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358)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357화(358/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357화
오월, 용광
깊은 바닷속은 해룡의 세계 전부였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깊디깊은 심해.
그곳에서 패자로 군림하는 해룡은 날카롭고 단단한 하나의 이빨만으로 모든 생물을 잡아먹었다.
드래곤이란 그런 존재였다.
고독하며, 고고할 수밖에 없는 존재. 종의 정점이기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홀로 심해를 누비던 해룡은 수백 년 동안 단조로운 일생을 보냈다.
졸리면 잠을 자고, 배가 고프면 잡아먹고.
길게 잘 때는 수십 년을 잠들기도 했다. 그런 단조롭기 짝이 없는 생활을 이어가던 해룡은, 문득 궁금해졌다.
저 위에는 무엇이 있을까.
해룡의 세계는 넓디넓은 바닷속이었지만, 그렇기에 너무나도 좁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드래곤이라도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해룡은 더욱 넓은 세계를 탐험하기로 했다. 곧장 수면 위로 올라가기에는 두려웠기에, 자신이 살던 바닷속의 둥지를 떠나 직선으로 헤엄쳤다.
얼마나 헤엄쳤을까. 해룡의 앞에 새로운 세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달라진 수온, 처음 보는 생물.
다른 지역에서 온 해룡에게 원래 살고 있던 생물들이 이빨을 드러냈으나, 해룡은 간단하게 놈들을 모조리 씹어먹고 사체를 자신의 둥지로 삼았다.
새로운 지역에서 잠깐, 20년 정도 쉰 해룡은 다시금 새로운 세계를 찾아 헤엄쳤다.
자신의 둥지를 떠난 드래곤이 온갖 것들을 만나며 성장하는 순간이었다.
해룡이 지나쳐 온 바다에는 수많은 적과 먹잇감이 있었다.
날카로운 이빨과 거대한 몸을 가진 물고기도 있었고, 해룡과 비슷한 크기의 문어도 있었다.
조금은 위험할 뻔했으나, 해룡은 마주치는 적들을 쓰러뜨리며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렇게 수백 년간 온갖 심해를 떠돈 해룡은 드디어 수면 위로 올라갈 결심을 끝마쳤다.
오랜 시간 다섯 바다, 심해의 지배자로 군림하던 해룡이 거세게 물살을 가르며 위쪽을 향해 헤엄쳤다.
그 속도는 가히 빛살과도 같아서 헤엄을 치는 것만으로 바다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정신없이 헤엄치던 해룡은 세계가 점점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빛이다. 하늘에서부터 내리쬔 태양 빛이 바닷속에 스며들어 점점 밝은 세계를 해룡 앞에 보여주고 있었다.
해룡은 점점 밝아지는 수면을 쳐다보며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순식간에 거대한 물기둥과 함께 수면 위로 튀어 오른 해룡은 처음으로 하늘을, 태양을 보았다.
그리고 느낀 것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하늘에 뜬 저것은 무엇이고, 살결을 휘감는 바람은 무엇인지 심히 공포스러웠다.
심해 속에는 없는 것이었고, 태양에서부터 쏟아져 내리는 강대한 열기와 마력은 상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수면 위로 나온 해룡은 온몸을 뒤틀며 다시 바다에 처박혔고, 그 여파로 바다에 거대한 파도가 생겨났다.
바다 한가운데에 생긴 거대한 파도는 해일이 되어 근처의 해안 도시를 휩쓸어 버렸다.
사람들은 해일이 몰아치기 전, 하늘로 솟구치던 거대한 용의 모습을 보았고. 드래곤의 분노라며 공포에 떨었다.
다섯 바다를 지배하는 해룡의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해룡은 다시금 고독을 경험하는 순간이 되었다.
***
처음으로 지상을 경험한 해룡은 심해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다가,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왔다.
미지에 대한 공포보다 호기심이 더욱 강했기 때문이었다.
수면 위로 올라온 해룡은 이번에는 천천히 지상을 둘러보았다. 하늘에 뜬 태양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날아다니는 새들을 따라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다 수면 위로 높게 뛰어올라 새들을 집어삼키고 다시 물속으로 돌아갔다.
처음 맛보는 생물이다.
새들을 우적우적 씹어먹은 해룡은 한동안 그 맛을 즐기다, 처음 보는 생물을 발견했다.
수면 위를 떠다니는 유선형의 딱딱해 보이는 몸체.
그리고 거대한 몸 위에는 자그마한 생물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또 처음 보는 생물의 출현이다. 무슨 맛인지 궁금했던 해룡은 은근슬쩍 다가가 한입에 집어삼켰다.
와그작!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고, 해룡의 입안에서 생물이 산산조각이 났다.
이번에는 이상한 맛이었다. 여기저기 딱딱한 데다가, 살도 별로 없었다.
괜히 입맛만 버린 해룡은 다시 심해 속으로 들어가 심해의 생물들을 잡아먹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그런 일들이 수십, 수백 번이고 반복되었다.
해룡은 겁쟁이면서 호기심은 많아서, 지나가는 것들은 한 번씩 다 건드려보는 것이었다.
그러다 심심하면 하늘로 튀어 올랐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해 항구와 해안도시에 크나큰 피해를 입혔다.
그것이 해룡의 삶이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심심하면 해일을 일으켰다.
다른 드래곤들과 다르게 무언가를 배우지도 않았으나, 본능적으로 물을 다룰 줄 알아 가끔은 대홍수를 불러와 세상을 검게 물들였다.
유성우는 그런 해룡의 삶을 지켜보았다. 수백, 수천 년이 지나도록.
해룡은 다섯 바다의 지배자였으며, 제 영역에 다른 드래곤이 들어오기라도 하면 치열하게 싸워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하나밖에 없는 날카로운 이빨로 용린을 뚫고, 뼈마저 끊어냈다.
여러 드래곤을 사냥하며 드래곤들 사이에서도 ‘광룡(狂龍)’이라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사회성이 부족해 말도 안 통하는 놈이었으니. 몸은 거대했으나, 어린애나 다름없는 드래곤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수백, 수천 년이 지나도 해룡은 고독했다. 남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던 결과고, 호기심만으로 행동한 결과였다.
순수악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뭐가 그리 외로우냐. 네가 선택한 결과인데.”
유성우는 깊게 잠든 해룡을 보여 그리 중얼거렸다.
오월, 용광은 해룡 그 자체임을 알았다. 오랜 시간 고독과 맞서 외로움을 달래온 드래곤의 기억이다.
“용이라고 해서 모두 성질이 더러운 건 아닌데, 너는 용 중에서도 성질이 특히나 더러우니 친구를 사귈 수도 없었구나.”
유성우는 피식 웃으며 물속에서 몸을 빙글빙글 돌리며 노는 해룡을 지켜보았다.
지금은 신나게 놀고 있지만, 저런 평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걸 유성우는 알고 있었다.
슬슬 때가 되었으니까.
주변에 계속해서 피해를 일으키는 드래곤을 그냥 둘 리가 없었다.
드래곤 때문에 해로가 막혀 무역도 중단된 상태. 하루빨리 해로를 복구하지 않으면 망해 버릴 나라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수많은 인간이 배를 타고 해룡을 사냥하러 나섰다.
어딜 가나 알아주는 대마법사가 대해를 차갑게 얼렸고,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는 전사가 바다를 가르며 다가왔다.
수많은 인간이 해룡 하나를 죽이기 위해, 수십 척의 배를 타고 몰려들었다.
배 위에서 화살과 작살을 쏘았다.
용병들이 모인 범선과 어느 왕국의 군함도 해룡을 토벌하기 위해 몰려왔다.
그러나 해룡은 죽지 않았다. 조금 상처는 입었을지언정, 몸으로 얼음을 깨부수고, 해일을 일으켜 자신을 토벌하러 온 자들을 모조리 수장시켰다.
해룡의 패악질에 수많은 전사가 명예와 부를 위해 토벌에 참여했으나, 그 누구도 해룡을 쓰러뜨릴 수는 없었다.
다섯 바다의 지배자는 심해의 강자들과 싸워 영역을 탈취한 지배자였으며, 바다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패배한 적 없는 왕이었다.
해룡이 한 번 몸을 뒤틀면 해일이 배를 덮쳤고, 크게 울부짖으면 벼락이 바다 위로 떨어졌다.
바다의 지배자는 자신을 죽이러 온 적들을 모조리 수장시키고는 입지를 공고히 다졌다.
바다의 패자로써 군림하며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배웠다. 쓰러뜨려야 할 적. 자신을 배척하는 증오가 서린 생물들.
이후로 해룡은 바다 위에 배가 뜬 것을 보면 추격해서 모조리 침몰시켰다. 인간은 한 명도 살려서 보내지 않겠다는 듯, 보이는 족족 잡아먹었다.
해룡을 잡기 위해 보낸 수백 명의 사람이 바다에 수장되어 돌아오지 못했다.
지금까지 본 기억으로는 과연 해룡을 쓰러뜨릴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 싶었는데.
유성우는 알고 있다. 이제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 해룡을 쓰러뜨릴 인간이 오리라는 것을.
“…드디어 오는군.”
저 멀리, 배가 한 척 눈에 들어왔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 파도는 요동치고, 거센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 위 파도를 뚫으며 다가오는 배 한 척.
지금까지 인간들은 해룡을 사냥하기 위해 수십 척의 배와 수백 명의 인간을 데리고 왔다.
하지만, 지금 서서히 다가오는 배는 한 척에 고작 인간 몇 명이 타고 있을 뿐이었다.
유성우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갑판 선두에 서서 해룡을 향해 눈을 부라리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붉은 검 한 자루를 손에 들고 있었다. 검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기운은 명백한 오러.
해룡조차 겁을 먹을 듯한 강렬한 기운이었다.
“왔구나.”
남자는 다름 아닌 유성우였다. 용병으로서 지명의뢰를 받고 해룡을 잡으러 온 유성우였다.
본래는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거절할 수 없을 정도의 큰 건이었다.
여러모로 인연이 있는 사람이 부탁한 건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서 유성우는 자신을 태우고 오고 갈 배 한 척만을 끌고 바다로 향했다.
-이쯤이면 됐습니다. 돌아갔다가 바다가 잔잔해지면 태우러 오십시오.
뱃사람들은 그에게 정말로 괜찮겠냐고 몇 번이고 물었지만, 유성우는 괜찮다는 말과 함께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보이는 기묘한 광경. 거칠게 출렁이는 바다 위에 유성우는 홀로 고고하게 서서 모습을 드러낸 해룡을 쳐다보았다.
해룡이 어느새 모습을 보이자 배는 빠른 속도로 배를 돌려 줄행랑쳤고, 바다 위에 선 유성우는 검 끝으로 해룡을 겨누었다.
-바다뱀은 처음 잡아보는데…… 어쩔 수 없이. 받은 만큼 일은 해야 하니까.
시기는 오월.
해룡, 베헤모스가 다섯 바다의 지배자로 군림한 지 수백 년이 지났으며, 가장 지랄이 심한 달.
오월의 바다는 거센 풍랑과 벼락이 거침없이 떨어지니 뱃사람들은 절대로 오월에는 배를 띄우지 않았다. 하지만 유성우는 구태여 오월을 노리고 배를 띄웠다.
해룡의 기분에 따라 바다의 상태가 좌지우지된다면, 무언가 심경이 불편할 때일 터이니 상대하기 쉬울 거라는 판단하에.
해룡은 샛노란 눈동자로 바다 위에 선 유성우를 쳐다보았다.
해룡의 새하얀 비늘이 번들거리며 꿈틀거리니, 먹구름이 빗물을 쏟아내며 바다 위에 장대비를 불러왔다.
유성우는 장대비를 맞으며 검을 들고는, 해룡과 시선을 마주쳤다. 해룡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어왔다. 다섯 바다의 지배자이며, 강력한 해군도 대마법사도, 용맹한 전사도 모두 수장시킨 바다의 패자.
하지만, 그런 패자와 맞선 유성우는 왠지 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해룡 또한 유성우에게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지금까지 몰려왔던 인간들과는 명백히 다른 기세.
그의 손에 들린 자그마한 쇳덩어리가 어찌 이리도 위협적으로 보이는 것일까.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해일을 일으키는 해룡의 거체 앞에 선 자그마한 인간이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자, 그럼 바다뱀 사냥을 시작해 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