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305)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304화(305/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304화
성신전(14)
본디 성신전이란, 하나의 신화를 기반으로 묶인 일종의 집단과 마찬가지다.
공통된 신화를 가지고 있을수록 성신전에 속한 신격들의 그들의 결속력은 단단해지며, 그 능력 또한 상승효과를 가져온다.
애초에 같은 신화를 기반으로 하는 신들이 뭉쳐 세운 것이 성신전이지만…….
유성우는 단독 신화이며, 단독 대신격이었다.
같은 신화를 가진 이가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 있는 유지우나 홍서화, 백우현이 어엿한 신격이 된다면 같은 신화를 기반으로 하는 신들이 되겠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성신전의 설립 자체를 신화의 기반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다른 신격들을 성신전의 일원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로 융화해 신화의 밑천으로 쓴다.
그것이 성신전 설립의 두 번째 단계다.
유성우의 이야기를 들은 메데이아가 눈을 감았다.
그녀는 오랜 시간을 살아온 마녀.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최초의 마녀자, 신의 자식이다.
얼마나 오래된 세월을 살아왔는지, 가늠조차 가지 않는다.
적어도 수천 년.
“그럼에도 네가 어느 성신전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올림포스 쪽과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은 모양이야.”
그의 말에,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모종의 사유로 인해 먼 옛날, 올림포스에서 쫓겨났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여성들을 위해 마녀회를 설립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올림포스와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고, 지금에 이른 것이었다.
천천히 눈을 뜬 메데이아가 입을 열었다.
“지금 와서 다시 올림포스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리고 당신의 말대로 마녀회는 배척받은 이들의 모임이죠. 그 누구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은 이들이 모여 세운 집단이에요.”
지금에 이르러 마녀회는 마법사들의 집단으로 위상을 높이고 있다지만, 여전히 ‘마녀’라는 꼬리표가 붙어 배척받는 편이다.
그들이 어디 한 군데 정착하지 않고 점조직으로, 회의가 열리는 장소도 바뀌는 게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마녀회를 당신은 받아들이겠다는 건가요? 우리 모두를 신도 삼아?”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그리고 그냥 신도가 아니다. 신격을 얻으면 당연히 성신전의 신격으로 대우받겠지.”
“…….”
메데이아가 고민을 시작하자, 유성우는 다른 마녀들의 안색도 살폈다.
마녀들은 모두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로 이래도 되나 싶은 표정.
부정적인 이도 있고, 긍정적인 이도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제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유성우는 지금부터 그들을 자신의 밑으로, 한데 묶을 생각이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옛말에 강이 있으면 현명한 여자는 다리를 찾아 걸었고… 미친 여자는 이미 강을 건넜다고 하지.”
그리고 미친 여자들은 어김없이 마녀로 몰려 물에 빠져 죽거나 화형을 당했다.
유성우가 말을 이었다.
“나는 미친 여자들을 원한다. 이 미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미친 것처럼 보이는 천재들이 모여야 하지 않겠나.”
이런 시대일수록 약자들이 뭉쳐야 한다.
다시금 신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이 땅을 제 뜻대로 주무르려 드는 신들을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들에게 배척받은 이들을 모아 대항마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것 또한 하나의 신화가 될 테니.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미쳤다 손가락질받던 자들의 전유물이다.
“미친 여자들이라…….”
잔느가 중얼거렸다.
유성우는 그녀의 과거를 안다.
백년전쟁에서 활약한 프랑스의 수호성인이자, 오를레앙 전투의 최대 공신.
프랑스는 그런 그녀를 마녀로 몰아 종교재판에 회부했다.
할 수 있는 반론을 전부 했지만, 그 어느 것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그녀는 이미 ‘마녀’로 낙인찍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
바토리는 어떠한가.
흡혈귀에게 가족을 모두 잃었고, 복수를 위해 흡혈귀의 생을 이어왔다.
복수를 끝마쳤으나 돌아갈 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돌아갈 집을 만들어주마. 그 누구도 더는 마녀라 손가락질하게 만들지 못하게 해주마. 이건 부탁도 아니고, 강제도 아니고, 거래다. 내게 힘을 빌려주면 그에 맞먹는 가치의 보답을 하겠다.”
“…위험한 도박이군요. 당신이 성신전을 설립하는 순간 다른 모든 성신전이 적이 될 텐데, 신들의 공세를 견뎌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건가요?”
“당연하지. 페르세포네와 명왕의 인가를 받았다. 적어도 올림포스는 우호적일 테고, 일본의 타카마가하라도 힘을 보태줄 것이다. 그 정도면 다른 성신전도 섣불리 손은 대지 못하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성우는 자신이 있다고 어필했다.
그는 지상에서 유일하게 그 힘을 휘두를 수 있는 대신격.
다른 대신격들이 제약에 묶여 화신을 통해 그 힘을 휘두를 때, 유성우는 직접 움직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메리트.
“그 누구도 너희들을 더는 무시할 수 없게 만들어주마. 그러니 너희들의 힘을 빌려다오.”
메데이아는 유성우의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강렬한 신념이 담긴 눈동자.
절대로 꺾일 일이 없으리라 자부하는 듯한 붉은 눈동자가 그의 의지를 대변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의 눈을 보아왔지만, 저런 눈동자를 가진 이는 처음이었다.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질 일은 없을 사람의 눈이다.
‘아아, 신에 도달했음에도…….’
여전이 인간의 눈을 하고 있다.
그에게 남은 인간의 부분을 꼽아보자면, 희미한 인간성과 저 육신이 아닐까.
메데이아는 다른 장로들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그대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싶군요. 지금까지 개최한 회의 중 최대 안건이니, 장로들인 그대들의 지혜를 빌리고자 합니다.”
메데이아는 이미 마음을 굳힌 것처럼 보였다.
다른 마녀들이 입을 열었다.
“저는 찬성이에요. 이미 한 배를 타버린 것 같은 느낌이라… 다른 성신전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성전(聖戰)의 마녀, 잔느의 찬성표가 나왔다.
“이견 없음. 연구 자원 지원도 마녀회에서 하던 것보다 괜찮다. 그쪽과 연계하면 더 큰 성과를 보일 수도 있겠지.”
메테오 인더스트리의 연구소에서 연구를 이어 나가던, 연금(鍊金)의 마녀 칼리의 찬성표가 나왔다.
지금까지 그녀의 연구를 위해 쓴 돈이 헛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저도 저당 잡힌 상태라… 찬성표를 던질 수밖에 없겠네요.”
유성우에게 목숨을 빚진, 선혈(鮮血)의 마녀 바토리가 씁쓸한 얼굴로 찬성표를 던졌다.
세 명의 장로가 찬성표를 던지자, 여기저기서 찬성표가 나왔다.
반대표가 두세 개 나오기는 했지만, 취향의 문제라 그건 유성우가 해결해 주기로 했다.
장로들의 이야기를 듣던 메데이아가 결정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잘 알았습니다. 딱히 거수할 필요도 없어 보이는군요.”
메데이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앉은 마녀들을 한 번 주욱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떠돌아다녔습니다. 마녀라는 오명이 붙어서, 온갖 수모와 함께 어딜 갈 때마다 손가락질받는 처지였습니다. 그러한 풍습은 세계 어디에나 있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다.
마녀사냥이라는 말은 여적 남아있고, 과거에는 실제로 무기를 앞에서 그들을 사냥했다.
그저, 마녀라는 이유로.
마녀라는 이름 한 가지만으로.
그들이 무엇을 했기에?
그저 조금, 남들과는 다른 사고방식과 지혜를 익혔을 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일방적으로 사냥당해야 자들은 아니었으리라.
그저, 정말로 그저.
종교상의 이유로, 그들은 불경하다며 사냥당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드디어 우리에게도 돌아갈 둥지가 생긴 셈이군요. 각지에 있는 자매들에게 알리세요. 한국, 세현시로 모이라고. 우리의 새로운 출발은 그곳에서 시작할 겁니다.”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잇는다.
“그리고, 아직 어린 자매들도 더욱 많아질 테니까요. 언제까지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닐 수는 없겠죠.”
신화의 시대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기이한 힘을 얻게 되었다.
마녀의 힘을 각성하는 아이들도 점점 늘고 있었기에, 계속 떠돌아다닐 수는 없는 실정.
마녀의 힘을 가진 아이들은 부모에게 버려질 것이고, 보호자 없이 길거리에 내몰릴 터였다.
거점이 있으면 그런 아이들을 좀 더 쉽게 케어할 수 있을 터.
유성우는 웃으며 말했다.
“그런 아이들의 집과 교육도 전부 제공하겠다. 너희들의 ‘집’을 성신전에 만들어주지.”
“…좋아요. 이걸로 거래는 성립이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마스터 유성우.”
“나야말로. 그리고 곧장 일 얘기를 시작해서 좀 미안한데… 며칠 내로 성신전에 설치할 술식의 표본을 받아볼 수 있을까?”
“당연하죠. 여기에 모인 머릿수만 몇인데요?”
메데이아가 웃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최고의 성신전을 완성해 보죠.”
***
성신전을 설립하는 일이 본격적으로 작업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완료된 건 당연히 세현시의 소유권 이전이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일이기도 했다.
“나라가 망했군! 개인한테 도시의 소유권을 쥐여주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반발이 일어났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시위까지 벌어졌다.
유성우의 손에 넘어가 버린 세현시를 다시 국가에 반환하라는 시위였다.
검혼 길드 앞에서 하는 건 무서운지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벌어진 시위.
정작 세현시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그곳에 사는 이들은 그의 위상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적이 꽤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다이버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불가능하다 생각되던 어비스에 도전해 압도적인 무용을 선보였으며, 검 한 자루로 모든 걸 베는 낭만마저도 겸비했다.
“주인이 바뀐다고 해서 뭐? 지금까지 똑같이 돌아갈 거라며?”
“그럼 상관없는 거겠네.”
그리고 세현시의 주인이 누구든 별로 신경 안 쓰는 안전불감증도 있었다.
그들은 그것보다 더욱 위험한, 어비스는 이름의 미궁 속에서 단련해 온 이들이니까.
오히려 그들에게는 현역 다이버가 도시의 주인이 되는 일이 더 호재일 수도 있었다.
유성우는 검혼의 길드 타워, 옥상에서 세현시를 내려다보았다.
곳곳에 세워진 고층 빌딩과 아파트 단지들.
다이버들을 위한 계획도시.
대한민국 소속이었던 세현특별시는 오늘부터 ‘특구(特區)’로 지정되었다.
“감개무량하군.”
처음 지구에 돌아왔을 때는 거지꼴로 돌아왔었다.
불량배 좀 두들겨 패고, 삥 좀 뜯어서 목욕탕에 갔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지금은 한 도시의 주인이 되었다.
일반 도시도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서울 다음으로 번성한 도시다.
투입된 금액만 해도 수십조 원이 훌쩍 넘어가는.
“유월, 지시해 둔 일은?”
“70퍼센트 정도 진행되었어요. 이래저래 개편해야 할 사항들이 많더군요. 아마도 다음 주면 모든 업무가 정상화될 거예요.”
유성우의 곁에 서 있던 유월이 태블릿의 화면을 몇 번 두들기며 답했다.
앞으로 세현시는 더욱 번성할 것이다.
도시이자 ‘성신전’으로.
그렇기에 관리할 인원도 많이 필요했고, 여기저기 손봐야 할 데가 많았다.
유성우는 유월에게 그런 일들을 떠넘… 아니, 일임했다.
이런 일은 그녀가 잘했으니까.
“마녀회도 곧 이주할 테고, 천마랑 무림맹은 이쪽으로 방문하기로 했지.”
이제 다른 성신전들의 눈을 속이기는 어려울 터.
그러니까, 게 눈 감추듯 빠르게 일을 진행해야 했다.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더 재밌어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