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321)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320화(321/390)
헤라클레스(3)
흑사는 마검이다.
이계에 있던 역대 최악의 마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성우가 과거에 어비스에서 토월족과 함께 쓰러트렸던 마검은 비교도 되지 않는, 죽음과 피를 갈구하는 마검.
그런 마검이 담은 이야기는 어떠한 것인가.
“큭.”
흑사에 신격을 주입해 고유세계를 전개하려 들자, 흑사는 게걸스럽게 신격을 빨아들이며 준 신격보다 더 많은 신격을 빨아먹으려 들었다.
유성우는 냅다 흑사를 주먹으로 한 대 후리고는 말했다.
“적당히 해라.”
-크악!
흑사의 짧은 비명.
한 대 맞고 나서야 흑사는 제대로 일하기 시작했다.
유성우의 신격에 감응해 자신이 가진 이야기를, 세계를 풀어놓는다.
헤라클레스의 세계가 어둠으로 가득 찬다. 마치 종말을 가져오는 것처럼, 칠흑과도 같은 어둠 속에 모든 것이 갇힌다.
그리고 떠오르는 것은 일식의 태양. 어슴푸레한 붉은빛만을 뿜어내는 검은 태양이 모습을 드러낸다.
“…흠.”
이것이 흑사가 품고 있는 ‘세계’인가. 종말을 바라는 마검답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태양이 서서히 ‘눈’을 뜬다.
붉은 동공의 눈이 도르륵 굴러가며 세상을 관조하고, 공포로 물들인다.
유성우는 이런 느낌을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었다.
‘…마신(魔神)이다.’
흑사는 단순한 마검이 아니라, 마신을 봉인한 검이었나?
어쩐지 미친검이더라.
지금까지 흑사의 고유세계를 펼쳐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생각보다 더 끗발있는 놈이었던 모양이었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눈동자에서 울려 퍼지는 광소(狂笑). 고유세계에 힘입어 자아를 외부로 표출한다.
-모든 것이 내 발아래 있느니, 두려울 것 없도다!
신이 난 흑사가 소리쳤다.
유성우는 흑사의 외침에 피식 웃으며 여전히 활시위를 당기던 중인 헤라클레스에게 말했다.
“그렇다는데.”
“그럼에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군.”
그것은 유성우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흑사를 들어 올리자, 검게 변한 대지에서 수천, 수만 자루의 검이 떠오른다.
그것들이 한데 뭉쳐 거대한 검의 형태를 취하니, 비로소 마검의 세계가 완성되었다.
[고유세계] [마신종말 : 결(魔神終末 : 結)]이곳은, 끝을 맞이한 세계다.
마검, 흑사가 바라던 ‘끝’.
흑사의 욕망이 그대로 반영된, 종말을 맞이한 장소.
더없이 싸늘하고,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한 세계는 영웅조차 종말을 막지 못했다는 증거다.
온갖 역경을 극복해 온 영웅조차, 정복해 내지 못한 종말의 세계다.
그렇기에 헤라클레스의 죽음에도 어울리는 곳이고.
“막아봐라. 영웅. 이게 내가 네게 바치는 죽음이자 재앙이다.”
“쏘아서 떨어뜨려 주마.”
[흑사(黑四] [흑검사해일(黑劍死海溢)]유성우가 검을 내림과 동시에 거대한 검이 다시 분리되어, 해일이 되어 쏟아진다.
죽음을, 저주를 품은 수만 자루의 검이 헤라클레스를 집어삼켜 종말로 인도한다.
케이론 궁술
태양 쏘기
그런 죽음의 파도 속에서 한 줄기의 빛이 세계를 관통한다.
헤라클레스가 놓은 활시위를 타고, 일직선의 찬란한 빛이 종말을 꿰뚫는다.
죽음의 파도를 넘어서 저주를 불태우며, 헬리오스가 이끄는 태양조차 쏘아 떨어뜨릴 기세로 나아간 빛의 화살은 결국에는 종말의 태양을 꿰뚫는다.
그러나, 헤라클레스의 승리는 아니었다.
“…이건 나도 이겨낼 수 없겠군.”
“눈앞을 잘 살폈어야지.”
파도에 숨어 다가간 유성우의 검이 헤라클레스의 심장을 꿰뚫었다.
유성우의 파도를, 세계를 부수는데 집중한 나머지 눈앞의 검을 보지 못한 탓이었다.
거기다 남은 신격을 모조리 끌어다 쓴 공격이었기에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유성우도 아예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자신의 세계를 내주는 대신 헤라클레스를 죽였으니.
교환비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의 입가에서도 피가 울컥울컥 흘러내렸다.
유성우는 입에 고인 피를 뱉어내자, 헤라클레스가 남은 기운을 끌어모아 소리쳤다.
“자랑스러워 하라! 그리스의 대영웅, 헤라클레스를 쓰러트렸다는 사실을!”
“평생 가도 잊지 못할 업적이다.”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하다! 나의 이야기는 이곳에서 끝이지만, 네 신화는 계속 이어질 테니! 자랑스러워 하라! 네 장대한 신화에, 용맹한 영웅이 있었노라 전하라!”
영웅은 마지막까지 영웅이었다.
추잡하게 붙잡고 늘어지지도 않고, 웃는 얼굴로 자신의 마지막을 고한다.
“주어진 시간이 끝났나 보군. 드디어, 드디어 별로 돌아간다. 아주 오랜 여행이었어…….”
헤라클레스의 몸이 서서히 투명해지더니, 유성우의 세계과 무너짐과 함께 자취를 감춘다.
이윽고 드러난 넓디넓은 평원에 홀로 남은 것은 유성우뿐.
그는 자신에게 흘러들어오는 헤라클레스의 신격을 흡수하며 숨을 길게 내뱉었다.
“…조금 허무하군.”
그리스 신화의 여러 장면을 장식한 대영웅의 끝을 제 손으로 내다니.
이러한 죽음은 올바른 것이었을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유성우는 이내 지워버렸다.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지금 중요한 건 무엇보다, 제레미아다.
당초의 계획은 달성했으니, 이제 제레미아를 데리고 돌아가면 끝이다.
“…하지만 순순히 돌려줄 것 같지는 않군.”
노파가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다.
서로 합의 후에 진행한 성전임에도, 계약을 어기려는 모양이었다.
이러면 올림포스의 모두에게 반감을 살 텐데 말이다.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제레미아에게 집착하는 걸 보면 정말로 뭐가 있긴 한 모양이었다.
“그럼 가볼까.”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다.
운명의 신전에 쳐들어가서 모이라이를 쳐 죽이고 제레미아를 탈환하는 것이다.
몸 상태가 만전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헤라클레스의 신격을 흡수함으로써 한층 더 거대한 신격을 이루었으니.
그렇게 결정하고 발걸음을 옮기려던 때, 그의 발치에 화살이 꽂혔다.
멀리서 날아온 초장거리 저격.
그럼에도 유성우는 정확히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저 먼 거리.
몽골인의 눈으로도 보이지 않을 거리에, 활을 든 아르테미스가 이곳을 겨누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인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움직이면 쏘겠다며, 엄포를 놓는다.
“허, 어이가 없군.”
유성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에 동조하는 다른 신들도 있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임전 태세를 취한 채였다.
“역시 그냥 보내줄 리가 없죠.”
메데이아가 유성우의 곁에 서며 말했다.
“당신이 성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올림포스의 위신이 떨어졌는데, 그냥 보내면 조롱거리밖에 더 되겠어요?”
“이래놓고 무사히 탈출하면 더 조롱거리가 될 텐데 말이지.”
유성우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올림포스의 주신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원하던 결과는 아니었겠지만, 이 꼴을 두고 볼 셈일까.
“믿을 놈들을 믿어야지.”
유성우는 피식 웃으며 그리 중얼거리고는 흑사를 돌려보내고, 이계를 꺼내 들었다.
대량으로 썰어버리기에 이계만한 무기가 없다.
보이지 않는 칼날이 그리스 신격들의 목을 노릴 테니까!
안타깝지만 올림포스와 전쟁을 벌이는 수밖에 없어보였다.
그리 생각한 유성우가 신격을 방출하려는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나, 이게 무슨 일이죠?”
페르세포네가 저벅저벅 걸어왔다.
평소와는 다른 밤으로 지어낸 드레스를 걸친 채.
명계 여왕의 위엄을 내보이며 말을 잇는다.
“설마,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겠다는 뜻은 아니죠? 천공에는 추잡한 자들만 모여 있는 건가요?”
갑자기 광역딜을 박는 페르세포네.
유성우는 들고 있던 검을 내렸다. 방금의 말로 모든 어그로가 페르세포네에게 쏠렸다.
“뚫린 입이라고!”
천공파에 속한 신격이 참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러나 잠시 후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걸 깨닫고는 입을 황급히 막았지만.
“흐응,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
페르세포네의 분노는 피해갈 수 없다. 그 누가 명계의 여왕을 욕보이는가.
그것은 명계의 주인, 하데스를 기만하는 짓이나 마찬가지였다.
주신의 철퇴가 떨어진다.
바닥에서 솟구친 어둠이 입을 잘못 놀린 신격을 저승으로 끌고 간다.
“아, 안 돼! 안─!”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하고 순식간에 명계로 끌려간 신격 하나.
같은 꼴이 되기 싫었던 이들은 입을 다물었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살기마저 감추었다.
아무리 많은 신격이 모이더라도 명계의 주인을 넘볼 수는 없는 법이었다.
페르세포네는 유성우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가세요.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이들을 어떻게 하든지, 그것은 승자의 권리니까요.”
“고맙군, 페르세포네.”
짧게 대답한 유성우가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어김없이 아르테미스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어느새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활시위에 화살을 재며 으르렁거렸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너야말로 이게 무슨 짓이지?”
아르테미스는 무슨 이유에선지, 강렬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뻔하죠 뭐. 그거 몇 마디 들었다고 못 참고 찾아온 거죠.”
“몇 마디라니?”
“벌써 잊으셨어요? 올림포스에 왔을 때 말이에요.”
“그때 뭐라고 한 것 같긴 한데, 그걸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고?”
원래 게임에서 패드립을 먹어도 다음판 게임을 하면 잊는 법이 아니던가.
그걸 아직도 곱씹고 있다니 대체 뒤끝이 얼마나 긴 건지.
그런, 어이없다는 투의 유성우의 말이 더욱 아르테미스를 분노케 했다.
“여기는 저한테 맡기세요. 그녀에게 갚아줄 게 있으니까.”
메데이아가 앞으로 나서며 자신의 신격을 발했다.
유성우가 더욱 강한 신격을 얻음에 따라, 성신전의 일원으로 속해 있는 메데이아의 신격도 조금은 강해져 있었다.
이제는 반신이라고 부르기는 뭣한, 어엿한 하나의 신격이었다.
“자, 아르테미스. 달에 미친년. 이번에는 저랑 놀아요. 누가 더 미친년인지 제대로 보여줄 테니까.”
살벌한 말과 함께 그녀가 단검으로 제 팔뚝을 그으며, 저주가 가득 담긴 피를 뚝뚝 떨어뜨렸다.
유성우는 메데이아의 등을 한 대 툭 쳐주고는 그대로 뛰어올랐다.
공중으로 높게 뛰어오른 그는 한계고도까지 올라간 다음, 모이라이의 신전을 찾았다.
‘저기로군.’
그러고는 그대로 하강.
천장을 부수며 진입할 생각으로 이계를 돌려보내고, 오월을 들었다.
‘단번에 뚫는다.’
운명의 신전은 강력한 결계로 보호받고 있으나, 뚫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월을 제 쪽으로 한껏 당겼다가, 단숨에 그러모은 나선의 신격을 해방한다.
[오월(五月)] [용아관통해격(龍牙貫通海擊)]길게 뻗어진 용의 이빨이 운명의 신전의 결계와 부딪쳐 불꽃을 튀긴다.
결계는 잠깐 동안 유성우를 막아서는 듯하지만, 그가 신격을 더욱 쏟아붓자 버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진다.
뒤이어 신전의 천장까지 뚫어버린 그가 신전 내부에 착지해 기감을 넓혔다.
그의 오러와 마력이 신전 바닥을 타고 흐르며 내부 구조를 낱낱이 밝혔다.
내부에 있는 적들의 숫자를 파악하고, 제레미아와 모이라이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한다.
그리고, 이윽고.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