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7)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7화(7/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7화
생자의 자격(2)
유성우의 말에 유지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설산을 바라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 고고한 설산이 어떻게 괴물이란 말인가? 말도 안 된다며 부정하려 했으나.
유성우가 발치에 굴러다니는 적당한 돌을 주워들어 설산을 향해 던지자, 꽤 가까운 곳에서 딱!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이는 것만큼 설산이 멀리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이어서 대지에 지진이 일었다. 쿠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진동하고, 설산이 소복이 쌓인 눈송이를 흩날리며 몸을 일으켰다.
“저건!”
유지우가 외침과 동시에 설산의 눈이 뜨였다.
파충류의 노란 눈동자가 빛나며 데구루루 굴렀고, 새파란 혀가 날름거리며 스산한 소리를 내었다.
“설마, 설백사?”
“그런 이름인가?”
“비슷하게는 보이는데, 저렇게 큰 설백사는 처음 봐.”
설백사(雪白蛇).
주로 5급이나 4급 어비스에서 등장하며, 뱀술이나 비약으로도 쓰이는 종류의 괴물이기 때문에 잘 아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유지우가 기억하는 설백사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두께는 성인 남자 팔뚝만 하고, 길이는 2미터 정도다.
그러나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설백사는 커다랗다 못해 산 만했다.
두께는 아름드리나무보다 두꺼웠고, 길이는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위험도로 따지자면 최소 2급 어비스에 등장할 만한 괴물이었다.
‘단순한 5급 어비스가 아니다.’
연구팀과 구조팀이 조난되었던 이유가 있었다.
어비스 입찰 이후 들여보냈던 내부 탐사팀은 어째서 무사히 살아 돌아왔는가.
깊게 생각할 건 없었다.
탐사팀은 그저 미끼였던 것뿐이다.
조금 더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끌어들이기 위한, 어비스의 악의다.
동굴 속에 있던 연구원이 그리 말한 이유가 있었다.
이놈은 진정한 괴물이었다.
설백사는 강력한 독을 가지고 있어 주의를 요하는 괴물인데.
이만한 크기라면 2급이나 1급 어비스에서 등장하는 수준이라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게다가 보스급.
S급 다이버라도 혼자서는 절대로 상대할 수 없는 괴물 중의 괴물.
이런 놈이 어째서 5급 어비스에 나타난 걸까.
유지우는 분노로 뜨겁게 타오르려던 머리를 식혔다.
“……오빠, 가세할게.”
“아니, 지켜봐라. 두 눈 뜨고 똑바로 잘 보고 있어라. 내가 얼마나 강한지.”
그리 말한 유성우가 유지우의 앞에 서며 검을 늘어뜨렸다.
핏빛의 검이 더욱 섬뜩하게 빛난다.
그와 함께 커다란 설백사가 똬리 틀고 있던 몸을 길게 늘어뜨리며 짓쳐 들기 시작했다.
거리가 좀 있었음에도 순식간에 다가온다.
보통 피하는 선택을 할 테지만, 유성우는 도리어 땅을 박차며 도약했다.
그가 뛰어오른 자리를 따라 눈송이가 길게 늘어진다.
이어서 공중에서 회전한 유성우가 가볍게 회전하며 발을 뻗었다.
뻐억!
굉장한 소리와 함께 설백사의 대가리가 밀려난다.
공중에서 발을 뻗은 채 씩 웃은 유성우가 다시금 회전하며 바닥에 착지했다.
밀려났던 설백사가 머리를 세차게 가로젓고는 입을 쩌억 벌린 채 위협적인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유성우는 물러서지 않는다. 누구 앞이라고 입을 벌린 채 소리를 질러대는가.
아직 누가 포식자고, 맹수고, 지배자이며, 강자인지 파악하지 못한 짐승의 발악이었다.
“지우야.”
유성우가 유지우를 불렀다.
자신을 부르는 어딘가 다정한 목소리에 유지우는 눈을 부릅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유성우가 머리칼을 흩날리며 선 채였고.
한 손에 들린 검에서는 농밀한 핏빛 기운이 화염처럼 넘실거렸다.
“보아라.”
내가 누군지.
내가 어떤 힘을 손에 쥐었는지.
그리고 유지우는 직시했다. 자신의 앞에 선 이가 누구고, 어떠한 일을 하는 사람인지.
유지우가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 똑똑히 새기기를 바랐다.
어떤 고난과 역경을 넘어 도달한 힘인지, 검이라는 무기를 쥔 자가 다다를 수 있는 ‘끝’을.
유성우는 붉은 핏빛의 검, 일생을 굳게 쥐고 기세를 끌어 올렸다.
강맹한 짐승, 맹수와도 같은 붉은 기운이 단숨에 솟구쳐오르며 돌풍을 불러왔다.
그리고 이내 그가 나직이 중얼거리며 검을 내질렀다.
* * *
유성우가 향한 세계는 척박한 곳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다른 이의 것을 빼앗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고.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디디기 위해서는 시체를 발판 삼아 나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래도 아주 인정이 없는 곳은 아니라 운이 좋으면 죽지 않고 금품을 빼앗기는 것에 그쳤다.
유성우 또한 많은 것을 빼앗았다.
목숨을 빼앗고, 금품을 빼앗고.
때로는 인정마저 버리며 항복한 상대의 목숨을 취하고, 살아남기 위해 투쟁했다.
하나밖에 없는 제 가족을 다시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수많은 시체를 넘어왔다.
검술 지식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그였으나, 재능 하나는 출중했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찾아온 강자들의 검술을 하나하나 훔치고,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결국에는 수많은 검술을 하나로 합쳐 자신만의 검술을 창조해 내는 데 성공했다.
“일검, 생사여탈.”
일검(一劍) 생사여탈(生死與奪).
그의 영혼에 새겨진 일곱 개의 검을 따서 이루어진 일곱 개의 형식.
그 첫 번째 검, 생사여탈.
내질러진 유성우의 검이 기묘한 각도로 휘어진다.
곧은 직검이었을 그의 일생(一生)이 연검(軟劍)이라도 되는 것처럼 움직이며 수십 갈래로 갈라졌다.
눈앞으로 쇄도하던 검이 나무뿌리처럼 수십 갈래로 갈라지는 모습을 본 설백사가 기겁하며 물러났으나.
이미, 놈의 삶과 죽음은 유성우의 손아귀에 쥐어진 채였다.
“죽어라.”
그리고 유성우는 설백사에게 죽음을 선고했다.
그러자 갈라졌던 검이 설백사의 머리를 포위하듯이 뻗어지고.
단숨에 머리를 사방에서 꿰뚫는다. 머리를 헤집는 날카로운 붉은 검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설백사의 전신에서 삐죽삐죽 솟구친 뒤 연기처럼 흩어졌다.
유성우가 숨을 길게 내뱉으며 검을 거두는 동시에 설백사의 거체가 옆으로 쓰러졌다.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서리가 하늘을 날았다. 뒤이어 진눈깨비가 그치고, 화창한 하늘이 유성우를 비추었다.
햇빛에 인상을 찡그린 그가 말했다.
“오늘 저녁은 장어구이를 먹을까…….”
인간은 밥심으로 살아간다.
다음 식사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기쁜지.
설백사를 쓰러뜨리고 그 옆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던 그에게 유지우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오빠! 괜찮아?!”
“힘을 너무 썼더니 죽을 것 같군…….”
“지랄병 도졌어?”
유성우가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꼿꼿이 선 채 하는 헛소리를 대충 받아친 유지우는 하늘을 한 번 바라보고는 쓰러진 설백사에게 다가갔다.
“……대체 어떻게 죽인 거야? 뭔가 칼로 찌른 흔적도 없고.”
“검기로 놈의 내부 신경을 베었다. 겉으로 보이는 흔적 없이 내장을 조진 거지.”
“미친.”
유지우는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깊게 생각할 게 있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오빠는.’
자신의 오빠는.
규격 외다. F부터 S까지로 매기는 다이버들의 랭크.
그것들을 넘어선 강함이다.
단 일격에 이만한 괴물을 쓰러뜨릴 수 있는 자가 있는가?
준비된 S급 다이버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자신도 설백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일격에 쓰러뜨릴 화력은 낼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유성우와 같은 자유로움은 가지지 못했다.
강함을 넘어선 강함. 하늘 위의 하늘.
규격 외. 괴물.
‘……오빠가 돌아온 날, 측정된 차원파.’
어마어마한 수치에 기계 이상이라는 말이 돌았으나, 실제로 8급 어비스에서 2급 이상에 해당하는 괴물이 튀어나와 많은 이가 죽었다.
정체 모를 다이버가 괴물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기는 했으나…….
‘정체가 오빠였군.’
방금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아귀가 딱딱 들어맞았다.
귀환자가 돌아올 때는 강력한 차원파가 생성된다.
차원과 차원을 잇는 일이라 공간의 일그러짐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
귀환자가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 차원파의 강도도 결정되는데, 이번에 측정된 차원파는 유례없는 수치라 기기 이상을 의심할 정도였다.
세현시에서는 당시의 수치를 강한 몬스터의 출현과 맞물린 측정기의 이상이라 발표했으나…….
유지우는 확신했다. 그것은 기기 이상이 아닌, 유성우가 귀환하며 생겨났던 차원파라고.
생각을 끝마친 그녀가 유성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빠, 우리 완전 대박 났다. 이거 가져다 해체해서 팔면 적어도 수천억은 나올걸?”
“수수료 빼고 나눠서 입금해.”
유지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지구로 돌아오고 나서 처음으로 보는 미소인 듯했다.
그리고 유성우는 그 순간, 과거의 제 동생과 얼굴이 겹쳐 보였다.
변했으나, 변하지 않은. 자신의 동생이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동굴 속에서 꺼져가는 발광열석 랜턴에 의지해 연명해 가던 이들은.
바깥에 몰아치던 눈보라가 일순간에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절망이 희망으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 * *
“모두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유지우는 이번 일로 인해 죽은 이들의 유족에게 직접 찾아가, 위로금과 사과를 전했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의 정상에 서 있는 그녀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였다.
살려내라는 모진 말을 내뱉는 유족은 없었다. 그들 또한 다이버란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명예로운 심연의 탐험대로 죽었다는 명예가 그들에게 남은 일말의 양심이었다.
“회사로 돌아가요.”
“네.”
유지우가 뒷좌석에 타자, 운전대를 잡은 서연정이 짤막하게 대답하곤 액셀을 밟았다.
조수석에 타 있던 유성우가 뒷좌석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다 끝났냐?”
“끝났어.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지.”
“뭐가 그렇게 문젠데 그래?”
“메테오 인더스트리 내부에 나를 아니꼽게 보는 임원들이 있거든. 이번에 사람 죽은 걸로 물어뜯으려 하겠지. 별다른 소득이 없더라도 조금이라도 나한테 흠을 내는 게 목표일 테니까.”
“들었는데 너 S급이라며? 국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데다가, 네 회사잖아. 죄다 그냥 해고하면 안 되냐?”
“그게 내 마음대로 되면 참 좋겠다. 그치?”
본전도 못 찾은 유성우는 입맛을 다셨다.
그는 이번 일이 있던 이후로, 정식으로 메테오 인더스트리에 소속되기로 했다.
언제까지고 놀고먹을 수는 없는 법이고.
유사시에 움직이기도 편한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음, 해결해 줄까?”
“어떻게?”
“내가 이계에서 자주 쓰던 방법이 있다.”
“칼 들고 하는 협박 빼고.”
“그게 주류긴 한데.”
“그럼 그렇지…….”
유지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유성우는 분명 막강한 전력이었으나, 앞으로 내세울 수 없는 힘이었다.
자신의 오빠이기도 한 데다가, 그의 힘이 알려지면 그것을 원하는 이들이 많을 터였다.
S급이 여럿 속해 있는 대형 길드라던가.
메테오 인더스트리가 꽤 커지기는 했으나 오랜 세월 기득권을 붙잡고 있던 이들의 공세를 막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오빠 때문에 진짜 늙는다.”
“거기서 더 늙으면 내가 동생 된다.”
“풉.”
“언니, 지금 웃은 거야?”
“아닙니다.”
“웃었구만 무슨…… 아무튼 오빠, 회사 돌아가면 진짜 사고만 치지 마.”
“내가 애냐.”
차마 그렇다는 대답은 할 수 없던 유지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