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38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379화(380/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379화
전(轉)(3)
재앙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전조 없는 지진.
하늘에 구멍 난 것처럼 쏟아지는 홍수.
바다에서는 본 적 없는 괴수들이 들끓고, 해일이 해안 도시를 덮친다.
신과 인간을 분리하던 장막이 걷히며 신들이 지상에 도래했다.
성신전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와는 다른, 진짜 신들이 지상에 발을 디딘 것이었다.
전 세계가 온갖 재해로 불타기 시작했다. 올림포스의 신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북유럽의 발키리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도래했다.
아시아, 유럽… 신화가 남아 있는 모든 땅에서 신화라는 이름의 재앙이 도래했다.
신들은 국가의 수장을 제 발밑에 두기를 원했고, 신들을 이겨낼 힘이 없던 이들은 굴종했다.
전 세계의 권력자들이 신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일반적인 다이버들은 이겨낼 수 없는 강함.
말 그대로의 ‘신’이다.
굴종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강함.
그 영향을 받지 않은 건 이미 검계라는 성신전이 지배하는 한반도밖에 없었다.
본래라면 옥황궁이 한반도를 지배하게 될 예정이었지만, 그들은 검계에 패배하고 물러났다.
덕분에, 다른 나라에서는 여러 재앙과도 같은 소식이 들려오는 와중에 대한민국은 무사할 수 있었다.
타국에서는 파괴신의 도래로 인해 도시가 쑥대밭이 되거나, 자그마한 나라는 대부분의 인간이 가축으로 변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타국의 소식에 유성우를 찬양했다. 그가 있었기에 자신들은 저런 꼴을 당하지 않았다면서.
유성우는 그런 찬양은 별로 달갑지 않았다.
“각국에서 지원 요청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습니다. 어떡할까요?”
“무시해. 나는 분명히 경고해 줬는데 안 들어 처먹은 놈들이 문제다.”
유성우는 장막이 걷히기 전, 각국에 경고했다. 곧 다가올 재앙에 맞설 준비를 하라고.
일부는 장막이 걷히는 걸 알고 있기는 한 모양이었지만, 그게 이런 식으로 일이 터질 줄은 몰랐던 듯했다.
제대로 방비를 해둔 이들은 중국의 천마신교나 무림맹… 일본 열도와 미국 정도일까.
마신이 된 흑사향은 무림맹과 손을 잡고 산해경과 협상한 모양이었고, 일본은 아마테라스와 츠쿠요미가 기강을 꽉 잡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일본은 원래 신앙이 강한 나라였기에 잡신들이 설치는 걸 빼면 그다지 피해는 없는 듯했다.
미국은 원래 이렇다 할 신화가 없어서 멀쩡했다. 천 년도 되지 않은 나라가 신화를 운운하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나라가 삼면이 바다인 게 이럴 때는 좋군.”
유성우는 여러 요청을 싸그리 무시한 뒤, 씁쓸하게 웃었다.
만약 다른 땅덩어리랑 붙어 있었다면, 지금쯤 쳐들어오는 신들과 맞붙는 중이었으리라.
산해경은 중국의 넓은 땅덩어리에서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있을 터.
변방의 작은 땅덩어리는 신경 쓸 시간도 없겠지.
“…….”
유성우는 다리를 꼰 채 앉아서 자신의 감각을 확장시켰다.
지구를 둘러싸고 있던, 신과 인간을 분리하던 장막은 완전히 걷혀 모습을 감추었다.
수천 년 동안 서서히 약해지던 장막이 드디어 완전히 걷혀 도래한 신들은 혼돈으로 지구상을 뒤덮었다.
그리고 마침내.
승천교의 사자가 검계에 도착했다. 검계의 검문소에 다소곳이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검계에 방문한 승천교의 사제는 다름 아닌, 천사였다. 머리 위의 광륜(光輪)과 등 뒤의 날개.
처음 보는 종족에 맞은편에 앉은 유성우는 인상을 찌푸린 채 지그시 쳐다보았다.
“어이, 단탈리안. 아는 놈이냐?”
천사라는 말에 유성우는 단탈리안을 검문소에 데리고 왔다.
보통 악마는 천사가 타락해서 탄생하는 존재니까. 그러나 단탈리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는 놈이다.”
“그런가. 뭐, 기대도 안 했다만.”
둘의 대화에 맞은편의 천사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세 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차 맛이 좋군요.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승천교주님을 모시는 치천사(熾天使) 미카엘입니다. 단탈리안, 정녕 저를 모르겠습니까?”
“미카엘이라고? 네놈이?”
단탈리안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미카엘을 쳐다보았다. 천사라는 존재는 악마와 대칭점에 있으면서도, 그 원리와 근간이 한없이 가까운 존재.
“예. 과거에는 함께 하품천사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악마로 타락했지만, 저는 노력으로 치천사의 자리까지 도달했죠. 감개무량합니다. 다시는 볼 수 없었던 당신을 이리 보게 되다니.”
“기억도 안 난다.”
“그런… 안타깝습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도 있겠죠. 저는 치천사고 당신은 타락한 악마니까요.”
“이 새끼 지금 시비 거는 거 맞지?”
단탈리안이 그리 말하며 유성우를 쳐다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검계에 온 이유가 뭐지? 대충 예상은 간다만.”
“예. 드디어 때가 되었습니다. 교주님께서 검계의 주인이신 당신을 초대하셨습니다.”
장막이 걷혔다.
그리고, 승천교주가 초대했다.
이 두 가지 사실에서 유성우는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승천교주가 지금까지 직접 행차하지 않은 이유와 그의 정체에 대해서.
유성우에 의해 일이 어그러지기 시작했을 때, 승천교주가 직접 나서서 그를 처리할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승천교주는 그리하지 않았다. 차원을 넘나들고, 공간을 찢는 강대한 능력마저 있으면서 말이다.
유성우는 거기에서 승천교주가 어떠한 제약을 받고 있음을 확신했고, 그의 정체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방금 미카엘이 방문함으로써 확실해졌다.
제우스에게 들은 인간의 이야기.
그리고 승천교주. 이 둘은 동일인이면서, 동시에 동일인이 아니다.
신계와 인계를 분리하는 장막을 펼친 것은 인간이었던 승천교주고, 지금 자신과 대립하는 존재는 신이 된 승천교주니까.
자신이 친 장막으로 인해 본인 또한 제약에 묶여 지상에 힘을 휘두르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주교라 불리는 대리인들을 보내 영향력을 늘리려 했던 것이다.
악마, 안드로말리우스… 광대 놈이라던가.
달기도 그랬고.
만약 그들이 유성우에게 저지당하지 않고, 목적을 완수했다면 대한민국은 승천교에게 넘어갔을 것이고, 중국 또한 달기의 손에 떨어졌으리라.
광대에 의해 마탑의 탑주들이 모조리 죽어버리며 혼란을 불러왔을 테고.
유성우가 생각을 거듭하는 동안 미카엘이 제멋대로 승천교에 대해 찬양하더니, 이내 고풍스러운 몸짓과 함께 말했다.
“자, 그럼 저와 함께 승천의 세계로…….”
“안 가.”
“예?”
“안 간다고 새끼야. 내가 무슨 오라고 하면 가야 하는 사람인 줄 아나? 착각도 유분수지.”
유성우는 다리를 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리고는 미간을 좁히며 서서히 기운을 끌어올렸다.
눈앞에 있는 미카엘은 이름값만큼 대신격에 도달한 천사였으나, 지금의 유성우에게 그저 자그마한 걸림돌에 불과했다.
그에게서 강대한 기운이 피어오르자 미카엘은 어마어마한 압박에 이를 악물었다.
와중에 옆에 있는 단탈리안은 평온한 얼굴이었으니, 그가 얼마나 기운을 잘 다루는지도 뜻하지 않게 알게 되었다.
유성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꼼짝 못 하는 미카엘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이마를 쿡 찔렀다.
“승천교주에게 말해라. 직접 오라고. 장막도 걷혔겠다, 다리가 없는 게 아니라면 오지 못할 이유도 없겠지.”
그리 말한 유성우가 몸을 돌리며 기운을 풀어내자, 미카엘은 다리가 풀렸는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도 본능을 자극한 공포는 여전한지 몸을 덜덜 떨어댔다.
대신격 사이에도 급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었다.
“단탈리안, 가자.”
“오우, 그래.”
유성우가 몸을 돌려 검문소를 나가자, 단탈리안이 미카엘을 보곤 킥킥 웃으며 따라 나갔다.
방안에 홀로 남겨진 미카엘은 시야에서 유성우가 사라지자 이를 뿌득 갈았다.
자애로웠던 천사는 분노에 가득 찬 채, 돌아가는 차원문을 열었다.
승천교주에게 이 모든 것을 보고하기 위해서.
* * *
검문소에서 검계로 돌아온 유성우는 먼저, 사람들을 모았다.
그의 부름에 모인 이들은 성신전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이들.
단탈리안과 도화, 마녀회의 원로 마녀 몇 명.
“너희들을 소집한 건 궁금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뭐가 그렇게 궁금한데요? 승천교의 사자가 왔다 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흠, 그러니까 일단 묻지.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관한 이야기다. 어비스가 생기기 이전, 두 종교가 거의 세계를 양분하다시피 했지.”
“그렇죠? 하지만 두 종교의 신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게 까발려지자 거의 망했지만… 아 참. 미안해요.”
신랄하게 말하던 메데이아는 잔느의 눈치를 보고는 입을 닫았다.
잔 다르크. 그녀는 신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니까.
“괜찮아요. 익숙하니까요.”
예수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안색이 변하는 그녀였지만, 이미 오래전에 털어낸 그녀였다.
남은 것은 아주 약간의 미련뿐.
유성우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잔느, 너는 분명 신의 힘을 끌어다 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은 무엇을 근간으로 하는 힘이지?”
“…쓰읍, 그것부터 물어보시는 건가요? 저도 처음에는 신의 힘이라 믿었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그건 자기암시를 기반으로 한 육체의 잠력을 끌어올리는 마법이에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은 이후에 깨달은 건데…….”
“자세한 이야기는 됐고… 내가 의문을 가진 점은 하나다. 오늘 검문소에 승천교주의 사자로 온 자는 미카엘이라는 치천사였다. 성경에 나오는 천국의 존재지. 기독교가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천국과 지옥도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유성우가 미카엘을 보고 확신한 점은, 치천사 미카엘이 존재함으로써 천사나 천국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인 지옥도 있어야 할 터이고.
더군다나 미카엘은 단탈리안을 보고 하품(下品)천사 시절의 동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단탈리안, 천사 시절은 기억하는가?”
“기억나지 않는다. 모든 천사는 타락해 악마가 되는 순간 새로운 존재로 탄생하지. 그 과정 중 기억은 지워지고 본능만이 남는다. 내 경우에는 기록의 수집욕이지.”
“타천(墮天)한 건 확실하고.”
“그렇다. 다른 건 잊었어도, 타천의 기억은 남아 있다. 날개가 뜯어지고, 정신세계가 뒤바뀌는 감각.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는 악마의 속삭임…….”
“그때를 기억한다면 틀림없겠군. 흠, 도화, 한반도에는 또 다른 지옥이 존재하는가?”
“모른다네!”
“기대는 안 했다. 성경에서 나오는 지옥이 한반도에 있을 리는 없겠지. 그렇다면 메데이아, 천국과 지옥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고, 그것이 성신전으로써 존재한다면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유일신이 별개의 개념으로 존재할 확률은 얼마나 되겠나?”
“제로에 가까워요. 성경이라는 이야기에서 탄생한 존재니, 적어도 기독교의 천국과 지옥, 그리고 그 근간이 되는 주신(主神)의 존재는 필수적… 잠깐, 설마 당신.”
메데이아는 유성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챘는지 눈썹을 꿈틀거렸다. 잔느도 감을 잡았는지 손으로 제 입을 가리며 입을 쩍 벌렸다.
잠시 말이 없던 유성우가 이내 추측을 입에 담았다.
“…승천교주는, 기독교의 신인 것 같군. 아마도 이슬람교의 신일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