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64)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64화(64/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64화
엘프(4)
숨을 길게 토해낸다.
검사에게 가장 짜증 나는 적을 꼽자면, 제대로 베이지 않는 놈이다.
피부가 단단하거나, 근육이 단단하거나, 뼈가 단단하거나…….
시원스레 한 번에 베이지 않으면 베일 때까지 답답함이 가슴 속에 쌓여간다.
유성우는 그런 답답함이 벌써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이 씨팔 새끼야!”
욕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앞의 뱀은 피부도 단단하고, 근육도 단단하고, 뼈도 단단했다.
작은 뱀은 액체에 불과하면서 본체는 웬만한 광물 이상으로 단단했다.
두들겨도 곁다리만 살짝 베이고, 비늘만 사방으로 튀어댔다.
게다가 놈의 체액은 독기에 산성이라 벨 때마다 주욱주욱 튀어나오는 게 성가셨다.
“후읍!”
숨을 크게 들이켠 그가 옆에서 들이치는 커다란 꼬리를 막아냈다.
칼날로 이루어진 놈의 꼬리와 일생이 부딪히며 커다란 쇳소리를 내었다.
폭탄이 터진 것과도 비슷한 소리였다.
그리고 이어서 놈이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덩치는 더럽게 큰데 속도는 또 빨라서, 어마어마한 질량의 폭력이 오로지 유성우를 향해 쏟아졌다.
정면에서 받아내면 고깃덩이가 분명히 고깃덩이가 되어버린다.
그는 재빠르게 발을 움직여 거리를 벌리고는, 놈의 힘을 이용해 받아쳤다.
샤아아아아아아악─!!
뱀의 입가에서부터 목덜미까지 기다란 상흔이 남았다.
부서진 비늘이 사방으로 튀며 체액이 비산했다.
비처럼 내리는 검은 체액에 유성우는 몸에 두른 기운의 방벽을 더욱 견고하게 다졌다.
‘……소모가 장난이 아니군.’
유성우가 제일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공기에도 독성이 가득했고, 사방에 흩뿌려지는 체액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기운이 소모됐다.
“후우.”
짧게 숨을 토해낸 그가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공중에서 자세를 고쳐잡았다.
이어서 검에서 기운을 피워올렸다.
일생이 진동하며 더욱 붉게 변하고, 유성우의 머리카락마저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한 줄기의 붉은 유성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허공에 붉은 일직선이 그어진다.
검은 뱀은 고개를 쳐들고는 그를 통째로 집어삼키기 위해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유성우는 멈추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런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밖에서 베기 힘들면, 안에서 밖을 뚫는다.’
붉은 한 줄기의 유성이 뱀의 아가리로 쏙 들어간다.
뱀은 유성우를 단번에 삼켜버리고는, 그대로 내부에서 녹여 버릴 생각이었으나.
뜻대로 될 리가 없었다.
……뱀의 내부에서부터 빛이 붉은빛이 터져 나왔다.
육안으로 보이는 변화가 시작된 것은 뱀의 목덜미 아래에서부터였다.
뒤따르는 굉음과 강렬한 기파.
폭발하듯이 뱀의 목덜미에서 살덩이와 체액이 뿜어져 나왔다.
그 사이에서 유성우도 체액에 절은 채 튀어나와 재빠르게 체액을 몸에서 털어냈다.
“씁.”
잘못해서 먹을 뻔했다.
그랬다가는 내장부터 아주 살살 녹아내렸겠지.
바닥에 침을 퉤, 뱉은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아직 놈은 죽지 않았다.
목에 커다란 구멍이 났음에도 여전히 놈은 비명을 질러대며 전신을 꿈틀거렸다.
땅이 뒤집히고, 흙먼지가 가득히 일었다.
유성우는 흙먼지 속에 몸을 숨겨 기척을 죽인 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삼정, 내게 오라.”
붉은 검신의 일생이 빛무리로 흩어지고, 새로운 빛무리가 모여든다.
그 색깔은 부드러운 연녹색의 빛.
유성우의 손에 쥐어진 검의 형태는 코등이가 없는 곧은 검신을 가지고 있었다.
한 가지 특징이 더 있다면 검에 날이 서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연녹색 검신은 무언가를 베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닌 듯, 뭉툭한 검신이었다.
“……삼정검은 오랜만에 쓰는군.”
삼정검(三淨劍).
삼정검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검이 아니었다.
정화의식에 사용하는 의식용 검.
‘하지만 꼭 그렇다고 죽이지 말라는 법은 없었지.’
삼정검은 ‘정화’에 특화된 검.
유성우는 정화의 힘을 이용해 놈의 몸을 이루는 독기와 부정을 뚫고 놈에게 직접 타격을 줄 생각이었다.
샤아아아아아아악─!!
검은 뱀이 대가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땅을 뒤흔들었다.
바닥이 쩌적 갈라지며 땅이 뒤집힌다.
“이 개, 뱀새끼가!”
학습 능력은 있는지 아까부터 큰 기술을 쓰려고 하면 땅부터 부숴댔다.
유성우는 이빨을 뿌득 갈며 부서지는 파편을 밟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제게 쏟아지는 체액을 검막을 펼쳐 밀어내고는 검은 뱀의 몸 위에 착지했다.
그러자 놈의 비늘이 갑자기 수많은 뱀으로 변해 달려들었다.
재주가 참 많은 뱀이었다.
검을 크게 휘둘러 뱀들을 전부 밀어내고는, 강하게 진각을 내디뎠다.
뱀의 몸뚱어리가 잠깐 크게 흔들렸다.
유성우는 놈이 균형을 잠깐 잃은 틈을 타 다시 바닥에 착지했다.
이번에는, 땅이 아닌 그레이트 세피로트의 뿌리였다.
‘하이엘프가 도왔군.’
방금까지 없던 자리에 뿌리가 생겼다.
발판이 불안정한 걸 파악하고 딱 좋은 자리에 그레이트 세피로트의 뿌리를 움직여 발판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했다.
유성우는 숨을 길게 들이마시며 뿌리 위에 발을 내디뎠다.
어느샌가 맨발에 느껴지는 감각이 선명하게 와닿았다.
“울어라! 삼정!”
삼정검이 그의 외침에 공명했다.
웅웅 울어대는 삼정검이 사방으로 정화의 기운을 뿜어대며 독기와 부정함을 밀어냈다.
그와 동시에, 유성우가 뿌리를 강하게 내디디며 앞으로 나아갔다.
허공 위에 연녹색빛의 일직선을 그린다.
어찌나 강하게 도약했는지 그가 발판으로 쓴 뿌리가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뒤이어 펼쳐지는 건 짙은 녹색의 아름다운 불꽃이었다.
불꽃이 휘날린다.
독기와 부정을 태우는 불꽃이 유성우를 휘감도, 대기의 독소를 장작 삼아 더욱 크게 불탄다.
삼검-절부정화(三劍-切不淨火)
유성우의 세 번째 검.
그가 피워올린 정화의 불꽃은 검은 뱀의 대가리를 휘감고, 상처 안쪽을 헤집는다.
그리고 이어서, 피워올린 녹색의 불꽃이 한데 뭉치더니 커다란 검이 되었다.
검에 날이 서 있지 않으면 세우면 되는 법.
“후읍!”
숨을 크게 들이켠 그가 불타오르는 검을 휘두른다.
커다란 검이 서서히 나아가더니, 이내 뱀의 목덜미를 두들겼다.
노린 곳은 직접 구멍을 낸 곳.
이 한 번의 검격을 위해, 지금까지 같은 곳을 두들겨 상처를 만들었다.
“뒈져-!!”
숨을 토해내며 기합을 내질렀다.
상처에 닿은 불꽃의 검이 서서히 검은 뱀의 머리를 가르더니, 이내 머리 자체를 몸통과 분리했다.
그와 동시에 뱀의 몸통과 머리가 검은 액체로 변하더니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육체라는 그릇 안에 담겨 있던 독성과 부정의 신격이 단번에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유성우의 불길이 독성과 부정을 잡아먹기 시작했으나, 전부 먹어치울 수는 없었다.
‘이제는 하이엘프가 버티냐 무너지느냐의 싸움이다.’
분수처럼 솟구치는 부정함 속에서 그레이트 세피로트를 지켜내야 했다.
정화의 불꽃으로 어느 정도 기세를 죽이기는 했지만 그리 길게 가지는 않으리라.
유성우는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서 부정함이 제 몸을 휩쓸지 않도록 불꽃을 주변에 피워올리곤, 독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삼정이 없었으면 더 빡셀 뻔했군…….”
아무리 유성우라 해도 맨몸으로 이 정도의 독기를 견뎌내기는 무리였다.
그의 몸이 만독불침 같은 경지에 이른 것도 아니었고, 기운으로 보호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으니.
삼정으로만 피워올릴 수 있는 정화의 불꽃이 아니었다면 독기의 파도에 휩쓸렸을지도 모르는 일.
그는 고개를 들어 그레이트 세피로트를 바라보았다.
검은 파도가 일대를 뒤덮었음에도, 그레이트 세피로트는 여전히 생기가 가득했다.
‘……그렇게 멀쩡하지는 않은가.’
자세히 보니 그레이트 세피로트의 나뭇잎 끝부분이 검게 물들었다.
아무래도 아무런 피해 없이 견뎌내는 건 무리인 듯했다.
그레이트 세피로트가 신격이 담긴 나무라지만, 마찬가지로 뱀 또한 신격을 담고 있었으니.
그는 벌렁 드러누우며 커다란 나무를 향해 내뱉었다.
“나는 내 할 일 다 했다. 나머지는 알아서 해라.”
그러고는 눈을 감았다.
여러모로 소모가 심한 전투였다.
* * *
희미한, 하지만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심신을 평온하게 만드는 잔잔한 노래는, 가사가 없는 허밍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완벽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의식이 다시금 떠오른다.
유성우는 천천히 눈을 떴고, 노랫소리의 정체를 확인했다.
“너…….”
그레이트 세피로트 안에 있던 하이엘프였다.
새하얀 은백색의 머리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고, 푸른 눈동자가 있을 눈은 가만히 감긴 채.
작은 입만을 열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처음 듣는 노래지만 어딘가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음색이었다.
“……잘 잤어?”
“그레이트 세피로트는?”
“위대한 어머니라면, 무사해. 덕분에. 조금 오래 쉬어야겠지만…….”
슈아넬의 말에 유성우는 그녀의 허벅지에서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레이트 세피로트와 주변 풍경이 그가 기억하는 광경과 많이 달라졌다.
푸른 생기로 가득하던 그레이트 세피로트는 조금 시들었고.
검보랏빛으로 죽어가던 세계는 다시 푸르게 살아났다.
아직 칙칙한 색깔은 남아 있지만, 죽었던 것들이 되살아났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위대한 어머니 나무의 힘을 끌어다 썼어. 당분간은 신비를 잃겠지만…… 아이들이 다시 이곳에 지낸다면 언젠가는 제 기능을 하게 되겠지.”
“그런가.”
“그리고 너는…… 정말로 대단하구나. 스바프니르를 홀로 쓰러뜨릴 줄이야. 너무 대단해…….”
“스바프니르? 그런 이름이었나?”
슈아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의 생물, 죽음을 불러오는 뱀. 우리는 그렇게 불렀어.”
“너희 애들은 아무것도…… 아, 우리라고 했으니 엘프가 아닌 하이엘프를 말하는 거겠군.”
“응. 전설 속에나 나오는 괴물이라…… 직접 본 건 처음이야.”
슈아넬은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유성우에게 다가와 몸을 밀착해 왔다.
유성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어깨를 털어 밀어내자 다시금 들러붙어 오는 게 아닌가.
“뭐야?”
“인간은 다들 이렇게 강해?”
“그럴 리가 있냐.”
“그렇구나.”
유성우가 다시 튕겨내자 슬금슬금 다가오는 모습이 꼭 달팽이 같았다.
그러다 유성우는 에피넬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하이엘프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던 이유.
만나 보니까 딱 알 수 있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 그런 느낌이 강했다.
또 밀어낸다고 해서 포기할 것 같은 느낌이 안 들었기에 유성우는 그냥 포기하고 제 등을 내주었다.
슈아넬은 그의 등에 귀를 붙이고는 심장소리를 듣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슈아넬 님! 슈아넬 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피넬의 목소리가 저 멀리에서부터 들려왔다.
어비스 안쪽의 이변을 눈치채고 들어온 듯, 다른 엘프들과 무리 지어서 달려왔다.
쉬지 않고 달려온 엘프들은 슈아넬과 유성우를 둘러싸고는 말했다.
“아아, 슈아넬 님! 무사하셨군요! 슈아넬 님의 걱정에 그간 잠을 별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저는 수명이 깎여나갔습니다. 슈아넬 님, 정말로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그레이트 세피로트의 가장 높은 가지께서 희생 속에서 돌아오셨다! 축제, 축제를 열어야겠구나!”
슈아넬을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걱정어린 말들.
그러나 슈아넬은 그런 엘프들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이내 손가락으로 유성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 얘랑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