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54)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54화(54/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54화
메이너드(3)
메이너드는 강했다.
이런 꼴이 되어도 날카로움은 여전했고, 강인함은 더욱 배가되었다.
검을 한 번 부딪칠 때마다 팔근육이 꿈틀거렸다.
고목처럼 근육도 없는 몸인데 어떻게 이런 힘을 낼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검과 검이 강이 지나간 자리의 중앙에서 맞부딪힌다.
부딪힐 때마다 돌조각이 사방으로 떠오르며 여파에 돌바닥이 쩍쩍 금이 갔다.
검을 맞대고 있자니 과거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야, 성우. 네로가 말이야, 진짜 고양이 같거든? 앉아 있으면 갑자기 와서 내 무릎 위에 앉거나 한단 말이야. 쓰다듬어달라고도 하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새끼 사실은 결혼한 건 구라고, 검은 고양이랑 결혼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지금도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겠지? 빨리 가서 보고 싶네.’
마물을 잔뜩 썰어 넘기고 지친 얼굴로 떠들어댔던 기억이다.
검을 부딪칠 때마다 메이너드와 함께 보냈던 전장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고작 그딴 검으로 나를 죽이겠다고? 그때도 똑같았지. 네 장기 따위는 죄다 내버린 채 본능에 의존해 휘두르는 검이 통할 것 같냐!”
왠지 모르게 감정이 격해진다.
식었던 감정이 들끓는 걸 보니 자신은 아직도 부족하다 느꼈다.
두 개의 검이 허공에서 얽히며 강렬한 힘의 파장을 일으켰다.
좀 떨어진 곳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민청운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연신 가로저었고.
유성우와 메이너드의 속도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듯 계속해서 빨라져, 이제는 눈으로 좇을 수도 없는 정도가 되었다.
“너는, 너는! 내 마음을! 내가 어떤 걸 겪었는지 모르잖아!”
메이너드의 입에서 울분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저 푹 패어 있던 눈구멍에 어느새 연둣빛의 빛이 어려 있었다.
상실되었던 이지(理智)가 희미하게나마 돌아온 것이었다.
“왜 모른다고 생각하나!”
“큭!”
유성우가 크게 휘두른 검에 메이너드가 뒤로 물러나 길게 발자국을 남겼다.
일생을 든 채 숨을 길게 내뱉은 그가 말을 이었다.
“네 이야기는 들었다. 너랑 결혼했던 네로라는 사람이 마을 사람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고.”
유성우가 그 일을 모를 리가 없었다.
메이너드와 함께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더라도, 함께 싸운 정이 있다.
메이너드가 갑자기 사람들을 죽이고, 마족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알아본 결과 메이너드가 어째서 그리됐는지 내막을 알 수 있었다.
“이해한다. 네 마음을. 그 감정을 말이다.”
유성우의 말에 메이너드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라고 인간에게 배신당하지 않았던 적이 없을 것 같나. 나한테는 일상이었다. 배신당하고, 배신당하고, 배신당하고.”
숫자를 세기도 힘들다.
뒤통수를 치려던 놈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말하기도 입이 아프다.
배신당한 끝에 친구를 여럿 잃었고, 소중하다고 부를 수 있는 이도 죽었다.
물론 복수는 확실히 했다.
관련된 놈들은 죄다 잡아서 죽여 버리고,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예 뿌리를 뽑았다.
“하지만, 너는 그 이상을 했지. 죄 없는 인간들까지 죄다 죽여 버리면서 마족의 편에 섰다.”
“그딴, 인간들은 전부 죽어버려도 싸. 나는, 네로만 다시 볼 수 있으면…….”
“그게 바로 네 염원인가? 한번 실패했으면 단념할 것이지, 순리를 거슬러 가면서까지…….”
그러니까, 죽은 부인은 저승에 가서 만나란 말이다.
살아서 만날 생각 좀 그만하고.
유성우는 그리 일갈하고는 숨을 길게 내뱉었다.
“승천자가 되어 그 몸을 유지하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숫자의 사람을 죽였나.”
유성우는 저 마족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인 살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인간의 정수가 모여 있는 뇌 혹은 심장을 주기적으로 섭취하지 않으면 마족의 몸은 무너져 내린다.
민청운의 폭하검의 성취를 보았을 때 꽤 시간이 된 것 같으니.
최소, 수십 명의 심장을 잘근잘근 씹어 먹었으리라.
“더 떠드는 건 입만 아프겠지. 검사는, 이긴 쪽이 옳은 거니까.”
“……그래, 그렇지. 검사란 검으로 증명하는 법이니까.”
더는 말이 필요 없다는 듯이 메이너드와 유성우가 다시금 동시에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격돌.
물이 지나간 자리에서 이제는 돌조각과 불꽃만이 튀겨댔다.
메이너드는 위에서 사선으로 내리긋고, 유성우는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그러자 까앙, 하는 청명한 쇳소리와 함께 메이너드의 가슴팍이 열렸다.
유성우는 그곳을 노리고 검을 찔러넣었으나, 그녀는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옆구리가 베이는 정도에 그쳤다.
“아직 감은 살아 있군!”
두 번이나 죽었으면서 말이다.
그가 다시금 세차게 휘둘러 메이너드를 밀어내고는, 강렬한 기세를 검에 담았다.
이어서 재차 크게 휘두르니, 붉은 검기가 넘실거리며 나아갔다.
메이너드는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검기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해 검을 앞세워 옆으로 걷어내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그 대가로 살 한 움큼이 뜯겨나갔다.
“미친 새끼. 거기서 더 강해졌다고? 제정신이 아니야. 또라이 새끼. 씨X 새끼, 나가 뒈져야 할 새끼…….”
다급해진 메이너드의 입에서 온갖 욕이 튀어나왔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유성우보다 더 강해졌기에 튀어나오는 것들이었다.
자신보다 강해지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느낀 압력은 상상하던 이상을 웃돌았다.
“사람은 원래 성장하는 동물이니까. 인간을 버리고 성장하지 않는 종족을 택한 자신을 원망해라.”
“성장에도 정도가 있지, 이 미친 새끼야!”
메이너드가 그리 외치며 검을 크게 휘두른다.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바람이 몰아쳤다.
그것은 칼날의 폭풍이었다.
사람 한 명은 우습게 찢어발길 커다란 날붙이였다.
그러나 유성우는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안쪽으로 들어가며 검을 휘둘러 폭풍을 절반으로 갈라냈다.
“이건 또 무슨 병신 같은 기술이냐? 너는 폭하검 빼면 아무것도 아닌 놈이잖나.”
“지랄하지 마라!”
폭풍을 갈라낸 유성우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검을 몇 번이고 휘두르며 밀어붙인 끝에야 들고 있던 검이 반 토막이 나서 날아갔다.
부러진 검신이 하늘을 빙글빙글 돌더니 바닥에 꽂히니, 메이너드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작게 내뱉었다.
“……네가 있는 차원이었으면 올 생각도 안 했을 텐데.”
“다른 차원에도 가지 말아야지. 죽은 놈은 흙으로 돌아간다. 다시 살아나는 게 아니라.”
그리 말하며 유성우가 싸움을 끝내기 위해 검을 들었다.
붉은 검신이 번뜩이며 진동하더니, 강렬한 기세를 내뿜었다.
그 모습을 본 메이너드는 이미 죽어버린 감각 속에서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죽어-!!”
그리고 그 와중, 멀찍이 있던 민청운이 어느새 다가와 남청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민청운의 검은 유성우에게 닿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메이너드가 반 토막 난 검을 던져 민청운의 미간을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유성우는 휘두르려던 검을 거두고는 메이너드를 바라보았다.
이어서 그녀가 손을 뻗자 민청운의 손에 들려 있던 남청검이 그녀에게 빨려 들어가더니 손에 쥐어졌다.
마치 제 주인을 찾아간 것과 같은 모습에 유성우가 피식 웃자, 메이너드 또한 숨을 길게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인정하지. 이 모습으로는 백 번 죽었다 깨어나도 너를 못 이긴다는 걸 말이야.”
“천 번도, 만 번도 안 될 거다.”
“……이 새끼가 끝까지.”
메이너드는 그리 말하면서, 남청검으로 엉망진창이 된 돌바닥을 퉁, 하고 두들겼다.
그러자, 세계가 뒤바뀌었다.
절벽에서 갑자기 세찬 물줄기가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돌조각과 먼지들을 전부 쓸고 내려갔다.
물이 지나던 자리에는 정말로 물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폭포와 작은 강이 완성되었다.
발목까지 차오르는 수위에 유성우는 메이너드를 바라보았고.
어느새 과거의 모습을 되찾은 그녀를 보고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숨겨둔 한 수가 있었군.”
“원래는 쓸 생각 없던 힘이다. 하지만, 너를 상대로 한다면 전력이 아니면 안 될 테니까.”
유성우는 눈앞에 자리한 메이너드의 기운을 어딘가에서 느낀 적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최근에.
‘신격(神格)이다.’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듯한 강대한 힘.
지금 유성우의 앞에서 흘러내리는 폭포수와 강물은 모두, 메이너드에게서 비롯된 것.
그녀는 자신의 모든 힘을 일시적으로 강화하는 데 사용했고.
그 결과 일시적인 신격이 형성된 것이었다.
적어도 이 공간 안에서 그녀는 신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게 승천을 끝낸 모습이로군. 신격을 얻기 위한 준비라고 하더니.”
괴물이나 다름없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찰랑거리는 연녹색 머리칼과 짙은 녹색 눈동자가 유성우를 응시했다.
루나처럼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한 감각은 없었지만,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 거북함이 들었다.
“어때, 신을 베어 본 경험은 있어? 유성우.”
“…….”
메이너드의 남청검이 푸르게 빛나고, 연둣빛 머리칼이 흩날린다.
은은한 빛의 입자가 그녀의 주위를 떠돌며 신성함을 배가시켰다.
“내가 마족이 되고 나서 폭하검을 쓰지 않은 건 이유가 있어. 마족의 성정과 폭하검의 성질이 맞물리지 않았던 거지.”
“지랄맞은 성격은 똑같은데.”
“죽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라.”
메이너드가 자세를 잡았다.
그녀의 자세에 호응해 주변의 물길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폭하검의 기본자세.
유성우는 그 기세에 맞서 기운을 끌어올리곤, 숨을 길게 내뱉었다.
“신을 베어 본 적이 있냐고 물었나…….”
뻔한 질문이지 않은가.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리고는 양손으로 일생을 쥐었다.
일생의 붉은 검신이 더욱 흉흉하게 빛났다.
“베었기에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거겠지. 너 같은 놈들 족치라고.”
유성우와 메이너드가 동시에 검을 내질렀다.
폭하검 오의-폭포 거스르기
일검-공간 찢기
두 개의 검이 강렬한 기파를 만들어내며 맞부딪힌다.
돌풍이 일고, 땅이 뒤집히며, 주변에 있는 것들은 기파를 견디지 못하고 산산이 분쇄된다.
민청운의 시체는 어느샌가 산산이 분해되 일말조차 찾을 수 없었다.
두 명의 검사가 만들어낸 기운의 소용돌이가 하늘을 찢어발길 듯이 솟구쳤다.
둘은 소용돌이 속에서 연신 검을 휘둘러댔다.
메이너드는 자신의 폭하검의 모든 것을 쏟아냈고, 유성우는 그것들을 전부 받아내거나 흘려냈다.
소용돌이 속에서 마치 검무(劍舞)를 추듯 움직이는 두 사람의 모습은 두 명의 검신이 다툼을 벌이는 것만 같았다.
폭포수가 떨어지다가 용솟음치고, 흐르던 강물이 사방으로 비산해 비처럼 내렸다.
이윽고, 모든 폭포수와 강물이 잔잔해져 작은 호수를 이루었을 때.
유성우는 선 채 드러누운 메이너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메이너드, 다음에 만날 때는 내가 죽은 뒤 지옥에서 만나게 되겠지.”
“더러운 재회겠군…….”
“기다리지 마라. 꽤 오래 걸릴 테니까.”
“안 기다려 개새끼야…….”
“그때가 되면…… 같이 술 한 잔 정도는 다시 하자고.”
“물론이지. 마시고 죽어야지…… 그때는.”
메이너드의 몸이 점점 손끝부터 점점 희미해진다.
유성우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몸을 돌렸고.
그녀는 홀로 남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아, 네로…… 드디어 너를 보러 가겠구나.”
메이너드의 몸이 이윽고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유성우는 두 번째 신을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