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33)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33화(33/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33화
보다 자세하게
“……이상하군.”
돌발 어비스 사태 이후에 조용히 빠져나온 유성우는 유지우에게 짤막하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합의 끝에 공은 토월족 쪽으로 돌리고, 유성우는 제 이름을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제 힘과 이름을 아는 건, 아직 실권을 쥔 몇 명으로 충분했으니까.
아무튼, 별일 없이 지나갔기에 유성우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녹스를 등교시키고는 집에서 명상과 와신상담으로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그러다 명상 중에 위화감을 느꼈다.
“영혼의 수복이 빨라졌다.”
이전에 점검했을 때보다 많은 부분이 수복되었다.
금이 잔뜩 갔던 검혼(劍魂)도 담금질을 새로이 한 것처럼 금이 사라졌으니, 크나큰 진보였다.
“……왜지?”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영혼의 수복은 무척이나 느리기에, 전부 복구하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었는데.
최근에 있었던 일을 복기했다.
음식을 구강 섭취하는 걸로 영혼이 회복될 리는 없으니 제외하면, 죄다 어비스에 들어가 싸운 일밖에 남지 않는다.
“……어비스의 괴물들이 영혼의 회복을 도왔다?”
놈들을 죽임으로써, 놈들의 영혼을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특히 아자하 이후에 수복률이 많이 늘어난 것 같았기에 고려해 볼 만한 상황이었다.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아니, 없다.
유성우가 아는 한 자신의 검에는 그런 기능은 없었다.
일생을 몇 년 동안 써먹었는데, 그런 기능이 있었다면 마신을 잡고 나서 신격에 다다라야 하지 않겠는가.
그랬다면 딱히 여신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이 지구로 돌아왔을 터였다. 신격을 희생해서.
뭔가, 뭔가가 더 있다.
유월이 말했던 어비스에 얽힌 이야기 말고도 무언가가 더 있었다.
“아오, 씨X……. 머리 쓰는 건 베로니카가 잘했는데.”
그립다, 베로니카.
바가지를 안 쓰다 못해 역으로 사기를 치는 그 두뇌가 오랜만에 그리웠다.
안타깝게도 마신이랑 싸우기 전에 마족에게 당해서 죽어버리고 말았지만, 오늘따라 더욱 그리웠다.
유성우는 소파에 냅다 누웠다가, 갑자기 울려대는 초인종에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왠지 문을 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무시하려 했으나.
초인종이 다시 집요하게 울려댔다. 마치 자신이 집에 있는 걸 안다는 것처럼.
끈질긴 초인종에 몸을 일으킨 그가 현관문을 열자,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은백색의 머리칼.
인간에게는 없는, 아래로 내려온 북슬북슬한 귀.
유월이 손에 과일바구니를 든 채 현관문 앞에 서 있었기에 그는 다시 현관문을 닫았다.
“뭐야, 사이비잖아.”
그리고 다시 소파에 가서 드러누웠는데 초인종이 다시금 집요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어지간하면 그냥 갈 줄 알았는데 목적을 완수하기 전까지는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유성우는 다시 현관문을 열었고, 유월을 집 안으로 들였다.
“적당히 앉아라. 집은 또 어떻게 알고 왔지?”
그녀가 건넨 과일바구니를 받아들고, 안에서 사과 한 알을 꺼내 입으로 베어 문 그가 물었다.
유월은 집안을 두리번거리다 소파에 조심스레 앉고는 대답했다.
“당신이 누군지 조금 수소문을 해보았습니다. 유성우 님. 메테오 인더스트리의 대표님과 얘기를 끝마친 뒤, 혼자 가는 조건으로 집 주소를 받았지요.”
확실히 주변에 그녀의 호위로 보이는 이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유성우는 지금 당장 유지우에게 전화해서 한소리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가, 이내 혀를 차며 유월의 반대편에 털썩 앉았다.
토월족의 제사장인 만큼, 나름의 정보 루트도 가지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굳이 메테오 인더스트리를 통해 찾아온 걸 보면 제대로 협상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리라.
“무섭군 무서워…….”
그래도 스토커가 따로 없다.
사과를 아작아작 씹어먹은 그가 반쯤 뜬 눈으로 유월을 쳐다보고 있자, 그녀는 쑥스러운 듯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말했다.
“이리 다시 찾아뵙게 된 것은 감사를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유성우 님이 아니었다면 제 목숨은 이미 달로 돌아갔겠지요.”
“그것만 말하러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예리하시군요. 이번에야말로, 유성우 님을 데려가고 싶어서 단단히 준비해 왔습니다.”
“……협상의 기본도 안 됐었는데, 이제는 좀 협상을 어떻게 하는지 알았나 보군.”
사과의 심까지 아작아작 씹어먹은 그가 준비해 온 걸 꺼내 보라는 듯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러자 유월은 허리춤에 매고 있던 가방에서 서류철 몇 개를 꺼내 들었다.
“이건 저희가 유성우 님에게 의뢰하려고 하는 어비스의 정보입니다. 의뢰를 받으실지 말지는, 유성우 님이 결정하실 테니…….”
“흠.”
“그리고 이쪽은 저희가 제시할 수 있는 보상안입니다.”
유성우는 다른 서류철도 받아들었다. 한국인인 그도 알아먹을 수 있도록 한국어로 자세하게 쓰인 서류들이었다.
“저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어비스 속에서 보았던 당신의 신위는 지구상에 있는 그 어떤 이도 흉내 낼 수 없겠죠.”
“그런가.”
유성우는 어비스 내부의 정보보다 보상안을 먼저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게 진심이라는 얼굴로 유월과 서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진짜냐? 이거.”
“그렇습니다. 저희 토월족이 제시할 수 있는 최대치의 보상입니다.”
유성우는 다시금 서류를 들여다보았다.
흰 건 종이고, 검은 건 보상안이었다. 수십 가지의 항목이었으나 개중 가장 눈에 띄는 건.
토월족의 모든 재산.
그리고 제사장 본인.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내용에 눈썹을 씰룩이며 쳐다보니, 그녀는 쑥스럽다는 듯 헛기침을 한 번 했다.
“만약 유성우 님께서 의뢰를 받아들여 주시고, 일이 무사히 해결된다면 토월족이 이 땅에서 일군 모든 것들을 넘길 것입니다. 저희는 다시금 그곳에서 새로이 시작하게 될 테니까요.”
그러니까 즉.
북아일랜드의 자치권을 포함한, 모든 재산이었다.
토월족은 ‘월문’이라는 능력으로 막대한 재산을 벌어들였다.
선천적인 신체 능력과 지능이 높은 토월족은 그 능력을 지구에서도 십분 발휘해 단기간에 무시무시한 재산을 축적한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을 유성우에게 인계한 뒤, 토월족의 제사장인 유월은 스스로를 바치기로 결정했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었으나 유성우를 붙잡기 위한 유월 나름의 결론이었다.
“저와 함께하시면 미래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제사장으로서의 월문 또한 유성우 님을 위해 사용될 것이고, 제 명령이면 토월족이 움직이니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던가요?”
“……제정신이 아니구나.”
“그만큼 저희는 땅을 되찾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몇 번인가 다이버들을 고용해 투입했으나, 번번이 실패했거든요.”
그렇기에, 마지막 희망이다.
유성우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기에 유월은 그에게 모든 것을 걸기로 한 것이었다.
일단 유성우는 보상안을 제쳐두고는 어비스의 정보를 보았다.
‘……자신을 검마라 칭하는 괴물이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양손이 검으로 이루어진 괴물.
무시무시한 실력과 기세로 토월족의 영토를 점령하기 시작한 놈은 제 세력을 일구더니, 토월족을 절멸 직전으로 몰아넣었다.
그 순간, 토월족의 진영에 지구로 가는 어비스가 생겨났고 유월을 포함한 최소한의 병력만이 지구로 넘어와 검마를 몰아낼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검마의 정보와 함께 토월족의 대략적인 배경 이야기를 알게 된 유성우는 이놈들도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잘 살다가 갑자기 침략당한 게 아니던가.
두 서류철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가 눈을 감았다 뜨며, 보상안을 이내 반으로 주욱 찢었다.
유월이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자 유성우는 찢어버린 종이를 탁자에 내려두며 말했다.
“다 필요 없다. 물질적인 건 충분하거든. 내가 원하는 건 한 가지다. 너희들의 월문을 빌려다오.”
“토월족의 월문을 말입니까?”
“그래. 월문은 신탁예지에 가깝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내가 직접 대화하는 것도 가능한가?”
“……가능은 하겠지만, 막대한 공물이 필요할 겁니다. 제가 직접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토월족도 아닌 타인이니까요. 얼마만큼의 공물이 필요할지도 가늠이 안 가요.”
“대충 검마라는 놈을 때려잡고 나온 부산물이면 충분하겠지. 부족하면 다른 것들로 채우면 되고.”
아직 공략되지 않은 어비스는 차고 넘친다.
그에게 공물이 부족할 일은 없으리라.
‘……월문이 정말 신의 목소리를 듣는 힘이라면, 큰 도움이 될 거다.’
신이라고 전부 전지전능한 건 아니다.
신마다 그에 걸맞은 신격(神格)이 있으며 그에 따른 능력을 지닌다.
토월족이 따르는 신인 달, ‘루나’가 진짜라면 예지 혹은 지혜에 걸맞은 신격을 지니고 있을 테니 궁금한 걸 묻기에는 최적이었다.
“알아들었으면 날짜 잡아라. 각 좀 재보러 가자.”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오빠, 토월족의 요청을 받아들였다면서?”
“그래.”
“그럼 북아일랜드로 가야지, 왜 여기에 있는 건데?”
“내가 혼자 가자니 좀 불안해서 말이다. 역시 좀 더 단련시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성우와 유지우는 메테오 인더스트리의 지하 단련실에 있었다.
다른 다이버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낸 뒤, 안에는 둘만이 마주 본 채 서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유지우는 완전무장을 한 채였고, 유성우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셔츠에 바지, 그리고 한 손에는 목검이었다.
“저번에 내가 알려준 대로 검 따로 마법 따로가 아니라 검이랑 마법을 함께 쓰는 법을 익힌 것 같긴 한데, 아직 어색한 부분이 많다.”
“스승도 없이 이 정도 하는 거면 잘하는 거 아니야?”
“틀린 말은 아니지.”
유성우가 보기에 유지우의 재능은 범상치 않은 편이었다.
그는 마검사가 아니라서 유지우에게 깊게 조언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고작해야 자세나 검로를 봐주는 정도.
그가 익힌 검술을 가르쳐주고 싶으나, 몸에 부담이 심하기 때문에 유지우가 배웠다가는 전신의 근육이 찢어질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정도 하는 애들은 차고 널렸거든.”
“……대체 어디에?”
“여기저기에. 그리고 내가 곁눈질로만 익힌 검술 하나를 알려주마.”
“곁눈질로만 익힌 검술이 대체 뭐야? 도움 되는 거 맞아?”
“사람의 체질에 맞는 검술이 따로 있다. 내 체질에는 맞지 않는 검술이라, 나는 익히지 않았지. 하지만 대강은 기억하고 있다.”
그리 말하며 유성우는 목검을 든 채 제 쪽으로 끌어당겨 가슴께에서 곧게 세웠다.
그러고는 눈을 감은 채 천천히 동작을 떠올렸다.
이것은 과거, 동료였던 것이 익혔던 검술이었다.
자신의 검을 믿지 못하고 인간을 배신해, 마족의 편에 섰던 안타까운 동료.
“검술의 이름은 ‘해월검(海月劍)’이라고 한다. 바다에 뜬 달에서 착안한 검술로, 잔잔함 속에 깃든 순간이 빛나는 검이지. 잘 보고, 따라 해봐라. 그리고 어디에 마법을 집어 넣어야 할지 고민도 해 봐.”
유성우가 그리 말하며 검을 느릿하게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유지우의 눈앞에.
초승달이 휘영청 뜬 망망대해가 펼쳐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