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316)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315화(316/390)
성신전(25)
반나절 뒤.
모이라이가 성전을 진행한다는 소식은 올림포스 전역에 알려졌다.
태초의 시대부터 존재해 온 모이라이 세 자매에게 전쟁을 선포한 것은 변방에 있는 작은 성신전의 수장, 유성우.
모이라이는 지금까지 성전을 한 번도 받은 적도, 건 적도 없었다.
자신의 신전에서 운명만을 재단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번 일은 더욱 뜨거운 화제로 떠올랐다.
명계가 모이라이를 상대하는 유성우에게 지지를 표명하며 성전이 성립되었고, 천공 파벌과 대해 파벌의 주요 인사들도 참석하는 자리가 되었다.
“일이 너무 커진 것 같은데요.”
“이왕 하는 거 크게 하면 좋지.”
원래 축제도 크면 클수록 재밌는 법이 아닌가. 물론 이게 축제가 될지 장례식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당신은 긴장도 안 되나 봐요? 여유로운 걸 보면.”
“긴장이 안 되기는.”
아무리 유성우라도 긴장은 되었다. 앞으로 상대하게 되는 건 대신격들이다.
그것도 익숙하기 짝이 없는 올림포스의 신들이 아니던가.
어릴 적에 만화책으로만 보기만 하던 그들을 검으로 베어낼 기회가 생겼는데, 어찌 긴장되지 않을 리가.
“너는 긴장 좀 풀어야겠군. 손에서 힘이 안 풀리지 않나.”
유성우의 말에 메데이아는 꼭 쥐고 있던 주먹을 펼쳤다.
손톱이 손바닥을 깊게 파고들었는지 피가 몽글몽글 맺혔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맺힌 핏방울을 문지르고는 중얼거렸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인간 기준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실력자다.
아마 열 손가락 안에 꼽겠지.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하는 만큼 오랜 시간 살아와 마녀로서의 신격을 손에 넣었고.
반신이기도 하니 적어도 지구상에서는 견줄 존재가 없는 마법사임이 맞았다.
하지만, 그것은 지구의 이야기.
올림포스는 신들이 모인 집합소, 성신전이다.
모이라이는 대신격이니, 대전사로 데려올 신격들도 그에 준하는 신격들이리라.
인간들의 기준으로 보자면 더할 나위 없는 강자지만, 신들의 기준에서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마법사다.
메데이아는 고민한다.
자신은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신들을 쓰러트리고 승리를 얻을 수 있을까.
유성우 홀로 세 명의 신격을 쓰러트리게 둘 수는 없었다.
무척이나 큰 부담이 될 테니, 적어도 한 명쯤은 자신이 담당해야 하리라.
머릿속으로 자신의 전력을 가늠해 보던 그녀에게, 유성우가 말했다.
“마음 편하게 먹어라. 죽이지 못하더라도 저주로 떡칠을 해놓으면 내가 이기기는 쉬울 테니까.”
그의 말에 메데이아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제 특제 삼백육십 가지의 저주를 보여줄 수 있겠군요.”
“…저주가 그렇게 많나?”
“당연하죠. 새끼발가락을 자주 부딪치게 되는 저주, 주차 자리가 없는 저주 같은 것도 있는걸요.”
“사소하지만 빡치는 저주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끔찍하기 짝이 없는 저주다.
유성우는 피식 웃곤 메데이아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러던 중 방 안으로 헤르메스가 들어오며 말했다.
“좋은 시간 보내고 계십니까?”
“드디어 왔군.”
둘은 현재 헤르메스의 신전에 있었다. 페르세포네는 명계를 오래 비울 수 없어 돌아가야 하는 몸이었다.
계속 둘의 곁에 있을 수 없었기에 성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괜한 시비를 방지하기 위해 유성우는 막무가내로 헤르메스의 신전에 쳐들어갔다.
성격 좋은 헤르메스는 순순히 둘을 받아주었고 성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신전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그보다 일을 정말 크게 벌이셨군요. 설마 성전의 규칙을 이용하실 줄이야.”
“올림포스나 같은 오래된 성신전을 상대로나 가능한 짓이라 다행이었다.”
올림포스는 오래된 만큼 그 규율이 다른 성신전들보다 빡빡하다.
검계 같은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성신전이라면 성전이고 뭐고,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총력전을 벌였으리라.
이리 꼬투리를 잡아 성전을 선포하는 방식은 올림포스였기에 가능한 짓이었다.
“그리고 알아 왔을 것 같은데. 모이라이 측에서는 대전사를 누구로 내보내기로 했지?”
“하하, 맨입으로요?”
“딱히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긴 한데. 알려주는 편이 더 재밌을 것 같지 않나?”
“부정은 못 하겠군요. 그편이 더 재밌으리라는 건.”
헤르메스는 유성우의 맞은편에 앉으며 모이라이가 대전사로 섭외한 이들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첫 번째로 섭외한 대전사는 전쟁의 신, 아레스입니다.”
“아, 엄살쟁이?”
유성우의 말에 헤르메스와 메데이아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어릴 적에 보았던 만화책에서 아레스가 창에 찔렸다고 비명을 질러대던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을 뿐이었는데.
“크흐, 흐흡… 그렇죠. 엄살쟁이. 아무튼 아레스는 재밌어 보였는지 이번 성전에 참가하기로 한 모양입니다. 그도 일단은 천공파 소속이니까요.”
“나쁘지 않군. 다음은?”
“두 번째로는 잘 알고 있을 유명한 영웅 헤라클레스입니다. 천공파에서도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인지 헤라클레스를 보내주었더군요.”
헤라클레스.
그리스 신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모를 리가 없는 이름.
그리스 신화에서도 가장 강하고, 유명한 영웅이자 열두 과업을 완수한 뒤 신이 된 일화는 누구라도 알고 있으리라.
모든 영웅의 동경.
“아레스에 헤라클레스라…….”
꽤 세게 나오는군.
모이라이가 나름 올림포스에서 오래 알을 박은 만큼, 체면 만큼은 세워주려는 모양이었다.
“모이라이의 예언 때문에 피를 본 신들이 적지 않은 거로 아는데…….”
“그래도 원로니까요. 모이라이가 패배한 게 알려지면 올림포스의 대외적인 이미지도 추락하지 않겠습니까?”
더 추락할 이미지가 있나?
그리스 신화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추악한 신들의 면모 정도는 전부 알고 있으리라.
굳이 유성우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마지막 세 번째는…….”
헤르메스는 메데이아를 흘깃 쳐다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성전의 재미로 남겨두도록 하지요. 전부 알려드리는 것도 재미없잖습니까?”
“성격이 나쁘군.”
“옛날부터 들어온 말이라 괜찮습니다. 그럼, 성전 때까지 편하게 쉬시다 가시지요. 시작할 때 제가 모시러 오겠습니다.”
헤르메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마지막에 메데이아에게 보냈던 의미심장한 시선은 무엇이었을까.
‘…기우겠지.’
별일 없을 터다.
***
시간이 흐르고, 성전이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헤르메스의 인도를 따라 도착한 곳은 넓은 평원이었다.
구름 위에 마련된 전쟁터.
유성우와 메데이아는 그 위에 서서 모이는 신격들을 쳐다보았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신격이다.
그리스 신화는 오래되고 유명한 만큼, 상당한 전승이 있고 신들의 숫자도 많다.
제우스가 싸지른… 바람을 피운… 금단의 사랑을 해서 만든… 아이들의 숫자만 해도 어마어마하니까.
물론 그런 신화가 탄생한 이유도 따로 있지만…….
아무튼.
“구경꾼이 꽤 많은데. 괜찮나? 메데이아.”
“…괜찮아요. 뭐 지켜보는 것뿐인데요.”
그리 말하는 메데이아는 한 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의 끝에는 한 여신이 있었다.
“……이제 곧 시작한다.”
유성우는 정신을 차리라는 듯 메데이아의 등을 한 대 툭, 치고는 말을 이었다.
“상대가 누구든 죽여 버릴 생각으로 해라. 아니, 그냥 죽여. 죽여도 상관없는 전장이다.”
“알겠어요,”
어디선가 뿔피리 소리가 울린다.
성전의 개막을 알리는 소리다.
심판 같은 건 없다. 서로 정한 룰 안에서 죽고 죽이는 일만이 해야만 하는 일이며, 끝마쳐야 할 일이니.
그리고, 시작하기 직전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진다.
세상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의 한 줄기 샛노란 벼락이 제우스의 존재감을 알리고, 어디선가 솟구친 수십 미터의 파도가 포세이돈의 존재를 알린다.
그리고 찾아오는 죽음과도 같은 어둠이 하늘을 뒤덮으며 하데스의 존재감을 표명한다.
현 올림포스의 가장 오래된 신들이자, 세상을 삼 등분한 가장 큰 파벌의 수장들이 이 성전을 지켜보고 있음을 알렸다.
모이라이의 성전이다.
닉스의 자식이자 운명을 재단하는 세 자매의 처음이자 끝이 될지도 모르는 전쟁이니.
평원의 반대편에서 몇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노파 한 명과 그 뒤에 선 세 명의 남자들.
헤르메스가 알려준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헤라클레스와 갑옷으로 완전무장한 아레스.
그리고 한 금발의 남자.
처음 보는 남신. 저게 누군지 잠시 쳐다보고 있자, 격한 반응이 옆에서 터져 나왔다.
메데이아가 눈을 부라리며 남신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아손(Iásōn)!”
이아손이라는 이름을 들은 유성우는 그가 누군지 떠올렸다.
이아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르고호 원정대를 이끈 영웅.
당대의 영웅들을 모아 황금 양털을 찾으러 가는 아르고호 원정대의 원정대장이다.
대부분이 파멸로 끝나는 그리스 신화에서 원정을 성공한 몇 안 되는 이야기.
그리고.
메데이아의 남편이기도 하다.
저 남자에게 반한 메데이아가 친동생을 토막 내 죽이고, 아르고호 원정대를 성공으로 이끈다.
즉 메데이아 버스를 탄 단체 버스 승객의 단체장 정도 되는 셈이다.
“이아손, 이아손! 이아손!”
메데이아의 입에서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늘 냉정함을 유지하던 그녀라고는 볼 수 없는 광경.
헤르메스가 말을 아꼈던 이유가 있었다.
‘악질이군.’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지금쯤 메데이아의 모습을 보며 웃고 있을 헤르메스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찢어 죽일 놈이! 나를 배신한 주제에! 무슨 낯짝으로 이 자리에……!”
“메데이아.”
“반드시, 반드시 내가 죽여 버릴 거야, 저 새끼는 반드시…….”
“메데이아!”
유성우의 외침에 광기로 가득 찬 말을 내뱉던 그녀가 움찔, 하더니 허망한 눈동자로 유성우를 쳐다보았다.
“이아손이, 어째서 이아손이 저기에. 대체 왜…….”
“모이라이의 수작이겠지. 진정해라. 벌써 3천 년이 넘게 지난 일이다. 얼마나 커다란 앙금이 남았는지는 몰라도 그런 감정은 지금은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기억해라.”
유성우는 이런 상태의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닉 상태.
자신의 가족을 죽인 마족을 마주한 전사들에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지금 여기서 소모할 게 아니다. 눌러두었다가, 전장에서 발산하는 거다.”
분노는 시야를 가리지만.
동시에 훌륭한 원동력이다.
전장에서 원동력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
“그러니까, 지금은 진정해라.”
그의 말에 메데이아가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들며 말했다.
“저놈은 꼭 제가 죽이게 해주세요.”
“당연하지. 저쪽에서 가장 먼저 내보낼 건, 아마도 이아손일 테니.”
그리고 그의 말대로 이아손이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다.
원래 가장 강한 놈을 뒤에 배치하는 게 상식이었으니.
유성우는 메데이아의 등을 밀었다.
“가라, 메데이아.”
가서 찢어 죽이고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