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301)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300화(301/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300화
성신전(10)
한반도 성신전, 옥황궁(玉皇宮).
그곳에 있는 대회의실, 성신궁(聖神宮)에는 오랜만에 옥황궁 서열 10위 내의 대신격들이 모였다.
그들은 성신전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대한 일이 있을 때만 모이는 바쁜 몸들.
이번에는 특히나 중요한 안건이라 모두가 모였다.
다른 성신전들과의 세력 구도를 단번에 뒤바꿀 수 있는 귀중한 전력이 자신들의 땅에 탄생했으니.
유성우는 자리에 앉은 대신격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아는 얼굴은 아까 보았던 삼신할미와 동명성왕 고주몽.
나머지 여덟 명은 잘 모르는 얼굴들이었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되었다.
한국에 대신격을 이룰 만한 신격은 의외로 그 숫자는 한정되어 있었으니까.
그들이 누군지 추리하고 있을 때, 그의 귓속으로 주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배, 내가 누군지 말해줌세.
다행히 추리할 것도 없이 주몽이 자리에 앉은 여덟 명이 누구인지 설명해 주었다.
상석의 노인은 한반도 신화를 연 자이자, 한민족(韓民族)의 시조, 단군왕검(檀君王儉).
오른쪽에 앉은 노파는 한국 신화의 창세신인 마고할미.
왼쪽에 앉은 청년은 주몽의 아비이자, 부여의 건국왕, 천제(天帝)의 아들이라 불리는 해모수.
그리고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세 명의 노인은 환웅을 모시는 풍백(風伯), 운사(雲師), 우사(雨師).
그 옆의 화려한 색채의 옷을 입은 여인은 모든 무당의 시조이자 사자들의 인도자 바리데기.
마지막으로 이들 중 유일한 조선인이자, 아직 수많은 이가 추앙하는 해상전신(海上戰神) 이순신.
‘이순신?’
유성우는 이순신이라는 말에 장수를 흘깃 보았다.
갑주를 입고 있지 않아서 못 알아봤는데, 자세히 보니 100원짜리 동전에 있는 얼굴과 비슷했다.
각진 얼굴임에도 남성미가 넘쳐흐르는 호쾌한 얼굴.
사진을 찍어가서 이게 진짜 이순신의 얼굴이다! 하고 알리고 싶을 정도.
‘내가 진짜 이순신을 만나게 되다니…….’
이순신의 위상은 대단하다.
한국인들은 이순신 동상을 세웠고, 동전에 박아넣었으며, 그의 무훈을 여적 칭송한다.
열두 척의 배로 수백 척의 외적을 막아낸 이야기는 신화조차도 아닌 정설(定說)이며, 당한 입장인 일본에서는 이순신을 신격화한다.
자기네들이 약해서 진 게 아니라 이순신이 너무 강해서 졌다고 정신승리를 해대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 이순신이 한반도 성신전에서 대신격에 오른 것이리라.
죽은 뒤 신이 되었다, 의 정석이라고도 볼 수 있으리라.
주몽에게 알려주어서 감사하다며 그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자, 상석의 단군왕검이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끝났나 보군. 들었겠지만, 단군이라고 하네. 단군 할아버지, 많이 들었지?”
“아주 많이 들었죠.”
부동산 사기를 당한 단군 할아버지…에게는 왠지 안쓰러워서 반말이 나오지 않았다.
단군왕검은 그의 말에 허허, 웃고는 말을 이었다.
“이번 회의는 새로이 탄생한 대신격, 유성우에 대한 처우를 결정하는 회의요. 이런 시대가 되어 대신격이 새로이 탄생한 것이 언젠지 감회가 새롭구려.”
“그렇소. 저기 앉아 있는 해상전신 이후로 처음이 아니던가?”
이 좁은 땅덩어리에 대신격이 이리도 많이 탄생하다니, 놀랄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 따라, 지금 다른 성신전에서도 눈독을 들이는 처지요.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그를 한반도 성신전의 대신격으로 인정하는 것만이 최선으로 보이네만.”
“하하! 동감하는 바이오! 같은 한반도에서 나고 자랐으니, 한반도 성신전의 대신격이 되어야지!”
“호호, 이 늙은이도 찬성이야.”
회의는 막힘없이 흘러갔다.
유성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신격도 있어 보였지만, 대부분 유성우를 한반도 성신전에 포함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린 듯했다.
대한민국의 빨리빨리는 아마도 이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건지, 회의 속도도 무척이나 빨랐다.
가만히 듣고 있던 유성우는 ‘유성우를 한반도 성신전에 포함한다’라는 결론으로 회의가 끝나가는 것 같자, 입을 열었다.
“잠깐, 궁금한 게 있는데.”
“무엇인가?”
“내가 한반도 성신전에 들어간다 치면, 얻는 이득은 무엇입니까?”
이건 무척이나 중요한 사항이다.
물론 한반도 성신전에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뭘 얻을 수 있는지는 들어둬야지.
그래야 다른 성신전과 저울질 할 수도 있고, 나중에 털어갈 기회가 있으면 털기도 쉬울 테니까.
그러나 유성우의 말에 회의장이 술렁거린다.
마치 그런 건 고려도 해본 적이 없다는 듯이.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한반도 성신전에 들어가 얻을 수 있는 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허어, 인간의 몸으로 성신전에 들어와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큰 영예인질 몰라서 그러는 겐가?”
운사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되물었다.
유성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금 질문했다.
“그럼 같은 땅에서 나고 자랐다고, 지금 열정페이로 해 먹겠다는 겁니까?”
“열…정페이?”
“요즘 것들은 이상한 말을 쓰는구먼.”
이상한 대신격들의 반응에 유성우는 완전히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이제는 예의 따위는 차릴 필요가 없어 보였다.
“내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게 아닐 텐데. 이렇게 어물쩍 성신전에 편입시켜주면, 내가 좋아할 줄 알았나? 그리스 성신전에서는 내가 들어가는 조건으로 검에 관한 전승을 주겠다 약속했는데 말이지.”
유성우는 현재 인간계에 있는 현현인신 중에서도 유일한 대신격.
유일하게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그 힘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이걸 그냥 등쳐먹으려 든다니… 그것도 대신격이라는 자들이.
아닌 건 아닌 거다.
지옥노동대혁명의 비선실세로 이런 처우는 인정할 수 없었다.
“여기가 어떤 자린데 성을 내는 것이냐! 조용히 하라!”
운사가 소리친다.
유성우는 그에 지지 않고 받아쳤다.
“어떤 자리긴, 어린애 등쳐먹으려는 노인네들이 모인 자리 아닌가?”
“이 자가!”
유성우를 제외하고는 다들 한반도 땅 위에서 수백, 수천 년 이상 살아오던 이들.
속된 말로 다들 오래된 꼰대라는 소리였다.
“그렇게 나온다면 나는 다른 성신전을 알아볼 수밖에 없겠군. 불러주는 데가 워낙 많아서.”
유성우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대신격들의 시선이 그를 중심으로 교차한다.
정말로 노한 자들과 흥미를 보이는 자들.
특히 주몽은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조용히 앉아 있던 이순신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소관은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장수에게는 마땅한 보상이 주어져야 함을 모르십니까?”
이순신은 전쟁을 겪으며 온갖 꼴을 보았다.
봉급으로 주어지는 쌀에 모래를 섞었다가 칼을 맞은 관리가 몇 명이던가.
나라를 위한 애국심과 주군을 향한 충의(忠義) 또한 중요하지만, 궃은 일을 도맡아 한 이들에게는 정당한 보수가 주어져야 한다.
‘역시 이순신 장군님이다.’
유성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주몽이 소리쳤다.
“같은 생각이네! 앞으로 그가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을 텐데, 정당한 보수가 주어져야지! 그래야 의욕도 날 것이 아닌가!”
“일리 있는 말이군요. 천기누설에도 복채가 필요한데, 아무런 보상도 없이 부려먹다간 저 칼끝이 누구를 향할지 알겠습니까?”
주몽에 이어 바리데기까지 이순신의 의견에 동조했다.
여러모로 이해관계가 겹치는 이들이라 그런 걸까.
하지만 여전히, 그런 개념을 알아먹지 못하는 건지 반대하는 이들도 강경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찬반토론이 이어진다.
유성우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도저히 더는 못 들어주겠군. 계속 이런 식이라면 다른 성신전을 알아보는 게 낫겠어.”
무슨 보상을 줄지 싸우는 것도 아니고, 줄지 말지로 싸우는 게 끝나기를 기다리는 건 미친 짓이다.
어차피 진짜로 들어갈 생각도 아니었으니 적당히 핑계를 대고 나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그저, 저들의 안면을 익히고 성신전에 대한 정보를 얻으러 온 것이었으니.
“그냥 보낼 성싶으냐!”
유성우가 성신궁을 나서려 하자, 지금까지 격렬하게 반대하던 운사가 손을 뻗어 구름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유성우를 둘러싼 구름은 그를 강하게 옥죄었다.
풀어내려 했으나 운사 또한 대신격, 구속은 그리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순신이 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주몽도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날 선 기세를 뿜어냈다.
운사가 소리쳤다.
“놈이 다른 성신전에 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운사, 노망이 들었나요?”
“나이를 너무 먹어서 미친 게 확실하군!”
바리데기와 주몽의 날카로운 한 마디가 운사를 향해 꽂혔다.
그러나 그런 운사의 말에 동의하는지, 몇몇 풍백과 우사가 유성우를 구해주려던 이순신과 주몽을 막아섰다.
몸을 옥죄는 강도가 강해진다. 유성우는 이를 악물고는 벗어나려 했으나, 그럴수록 더 강해졌다.
‘꼰대지만 대신격은 대신격이다, 그런 건가?’
검을 휘두를 수 있다면 베어낼 수는 있겠지만, 운사는 검을 휘두르지 못하게 교묘하게 몸을 묶어놨다.
직접 검을 쥐고 베는 정도가 아니면 베이지 않을 것 같아, 탈출할 방법을 생각하던 그가 씩 웃었다.
“내가 여기까지 오면서 도망칠 방법을 생각도 안 하고 왔을 것 같나?”
너희들이 자초한 거다.
유성우는 입안에 숨겨두었던 석류알을 혀 위로 올려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저들이라면 한눈에 알아볼 터.
“저, 저건!”
“저승의 열매다!”
그리고, 그들이 뺏을 새도 없이 이빨로 석류알을 짓뭉갠다.
석류알은 저승의 여왕 페르세포네가 그에게 건네주었던 것.
필요하면 사용하라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석류알을 짓뭉개자 그를 중심으로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그의 등 뒤에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검은 구멍이 뚫리고, 그 안에서 가느다란 손 두 개가 튀어나온다.
“이렇게 빨리 불러줄 줄은 몰랐는데요. 게다가 이런 곳에서.”
튀어나온 손은 저승의 여왕, 페르세포네의 것이었다.
그 말인 즉슨, 유성우의 등 뒤, 허공에 뚫린 구멍은 저승과 이어지는 통로라는 것.
페르세포네는 두 손으로 유성우의 한쪽 눈을 가리고, 반대 손은 허리춤을 끌어안으며 말을 이었다.
“마스터 유성우, 당신은 우리 올림포스를 선택해 줄 건가요? 당신이라면 검에 관한 최고 전승을 약속할 수 있어요. 당신이 원하는 것도 그런 것이겠고…….”
달콤한 말로 속삭인다.
우리 올림포스에 붙으라고.
그녀의 손길이 운사의 구름을 지나자 구름이 순식간에 흩어져 구속하고 있던 몸을 해방한다.
그것을 본 운사가 외쳤다.
“저승의 촌부(村婦)가 어딜 감히!”
“촌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를 땅덩어리의 구름 따위가 저승의 여왕인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
페르세포네의 신격이 방출된다.
한반도의 대신격들에게 뒤지지 않는 무시무시한 신격.
저승 너머에서부터 명왕(冥王), 하데스의 힘마저 흘러나와 성신궁의 대신격들을 압박한다.
“하하! 저승의 왕과 여왕이 동시에 행차할 줄이야! 후배, 자네 많은 사랑을 받고 있구만!”
주몽이 재밌다는 듯 웃는다.
유성우는 뻐근해진 몸 여기저기를 움직이며 답했다.
“과분한 사랑이지.”
그리고 무겁기도 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