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30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299화(300/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299화
성신전(9)
한반도 성신전, 옥황궁(玉皇宮).
한반도의 온갖 신들이 한데 모이는 집합소.
이름 없는 신격은 유성우의 등 뒤로 돌아가 그가 먼저 옥황궁에 오르기를 기다렸다.
유성우는 잠시간 서서 옥황궁을 올려다보았다.
이 안은 전쟁터임이 틀림없다.
바깥에서부터 느껴지는 흉흉한 기세는 분명히 자신에게 향하는 것.
호의적인 이들도 있겠지만, 적대적인 이들도 가득한 모양이다.
“가자.”
유성우가 남은 계단을 오른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자 옥황궁의 거대한 문이 열린다.
문 안쪽에 펼쳐진 풍경은 별천지였다.
하늘에는 하늘과 달이 동시에 떠 있고, 각각의 방위에 뜬 높은 산에는 네 마리의 신수가 자리 잡은 채였다.
마치 일월오봉도를 연상케 하는 풍경에 유성우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안쪽으로 향했다.
안쪽으로 완전히 들어서자 사람들의 면면이 보였다.
신들의 얼굴이다.
한반도 성신전, 옥황궁을 유지하는 한반도의 신격들.
그들의 시선이 옥황궁 안으로 발을 들인 유성우에게 일제히 쏟아진다.
어마어마한 압박감.
그러나 그들의 압박감에도 유성우는 당당히 그들의 중앙에 서서 입을 열었다.
“한반도 성신전도 별 것 없군. 겉치레만 번지르르한 것 같은데.”
파격적인 한 마디.
하지만 그에게 무어라 질책하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태반이 유성우보다 낮은 신격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유성우는 엄연히 홀로 대신격을 이룩한 존재였다.
“너희들이 바라던 대로 한반도 성신전에 왔는데, 축하의 말 한마디도 없군. 아, 아니면 청문회를 위한 자리인가?”
옥황궁은 묘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사람을 불렀으면 뭐라도 말해야 할 텐데, 유성우를 중심에 세워두고 원숭이 보듯 쳐다보기만 할 뿐이라니.
‘이것들 봐라.’
유성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피식 웃었다.
지금 이들은 간을 보고 있었다.
유성우의 운명은 크게 뒤틀려 읽을 수 없고, 그 힘은 강대하여 가늠이 되지를 않으니.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직도 스탠스를 정하지 못하고 간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자신이 신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는데, 이제는 저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다.
‘내가 가진 특수성 때문이겠지.’
신격들은 인간계에 그 힘을 직접 휘두르는 데 제약이 걸려 있으나, 유성우는 살아 있는 몸으로 신격에 다다른 몸.
언제든 그 힘을 인간계에 휘두를 수 있으니, 저들이 짜놓은 판을 언제든 뒤엎을 힘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성신전에서도 그를 영입하기 위해 그리도 기를 쓰는 것이고.
즉,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었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계속 여기에 서 있을 이유가 없다.
유성우는 곧장 몸을 돌려 출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그러자, 그의 앞을 한 소녀가 막아섰다.
“아이야, 무엇이 그리도 급하더냐. 다른 아이들의 무례는 내가 사과하마.”
유성우는 제 앞을 막아선 소녀를 쳐다보았다.
척 보기에도 느껴지는 강대한 신격. 주변에서 간만 보는 신들과는 명백히 다른 신격에.
그런 신들마저 ‘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신격은 몇으로 한정된다.
‘…누구지?’
유성우는 일주일 동안 공부한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그러다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른다.
모두의 어머니라고 하면, 최초의 신화…….
“그래, 웅녀…….”
“삼신할미, 저런 무뢰배를 위해 나서실 것 없습니다!”
“가 아니라 삼신할미군.”
할미, 할머니라는 이름 때문에 보통 할머니의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할미’라는 단어는 최고위 여성에게 사용하는 일종의 지위였다.
삼신할미는 한반도 신화에서 환인이나 마고할미와 함께 최고신으로 인정받으니, 한반도 성신전에서도 최고신 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야, 무뢰배라니. 너도 이 아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지켜보지 않았느냐.”
“저 자에게 과분한 힘입니다! 깨닫지도 못한 인간에게 저만한 힘이 주어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까부터 삼신할미의 말에 반발하는 자를 향해 유성우가 시선을 돌렸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를 향해 걸어오는 건 오래된 복식의 무장이었다.
역사책에서 본 적도 없는 얼굴이지만 옥황궁에 있는 걸 보면 한가락 하는 신격인 모양.
하지만 당연히, 대신격은 아니다.
“용건 있나?”
유성우가 말하자 무장은 인상을 딱딱하게 굳히며 입을 열었다.
“그 힘은 인간인 네가 가지고 있을 힘이 아니다! 언젠가는 그 힘으로 파멸을 가져오게 될 거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한데. 전례라도 있나?”
“당연하다. 인간이 분에 넘치는 힘을 손에 얻게 되어 세상을 파멸로 몰고 갔던 적이 어찌나 많은지, 역사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알고 있을 것이다.”
“역사 공부를 안 해서 모르겠군. 네가 누군지도 모른다. 보아하니 듣도 보도 못한 놈인데, 어디 전쟁터에서 굴러먹다 무훈 하나 세워서 신격에 오른 놈이겠지.”
싸가지도 없는 걸 보니 더더욱.
유성우의 말에 몇 신격이 쿡쿡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인 모양이었다.
“왜, 꼽나? 개고생해서 하위신격 한 자리 차지했는데, 어디서 온 지도 모를 놈이 대신격이라서?”
유성우가 그리 말하며 지금까지 눌러두고 있던 신격을 해방했다.
야마타노오로치, 스사노오, 슈텐도지, 그 외에도 일본의 수많은 신격을 처리하고 꼭꼭 꿍쳐둔 신격이다.
아직도 소화 중이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히 대신격의 격은 내보일 수 있다.
그의 잘 벼려진 한 자루의 검과도 같은 신격이 옥황궁에 퍼져 나가자, 유성우의 눈앞에 있던 신격을 비롯해.
하위신격들은 견디지 못하고 안색이 창백하게 변한다.
그의 앞에 있던 삼신할미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거대함.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의 우주였으나, 그 우주는 다른 신격과 비교할 수 없다.
“같은 한반도에서 나고 자랐기에, 웬만하면 그냥 조용히 일만 보고 갈 생각이었다.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아주 많거든. 옆동네에서도 그렇고, 저 멀리, 북유럽과 그리스에서도 나를 부른다. 바쁜 몸이다, 그 말이다.”
유성우가 손을 들었다.
막대한 힘이 눈앞의 장수를 찍어 누르자, 그는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전쟁터에서 무훈을 세워 신격이 된 장수였음에도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결국 무릎 꿇는다.
“사내새끼가 무릎을 꿇을 바에는 그냥 뒈져야지. 난 언제나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 말하며, 허리춤의 검을 뽑으려는 때.
무장의 앞을 삼신할미가 다시금 막아서며 입을 열었다.
유성우의 신격에도 주눅들지 않는, 옥황궁의 대신격.
“거기까지 하자꾸나, 아이야. 어찌 같은 땅에서 나고 자란 아이를 죽이려 드느냐.”
“이미 같은 땅에서 나고 자란 놈들만 수십 죽였다. 나를 무시하는 놈 한 놈 더 죽인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
“모든 것은 업보가 돌아오느니라. 지금까지 이런 말을 몇 번이고 들었을 텐데…….”
“질리도록 들었지. 옆 동네 성신전에서 신격을 열 정도 죽였을 때 여섯 번 들었고, 스물 정도 죽였을 때 열네 번 들었다.”
지겹게 많이 들었다.
그러니까, 한둘 더 늘어난다고 달라질 건 없다.
“삼신할미, 나는 당신이 누군지 잘 안다. 오랜 시간 한반도에서 많은 이의 구원이 되어주었겠지. 그러니 내 앞을 막지 마라. 당신까지 베고 싶지는 않으니.”
“…기어이 옥황궁에서 살생을 저지를 생각이더냐?”
“그놈을 내 눈 앞에서 치워준다면 휘두르지 않을 용의도 있다.”
유성우의 말에 삼신할미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무장의 모습이 바람에 휩싸여 사라지더니, 실바람만이 남았다.
그 모습을 본 유성우가 말했다.
“오, 그리고 보고 싶은 얼굴이 하나 있는데 그 사람도 찾아 줄 수 있나? 무당 몸에 빙의해서 나한테 막말을 쏟았던 작자가 하나 있는데…….”
“거기까지만 하게나.”
삼신할미의 곁에 허리춤에 칼을 찬 장수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
넘쳐흐르는 기개와 신격은 그 또한 대신격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삼신할미, 우리가 오늘 이러려고 모인 건 아니잖소. 기개 넘치는 후배를 가르치는 건 나중으로 합시다.”
유성우는 남자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몸에 두른 갑주의 양식은 과거 고구려 시대의 것.
그것도 초기.
그런 인물 중에서 대신격에 오를 만한 인물이라면….
‘동명성왕(東明聖王) 고주몽(高朱蒙). 고구려를 세운 시조인가.’
이번에는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틀릴지 몰라서가 아니라, 저쪽이 먼저 자신을 소개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고주몽이 손을 내밀었다.
“반갑네, 후배. 주몽이라고 하네. 요즘 아이들은 이런 방식으로 인사한다지?”
유성우는 주몽의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유성우다. 주몽 선배.”
“하하하! 옥황궁은 처음이지? 이 내가 직접 여기저기 소개를 해주지. 본론은 그다음이야. 아직 모두 모이지가 않아서 말이네.”
“이제 좀 나쁘지 않군. 나를 개 같은 시선으로 쳐다보는 놈들이 한둘이었어야지.”
“다 후배가 부러워서 그런 것이겠지. 근 수천 년 동안 후배 같은 사람이 없었으니 말이네.”
“부럽기는 개뿔이…….”
유성우가 시큰둥 하자, 주몽은 다시금 크게 웃더니 유성우를 데리고 정말로 옥황궁 이곳저곳을 안내해주었다.
옥황궁은 타카마가하라보다는 작지만, 신격의 밀도가 높았다.
사방에는 신수가, 곳곳에는 맑은 물이 솟구치는 샘이 있으며, 모든 나무에는 탐스러운 과일이 달려있다.
어디서든 말하면 시비들이 술과 고기를 내오는 시스템까지 갖춰져 있으니…….
“어떤가? 옥황궁을 한 번 둘러본 소감은.”
“좋긴 하군. 옆 동네는 흉흉해서 말이지. 걷다 보면 악신이 두세 마리씩 튀어나와서 피곤했는데.”
“하하하!”
유성우는 주몽과 함께 걸으며 그를 줄곧 살폈다.
옥황궁을 돌아보는 동안, 주몽은 느긋하게 보이면서도 절대로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검을 빼 들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검을 겨룰 것처럼,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았다.
유성우도 그건 마찬가지였지만.
주몽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제 슬슬 전부 모인 모양이군. 가보세나. 후배.”
주몽의 말에 유성우는 고개를 끄덕이곤 그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을 걸어 도착한 곳은 옥황궁 내부에 따로 마련된 별실이었다.
‘뜬금없이 건물이 하나 있다 했더니 여기였군.’
아마도, 옥황궁의 방향을 결정하는 대신격들이 모이는 자리가 아닐까.
별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어마어마한 신격들이 모여 있는 것이 피부에 와닿았다,
호의적인지, 적대적인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여러 대신격이 한데 뒤섞인 것이 느껴졌다.
유성우는 주몽의 뒤를 따라 별실로 들어섰다.
그러자, 기다란 직사각 탁자 앞에 앉은 아홉 명이 눈에 들어왔다.
주몽은 비어 있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 앉았고, 유성우는 가장 끝자리, 상석의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그가 앉자 상석에 앉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한반도 성신전, 옥황궁의 대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