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6)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6화(6/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6화
생자의 자격
서리 숲은 늘 서리가 내려 있었기에, 어지러이 찍힌 사람들의 발자국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둘은 사람들의 흔적을 쫓아 발걸음을 옮겼고.
서리 숲에서 살아가는 괴물들을 마주했다.
새하얗게 내려앉은 서리를 몸에 두른 듯한, 성인 남자 정도 크기의 갯과 네발짐승.
노란 눈을 번뜩이는 짐승들은 이빨을 드러내며 커다란 나무 등치 위에서 대가리를 내밀었다.
“화이트팽이야.”
“휜둥이라는 뜻이군.”
그가 손을 내밀며 나지막이 일생을 불렀다.
그러자 핏빛 검이 그의 손에 쥐어지더니, 이내 번뜩이는 섬광을 흩뿌렸다.
그와 동시에 나무 뒤에서 대가리를 내밀었던 화이트 팽의 머리가 푸른 피를 뿌리며 바닥을 굴렀다.
자신도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자세를 취했던 유지우는 어이가 없어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화이트팽의 머리가 추수하듯 우수수 떨어지니, 어안이 벙벙해 미간을 좁힐 뿐이었다.
“바, 방금 뭐야?”
“검술이다.”
“무슨 초능 같은 게 아니고?”
“난 그런 거 못 써. 마법도 못 쓴다.”
“……장난 아니네.”
“그래서 내가 말하지 않았나. 너는 내가 얼마나 강한지 알아야 한다고.”
그리 말한 유성우가 화이트팽의 시체를 넘어 다시금 발걸음을 옮긴다.
화이트팽 정도는 유지우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몬스터지만, 유성우처럼 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녀는 유성우가 보여준 움직임을 머릿속에서 되새기며 그의 뒤를 따라 발을 놀렸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아직 어지러이 찍혀 있다.
저 멀리 서리에 덮인 화이트팽의 시체가 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저곳에서 전투를 한 번 벌인 뒤, 이동한 듯했다.
둘은 또다시 화이트팽의 시체를 넘었다.
사람의 시체는 아직 없었다.
그리고 서리 숲의 중심부쯤으로 생각되는 지점에 도착했을 때,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작은 눈송이가 흩날렸다.
“중심으로 들어서면 환경이 급변하는군.”
그리 말하며 유성우는 검을 휘둘렀다.
섬전처럼 휘둘러진 검이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던 화이트팽의 머리를 바닥에 떨구었다.
마치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듯, 너무나도 손쉽게 여섯 마리의 화이트팽을 죽여버린 그가 검에 묻은 푸른 피를 바닥에 털어내고는 말했다.
“지금까지 오면서 쓰러뜨린 화이트팽을 보면 상당히 굶주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다는 건 아직 사냥당한 사람은 없다는 거겠지.”
“그런 것까지 알 수 있어?”
“살아남기 위해 몸에 익힌 잡기술이다. 그리고 발자국이 저 앞에서 반으로 갈라졌어. 이 근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모양이다. 화이트팽을 상대한 건 아닌 것 같고, 패닉에 빠져 갈라진 것 같은데. 다이버들은 그런 것도 안 배우나?”
“……보통은 안 배우지. 다이버가 배우는 건 추적술이 아니라 전투법이라고. 5급 던전에 대체 무슨 변수가 나타난 거야?”
유지우는 다시금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자신이 들여보낸 이들이다.
연구팀과 호위, 그리고 구조팀. 한 명이라도 잃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동료들.
자신의 선에서 대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굳이 유성우의 힘까지 빌리려 하지 않았겠으나,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
그녀가 자신의 실책에 대해 곱씹는 동안, 유성우는 갈 길을 정했다.
“오른쪽으로 간다. 이쪽의 발자국이 더 많아. 찍힌 깊이를 보면 일반인도 섞여 있는 것 같으니까.”
지금부터는 타임어택이다.
* * *
“끄으으으으…….”
모든 것에 서리가 내려앉은 서리 숲의 심층부.
커다란 나무뿌리 아래 생겨난 자연 동굴 속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온다.
“조금만 참아요. 곧 구조대가 올 거예요.”
“젠장…….”
동굴 속에는 다섯 명이 빛과 열을 방출하는 돌을 깎아 만든 ‘발광열석’ 랜턴을 중심에 두고 둘러앉은 채 침음을 삼켰다.
네 명은 연구팀 일반인이었고, 바닥에 드러누워 고통을 토하는 한 명은 호위팀인 B급 다이버였다.
이곳까지 도망치는 도중 호위팀 한 명은 실종됐고, 다른 한 명은 부상을 입어 쓰러졌다.
“구조대가 올 리가 없어. 저딴 게 버티고 있으면 S급 다이버라도 무리일 거라고!”
“대표님을 믿어 봐요. 지금까지 한 번도 저희를 실망하게 하신 적 없으시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이번에는 무리야. 무리라고…….”
그들은 공포에 절어 부정적인 말을 내뱉었다.
한 명이 고개를 돌려 동굴의 바깥을 바라보면, 세찬 눈발 시야를 가득 채웠다.
다행히도 동굴 안쪽으로 눈이 들이치지는 않지만 화이트 아웃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시야를 백색으로 가득 채우는 블리자드였다.
저 눈이 걷히기 전까지는 동굴을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
몰아치는 눈보라가 그들에게서 생명을 거둬간다. 말소리가 줄어들고, 침묵이 내려앉았다.
백색의 지옥은 그들을 서서히 몰아넣고, 뼛속까지 한기를 침투시킨다. 발광열석 랜턴의 열기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을 때.
“……가야 해, 가야 해! 가야 해! 가야만 해!”
연구원 중 한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동굴 바깥을 바라보았다.
눈 속에 파묻힌 백색 지옥에서 사람들이 보이던 광증이었다.
그 사람과 비슷하게 호위팀 한 명이 뛰쳐나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광증에 절여져 눈보라 속으로 뛰쳐나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도 눈보라 속에서 헤매고 있을지, 아니면 동사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다른 이들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고, 이내 붙잡으려 했으나 그럴 새도 없이 동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사람들은 그를 쫓아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그가 동굴 밖을 바라볼 때의 눈동자.
백색의 지옥 속에서 무엇을 마주한 건지, 황금빛으로 가득 차 광기가 번들거리는 그 눈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바깥에는 보이지 않는 괴물이 있다. 자신들을 동굴 속에서 끄집어내 백색 절망으로 밀어 넣으려는 괴물이 있었다.
한 명의 비명이 백색 세계 속에서 소음이 되어 들려왔다. 서서히 멎어가는 비명.
사람들은 정신을 잠식하는 공포를 깨달을수록 무력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 정신을 놓아버리려 할 즈음, 백색 세계를 뚫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있었다.
“모두 여기에 모여 있었군.”
“여러분. 구하러 왔어요!”
나무뿌리의 동굴 속으로 들어온 건, 건장한 키의 사내 하나와 여자 한 명이었다.
둘은 눈보라 속을 헤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머리 위에 눈 하나 쌓이지 않은 상태로 동굴 속에 들어오며 손에 들려 있던 사람 두 명을 바닥에 던져놨다.
실종됐던 호위 한 명과 밖으로 달려 나갔던 연구원이었다.
“대, 대표님!”
“대표님이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오셨어요?!”
“평범하게 걸어서 왔는데요. 지금부터 탈출할 겁니다. 다친 사람은 부축하고.”
“자, 잠깐만요 대표님.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는지 모르겠는데 탈출은 불가능해요. 밖에 어마어마한 괴물이 있어서 저희도 여기에 고립된 거고요.”
“어마어마한 괴물?”
“네. 그리고 밖에 눈발이 너무 거세서 앞도 안 보이고…….”
“눈발이 거세다고요? 그럴 리가. 진눈깨비밖에 안 내리는데요.”
“네?”
유지우의 말을 들은 연구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무슨 소리인가.
그는 이해할 수 없다며 동굴의 바깥을 바라보았다. 바깥은 여전히 거센 눈발이 몰아쳤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런 거센 눈.
하지만 유지우와 유성우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눈으로 연구원들을 바라보았다.
“바깥에 눈이 엄청나게 내리는데…… 그러고 보니 두 분은 눈송이도 별로 안 붙어 있으시고. 날씨도 어마어마하게 추운데 그런 복장으로 괜찮으신 건가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요? 여기에 너무 오래 갇혀 있어서 미쳤나?”
“음. 우리에게는 진눈깨비지만, 이들에게는 세찬 눈발로 보인다는 거군. 환각계인가?”
“환각계?”
유지우의 되물음에 유성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서리 숲에 들어온 순간부터 줄곧 생각하던 것이 있었다.
어디선가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멀리서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가까이서 보는 것 같기도 해서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시선이 더러운 기분이 든다는 건 확실했다.
그의 다년간의 경험에 의하면 대개 이런 시선은 정신을 흩트리려는 환각계 주술에 가까웠다.
‘……공포를 눈발의 형태로 실체화 시키는 건가?’
그래서 그랬던 걸까.
서리 숲의 식물들에 죄다 서리가 내려 있던 건.
식물들은 서리 숲의 지배자에게서 흘러나오는 살기에 전신에 서리가 내렸다.
그리고 이후에 진입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미지의 공포에 끝없이 두려워하니 그것이 실체가 되어 거센 돌풍과 눈발이 되어 휘날린 것이었다.
‘나와 지우에게 진눈깨비밖에 보이지 않았던 건 내 정신력으로 상쇄됐기 때문인가. 지우의 두려움이 나의 정신력을 짓누르지 못한 결과.’
S급 다이버라고 한들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있을 수밖에 없다.
만약 그녀가 유성우와 함께가 아니었다면 어비스의 함정에 빠져 이들과 마찬가지로 세찬 블리자드 속에 갇혀버렸을지도 모르리라.
그만큼 악의로 악랄한 어비스라 할 수 있었다.
다년간의 경험과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을 통한 잠깐의 고찰로 서리 숲의 비밀을 꿰뚫어 본 유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는 저들의 두려움을 걷어낼 수 없었다.
억지로 데려간다고 해도, 무척이나 귀찮은 일이 될 게 뻔했고.
그렇다면 남는 건 서리 숲의 주인을 베어 죽이는 것밖에 없었다.
“그놈을 처리할 때까지 당신들은 여기서 기다리는 게 좋겠군. 지우야, 가자.”
“아, 응. 이 사람 말대로 여기서 기다리세요.”
“예? 예?! 데려가지 않으시는 겁니까?!”
“곧 돌아올 거예요.”
“눈이 그치면 나오면 되겠군. 따라와 봤자 방해만 될 거다.”
“아, 안 돼요! 대표님이 S급 다이버라고 해도, 옆에 계신 분도 S급이라고 해도 안 돼요! 저희 호위팀이 최소 S급을 포함해서 최소 열 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조용히 하고 기다려.”
유성우는 그리 일갈하고는 유지우와 함께 나무뿌리 동굴 바깥으로 나갔다.
연구원의 시야에서 두 명의 모습이 백색 지옥 속으로 사라졌다.
둘의 걸음걸이는 당당했으나, 연구원에게는 그저 죽으러 가는 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 *
진눈깨비가 내리는 얼어붙은 숲.
겉으로 보기에는 낭만적이나, 그 안을 걷는 이들은 살얼음판의 위에 서 있다.
광기에 절여 숲속을 방황하던 이들을 나무뿌리 동굴 속에 넣어두고 온 유성우는 숨을 길게 뱉어내며 혀를 찼다.
“나무 때문에 시야가 좁아. 잘 안 보이는군.”
“그러면 어떻게 하게?”
“이렇게.”
유성우가 숨을 짧게 들이켜며 검을 내지른다.
일순간 번쩍이는 핏빛 섬광. 그와 동시에 세찬 바람이 몰아치며 진눈깨비를 몰아내고, 전방에 있던 나무들을 모조리 쓸어버린다.
나무들이 일시에 넘어가자 전방의 시야가 탁 트인다.
순식간에 넓어진 시야에 유지우가 어이없다는 듯 안면근육을 움찔거렸고, 유성우는 속 시원하다며 기지개를 쭉 켰다.
“오빠는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유지우는 그제야, 측정실에서 보았던 것이 유성우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들이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참격이라든가. 순식간에 숲을 쓸어버리는 광경이라든가.
미쳐서 마구잡이로 덤벼드는 B급 다이버를 눈 깜빡할 사이에 제압하기도 했다.
“이제 곧 알려주마.”
그리 말하며 유성우는 고개를 들었다. 탁 트인 시야의 뒤, 그곳에는 고고히 자리 잡은 설산이 있었다.
그림자 한 점 없는 설산은 이질적으로 보이면서도 아름다워, 보고 있는 것만으로 넋을 잃게 할 법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유성우는 검을 들어 설산을 가리켰다.
“저것은 설산이 아니다. 의태한 괴물이지.”
“저게……?”
“그래. 이곳에 들어오고 나서 줄곧 느껴지던 시선이 있었는데, 시야가 확 트이니 확실히 느껴지는군. 저 설산이 바로 이 서리 숲의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