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363)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362화(363/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362화
깨비깨비도깨비(3)
압도적인 힘 앞에서 자잘한 기술 따위는 필요 없다.
서로의 샅바를 찢어져라 단단히 붙잡은 둘은 동시에 그리 생각했다. 기술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압도적인 힘으로 넘겨버리면 끝나는 것이다.
둘은 거의 동시에 힘을 끌어올렸다. 그것만으로 대지가 덜덜 떨며 씨름판의 모래 서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힘과 힘의 부딪힘. 도깨비들은 둘 사이에 생기는 공간의 일그러짐에 경악 어린 시선을 보냈다.
이제껏 그 누구도 도화의 전력을 끌어낼 수 없었는데.
외지에서 온 인간이 도화의 전력을 끌어낸 것도 모자라, 순수한 힘으로 밀어붙이는 형국이었다.
“크으으아아아아아아아─!!”
천지를 뒤흔드는 포효와 함께 도화가 유성우를 들어 올렸다. 유성우의 발이 서서히 땅에서 들렸다.
도화는 사력을 다해 들어 올린 유성우를, 제 몸을 눕히며 뒤쪽으로 넘겨버렸다.
유성우의 몸이 공중에서 호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대로면 그의 등부터 땅에 처박힐 테고, 그러면 도화의 완벽한 한판승이다.
그러나 유성우는 순순히 처박히지 않았다. 등이 땅에 닿기 전에, 허리를 들고 다리를 바닥에 박아넣으며 뒤집기를 견뎠다.
도화와 유성우가 보여준 완벽한 브릿지의 형태에 조용하던 도깨비들에게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도화의 뒤집기는 완벽했다. 도깨비 중 그녀의 저 기술을 받아낼 자는 없으리라.
하지만 유성우는 받아냈다. 그것도 더없이 완벽한 형태로!
유성우가 넘어가지 않고 버티자, 도화는 이빨을 뿌득 갈며 그대로 눌러버리기 위해 체중을 실었으나 유성우의 두 다리는 거목의 뿌리처럼 굳건했고.
튼튼한 허릿심은 씨름판에 등이 닿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 내 차례군.”
유성우가 중얼거리고는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의 팔다리에 핏줄이 선명하게 두드러졌고, 근육이 꿈틀거리며 용력을 뿜어냈다.
“어, 어어?”
당황한 듯한 도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성우가 브릿지 상태에서 도화를 들어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자세에서 말도 안 되는 힘으로 도화를 공중에 들어 올린 유성우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조금 살살 해주게.”
“그러도록 하지.”
도화의 몸이 완전히 넘어갔다. 등이 아닌, 배 부분으로 굉음과 함께 씨름판 위에 다이빙하게 된 그녀는 잠시간 누워 있다가, 이내 모래가 잔뜩 묻은 몸을 일으키며 웃었다.
“푸하하하하! 완패로구나! 씨름에서 이 내가 지다니, 처음이로다!”
“좋은 승부였다. 도화.”
유성우가 손을 내밀자, 도화는 손을 잡고 일어나더니 줄였던 사이즈를 다시 키웠다.
그러고는 그의 어깨에 제 팔을 두르더니 소리쳤다.
“아들들아, 딸들아! 형제들이여, 때가 되었다! 새로운 형제들과 함께 옥황궁의 신들을 끌어내려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패주자꾸나!”
* * *
도깨비들의 연회는 아침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술을 퍼먹고, 안주도 처먹고…….
언제까지 처먹어야 만족하는지 모르는 그들에게 어울려 주다 보니, 유성우도 오랜만에 숙취를 느꼈다.
잘 잔 사람은 어린이 도깨비들과 진즉에 잠든 녹스 정도였다.
잠시 앉아서 오러로 숙취를 몰아낸 그가 고개를 들자, 신시의 가장 높은 곳. 도화의 왕궁의 지붕에 도화가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유성우도 훌쩍 뛰어 그녀의 옆자리를 차지해 앉으며 말했다.
“그렇게 마시고도 또 마시고 있다니. 간이 강철로 되어 있기라도 한가?”
도화는 새벽 내내 마셨음에도 부족한지, 술독을 옆구리에 끼고 표주박으로 떠 마시는 중이었다.
그녀는 클클 웃으며 답했다.
“메밀묵과 술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는데 그만 마실 리가. 나 때는 칠주야 정도는 마셔야 좀 마셨다, 그러던 때였지.”
“언제쯤? 한반도의 남부가 신라라 불리던 때인가?”
“큭큭큭.”
역사를 조금 공부한 사람이라면 ‘비형랑’이라는 이름을 알 터였다.
삼국유사에밖에 묘사되지 않은 신라 시대의 인물로, 귀신들을 부리는 능력을 가진 남자.
유성우는 그런 비형랑의 어머니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도화(桃花). 비형랑의 어머니 정체는 인간으로 둔갑한 도깨비였던 것이다. 이것을 깨닫게 됐을 때 정말로 오래전부터 인간들과 함께해 왔다 싶었다.
“천 년이 넘게 용케도 한반도에서 살아남았군. 수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말이야…….”
“도깨비의 삶이란 그런 것이니……. 뭐, 대단할 것도 없네.”
도화는 그리 말했지만, 옆에서 보는 그녀의 표정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인간들은 괴이(怪異)와 괴력난신(怪力亂神), 미지(未知)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비형랑의 생애는 어떠했고, 도화가 언급한 홍길동의 끝은 또 어떠했는가?
결국에는 인간들의 손에 죽거나 쫓겨났다.
“인간과 도깨비는 결국에는 섞일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게지.”
“…….”
도화가 유성우에게 술이 담긴 표주박을 내밀었다.
유성우는 해장술로 표주박을 싹 비우고는 말했다.
“그럴 리가 있나. 기름이랑 물도 어떻게든 섞이기는 하는 법인데, 말이 통하는 인간과 도깨비가 섞이지 못할 이유라도 있나?”
그가 다시 표주박을 돌려주자, 도화가 술을 퍼마시곤 입을 열었다.
“과거에는 그랬다. 신화시대가 종막을 고하고, 인간들 사이에서 태어난 영웅은 난세를 평정했으나, 그들에게 우리와 같은 괴이는 이해할 수 없는, 그저 배척해야 할 대상임에 불과했던 게야.”
“도깨비왕, 네가 말하는 과거는 언제쯤이냐? 홍길동 이야기가 있던 조선은 수백 년 전이다. 과거와 지금은 풍조가 많이 다르지.”
“…많이 다르다고?”
“그래. 너희들은 너무 오래 속세와 단절된 채 살아왔다. 지금은 길거리에 서양의 요정들이 돌아다녀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고.”
조금 신기한 눈으로 보기는 할 테지만…….
길거리에 돌아다닌다고, 예전처럼 형틀에 매달아 두들겨 패거나 불태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도깨비들은 지금의 한국인들에게는 여러 동화로 친숙한 존재들일 테니, 더욱 받아들이기도 쉬울 터. 이미 세상에 여러 존재가 돌아다니는데 도깨비 하나 더 늘어난다고 달라질 건 없으리라.
“검계로 이주를 추천하지. 옥황궁과 전쟁을 벌이는데, 이리 멀리 있으면 찾아오기도 힘들 거 아닌가.”
“그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성대하게 와라. 검계의 모두는 너희를 환영할 테니까.”
모두 그럴 것이다.
처음에는 도깨비라는 존재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지도 모르겠지만.
검계의 주인인 자신이 받아들이겠다는데 어찌하겠는가.
꼬우면 떠나야지.
도화가 유성우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
“꽤 대담한 소리를 하는군. 도깨비를 받아들인다는 소리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닌데.”
“뭐, 문제 될 게 있나?”
“예부터 삿된 것들은 집에 함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고.”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이제부터 함께 싸울 전우를 삿된 것이라 부를 수가 있겠나. 당신들은 후대에 한반도를 위해 싸운 영웅들이라 기록될 거다.”
“흐음…….”
유성우의 말에 도화는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커다란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붙잡곤 이리저리 살폈다.
그가 뭐 하는 짓이냐며 손을 쳐내고는 오러로 술독에서 술만 꺼내 홀짝였다.
“오오, 도술인가?”
“이계의 방식이다. 도술이나 요술 같은 거랑은 좀 다르지. 그래, 이 기회에 좀 확인해 두겠는데, 옥황궁을 상대한다면 몇까지 상대할 수 있겠나?”
“장로들이 각각 하급이라면 셋, 중급이라면 하나. 나는 대신격이라면 한 명 정도의 발은 묶어둘 수 있네.”
“흐음.”
“좀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아니, 그 정도면 충분해.”
유성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도화의 앞에 섰다. 일출을 등진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아직 모두가 잠들어 있는 것 같으니, 보여주도록 하지.”
그는 지금까지 도화에게 전력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씨름을 할 때도 신력도, 오러도 쓰지 않고 순수한 완력으로만 상대했을 뿐이고.
이계에서의 생활로 인해 기운을 숨기는 데 능숙한 그는 신시에 들어오기 전부터 힘을 억제한 채였다.
그의 전력을 알아볼 수 있는 존재는 신시에 존재하지 않았으니, 신시에 들어 처음으로 전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앞으로 함께 싸울 동료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기 위해서.
유성우가 숨을 길게 내뱉으며 자신의 신격을 모조리 끌어올리자, 도화의 눈에 그가 사람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비추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을 넘어선 무언가 관념적인 존재에 가까워 보였다.
전신은 여덟 가지 색이 섞여 불타오르듯이 일렁거렸고,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붉은빛만이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자네.”
드높은 신격이었다.
저 천상의 신격들도 함부로 하지 못할, 대신격 두셋 정도는 간단히 씹어먹을 수 있을 듯한 느낌.
강렬하다. 타오르는 전신의 불꽃과 시선은 세상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주시하며, 검을 쥐는 순간 베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손에 들린 검은 산을 베고 바다를 가르며, 세계마저 베어내니 저 하늘의 별마저 반으로 갈라 자신의 아래에 둘 존재였다.
인간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유성우가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시선을 맞추었다.
-도화.
일렁이는 듯한 목소리.
귀로 듣는 것이 아닌, 영혼을 두들기는 듯한 충격적인 목소리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자신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대한 신이 자신을 위해서.
-그대와 함께하기를 원한다. 검계의 주인, 유성우가. 이미 반쯤 망해 버린 세상이지만, 바로잡을 기회가 적어도 한두 번은 남은 것 같으니.
“…바라던 바다.”
도화가 제 손을 유성우의 손 위에 얹음과 동시에, 그의 모습이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유성우는 도화의 손을 꽉 잡아당겨 자리에서 일으켰다.
“그대들이 검계에 오는 날은 경삿날이 되겠군.”
도화는 그 순간,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의 등 뒤에 자리한 것은 완연한 태양.
오랜 시간 그늘만이 가득했던 도깨비들의 세계에 태양이 드리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도화는 활짝 웃었다. 얼마 만에 이렇게 웃어보는 건지.
그녀가 큰소리로 외쳤다.
“그때는 오늘처럼 또 연회를 벌여야겠구나!”
* * *
유성우 일행은 신시에서 도깨비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고 난 뒤 떠났다.
이주 뒤에 정식으로 검계를 찾을 거라는 말을 들은 유성우는 셋과 함께 검계로 돌아왔다.
물론 편하게 돌아오지는 않았다.
모처럼 금강산에 왔는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괴물들을 안 잡고 가면 섭섭했다.
금강산은 산세가 험준한 데다가, 곳곳에 열린 어비스를 처리하지 못해 괴수들이 들끓는 곳이었다.
유성우는 세 명을 이끌고 금강산의 괴수들을 며칠 동안 차근차근 정리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애들도 좀 데리고 올 걸 그랬군.”
“…꼭, 다음에는 다른 분들도 함께였으면 좋겠습니다.”
“맞아요. 정말로요. 이런 즐거운 걸 저희끼리만 한다니 너무 안타까워요.”
“…….”
녹스는 차마 뭐라고 할 수가 없어 입을 꾹 다물었다.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자니 너무 고된 일이었으니.
며칠간 금강산의 괴물들 태반을 정리한 뒤 검계로 돌아온 유성우는 도깨비들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했다.
그리고.
“…뭐냐 저거?”
“혼례복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