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372)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371화(372/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371화
전쟁(3)
베로니카와 메데이아가 호왕을 상대하러 갔을 때, 도화도 두루마기를 펄럭이며 움직였다.
그녀가 붙잡아둬야 할 것은 옥황궁이 준비한 정체 모를 대신격.
“쉽지 않으리라 예상은 했다만…….”
옥황궁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대신격은, 어마어마한 신격을 쌓았으나 결격 사유가 있는 자들.
도화는 느긋한 발걸음으로 걸어오는 여자를 보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소식이 없어 죽은 줄 알았더니, 옥황궁에 잡혀 있었던 건가.
“여우년, 뒈진 줄 알았더니 아직 살아 있었더냐?”
“어라? 이게 누구야. 도깨비잖아? 그쪽도 아직 살아 있었네?”
가느다란 눈웃음을 짓는, 화려한 한복의 여자는 도화를 보고는 반갑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도화는 전혀 반갑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여자는 오랜 세월 한반도에 혼란을 야기했던 괴물이었으니까.
그녀의 이름은 매구. 천 년 묵은 여우가 변한 요괴로, 구미호와는 또 다른 악의로만 가득 찬 존재였다.
“실수 한 번으로 옥황궁에 잡혀버리고 말았다니까. 지금까지 정말로 즐겁게 지내고 있었는데…….”
“네년에게 즐거운 일이라고 해봤자, 남자를 꼬시는 것밖에 더 있던가? 악취미야, 악취미…….”
도화가 혀를 차며 말하자, 매구는 소리 높여 웃었다.
한반도에는 수많은 악녀가 있었다. 모두 이름도 다르고, 얼굴도 다르지만.
일국을 뒤흔들었다는 점에서는 그녀를 능가할 자는 없었다.
때로는 경국지색의 미모로, 때로는 교묘한 세뇌와 극에 달한 처세술로. 왕의 눈과 귀를 흐리게 하고, 군부를 제 뜻대로 주물렀다.
한반도에 존재했던 악녀라 불리는 자들은 모두 매구의 작품이었다.
그런 식으로 공포라는 이름의 신격을 쌓아 대신격에 도달한 사상 최악의 요괴였다.
“후후, 그래서 남자도 못 사귀어본 도깨비가 나를 막으러 온 거야? 혼자서?”
“남자도 못 사귀어봤다니, 얼마 전에 혼례를 올렸거늘. 크크…….”
도화도 매구와 마주 웃으며 품속에서 곰방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손가락을 튕겨 불을 붙인 그녀는 폐에 닿도록 깊게 들이마셨다가, 연기를 내뱉었다.
그녀가 내뱉은 담배 연기는 일대를 뒤덮는 짙은 안개가 되어 시야를 가리고, 영역을 구성했다.
“한 번 놀아보자꾸나. 여우년!”
“후후… 이번 일을 잘 해내면 옥황궁에서 자유를 주겠다고 했거든. 그래서 적당히 상대할 생각은 없으니까…….”
안개에 둘러싸인 매구는 옷소매로 제 입을 가리고는, 기운을 분출했다. 전신에서 뿜어지는 것은 악의로 가득한 신격.
그녀의 머리 위에서 여우의 귀가 솟구치고, 엉덩이에서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거대한 꼬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안개 속을 주시했다.
“도깨비, 실력이 많이 늘었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안 된다는 걸 알 텐데…….”
매구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안개 속을 꿰뚫어 보았다.
그녀의 이빨과 손톱은 언제든 도화의 목을 노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 * *
유성우는 노인을 앞에 두고 선 채, 검을 손에 쥐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일생이 아닌 오월.
노인은 자신의 앞을 막아선 유성우를 나른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노인은 다름 아닌 옥황궁의 최고신이자, 한반도 신화의 시작점인 환웅과 웅녀의 아들인 단군왕검이었다.
둘의 전투의 승패가, 검계와 옥황궁의 승패를 가르리라는 것을 둘 다 알고 있었다.
단군왕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재미있는 짓을 저질렀더구나.”
“당신의 인망이 부족한 탓이지. 등 돌린 신이 몇 명이나 되더라?”
유성우는 일단 단군왕검을 긁는 것으로 시작했다. 보통 같으면 한반도의 최고신이니 존중해 주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는 없었다.
먼저 공격해 온 놈을 뭐가 좋다고 존중해 주겠는가.
‘이순신 장군님 같은 분이 적이 안 된 것만 해도 감지덕지하지.’
먼 과거의 선조보다, 가까운 시대의 영웅이 더욱 친근감이 드는 법이니까.
유성우는 손에 들린 오월을 몇 번 가볍게 휘두르고는 말했다.
“너희들은 누울 자리를 잘못 골랐다. 지금이라도 항복하고, 사과하겠다고 하면 죽이지는 않겠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신격에 오른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주제에, 옥황궁의 대신격인 단군왕검을 봐주는 듯한 말을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그 누구도 이런 짧은 시간 안에 신격을 이루지도 못했고.
대신격에 다다라 성신전을 세우지도 못했다.
단군왕검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유성우를 쳐다 보았다.
‘광오한 아이로고.’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눈빛에는 두려움 하나 없고, 자신을 죽일 생각으로만 가득하다는 것을.
꺼질 줄 모르는 투지와 살의는 그가 어떠한 삶의 방식을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그렇기에, 단군은 유성우를 죽이기로 결정했다.
그가 패권을 쥐게 된다면 세계는 전장의 화마로 불타오르고 말 테니까. 지배해야 할 땅이 붉게 물드는 걸 보기만 할 수는 없었다.
“…자만심이 자네를 후회하게 만들 것이네.”
“안타깝게도 더는 후회하지 않기로 해서 말이다. 질질 짜는 어린애가 아니거든.”
선공은 유성우였다.
그가 가볍게 오월을 단군을 향해 찔러넣자, 나선의 오러가 주변을 휩쓸며 쏘아졌다.
단군은 가볍게 손을 휘둘러 공격을 막아내고는 한숨을 푸─ 하고 길게 토해냈다.
“길게 끌 것 없겠지…….”
챠랑─
차량─
단군이 기운을 일으킴과 동시에, 어디선가 청명한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방울 소리가 한 번 울릴 때마다 단군의 기운이 더욱 거대해졌다.
“…흠.”
유성우는 그 모습을 보며 방울 소리의 정체를 짐작했다. 아마도, 환웅이 지상에 내려올 때 함께 가져왔다는 천부인(天符印) 중 방울이 아닐까 싶었다.
“환웅 삼신기라…….”
단군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인 만큼, 천부인을 모조리 꺼내 들 터였다.
전력이 아니면 자신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방울의 효과는 잘 모르겠지만, 방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정신 방벽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정신과 영혼에 간섭하는 부류의 신기인 걸까.
‘장기전으로 가면 불리하겠군.’
유성우가 발을 떼었다.
굉음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가속한 그가 오월에 다시금 나선의 오러를 두르며 뻗었다.
“후읍!”
멀리서 쏘아낸 오러가 아닌, 지근거리에서의 직접 공격. 그러나 유성우의 공격은 단군에게 닿지 않았다. 단군에게 닿는 순간 공격 자체가 왜곡되더니 다른 방향으로 꺾여서 사라졌다.
애꿎은 도로와 건물만이 날아가 무너져 내렸다.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난 유성우는 자신의 공격이 왜 다른 방향으로 꺾였는지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저건…….”
단군의 앞에 나타난 건 얼굴만 한 거울이었다. 청동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그 색이 바래지 않은, 천부인 중 하나인 청동 거울.
삼신기 중 두 개째다.
단군도 마찬가지로 속전속결을 원하는 건지, 다음으로는 마지막 삼신기인 청동 검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이만 죽어 주게. 모든 건 한반도를 위한 홍익의 뜻이니…….”
단군의 손에 들린 청동 검이 휘둘러졌다. 유성우는 그에 맞서 오월을 휘둘렀으나, 맞선 게 무색할 정도로 밀려서 뒤로 밀려났다.
뒤로 길게 발자국을 남기며 밀려난 유성우는 미간을 좁히며 단군을 바라보았다.
“역시, 수천 년 세월의 집합이라는 건가?”
공격 하나도 허투루 흘릴 수 없었다. 괴물이다. 말 그대로, 수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반도 내에서 추앙받아 온 대신격이다.
도저히 쓰러트릴 수 없는…….
“허.”
왜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건지.
계속 흔들리고 있는 천부인의 방울이 정신을 흔들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고개를 한 번 세차게 흔드는 것으로 정신에 들러붙은 잡념을 떨쳐내고는 다시금 오월의 손잡이를 강하게 잡았다.
‘방울은 정신 공격, 거울은 공격을 왜곡하고, 검은… 잘 모르겠군.’
방금의 참격은 무시무시했으나, 그냥 평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좀 더 부딪혀봐야 그 능력을 파악할 수 있을 듯했다.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접근한 그가 오월을 연속으로 찔러 넣었으나, 모든 공격은 왜곡되어 다른 방향으로 충격이 분산되었다.
개중에는 유성우의 방향으로 되돌아와 반격까지 해왔다.
자신의 공격을 상쇄시킨 그가 혀를 차며 다시 뒤로 물러났다.
‘어느 방향이든 왜곡하는군. 좀 까다로운데…….’
방금 오월의 찌르기는 단군의 전방향에서 시도했다. 청동 거울이 왜곡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생각이었는데, 아쉽게도 청동 거울에 빈틈은 없었다.
쉽게 부서질 것 같지도 않으니… 결국에는 고유세계 싸움까지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고유세계는 먼저 보여주는 쪽이 불리했다. 고유세계는 존재의 증명이자, 심상의 구현이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과도 다름없었으니까. 고유세계를 펼치는 건, 상대를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뿐이어야만 했다.
단군도 그것을 알기에 자신의 세계를 펼치지 않는 것이고.
“오월만으로는 안 되겠군…….”
한 자루만으로 쓰러트릴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단군은 그리 쉽사리 쓰러트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가 상대했던 신격 중에서 가장 강한 신격이라는 게 지금도 피부로 와닿고 있었으니.
일본의 삼귀자 중 한 명인 스사노오도 대신격이었으나, 단군은 그와는 격 자체가 달랐다.
한반도 신화를 여는 창세신 환웅의 아들이고, 옥황이라고도 부르는 환인의 손자였으니까.
태어나기를 신으로 태어나 수천 년 동안 추앙받은 성골 중의 성골이라는 소리였다.
지금에 와서는 아버지가 퍼리충이었다는 소리를 듣긴 하지만…….
“흑사.”
유성우가 검의 이름을 불렀다.
하늘에서 검은 직선을 그리며 떨어진 흑사가 바닥에 박히며 징그럽기 짝이 없는 검은 기운을 풍겼다.
그리고 순식간에 공간을 잠식했다. 죽음의 기운을 널리 퍼트리며 간이 결계를 완성했고, 대지 위의 생명을 좀먹었다.
단군은 인상을 찌푸리며 청동 검을 휘둘렀으나, 흑사의 기운은 흩어지지 않고 남았다.
-캬하하하하하하하─!! 먹음직스러운 놈이다! 내장을 씹고 뜯어 맛보고 싶구나!
흑사의 상태가 한층 더 안 좋아진 것 같았다.
이 새끼는 언제쯤 좋아질지.
유성우는 검 한 자루를 더 불러들였다. 원래 혼자서 안 되면, 다구리를 치는 게 용병의 정석이다.
“육망.”
부름을 받은 육망이 흑사처럼 백색의 빛줄기를 그리며 떨어지더니, 이번에는 성스러운 기운을 사방으로 뿌려댔다.
-정의의 구현이다! 나의 정의를 때려박아 줄 적은 어디에 있느냐!
마검과 성검 두 자루가 한데 모여 상극인 기운을 뿜어내니 쉴 새 없이 불티가 튀기 시작했다.
단군은 그 모습을 보며 허, 하고 짧게 헛웃음을 토했다.
“상극인 두 개의 힘을 모두 다룰 줄 아는가? 허허… 죽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구나.”
“별 시답잖은 이유로 죽이려 드는군. 이게 뭐, 그렇게 신기한가?”
흑사, 오월, 육망.
유성우의 여덟 개 컬렉션 중에서도 456 라인업은 제각기 다른 성질을 가진 검이었다.
흑사는 이름대로 죽음이었고.
바다를 머금은 오월은 탄생이다.
광염교(光鹽敎)의 신물인 육망은 정화와 재생을 의미했다.
소멸과 창조, 지속성이라는 세 개의 힘이 한데 모여 기묘한 기류를 형성했다.
그 기류의 주인인 유성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부동산 사기로 인한 한반도 주민들의 원한을 갚아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