여성이 먼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고, 유성우는 녹스와 유지우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뒤따라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몇 걸음 걷지 않았음에도 뒤쪽에 있어야 할 거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득한 거리에서 보이는 지구만이 자리했다.
유성우는 잠시 멈춰서서 둥글고 아름다운 푸른 별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신들의 놀이판이 되어버린 지구다.
별로 평화롭지는 않지만 이런 아름다운 별을 그저 놀이판으로 생각하는 자들.
자신은 지금 그런 자들을 만나러 달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왜 그러시죠?”
이름 없는 신격이 물었다.
유성우는 대답하지 않고 잠시간 더, 지구를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둘은 계속해서, 한동안 계단을 올랐다.
한반도 성신전으로 향하는 길은 이리도 멀던가.
‘두 번은 오기 싫어지는군.’
빌어먹을 무슨, 오작교를 건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야말로 천국의 계단이다.
물리적인 의미로도.
잠자코 걷던 그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 거지?”
“저도 몰라요. 이 계단은, 걷는 이의 신격에 따라 그 길이가 결정되는 그런 계단이니까요.”
“미치겠군.”
그럼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가 없다는 거 아닌가.
그가 인상을 찌푸리자 이름 없는 신격이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군요. 지금 당신의 신격은 그 누가 보아도 인정해 줄 만하니까. 앞으로 조금일 거예요.”
“두 번은 오기 싫은 방식인데.”
“…당신이 한반도 성신전에 한 자리를 차지하면 이런 방식도 바꿀 수 있겠지요.”
“그런가?”
뭐, 들어갈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의 끝이 보였다.
“드디어 거의 다 온 모양이군.”
“생각보다 빨랐네요.”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계단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서서히 드러났다.
계단의 끝에 있는 것은 다름아닌 으리으리한 궁전.
멀리서 볼 때는 작아 보였으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크기가 여실히 느껴진다.
보는 것만으로 압도될 것 같은 웅장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간직한 미의 극치를 담은 단청색의 월궁(月宮)이 유성우의 앞에 모습을 내보였다.
그 입구에 선 이름 없는 신격이 뒤를 돌아 유성우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유성우. 이곳이야말로 한반도 성신전, 옥황궁(玉皇宮)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