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327)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326화(327/390)
운명(6)
헤파이스토스.
추한 외모로 인해 버림받았던 신이며, 그 탓에 절름발이로 평생을 살아온 대장장이 신.
아테나를 꺼내기 위해 제우스의 두개골을 쪼갠 경험이 있는 두개골 수술 마스터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헤파이스토스의 신전은 대장간과 다름없었다.
뜨거운 열기.
철을 두드리는 소리.
증기가 쉴 새 없이 솟구친다.
헤파이스토스의 신전 앞에 선 유성우는 일정한 리듬의 망치질 소리에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장인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수습공부터 시작해서 명장(名匠)이라 불리기까지, 많은 노력과 재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장인들을 내려다보는 이가 있다.
바로 신장(新匠)이라 불리는 기술이 신에 달한 장인들의 이상향이다.
그런 대표적인 신장이 바로 올림포스의 헤파이스토스다.
올림포스 주신들의 대표 무기를 만든 것도 그였으며, 온갖 무구들을 제작해 낸 신장.
일단 유성우도 명장 소리 정도는 듣던 실력이었기에, 신장을 마주하는 것이 기대되었다.
“저는 여기서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시길.”
길 안내를 해준 헤르메스가 물러나고, 유성우는 홀로 헤파이스토스의 신전을 올랐다.
신전 내부에 느껴지는 인기척은 한 명.
부하 신격들은 없는지, 대장간에서 헤파이스토스는 홀로 쓸쓸히 망치를 휘두르고 있었다.
“헤파이스토스.”
유성우가 이름을 불렀으나, 집중한 나머지 안 들리는지, 묵묵히 망치만 휘두를 뿐이었다.
유성우는 근처의 의자를 끌고 와 앉아서 그의 망치질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가 그렇듯이.
장인들은 방해받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니까.
‘얼마나 걸리려나.’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유성우는 의자에 앉아 어깨너머로 헤파이스토스의 야금술을 지켜보았다.
배울 점이 많았다.
한 번의 휘두름에 의지가 담기고, 두 번의 휘두름에 신격이 담긴다.
세 번의 휘두름에는 점차 쇳덩어리가 형태를 찾아가며 아름다운 형태로 변모한다.
대충 끝난 것 같자 유성우가 말했다.
“끝났나?”
“끝났나?”
“예. 조금만 다듬으면… 흐악?!”
헤파이스토스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하고는 깜짝 놀랐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유성우를 돌아보았다.
유성우가 손을 내저으며 하품하자, 그는 소심하게 물었다.
“누구십니까?”
“올림포스의 빈객이다. 제우스 님에게 허가를 받아 체류하고 있지.”
헤파이스토스는 올림포스에 그런 일이 벌어졌음에도 대장일에 집중하느라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거 또, 귀중한 손님을 두고 제가 너무 집중했던 모양입니다.”
“괜찮다.”
유성우는 그를 쳐다보았다.
드디어 보게 된 얼굴은 추남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얼굴이었다.
‘아.’
헤파이스토스는 인간 기준에서는 괜찮은 편이었지만,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격들이 전부 넘사벽으로 예쁘고 잘생기다 보니.
상대적 추남이 된 모양이었다.
헤파이스토스의 운명에 잠시 안타까움을 표한 유성우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 찾아왔다. 내 검 좀 봐줄 수 있겠나?”
“…….”
헤파이스토스는 잠시 고민하는 듯,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다른 성신전의 무기를 봐주는 것은 규율에 위반되는 것이지만, 제우스 님의 허가도 있고 하니… 특별히 봐 드리겠습니다.”
“그거 고맙군.”
“그리고 무엇보다… 제 얼굴을 보고도 놀라지 않으셨으니.”
“놀라야 하는 건가?”
“처음 보시는 분들은 다들 놀랍니다. 괜히 제가 올림포스의 대표 추남이 아니죠.”
“인계에 가면 너보다 못생긴 놈들이 즐비한데 말이다. 올림포스 신들이 그놈들을 보면 아주 까무러치겠군.”
유성우의 말에 헤파이스토스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게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파이스토스가 말했다.
“이제 검을 보여주세요. 무슨 문제가 있는지 한 번 보겠습니다.”
“좀 많은데.”
“괜찮습니다. 남아도는 게 시간이니까요.”
유성우는 문제가 있는 검들을 꺼냈다. 일생, 이계, 삼정, 오월.
흑사와 육망, 팔성은 괜찮았다.
‘거칠(巨七)은 꺼낼 수도 없으니 상관없지.’
꺼내지 않아도 되는 검들의 공통점이라면, 한 번씩 신격에 도달한 검들이라는 것이었다.
흑사는 마신이 봉인된 검이고.
육망은 여신의 검이다.
팔성은 야마타노오로치의 검이니.
다섯 자루의 검을 본 헤파이스토스는 눈을 반짝였다.
“굉장한 검들이군요. 하나같이 완성도가 어마어마한 검들입니다.”
“그렇지. 하지만 아직 부족해.”
“…확실히. 한 꺼풀을 벗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명검(名劍)이 신검(神劍)으로 거듭날 발돋움을 제가 조금 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검에 어떤 처리를 할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손을 볼 것인지 설명해주었다.
헤파이스토스를 찾아온 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았다.
잠깐 보고는 무슨 문제인지 알아채고는 적절한 솔루션까지 제시하지 않는가.
“얼마나 걸리나?”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전부 해서 반나절 정도면 충분합니다.”
“오래 걸리지 않는군.”
한 달 정도를 예상했는데, 역시 신장이라 그런가.
“검과 검수의 감응도를 올려주는 작업이니까요. 하지만 이후에, 한 꺼풀을 벗어내기 위해서는 당신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 겁니다.”
“내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렇습니다. 이건, 검의 자아를 확립하는 과정입니다. 지금도 자아를 가지고는 있지만, 독립성이 약하죠.”
유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생이나 삼정은 어느 정도 말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나머지 이계와 오월의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에 반해 흑사와 육망은 아주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미친놈들이고.
팔성은 야마타노오로치의 혼이 담겨있다.
“자아를 확립하고, 독립성을 얻는 과정 중에 검과 검수의 교감이 필요합니다. 검의 기억을 읽고, 검과의 동조율을 높이는 겁니다.”
“그렇군.”
“그렇게 자아를 확립하고, 독립성을 얻으면 검들은 하나의 신격으로 격상되겠죠. 적어도 하급 신격 정도는 될 겁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마어마한 전력 상승이나 다름없다.
검 한 자루 한 자루가 하급 신격의 역할을 해낸다면 검계 또한 급부상하게 될 것이고.
헤파이스토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검들인데, 검들의 기억을 읽다가 그대로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건 괜찮다.”
이 검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건, 자신이었으니까.
그렇게 유성우는 검들을 헤파이스토스에게 맡기고는 신전을 나와, 올림포스를 둘러보았다.
어디를 가든 신격의 시선이 유성우를 향해 꽂혔으나, 전처럼 노골적인 적의나 시비를 걸어오는 놈은 없었다.
그가 헤라클레스를 쓰러트리고, 결국에는 모이라이 세 자매를 베어버리는 걸 직접 보았으니까.
“여기가 좋아 보이는군.”
유성우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 나무 그늘 적당한 곳에 앉아 팔성을 소환해 허벅지 위에 올리곤 눈을 감았다.
팔성에 저장해 둔 운명의 신격을 흡수하며, 자신의 신격으로 서서히 치환했다.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기고. 운명의 신격은 검사에게도 무척이나 유용한 신격이었다.
검사는 전투할 때 수십 가지의 갈림길에 서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한다.
그것은 거의 본능과 직관에 따른 행동이지만, 과거를 읽고, 현재를 보며,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 폭은 더욱 넓어질 터.
“…후우우.”
유성우는 숨을 길게 내뱉으며 눈을 떴다. 아직 팔성에 담긴 기운을 전부 흡수하지 못했는데, 불청객이 찾아왔다.
면사로 얼굴을 가린, 갈색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이었다.
“…너는.”
“키르케. 그렇게 부르면 된다.”
“키르케.”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유성우는 곰곰이 키르케라는 이름을 곱씹다가, 이내 떠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리스 신화의 마녀신이로군. 메데이아의 고모였나?”
“그래.”
키르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성우에게 다가와 내려다보았다.
역시 신이라 그런지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장신인 그녀는 한동안 유성우를 내려다보다, 그 앞에 앉았다.
“내게 무슨 일이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딱히 그런 일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메데이아랑 움직이는 것도, 뜻이 맞아서였다.
여러모로 마녀회와 검계는 같은 길을 걷고 있었기에 받아들이기도 했고 말이다.
키르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전투를 직접 보았지. 그녀가 미련을 떨쳐내며, 자신의 세계를 완성하는 모습도 말이다. 그건 네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
“그 아이는 늘 그랬어. 누군가가 등을 밀어줘야만 한 발짝을 나아갔지. 이번에는 당신이 크게 등을 밀어준 거야.”
“아직 메데이아를 잘 모르는군. 내가 아니었어도 그녀는 언젠가 자신의 세계를 완성했을 거다. 미련도 떨쳐내고.”
“…그랬을까.”
“그랬을 거다. 메데이아는 조금 문제가 있긴 하지만 강한 마녀였다. 그런데 그게 몇 년 걸렸을지는 모르는 일이지.”
유성우의 말에 키르케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의 말대로 메데이아가 홀로 떨쳐내려면 몇 년이나 걸렸을지 생각하며 그녀가 말했다.
“오랜만에 메데이아가 웃는 얼굴을 보았어. 내가 이 손으로 그 아이를 올림포스에서 쫓아냈을 때는, 증오로 가득 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했는데…….”
“그런 일을 당했으면 그럴 만도 하지. 저주에 걸려 정말로 눈에 뵈는 게 없었기도 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저주인가.”
키르케는 그리 중얼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유성우에게 적색 보석이 박힌 반지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
“그 아이를 구원해 준 자네에게 선물일세. 그 반지로 나를 부른다면 언제든, 한 번 힘을 보태주도록 하지.”
“메데이아 손에 넥타르나 암브로시아 같은 것도 좀 들려서 보내줘라. 오랜만에 고향에 온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끝을 모르는군.”
하지만 그런 모습이 키르케의 마음에 더 들었는지, 그녀는 다시금 웃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모습이 어둠에 휩싸여 사라졌다.
홀로 남은 유성우는 다시 눈을 감으려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메데이아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에 계셨네요?”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긴요. 안 보이니까 그냥 찾으러 온 거죠. 여기서 뭐 하고 계셨어요?”
“잠시 시간 좀 죽이고 있었다. 너는 안 보이던데 뭐 하다 온 거냐?”
“여기저기 인사 좀 하고 왔어요. 오랜만에 들른 올림포스니까…….”
그녀는 조금 씁쓸한 얼굴을 했다.
오랜만에 돌아왔어도, 자신을 보는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헤카테의 신전에도 들렀고, 키르케도 만났다.
자신이 쓰러졌을 때 안아서 옮겨준 게 키르케였다.
자신의 손으로 올림포스를 쫓아냈을 때는 언제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을 내려다보던 모습은 얼음장처럼 얼어있던 메데이아의 마음을 녹이기에는 충분했다.
메데이아는 이내 활짝 웃고는 말했다.
“아, 그리고 제레미아가 깨어났어요. 같이 보러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