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335)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334화(335/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334화
삼정(2)
밑에서 격렬한 싸움을 벌이는 동안, 유성우는 검계의 위에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왜 내게 기억을 보여주기 싫다는 거냐? 삼정.”
-지금까지 나를 너무 험하게 다루지 않았나. 앞으로도 그럴 것 같으니까.
무슨 사춘기 청소년도 아니고.
어이없는 삼정의 말에 유성우는 주먹을 꽉 쥐고는 한 대 칠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삼정이 더 삐져서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지금 이러는 걸 보면 머리가 좀 굵었다, 이거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
-방패로 쓰지 않을 것이냐?
“그래. 너는 검이지, 방패가 아니니까. 지금까지 방패처럼 사용한 걸 미안하게 생각한다.”
-…정말이지?
자아를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어린아이나 다름없다.
조금만 구슬리면 넘어올 터.
그런 유성우의 시커먼 속내를 알아채지 못한 삼정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그의 앞에 떠서 빙글빙글 돌았다.
-검이란 베기 위해 있는 것이지, 막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잘 안다.”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잘 안다니까 그러네. 그러니까 협조 좀 해라. 너도 이대로 있는 건 싫을 것 아니냐.”
-아닌데? 좋은데?
이 새끼가 진짜.
밀당을 하자는 건가? 살다 살다 검이랑 밀당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삼정이 흑사 같은 놈이었다면 그냥 두들겨 팼을 테지만, 삼정에게는 그럴 수 없었다.
베로니카의 검이었으며,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준 검이었으니까.
흑사 같은 거랑은 급이 다르다.
…흑사 같은 거랑은 급이 다르다.
자신이 삼정을 흑사랑 똑같은 취급을 하기 전에, 그는 손을 뻗어 삼정의 검신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검마다 성격이 다른 것도 참 신기하군.’
일방적인 감정 교류는 안 된다는 거겠지. 상대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전할 필요도 있다.
유성우는 오러를 일으켜 삼정에게 주입했다. 자신의 마음이 삼정에게 닿도록.
그의 오러를 받아들인 삼정이 무엇을 느낀 건지, 잠시 조용히 있더니 이내 말했다.
-네게 내 기억을 보여주도록 하지. 유성우여.
***
눈을 감았다 뜨면, 그곳은 숲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수천 년을 살아온 것 같은 거목.
싱그러운 풀잎으로 가득한 거목에서는 어마어마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유성우는 나무를 올려다보다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세계수…….”
이계에도 세계수라 불리는 존재가 있었다.
하지만 기록상으로만 남아 있을 뿐, 실물을 본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는 세계수가 아직 남아 있던 시절이란 말인가?
이계가 만들어진 시간보다 더욱 과거라는 소리인가.
세계수에 대한 기록은 최소 수백 년 전에 나오니…….
‘내가 알고 있던 삼정의 과거는 일부에 불과했다는 것인가.’
너무 옛날이라 기억하는 사람도 없는, 그 정도의 과거다.
유성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계수가 있다는 건, 세계수를 관리하는 종족도 있다는 뜻일 터.
그의 기억에, 세계수를 관리하는 종족은 하나밖에 없었다.
‘귀쟁이들.’
종족명, 엘프(Elf).
판타지에 주류로 등장하는 종족이고, 자연을 사랑하는 이미지가 강하다.
유성우도 대충 그런 감각으로 생각했으나 실제로 만나본 엘프들은 어딘가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놈들이었다.
인간들의 땅이나 엘프들의 땅이나 마족들에 의해 멸망해 가는데, 그들은 협력하기는커녕 더욱 깊은 숲에 숨어버렸다.
마치 자신들은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대화조차 거부했다.
그렇게 그들은 멸망했다.
대화를 거부한 나머지 자멸해 버리고 만 것이었다.
종족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고, 오만하다. 마족과 인간을 경시했으며 자신들의 힘을 남들에게 베풀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엘프들을 ‘스스로 종말을 택한 종족’이라 불렀다.
“대화를 몇 번 해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문전박대당했지.”
싸우기도 몇 번 싸웠다.
그때마다 져놓고 도저히 뜻을 굽히지 않는 미친놈들이었다.
슈아넬 정도면 엘프 중에서 사회성이 높은 쪽에 속한다는 게 정말로 어이가 없다.
다른 세계에서 온 엘프라 그런가.
유성우는 고개를 돌렸다.
세계수의 반대편, 저 멀리서부터 엘프의 마을이 보였다.
삼정의 근원은 엘프, 그것도 세계수였던 것인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유성우는 세계수 아래에 앉아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조금만 기다리면, 삼정의 첫 번째 기억이 시작될 테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꼬마 엘프 하나가 세계수를 향해 달려오더니, 작은 화분을 하나 내밀며 말했다.
-위대한 어머니시여! 제가 처음으로 꽃을 피웠어요!
처음으로 길러낸 꽃을 자랑하러 온 걸까.
한참을 떠들던 꼬마는 길러낸 꽃을 세계수 옆에 옮겨 심고는 말했다.
-이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위대한 어머니께서 보듬어 주세요! 매일 보러 올 테니까!
“키우기 귀찮아져서 그냥 유기해 버린 거 아닌가?”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유성우는 그리 중얼거렸고, 들리지도 않을 텐데 왠지 꼬마 엘프가 움찔거린 것 같았다.
그리고 여전히, 삼정의 모습은 티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게 첫 번째 기억이라면 어딘가에 삼정의 형태라도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유성우는 세계수를 올려다보았다.
“설마…….”
세계수가 삼정인 건가?
잠시 그리 생각하던 유성우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그렇게 유치한 놈이 오랜 세월을 살아온, 현명하기 짝이 없을 세계수일 리가 없다.
시간이 흐른다.
얼마나 빠르게 시간이 흘렀는지, 소년은 청년이 되었다.
어릴 때는 성별이 좀 애매했는데, 여자애였다.
엘프 청년은 말했던 것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꽃을 보러 왔고, 세월이 지나자 꽃은 아름드리나무가 되었다.
세계수보다는 훨씬 작지만 보기 좋은 나무였다.
세계수의 기운을 나눠 받아서 그런지 일반적인 나무들보다 훨씬 잘 컸다.
-위대한 어머니시여, 드디어 제가 한 사람 몫을 하게 되었습니다. 엘프의 수호자로서 성심성의껏 모두를 지켜내 보이겠습니다.
엘프의 수호자라.
유성우는 엘프 청년의 말에 입맛을 다셨다.
엘프들의 수호자는 다른 엘프들보다 뛰어난 재능과 힘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그녀가 수호자직을 맡았다는 건 그만한 실력이 있다는 소리.
‘그런데 저게 삼정과 무슨 상관이지?’
왠지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삼정의 기억은 지금부터 시작일 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기에, 삼정이 탄생하는 것일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은 벌어진다.
맑던 하늘이 어두워진다.
갑작스러운 기상변화. 그것은 자연이 만들어낸 환경이 아닌, 마법으로 인한 인위적인 것이었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토네이도 수십 개가 숲을 어지럽힌다.
나무들이 부러지며 숲이 점차 망가져 간다.
유성우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먹구름 속에 숨어 있는 실루엣을 쳐다보았다.
‘이만한 대마법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 그리고 저 실루엣은…….’
드래곤이다.
저놈들이 어째서 엘프의 마을을 습격하는가.
이상한 일이었다.
원래 드래곤들은 오만하고 게으르기로 유명한 족속들이다.
평소라면 레어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놈들인데, 굳이 관련도 없는 엘프의 마을을 습격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무리 생활을 하지 않으니 먹구름 속에 있는 대여섯 마리의 드래곤은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대체 뭐가 벌어지는 거지?”
한 마리만 있어도 나라 하나는 거뜬히 멸망시키는 놈들인데, 저렇게 떼거리로 몰려온 걸 보면 확실하게 엘프를 조져버리겠다는 뜻이리라.
‘엘프가 드래곤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일을 했나?’
저렇게 몰려온 걸 보면 대충 짐작 가는 건 알을 훔쳐서 도망갔다거나, 알을 깨서 프라이를 해 먹었다거나… 레어를 망가뜨렸다거나.
동족을 살해했을 경우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한두 마리 죽은 정도로 종족이 단합하는 일은 없을 테니, 적어도 열 마리 이상이다.
“하지만 엘프들이 드래곤을 그렇게 많이 사냥할 깜냥은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엘프들은 긴 시간 살아가며 정령 마법이나 궁술을 수련하니, 마법의 종주인 드래곤을 사냥할 만한 실력자가 나오기는 어렵다.
아무리 수호자라고 하더라도.
슈아넬 급의 하이엘프면 또 모르겠지만, 자연에서 살아가는 놈들이 뭐하러 벌집을 들쑤시겠나.
명확한 원인은 아직 알 수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세계수 아래에서 눈동자를 굴리던 그에게, 노성이 들려왔다.
-빌어먹을 벌레들! 동족들의 한을 갚으러 왔노라! 숲을 모조리 불태우고, 네놈들의 수호신마저 불살라 씹어먹으리라!
설마 후자였을 줄이야.
유성우는 살짝 놀랐다. 이 시대의 엘프들은 조금 다른가?
히키코모리처럼 숲 속에 처박히던 시절이 아니라 당당하게 드래곤 슬레이어가 우후죽순 탄생하던, 그런 엘프의 황금기였던 걸까?
유성우는 솔직히 믿을 수가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시대가 있었다면 이미 엘프가 대륙을 정복했을 테니까.
“흠.”
잠시 고민하던 중, 이번에는 드래곤과 대화하려는 건지 숲 쪽에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소! 대체 우리의 어디가, 드래곤들을 수십 마리나 학살할 수 있다는 것이오?
-나를 천치로 아는 것이냐! 너희들 엘프가, 똑똑히 동족들을 무참히 도륙하는 것을 이 눈으로 목격했거늘!
-오해라고 했잖소! 우리 엘프 중에는 그럴 만한 능력을 가진 이가 없소이다!
저 엘프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닐 터였다. 엘프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홀로 드래곤들을 학살할 정도는 아니니까.
‘나조차 힘든 일이다.’
애초에 드래곤은 다수가 한 마리를 사냥하는 종족인 데다가, 무엇보다도 인과법칙을 무시하는 ‘용언’이 있다.
그렇게 쉽게 죽을 놈들이 아니라는 뜻이니…….
하지만, 드래곤은 현명하면서도 꼭지가 돌면 물불 안 가리는 놈들이었따.
지금 와서 엘프들이 뭐라고 한들, 귀에는 들어오지 않을 터.
그들은 지금 엘프의 숲을 불태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만만이리라.
드래곤들의 분노가 숲을 뒤흔든다. 불벼락이 떨어지고, 수십 줄기의 브레스가 쏟아진다.
엘프들이 마법으로 항전해 보지만, 숲을 보호하기 위한 결계는 삽시간에 깨져 나가고, 마법들은 드래곤들의 강력한 마법저항에 흩어진다.
엘프 수호자들이 대정령까지 동원다. 한 마리면 모를까, 드래곤들의 분노는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싱그럽던 숲이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한다.
엘프들의 비명이 터져 나오며, 곳곳에서 잿가루가 폭풍에 흩날렸다.
세계수가 있는 곳은 마을과는 거리가 있는 데다가, 세계수 자체의 결계로 아직 보호받고 있어 불타지는 않았으나.
드래곤들이 마음먹고 이쪽을 공격해 온다면 금방 잿더미가 되어버리리라.
“끝났군.”
길게 볼 것도 없는 싸움이었다.
드래곤은 신에 가장 근접한 종족이기에, 신이 내려온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상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다.
엘프들에게 남은 결말은 멸망뿐이다. 유성우는 아직 등장하지도 않은 삼정의 모습에 의아함을 표출하는 것도 잠시.
이쪽으로 다가오는 한 명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화상으로 여기저기 불타 늘어진 피부. 척 보기에도 중상이다.
유성우는 그것이 늘 꽃을 확인하러 오던 청년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데 오래 걸렸다.
엘프들의 수호자였던 그녀는, 세계수 앞에 무릎을 털썩 꿇으며 중얼거렸다.
“위대한, 어머니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