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3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30화(30/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30화
토월족(4)
“지독한 새끼…….”
설마 밥집 앞에서 잠복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대체 어떻게 된 감각기관이면 여기까지 쫓아오는 걸까.
유성우가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자 은백색의 머리칼을 늘어뜨린 토월족이 말했다.
“드디어, 드디어 찾았습니다. 이런 곳에 계셨군요.”
“사람 잘못 봤다.”
탁.
유성우는 매정하게 토월족의 손을 쳐내고는 녹스의 손을 붙잡고 집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토월족은 매정한 처사에도 불구하고 도도도 달려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제 이야기를 한 번만 들어주시죠. 부탁드립니다.”
“내가 왜? 사람 잘못 봤다니까. 그리고 종교 같은 거 안 믿는다.”
“저는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이 땅에서 가장 강한 당신을 찾아왔다고요.”
“나 더럽게 약한데. 숟가락도 겨우 들 정도라고.”
녹스는 거짓말도 좀 믿을 만한 거짓말을 하라고 생각했다.
이 우락부락한 근육을 보고 대체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저, 정말인가요……?”
믿는 사람이 있었다.
녹스는 어이없는 광경에 생각을 포기하고는 그저 유성우의 옷자락만을 꽉 잡고 있었다.
“그래, 그러니까 그냥 가라.”
상대할 기운도 없었다.
유성우는 다시금 토월족을 지나쳐 걸어갔다.
뒤쪽에 서서 정말 자신이 잘못 찾았나 고민하던 토월족은 이내 귀를 삐쭉 세우더니 말했다.
“거, 거짓말이죠! 어떻게 그런 근육을 가지고 숟가락을 겨우 들어요! 게다가 지금 달께서 말씀하시고 계세요. 당신이 바로 제가 찾는 사람이라는걸!”
그리 소리치며 달려오다 토월족은 발을 헛디뎌 성대하게 넘어졌다.
유성우는 넘어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가려고 했는데, 그의 옷자락을 잡은 채 졸졸 쫓아가던 녹스가 뒤를 흘깃 돌아보곤 말했다.
“아저씨, 이야기라도 들어보면 안 돼요?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아니, 이런 거 들어주면 안 돼. 한번 들어주면 끝을 모르고 계속 들어달라고 한다니까.”
“그래도 저 언니가 너무 불쌍해요. 밥도 못 먹었는지 배에서 계속 소리가 나고…….”
처량하게 바닥에 넘어진 토월족은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유성우를 바라보았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지, 그 토월족이 이런 데서 눈물을 흘리면서 넘어진 모습을 본 사람이 있다면 순식간에 SNS에서 화제가 되었으리라.
그래도 유성우가 넘어가지 않자 토월족이 소리쳤다.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세, 세상이 멸망할 거예요! 진짜로요!”
“사이비네.”
어비스가 나타나고 난 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많이 늘었다.
혼란스러울 때 종교에 의존하게 되는 것도 인간의 특성이었으니까.
유성우는 세상이 멸망할 테니 일찌감치 어비스로 들어가 새로운 세상을 찾자고 주장하는 종교가 있다는 기사를 보았던 걸 떠올렸다.
“아,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지금 이 세계는 커다란 위험에 처해 있다고요!”
“하아…….”
익숙한 패턴이다.
이계에 있을 때도 몇 번이고 겪었기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대부분은 사기였고, 진짜라고 할 만한 건 유성우를 죽이기 위한 함정이었다.
그는 눈을 감고 기감을 펼쳤다.
주변에 숨어 있는 기척이 다섯.
그것도 꽤 강한 놈들이었다.
유성우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주변에 숨어 있는 놈들 전부 꺼지라고 하면 이야기는 들어주지.”
“……모두 물러나세요.”
눈앞에 있는 토월족의 권위는 굉장한지 주변에 숨어 있던 이들이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다.
유성우는 그들이 충분히 멀어지자 손가락으로 근처 카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리로 가지. 길거리에서 얘기하는 것도 뭐하니까.”
“……네!”
유성우와 녹스, 그리고 토월족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살짝 구석진, 칸막이가 쳐진 자리였다.
“아저씨, 이거 정말 맛있어요.”
녹스는 여러 케이크와 초콜릿이 들어간 음료를 앞에 두고 싱글벙글 이것저것 즐겼다.
유성우는 딸기가 들어간 셰이크를 입에 문 채 얼른 말하라는 듯, 토월족을 쳐다보았다.
참고로 토월족의 앞에는 물 한 잔만이 있을 뿐이었다.
“……제 소개부터 해야겠지요. 저는 달에서 온 선조의 피를 잇는 토월족의 제사장, 유월입니다.”
“달토끼.”
“토월족입니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유성우는 눈썹을 씰룩이며 잠자코 유월의 이야기를 들었다.
“토월족은 대대로 신비한 능력을 타고나죠. 달의 목소리를 듣는 월문이라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본론은?”
“저 멀리 계신 달께서는, 한국에 있는 가장 강한 자를 찾으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길로 저는 한국으로 향했고, 이곳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됐고. 세계가 멸망한다느니 그거나 말하라고.”
“크흠,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겠군요. 어느 날, 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토월족의 위대한 신 루나께서 이 땅에 커다란 위험이 닥칠 것이라고.”
물을 한 모금 마신 유월이 말을 이었다.
“세계 곳곳에 생기는 검은 구멍, 그것은 차원과 차원이 접함으로써 생기는 일그러짐입니다.”
“그 정도는 알지.”
“하지만 이게 누군가의 음모로 시작된 일이라면요? 좌시할 수 없는 일임이 분명합니다.”
유월의 말에 유성우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어비스가 누군가의 음모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녹스의 증언과 존재가 그것을 증명하기도 했고.
하지만 다른 이의 입에서 이리 직접적으로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구의 일그러짐은 타 차원에 비해 심각한 편입니다. 다른 차원 같으면 한두 개에 불과할 어비스가 전 세계에 걸쳐 수백 개씩 생성되고 있으니…….”
“너희가 살던 곳은 어땠지? 아무 이유도 없이 지구로 넘어왔을 건 아니지 않나.”
“……좋은 지적이십니다. 토월족의 땅, ‘블루문’은 침략자에 의해 대부분의 영토가 침식당한 상태입니다. 자력으로는 구제할 길이 없기에 외부에서 조력자를 찾고자 한 것이고, 지구에 도착한 것이죠.”
유월은 살짝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지구에서는 고귀한 취급을 받는 토월족의 치부라고 볼 수 있었다.
본래는 이렇게 밝힐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그녀는 눈앞에 있는 유성우가 자신이 생각하는 ‘구원자’임이 틀림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자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기괴하다.
게다가 옆에서 귀엽게 케이크를 포크로 찍어 먹는 소녀 또한 감추고는 있으나,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을 품었다.
눈앞에 있는 둘 다 토월족 제일의 실력인 유월도 어찌할 수 없는 존재였다.
“뭘 다 묻히고 먹냐.”
유성우는 냅킨으로 코코아 파우더와 생크림으로 범벅이 된 녹스의 입가를 닦아주고는 말했다.
“그래서 네가 날 찾아온 이유가, 너희 땅을 구해달라, 그거냐?”
“……그렇게까지 주제넘은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조금만 힘을 보태주셨으면 할 뿐입니다.”
“안 해. 내가 할 만한 이유가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전혀 없거든.”
“많은 이의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그 부분을 고려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안 한다. 개고생도 한 번이지, 무슨 꼴을 당하려고 두 번이나 전쟁터에 걸어 들어가는 미친놈은 아니라서 말이다.”
유성우는 냉정했다.
눈앞에 처한 것이라면 모를까, 외국도 아니고 다른 차원까지 가서 문제를 해결해 줄 용의는 없었다.
게다가 그의 말대로 그는 평화롭게 살기 위해 돌아온 것이지.
다시 전쟁터로 가서 목숨을 내버린 것처럼 싸우기 위해 돌아온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 찾아봐라. 나는 지금 여기서 내 사람들 지키는 걸로 충분히 벅차니까.”
“…….”
유월은 그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합당한 말이었다.
토월족은 강인한 종족.
그러나 그런 토월족을 몰아낸 침략자를 쓰러뜨리기 위해 힘을 빌려달라는 건 유성우에게도 커다란 리스크였다.
어쩌면 목숨을 걸어서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는 적이기에.
아무런 보상도 내걸지 않으면서, 그저 다른 이의 목숨을 인질 잡는 건 토월족을 이끄는 자가 할 말이 아니었다.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유월의 귀가 잠깐 축 처졌다.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좀 더 제대로 준비해서요.”
“오지 마. 너희들 일은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다음에는 반드시 끌릴 만한 보상을 준비해서 오도록 하겠습니다.”
“오지 말라고.”
“다음에 꼭 봐요.”
사람 말은 들리지도 않는 건지.
유성우의 말에도 유월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카페를 벗어났다.
유성우는 남은 딸기 셰이크를 빨대로 빨아올리고는 숨을 길게 내뱉었다.
남의 사정에 간섭할 여유는 없다.
간섭할 이유도 없고.
자신은 남을 위해 희생하는 그런 정신머리가 박힌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안 도와줘도 돼요?”
“도와줘도 득 될 게 없지. 나만 개고생하고, 저놈들은 땅 되찾았다고 신나 하고. 내가 경력직이라 잘 아는데…….”
웨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에라이 씨X…….”
어린애 앞이라도 과감하게 욕설을 내뱉을 수 있는 사람.
그게 바로 유성우였다.
갑작스럽게 고막을 두들기기 시작한 어비스 경보음에 그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이, 이게 무슨 소리예요?!”
“곧 귀찮은 일이 벌어진다는 신호음이다. 일단 내 쪽으로 붙어.”
녹스가 유성우의 곁으로 찰싹 붙은 채 오들오들 떨었다.
유성우는 일단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카페 안의 사람들이 경보 소리에 황급히 빠져나가고 있었고.
알바생들도 사람들의 대피를 유도하며 그 대열에 합류했다.
유성우도 녹스를 데리고 카페를 빠져나가려다 이내 밖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발걸음을 멈추고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워.”
카페를 빠져나갔던 사람들이 전부 사라졌다.
카페 앞에 남은 것은 그저, 덩치를 서서히 키워가는 검은 구멍.
어비스의 출현이었다.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어, 어어?”
갑자기 녹스가 자리에서 붕 떴다.
무슨 일인지 하고 보고 있자니 유성우의 몸도 서서히 어비스 쪽으로 이끌리기 시작했다.
어비스에서 발생한 인력이 주변의 생물을 끌어당기는 것이었다.
유성우는 팔을 붙잡아 끌어당기고는 제 품에 안은 채, 인력에 저항했다.
하지만 점점 강해진 인력은 유성우가 발을 디디고 있던 카페의 유리창을 부수고, 이내 완전히 어비스로 빨아들였다.
“이런 미친.”
유리창을 변상해 줘야 하게 생겼다.
유성우는 녹스를 끌어안은 채 유리 조각들과 함께 어비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허, 씨. 진짜 난리 났네.”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
어비스가 갑작스럽게 출현하며 인근의 생물들을 빨아들였다.
생물에는 인간도 포함되었기에,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민간인들이 어비스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었다.
세현시에 있는 대부분의 길드에서 차출된 다이버들이 구조대로 나섰고, 그 사이에는 해외에서 온 토월족도 있었다.
“오빠는 왜 또 연락을 안 받아?”
메테오 인더스트리의 대표, 유지우는 신경질적으로 유성우의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휘말렸나?’
제 오빠라면 그럴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이 어비스에 빨려 들어간 사람 중에는 토월족의 제사장 또한 있었다.
‘둘이 만났고, 우연히 이 자리에 어비스가 생성돼서 둘 다 빨려 들어갔다고?’
순식간에 엄습하는 불안감.
유지우가 인상을 찌푸린 채 곰곰이 생각하고 있자 옆으로 다가온 서연정이 태블릿을 들이밀었다.
“대표님, 확보한 감시카메라 영상입니다.”
서연정이 들이민 태블릿을 통해 카페 앞의 상황이 찍힌 영상을 확인했다.
어비스의 영향으로 노이즈가 좀 끼어 있었지만, 거리가 있었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경보와 함께 사람들이 카페에서 쏟아져 나오고, 그대로 사라진다.
카페 앞 대로변에 등장한 어비스 속으로.
사람들이 사라진 뒤 마지막으로 카페의 창문과 함께 어비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람이 두 명.
흐릿했으나 아무리 봐도 유성우와 녹스였다.
“……구조대 편성은 언제쯤 끝나나요?”
“빠르면 한 시간 내에는 완료될 것 같습니다. 현재 정찰대가 내부 환경을 파악 중이니.”
“시간을 앞당겨야 해! 이대로는 안 돼요!”
서연정이 유지우의 격한 반응에 잠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녀가 소리쳤다.
“녹스를 구하러 가야 된다고요!”
“최대한 서둘러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