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361)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360화(361/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3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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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이 먹으로 된 괴물들을 상대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잔느의 깃발은 이미 먹으로 물들었고, 녹스의 얼굴 여기저기에는 먹물로 된 선이 그어져 있었다.
백우현도 마찬가지였다. 장비 곳곳이 먹물로 물든 채.
셋에게 괴물들을 쓰러트리는 건 단순 반복 작업에 지나지 않았다. 이 정도 괴물들에게 당할 셋이 아니었으며.
그들이 쥔 무기는 먹물로 물들었을지언정 그들의 피는 묻지 않았으니까.
그런 단순 반복 작업에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부 없어질 때까지 쓰러트리다 보니, 어느새 남은 건 열댓 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 괴물들도 모조리 쓰러트리니, 땅에서부터 장승이 불쑥 솟구쳐 입을 열었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그대들은 자격 증명에 성공했다.
-동료들을 버리지 않는 유대감.
-어떠한 시련과 마주치더라도 물러나지 않는 용기.
-용기가 만용이 되지 않는 실력.
-훌륭하다.
-훌륭하다. 길을 열어주마.
장승들이 다시 서로 엮이더니, 환한 빛이 쏟아져 나오는 통로를 만들었다.
먹물투성이인 셋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통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환한 빛을 넘어서 도착한 곳은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산이었다.
봉우리가 몇 개나 있는 거대한 산의 중턱에 있는 마을.
도시 규모에 가까운 도깨비들의 마을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이만한 숫자가 숨어 살고 있었는데, 알아챈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게 그들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상상이 가는군요.”
“저들을 아군으로 끌어들인다면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백우현과 잔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만한 도시 규모를 이루면서도, 들키지 않았다는 건 그만한 실력자가 존재한다는 뜻.
과연 자신들로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지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천천히 산을 오르기 시작한 그들의 앞에 인영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리춤에 칼을 찬, 정수리에 뿔이 솟구친 여자였다.
그녀는 세 명을 쳐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허약한 인간들. 용케 증명에 성공한 모양이군.”
그녀의 말에 잔느가 백우현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원래 도깨비는 성격이 안 좋나요? 그런 건 못 들은 것 같은데.”
“…아뇨. 동화 속에 나오던 도깨비들은 늘 순박한 이미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 들린다. 인간들. 아니, 인간이 아닌 것도 하나 끼어 있군. 용이라니… 한반도에 용이 남아 있을 리 없으니, 다른 곳에서 왔나? 뭐, 상관없지. 따라와라. 인간들이랑 용 한 마리.”
여자 도깨비는 먼저 앞장서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세 명이서 덤벼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르는 기운이 느껴지는 그녀였기에, 셋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뒤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마을의 입구에 도착했다. 돌로 거대한 성벽을 쌓아 올렸고, 수많은 결계가 마을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결계의 존재를 느낀 잔느가 입을 쩍 벌리며 중얼거렸다.
“…마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결계예요.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무슨 구성인지 절반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예. 척 보기만 해도 어마어마하다는 게 느껴집니다.”
“조용히 해라! 인간들!”
도깨비가 굳게 닫힌 성문으로 다가가자, 천천히 성문이 열렸다.
그러자 드러난 내부의 풍경은 마치 과거로 돌아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잘 정돈된 길과 곡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한옥들.
전주의 한옥마을 같은, 관광지와 같은 느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진짜’가 그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도깨비의 뒤를 따라 나아간 그들이 마을의 광장에서 마주한 광경은.
“키야, 자네 정말로 잘 마시는구만! 이것도, 이것도 쭉! 쭉!”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크하─!”
도깨비들과 웃으면서 술판을 벌이는 유성우였다.
* * *
도깨비의 안내를 따라 동굴로 들어선 유성우는 곧장 눈앞에 펼쳐진 한옥으로 이루어진 마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국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과거의 풍경이었으니.
유성우가 잠시 멈춰서서 수십 개의 봉우리와 마을을 둘러보고 있자, 앞서가던 도깨비가 말했다.
“오랫동안 일군 마을이네. 현왕(現王)께서 직접 산을 깎아내 터를 다지시고, 결계를 만드셨지.”
“마을의 이름이 뭐지?”
“신시(神市)라고 하네.”
신시란, 한국 신화에서 환웅이 내려와 태백산 신단수 밑에 세운 도시를 말했다.
하지만 이곳은 환웅은커녕, 신단수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유성우는 그럼에도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좋은 곳이군. 평화로워.”
“현왕께서 힘을 많이 쓰셨지. 따라오게. 기다리고 계시니.”
도깨비가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고, 유성우도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열린 성문을 지나 마을의 가도를 따라 안쪽으로 향했다.
마을에 인간이 온 것이 신기한지 곳곳에서 도깨비들이 튀어나와 유성우를 구경했다.
‘마을의 규모는 크지만 인구는 그리 많지 않군.’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이들은 훌륭한 아군이 되어줄 것 같았다.
숫자에 비해 개개인이 강력한 힘을 품고 있었다. 옥황궁에서 이들의 존재를 알았다면,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며 진즉에 밀어버렸겠지.
“저 안으로 들어가면 되네.”
남자 도깨비는 손가락으로 가도의 끝을 가리켰다. 마을의 광장에 너머에 있는, 마을에서 가장 거대한 5층짜리 건물.
유성우는 건물의 안에서 거대한 기파가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도깨비가 말했던 도깨비 왕이리라.
“그래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에 따라야겠지.”
유성우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가도를 지나,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무수히 많은 촛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는 위로 올라오라는 듯한 계단이 떡하니 존재했다.
느긋한 발걸음으로 최상층까지 걸어 올라가자, 그곳에는 거대한 도깨비 한 명이 옥좌에 앉아 있었다.
신장은 3미터 정도 될까.
다리를 꼬고 앉은 푸른 옷의 도깨비는 손에 들린 기다란 곰방대를 한껏 들이마셨다가, 이내 연기를 내뱉었다.
“이곳에 인간이 오는 건 처음이다. 인간들과 신들에게 들이키지 않도록 결계를 구축하고 이주한 지 수백 년……. 어떻게 찾아왔지?”
“내 동료가 지리산의 장승에게서 풍악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더군.”
“아, 지금 증명소(證明所)에 들어간 자들이 네 동료들인 모양이군. 괜찮은 친구들을 두었어.”
“증명이라. 도깨비들은 역시 옥황궁의 신들을 두려워하는가? 이리 꼭꼭 숨어 살 정도로.”
유성우의 말에 도깨비 왕은 큭큭 웃었다. 그러더니 손을 휘휘 내저어 담배 연기를 흩어내며 말했다.
“당연히 두렵다. 신화의 시대는 종막을 내렸으나, 이면에 존재하는 우리는 언제든 놈들의 손에 쓸려나갈 하루살이들에 불과했으니.”
도깨비왕이 다시 곰방대를 뻐끔거렸다.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과거를 회상하기라도 하는지 눈동자에는 수심이 깊게 드리운 채였다. 유성우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유성우. 한반도에 새로이 탄생한 성신전, 검계의 주인이다.”
“…검계라. 그래서 그렇게 칼이 많은 것이었군. 검의 세계인지, 검으로 이루어진 세계인지 내 알 바는 아니다만. 일곱 자루나 칼을 들고 다니다니 흉흉하기 짝이 없구나.”
“일곱 자루? 하하…….”
유성우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자신이 가진 칼은 일곱이 아니라 여덟이었으니까.
“도깨비왕이라는 자가 식견이 좁군. 한 자루가 부족하다.”
“클클, 그런가? 뭐, 그럴지도 모르지.”
유성우가 보기에 눈앞에 있는 도깨비왕은 웬만한 신격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처럼, 오랜 시간 동안 수행을 통해 강함을 쌓아 올린 동류의 기질이 느껴졌다.
현현괴신(現顯怪神)이라 불러 마땅할까. 도깨비왕 외에도 대여섯 정도가 신격을 이룬 듯했으니…….
도깨비왕이 옥좌에서 내려와 유성우 앞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는 허리를 수그려 유성우와 눈높이를 맞추더니 씩 웃었다.
“모든 도깨비의 어머니, 신시의 왕, 도깨비왕… 도화다. 검계의 주인이여, 그대는 무슨 연유로 신시를 찾아왔는고?”
“돌려 말할 것 없겠지. 검계는 옥황궁과 전쟁을 벌일 생각이다. 하지만 검계의 전력만으로는 부족해. 그대들의 힘이 필요하다.”
“크크, 때가 되었다는 것인가? 옥황궁의 신들도 한 번 망할 때가 됐지. 너무 오래 해 처먹었어. 그치들은. 자손들의 손에 의해 끌어내려질 줄 누가 알았을까.”
“그렇다면…….”
“바로 돕겠다고 할 수는 없겠구나. 모든 도깨비의 사활이 걸린 일이 아닌가? 흐음…….”
도화는 곰방대의 담뱃재를 툭툭 바닥에 털어내고는,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며 물었다.
“자네, 술은 좀 하나? 술을 함께 마시면 진솔한 친구가 되는 법이지. 소도 삶고, 돼지도 삶고. 메밀묵도 만들고… 어디 한번, 연회를 벌여 보자꾸나.”
“그리해서 친구가 된다면 못할 것도 없지.”
유성우가 즉답하자, 그녀는 크하하, 하고 크게 웃고는 고개를 돌려 큰소리로 외쳤다.
“여봐라! 술판을 벌여라! 광장에서 모두 모여 놀고 먹자꾸나!”
* * *
그리고 다시 현재.
먹물투성이가 되어 자격을 증명하고, 산까지 탄 세 명은 광장에서 도깨비들과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고, 고기를 뜯는 유성우를 발견하곤 어이가 없어 넋이 나갔다.
저 인간은 대체 언제 와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 건지.
그리고 그의 옆에 앉아 거대한 술잔을 들이켜는 도깨비는 신시의 왕임이 분명했다.
보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기운이 느껴지는 도깨비였으니까.
유성우가 세 명을 발견하고는 어서 오라며 손짓했다.
“힘들게 오느라 수고했다. 너희들도 먹고 마셔라!”
세 명을 안내해 주었던 도깨비는 어느새 술판에 껴서 술을 동이 채로 들이켜고 있었다.
백우현은 헐레벌떡 달려가 유성우의 옆자리에 앉았고.
잔느는 조금 망설이다 유성우의 옆으로 향했다.
녹스는 울상을 지었다가, 유성우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그 모습을 본 도화가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 사이 좋은 동료들이로구만. 그 아이는 딸인가?”
“뭐, 비슷한 거지.”
“용을 딸내미로 두고 있다니 자네처럼 이상한 놈도 처음 보는군. 한반도에서 용은 전부 사라졌는데… 흐음, 오랑캐 용이군.”
오랑캐 용이라는 말에 유성우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괜스레 웃음이 실실 나오는 듯했다. 굳이 오러로 취기를 몰아내지도 않았으니…….
“오, 오랑캐가 뭐예요?!”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뭔가 좋지 않은 뜻이라는 건 아는지 녹스가 유성우를 올려다보며 울상을 지었다.
그는 먹물투성이인 녹스의 얼굴을 옷소매로 닦아주며(오히려 더 더러워졌다) 웃었다.
“몰라도 된다. 나중에 집에 가서 검색해 보고 울지나 말고.”
“히잉.”
녹스는 그대로 유성우의 품 안에서 꼼지락대다가 새근새근 잠들었다. 주변이 시끄러운데 용케도 잠든다 싶었다.
돼지 다리 하나를 통째로 씹어 먹던 도화가 말했다.
“많은 운명을 짊어지고 있구나. 그럼에도 주저하지 않고 더욱 많은 짐을 짊어지려 하는 걸 보니…….”
“하는 걸 보니?”
“자네는 고생을 사서 하는 성향이로군?”
유성우는 이게 무슨 마조 같다는 소린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