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32)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32화(32/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32화
토월족(6)
유성우는 유월의 뒷덜미를 잡고 무 뽑듯이 잡아당겼다.
늪에서 쑥 뽑힌 유월을 그나마 괜찮은 땅에 내려놓은 그가 물었다.
“그 꼴을 보니 당분간은 못 움직일 것 같은데.”
“제가 독에 당할 줄이야…… 토월족은 선천적인 저항력이 높아서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스스로를 너무 과신하고 있군. 게다가 피 냄새가 섞여 있는 걸 보면 한바탕하고 온 듯한데.”
“……네.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는데, 제 불찰입니다. 한 명도 살리지 못했어요…….”
유월은 의기소침하게 중얼거렸다.
자신은 지키려 했는데, 그 누구도 지키지 못했다.
어비스 속의 환경은 일반인들에게 가혹하다.
가장 낮은 등급의 어비스라도 일반인은 견디지 못하는데, 그들이 있는 어비스는 최소 4급.
일반인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서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운이 안 좋았던 것뿐이다. 아직도 못 움직이나?”
“……운이 좋지 않았던 것뿐이라고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럼 전부 죽은 걸 네 탓이라고 말해야 하냐? 그건 아니잖냐. 정신 차려. 정말로 운이 없었을 뿐이다.”
사람의 죽음에 일희일비할 시간은 없다. 그럴 감정도 없다.
자신 때문에 죽었다느니, 자신이 좀 더 잘했으면 누구도 죽지 않았을 거라는 건 헛된 생각이다.
“죽은 사람들은, 그날 죽을 운명이었던 거다.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쓰다가는 정신이 남아나지 않는다.”
이건 경험담이었다.
유성우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정의로운 용사처럼 고결한 희생정신은 개나 줘버린 사람이었다.
이계에서 막 명성을 얻고 이름을 날리기 시작할 때는 조금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힘이 남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려 애쓰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타인의 죽음에 깊게 공감하지 마라. 너는 네 할 일을 한 거니까. 타인의 운명이라는 건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일일이 공감하고, 신경 써주다가는 미쳐버리고 만다.
일부 사람들은 호의를 권리로 받아들이고, 왜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는 구해주지 않았냐며 비난한다.
그 결과는 뻔하다.
용사도 아닌 주제에 다른 이들을 구하겠다며 제 몸을 혹사해 가며 구르다가 죽든가.
정신적인 부담감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자살하고 마는 결과다.
유성우는 사람들의 비난이 심해질 즈음에 엿 먹으라는 식으로 이기적으로 굴었기에 이겨냈다.
고결한 희생정신 따위는 개나 줘버렸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자신이 가는 길에 있는 적이라면 쓰러뜨리고, 나머지는 아예 신경을 꺼버린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마신을 쓰러뜨리고는 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으나, 용사로 불리지는 못한 이유였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이야. X같이 굴지 마라. 여기에 그냥 버리고 가는 수가 있으니까.”
“뭐, 뭐라고요?”
난생처음 들어보는 욕에 유월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를 쳐다보았다.
토월족의 제사장이 되어 이런 욕을 들어볼 일이 있었던가.
욕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든 유월이 인상을 굳혔다.
“이제 움직일 수 있나?”
“……어느 정도는요.”
“그럼 따라와라. 리자드맨들의 대가리를 따러 갈 생각이니까.”
유월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독에 당해서 잠깐 움직이지 못했지만, 토월족의 독 내성은 어마어마했다.
처음 당하는 독일 텐데도 금방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다.
유성우는 그녀가 뒤따라오는 걸 보고, 리자드맨들이 움직이던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고 유월이 물었다.
“……혹시, 제가 싸우던 리자드맨들이 물러간 건 당신이 한 일인가요?”
“내가 있던 방향으로 간 게 맞다면 맞겠지.”
“그렇군요…….”
유월은 유성우가 무슨 일을 한 건지 대략적이나마 추측했다.
먼 거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구하려, 제 쪽으로 온갖 리자드맨들의 시선을 끌었으리라.
그 증거로 유성우의 전신은 리자드맨의 체액으로 절어 있었다.
“……걸어갈 거면 저 내려주면 안 돼요?”
“안 돼.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 * *
녹스를 든 유성우와 유월이 도착한 곳은 엉성하게 돌로 쌓은 성벽이 있는 곳이었다.
아래에는 리자드맨들만 돌아다닐 수 있는 늪으로 된 수로가 있고, 그것을 제외한 입구는 단 한 곳뿐.
“역시 규모가 꽤 크군.”
유성우는 눈을 감은 채 기감을 퍼트렸다.
그의 기감에 걸리는 작은 성 속의 생명의 숫자는 사백에 달했고, 특출나게 강한 놈들이 몇 섞여 있었다.
개중에서 다른 놈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놈이 하나.
‘이놈이 보스로군.’
그렇게 강한 놈은 아니었다.
아자하와 비교하자면 아자하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은 아니겠군. 달토끼, 애를 좀 맡아줄 수 있나?”
“네…….”
“저를 너무 애 취급하는 거 아니에요?!”
“애 맞잖아.”
“맞긴 한데…….”
초등학교 3학년으로 편입한 주제에 애 취급받고 싶지 않아 하는 건 대체 무슨 심보인가.
물론 유성우는 육아 서적 같은 건 읽지 않았으니 녹스의 심리 따위 알 리가 없었다.
“호, 혼자 가실 생각이신가요?”
“그래. 혼자면 충분하다. 따라올 건가? 방해만 될 텐데.”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유월은 저 전장 한바탕으로 들어가서 살아 돌아올 자신은 없었다.
전력인 상태라면 모를까, 지금의 몸 상태로는 정말로 방해만 될 게 뻔했다.
그렇게 그녀는 유성우를 혼자 보냈고, 그는 정면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검을 꺼내 들었다.
투박한 디자인이지만, 핏빛의 검신이 나무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에 섬뜩하게 번쩍였다.
그와 동시에 기백이 폭발한다.
적어도 유월의 눈에는 그리 보였다.
작았던 유성우의 존재감이 거대하게 늘어나더니 전신이 떨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보였다.
아마도 반대편에서 유성우를 맞이하는 리자드맨들에게는 무슨 마왕이라도 상대하는 것 같은 기분이리라.
짐승의 본능은 정확하다.
싸워야 할 적과 도망쳐야 할 적을 잘 구분한다는 뜻이었다.
-크와아아아아아아아아─!!
-크와아아아아─!!
-크와아아아아아아아─!!
작은 성 쪽에서 강렬한 포효가 터져 나온다.
온갖 리자드맨들의 목소리가 뒤섞인 포효였다.
자신들은 도망치지 않고 싸우겠다는 의지를 다지듯.
완전한 짐승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지성을 갖춘 어중간한 짐승이라는 게 놈들의 패인이었다.
유성우가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묵직했고, 남은 발자국에서는 희미한 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시작하는 건가요.”
유월의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유성우의 검이 휘둘러진다.
그를 중심으로 정중앙을 횡으로 가르는 참격.
군더더기 한 점 없는, 아름답기까지 한 일검이 펼쳐졌다.
일순간, 숲에 정적이 찾아왔다.
시끄럽게 울려대던 리자드맨들의 울음소리조차 잦아들었고.
풀벌레와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침묵의 폭풍전야라는 것을 알아챈 건 다음 순간이었다.
후우웅-
바람이 불어왔다.
갑작스레 몰아치기 시작한 강풍이 늪지대를 뒤흔들었다.
나뭇잎이 흩날리고, 늪이 파도치듯 흔들려 뒤집혔다.
그리고 굉음이 뒤따른다.
마치 하늘과 땅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고막을 두들기니, 녹스와 유월은 절로 움츠러들었다.
이어서 둘은 목도했다.
작은 성의 성벽을 비롯해 성문, 그 위에 서 있던 리자드맨들까지 반으로 갈라져 무너지는 것을.
인간이 혼자 만들어낸 광경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무너진 성벽의 잔해 속에서, 수로 속에서 무기를 꼬나쥔 리자드맨들이 튀어나와 유성우를 죽이기 위해 움직였으나.
그는 걸음을 내디디며 가벼운 움직임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것만으로도 거리가 좀 있는 리자드맨들의 머리가 떨어져 바닥을 굴러댔다.
참살의 현장이다.
이건 전투가 아닌, 일방적인 학살에 가깝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순식간에 튀어나왔던 리자드맨 수십이 쓰러지고, 그 뒤를 잇던 다른 무리 또한 쓰러뜨린다.
순식간에 백이 넘는 리자드맨이 쓰러지고, 계속해서 달려 나오는 리자드맨 또한 픽픽 죽어 나간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유월은 유성우가 리자드맨들을 썰어버리는 모습을 보며 입을 틀어막았다.
유성우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압도적이었다.
기술과 힘뿐만이 아니라 적을 효과적으로 섬멸하는 방법까지 알고 있는 듯, 적진을 전부 끌어내 성벽 바깥에서 죽여버린다.
유성우는 검에 묻은 체액을 털어내고는 다시금 성큼성큼 걷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
리자드맨들을 섬멸한다는 목적만으로 움직이는 기계처럼, 검을 휘두르며 나아간다.
리자드맨들의 숫자가 점점 줄고, 이내 나올 놈들이 줄어들자 성벽 바깥으로 보스로 보이는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새끼는 왜 악어야?”
악어도 파충류기는 하지만, 갑자기 도마뱀에서 악어가 되었다.
리자드맨, 아니, 크로코맨이 커다란 글레이브를 한 손에 쥔 채 자신의 친위대로 보이는 리자드맨들과 함께 달려왔다.
“크롸라아아아아아아-!!”
두려움의 비명인지, 전의를 북돋기 위한 포효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다섯 마리는 질퍽거리는 늪지를 물갈퀴로 내달리며 돌진했다.
“……후우.”
작게 숨을 내뱉은 유성우가 처음으로 검을 양손으로 쥐고 자세를 잡았다.
그러고는 발을 천천히 내디딘다.
다음 순간 유성우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돌진하던 놈들의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유성우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일생을 돌려보냈다.
그와 동시에 달리던 다섯 마리의 괴물들이 바닥에 넘어진다.
리자드맨 네 마리는 전신이 토막 나 쓰러지고, 크로코맨은 팔다리가 잘린 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지 소리를 빽빽 질러댔다.
“시끄럽다.”
유성우는 크로코맨의 머리를 발로 걷어차서 기절시키고는 뒷덜미의 갑옷을 붙잡고 질질 끌며 유월과 녹스가 있는 쪽으로 돌아왔다.
“이제 성 안쪽에 남은 건 비전투인원이다. 생존자 수색은 가능한가? 귀 좋잖냐.”
“네, 네. 가능해요. 할 수 있고 말고요…….”
“뭘 그렇게 바짝 쫄았냐. 그럼 일어나서 빨리 수색해. 또 뒈져가는 꼴 보면서 울고 싶은 거 아니면.”
* * *
“구조대 진입합니다!”
다이버들을 서포트하던 사람이 소리침과 동시에 다이버들이 어비스로 발을 들이려는데.
한발 앞서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 살았다! 살았어!”
“드디어, 드디어 나왔다!”
어비스 바깥으로 나온 사람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늪과 정글로 된 지옥 속에서 빠져나온 그들에게 황급히 구급대원들이 붙었고, 구조대는 안으로 들어가기를 잠시 멈췄다.
유지우가 생존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안쪽 상황은 어떻습니까?”
“모, 모르겠어요. 갑자기 토끼 귀 단 사람이 오더니 구해줬습니다.”
“토끼 귀?”
토끼 귀라는 말에 구조대에 참가한 토월족의 전사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검은 정장에 모자라는 일관된 복장을 하고 있었기에 위압감이 장난 아니었다.
“방금 토끼 귀라고 했나? 은백색의 머리칼의?”
“누, 누굽니까? 그렇긴 한데…….”
“제사장께서 살아계신다. 지금 당장 진입해서 구출한다.”
“예. 따르겠습니다.”
토월족의 전사들은 내부에 유월이 살아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곧장 그녀를 구하기 위해 어비스로 향하려 했다.
그러나, 전사들이 발을 들이기 전에 어비스에서 다시금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오더니, 그 끝에 여기저기 진흙투성이가 된 은백색의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토월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제사장님!”
“어비스 내부의 일은 전부 해결됐습니다. 보스는 쓰러졌고, 움직이지 못하게 구속해 둔 상태입니다. ……전사분들은 인간분들과 협력해 죽은 이들의 시신을 찾아와주세요.”
“뜻대로 하겠습니다.”
유월의 말에 토월족의 전사들이 부복하며 구조대로 편성되었던 다이버들과 어비스로 진입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모든 시선이 유월에게 집중되었을 때 녹스를 옆구리에 낀 유성우가 어비스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