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46)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46화(46/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46화
신점
“물렀거라! 인두겁을 뒤집어쓴 귀신이 신당에 들어서다니, 기어이 선을 넘으려 드는구나!”
방 안에 앉아 흰색 고깔모자를 쓰고, 무복(巫服)을 차려입은 여자가 방 안으로 들어선 유성우를 보며 소리쳤다.
느닷없이 마귀 소리를 듣게 된 유성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천신(天神)을 몸에 담았다는 천운선녀(天雲仙女) 김윤주를 쳐다보았다.
나이는 이제 막 스물을 넘긴 것 같은데, A급 다이버에 무당까지 겸하고 있다니.
“내가 마귀라고?”
“그래 이놈아! 어쩌자고 인간의 탈을 쓰고 그리도 많은 살겁을 저지른 것이냐!”
“흠.”
유성우는 그녀가 왜 이런 반응을 하는지 이해했고, 김윤주의 눈은 진짜라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이 죽여온 생명의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라 생각했다.
그게 괴물이든, 인간이든.
죽일 만큼 죽였으니 그것들이 만약 원혼이 되어 자신의 주위를 떠돌고 있다면, 김윤주의 반응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이해는 가는 것과는 별개로 손님을 대하는 방법이 틀려먹었다.
자신은 마귀가 아니라 인간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적당히 김윤주의 앞에 준비된 방석에 냅다 털썩 앉으며 입을 열었다.
“어딜 앉느냐! 썩 꺼져라!”
“의문이군. 나는 사람인데 어째서 마귀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단순히 신점을 보러 온 것뿐이라고.”
“마귀가 인간 행세를 하고 다니면서 신점은 무슨! 천신께서도 네놈을 당장 쫓아내라 하신다!”
계속해서 소리치는 김윤주의 눈동자는 은은한 금빛으로 빛났다.
그것은 분명 신안(神眼).
특이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신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확인한 그가 말했다.
“내가 죽인 놈보다 살린 놈이 많을 텐데 그런 소리를 해도 되나 모르겠어. 아무 짓도 안 할 테니 적당히 신점이나 봐달라고.”
“당장 꺼지라니까!”
김윤주의 외침에 유성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핏빛으로 서늘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마주친 그녀가 저도 모르게 흠칫, 하더니 눈을 깔았다.
“손님 대접이 영 아니군. 천신이네 뭐니, 용하다고 해서 왔는데 젊은데 노망이 난 무당만이 있구나.”
유성우는 그리 내뱉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바람이 훅 불어오더니, 둘이 앉아 있던 방의 문이 열렸다.
갑자기 몰아친 돌풍에 복도에 주렁주렁 걸린 오색천이 휘몰아쳤다.
촛불들이 일제히 꺼지고, 다시 켜진다.
기괴한 현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성우가 자리를 떠나려 하자,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를 그리 급히 가려 하는가.”
목소리가 달라졌다.
김윤주의 높은 하이톤이 아닌 인자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몸을 돌려 김윤주를 바라보자 그녀는 손에 들린 쥘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였다.
‘……강신?’
신점을 보러 왔더니 무당이 신점은 안 봐주고…….
대뜸 신이 강림했다.
강신(降神)의 조짐도 딱히 보이지 않았는데.
유성우는 긴장을 끌어올리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천신이 직접 신점을 보러 와준 건가? 이것 참 영광이군.”
“이 아이가 부족하여 제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니 사죄하게 시키겠네. 하마터면 귀인(貴人)을 놓칠 뻔했어.”
“귀인이라…….”
역시 신은 보는 눈이 다른가.
마귀라고 자신을 몰아세우던 망나니 무당보다는 훨씬 나았다.
“신점을 신에게 보게 되었으니 돈을 더 내야 하나?”
“그럴 것 없네. 자네의 존재를 알게 된 것만으로 충분하니.”
“내 존재를?”
“그래. 전부 읽어낼 수 없는 그 기구한 인생. 뒤틀리고 뒤틀려, 하늘마저 거스를 그 기이함은 쉬이 볼 수 없는 게 아니던가?”
유성우는 김윤주, 아니, 천신으로 보이는 이의 말에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언은 아닌 모양이군.”
천신과 비슷한 얘기를 유월도 했다. 둘 다 같은 것을 보았다면 천신의 말이 마냥 틀린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머릿속에서 교차 검증을 끝낸 유성우는 천신을 바라보았다.
펼쳐진 쥘부채 위로 드러난 눈은 초승달처럼 접혀 웃는 채였다.
“과거를 보았다면, 미래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겠지. 내가 하려는 게 뭔지도 알고 있을 테고.”
“알고 있지. 자네가 하려는 일도. 딱히 무언가를 찾으려 애쓸 필요가 없네. 모든 것이 자네에게 연결될 테니까.”
“딱히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그래. 승천은 과거부터 만물이 바라던 것…… 자네가 기다리는 것들 또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테니, 안절부절 안 해도 좋다.”
“과거부터라면, 이 땅에 과거부터 승천자들이 있었다는 뜻이군.”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자, 그럼 이만 슬슬 허락된 시간이 끝나가는군. 유익한 만남이었네. 별의 이름을 가진 자여.”
마지막으로 그리 내뱉은 천신이 펼쳐져 있던 쥘부채를 착, 하고 닫았다.
그 순간 방 안을 가득 채우던 기이한 힘이 사라진다.
마치 아무런 것도 없었다는 듯 순식간에 사라지는 기운은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그와 동시에 김윤주의 몸이 뒤로 넘어가더니 이내 벌떡 일어나 유성우를 보았다.
그러고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유성우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제, 제가 귀인을 몰라뵙고…… 크나큰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사이에 천신에게 꾸지람을 들었는지 김윤주는 납작 엎드려 유성우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녀의 태도에 유성우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네가 신점을 봐준 게 아니라 네 안의 신이 봐주었으니 환불은 물론이고, 위약금으로 네 배를 배상해야 할 거다.”
“그,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아라. 만약 다른 이의 입에서 내 귀에 들어오는 순간 오색무당회고 뭐고 전부 박살 날 테니.”
“알겠습니다!”
배상과 협박까지 끝낸 유성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그가 방을 나갈 때까지 김윤주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만큼 유성우가 두려웠고, 천신의 말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또다시 기나긴 복도를 지나 건물을 나서서, 별채에 있는 대기실로 향하니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반겨주었다.
“다녀오셨습니까. 좋은 말씀은 들으셨습니까?”
“용하긴 하던데. 그래서 환불 받기로 했다.”
“……예?”
서연정은 유성우의 말에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띠링.
그러고는 울리는 스마트폰 소리에 등산복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했는데.
“……환불 수준이 아닙니다만?”
“조금 위자료도 받았지. 이제 온 김에 서울 나들이나 하자고.”
“와! 나들이!”
“이제 내려가는 건가요? 인간의 미래시는 어떻던가요?”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녹스가 신나 했고, 유월이 물어왔다.
유성우는 작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자세한 것은 답해주지 않았다.
아무튼, 이제부터는 즐거운 서울 나들이다.
아니, 즐거운 서울 나들이가 될 터였는데.
“이런 뜻이었군.”
잠깐 구경하러 간 홍대에서 커다란 어비스가 열렸다.
서울은 얼마나 변했을까 느긋하게 구경하며 걷던 도중, 느닷없이 눈앞에 열린 검은 구멍.
홍대거리에 경보 사이렌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혼비백산 도망쳤다.
어비스가 나타난 지 세월이 꽤 지났음에도 눈앞에서 열리는 시커먼 구멍은 두려움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유월, 너는 녹스랑 서연정 씨 데리고 대피해라. 나는 어비스 안에 들어가 볼 테니까.”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안에 뭐가 있을지 가늠이 안 가니까 그러는 거다. 이 정도 크기랑 기운이면 1급은 가뿐하겠군.”
“……알겠습니다. 저희는 대피해 있을게요.”
“그래. 부탁한다.”
부탁한다는 말에 유월이 입술을 씰룩거리다가, 서연정과 녹스를 데리고 근처의 대피소로 향했다.
그리고 유성우는 기지개를 한 번 쭉 켜고는 중얼거렸다.
“요즘 너무 놀긴 했지.”
몸이 살짝 무겁다.
이런 감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간단한 운동이 제격이리라.
게다가 이런 어비스라면 냉큼 공략해 버려도 별말 못할 테고.
공략을 위한 정찰 시간도 있을 테니 그 시간 안에 보스를 쓱싹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터였다.
머릿속으로 간단한 계산을 끝마친 그가 기척을 죽인 채, 도망치는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가 어비스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씨발, 하필이면 홍대야?”
탱천 길드의 마스터, 민청운은 갑자기 등장한 어비스에 골머리를 싸맸다.
“현재 어비스 크기로 봐서는 1급에 준하는 대형 어비스인 것 같습니다. 정확한 건 에너지 산출량이 나와봐야…… 방금 연락이 왔습니다. 에너지 산출량 1급이 확실합니다.”
“빌어먹을. 긴급도 아니고, 서울에 있는 거면 얄짤없이 우리가 해결해야 하잖아.”
“일단 타 길드에 연락을 넣어둘까요? 본국검회나 오색무당회에.”
“……아니야, 됐다. 우리만으로 가자. A급 이상으로 정찰대 편성해서 한 번 보내봐라.”
“알겠습니다. 그다음은요?”
“내가 직접 가겠다. 이 기회에 똑똑히 알려줘야겠지. 누가 대한민국의 최강인지.”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탱천의 길드마스터이자, 서울을 수호하는 길드이기에 민청운은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게다가 이번에 새로 얻은 힘을 시험해 볼 때가 마침 찾아왔다.
이 힘을 얻기 위해 바친 것이 적지는 않지만, 이 힘만 있다면 대한민국, 아니 세계까지 넘볼 수 있으리라.
민청운은 그리 생각하며 주먹을 꽉 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탱천의 출전이다.
* * *
스읍, 하.
스읍, 하.
피톤치드가 가득한 듯한 숲속.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내려와 나뭇잎 그림자가 일렁이나, 싸늘함밖에 느껴지지 않는 숲이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면, 비강을 타고 들어오는 물비린내가 코를 찔러댔다.
익숙한 물비린내.
왜 익숙한지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호숫가의 물비린내에 피 냄새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비스로 빨려 들어가는 사람은 못 봤는데.”
이번에 들어온 어비스는 저번에 겪었던 것과 달랐다.
사람을 빨아들이지도 않았고, 그저 조용히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어비스의 심장을 가진 존재의 심성을 대변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때 들어갔던 어비스가 리자드맨들이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며 활개를 쳐댔다면, 이곳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숲속의 호수라.’
불안한 생각밖에 안 든다.
보통 시끄러운 놈보다 조용한 놈이 더 위험하고 미친놈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시끄러운 놈은 내가 여기에 있소, 하고 어필이라도 하지 조용한 놈은 제 함정에 걸려들 때까지 꿈쩍도 안 하는 놈들이 부지기수.
그러니까 즉, 코어의 주인은 자신이 펼쳐놓은 함정에 유성우가 스스로 제 발을 들여놓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으리라.
‘그래도 갈 수밖에 없군.’
시간을 너무 끌면 다른 놈들이 올 터였다.
유성우는 짐승 소리도,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 숲속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물비린내의 진원지에 심장의 주인이 있을 테니, 방향은 일직선.
한 손에 일생을 뽑아 들고 방해되는 나무들은 베어서 쓰러뜨렸다.
괜히 이런 곳에서 나무들을 돌아가다가는 빙빙 돌아버리고 마니, 그가 이계에서 얻은 꿀팁이었다.
미로를 통과하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은 벽을 부수고 일직선으로 가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