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73)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73화(73/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73화
소드마스터 세이작(3)
슈아넬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믿기 어려웠다.
그녀는 유성우가 엘프의 비전을 배운다고 했을 때, 그리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엘프의 비전, 정령마법과 정령검법이 어째서 비전이겠는가.
일반적인 엘프들의 친화력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하이엘프나 왕족 엘프라 하더라도 비전을 습득하는 데만 수백 년이 걸린다.
하지만 습득하고 난 뒤의 위력은 상상을 아득히 넘어서는 것이기에, 과거의 하이엘프와 왕족 엘프들이 습득하려 그리도 기를 쓰던 기술이었다.
그러니까, 인간인 유성우가 배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엘프의 비전이다.
인간은 못 익히는 게 당연한.
하지만 유성우가 알려달라고 했기에 알려주었고, 과연 어디까지 하고 포기할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는 전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훌륭한 불꽃을 피워내는 게 아닌가.
“……유성우 너는.”
인간이 맞는가?
저것을 인간이라 볼 수 있는가?
애초에, 그레이트 세피로트의 뿌리를 갉아 먹던 놈을 베어냈을 때부터 인간을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별격의 일이었다.
인간이 엘프의 기술을 재현해 냈다. 정령을 다루지도 못하는 몸으로 정령을 다루는 데 성공해 냈다는 것이었다.
슈아넬은 떨어지는 불기둥을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바라보았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지금 이 순간,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정령의 불꽃으로 가득하게.
하지만 그가 이 숲 전체를 불태우게 둘 수는 없었으니 양팔을 벌려 물의 정령을 불러들였다.
숲 전체에 수분의 막을 둘러 열기를 죽였다.
하지만 중앙의 공동, 그곳에 선 세이작만큼은 유성우의 불기둥을 받아내야만 했다.
“너는 역시, 내 삶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줄 사람이야!”
슈아넬이 큰 소리로 외침과 동시에, 불기둥이 떨어져 내렸다.
* * *
세이작은 그랜드 로터스에서 태어난 엘프로, 육백여 년간의 수련 끝에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했다.
다른 엘프들은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였다.
재능과 노력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도달하는 궁극의 경지.
여러 일이 있었지만, 그는 소드마스터로 그랜드 로터스의 이름을 굳게 세웠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평소와 다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장로의 대전사로서 전장에 나가, 적을 짓밟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단번에 쓰러뜨리기 위해 전력에 가까울 정도로 공세를 이어갔으나, 적은 쓰러지지 않았다.
감람석과 같은 웃기지도 않는 검을 든 인간은 우직하게도 자신의 검을 버텨냈다.
오러조차도 두르지 않고.
그 사실에 세이작은 경악했으나, 인간은 매우 지쳐 보였다.
이대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쓰러뜨릴 수 있다는 확신이 머릿속에 박혔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상식을 뒤엎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자신이 다루고 있던 불꽃의 정령이 모습을 감추더니, 인간에게 힘을 빌려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뒤이어 작은 불꽃에 불과했던 불꽃이 커다란 불기둥으로 변했다.
하늘을 뒤덮고도 남을, 강대한 폭염이 세계를 덧칠했다.
어두운 밤, 세계를 밝히는 검사의 불꽃.
“말도, 말도 안 돼!”
이건 인간이 펼쳐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엘프도 아니고 인간이다.
엘프보다 뒤떨어진, 그리고 덜떨어진 종족이 펼쳐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전신이 떨려오기 시작한다.
발끝에서부터 머리까지, 공포와 경외로 가득 찼다.
인지를 넘어선 강대한 힘이다.
저 거대한 불기둥을 넘어서는 일은 절대로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복! 항복!”
다급하게 패배를 선언했으나, 저쪽에 선 인간은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지 그대로 커다란 불기둥을 내리 베었다.
현세에 불지옥이 도래한다.
세이작은 숨을 작게 내뱉었다.
저 불기둥이 자신의 모든 것을 태우지 않길 바라며, 물의 정령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냈다.
치이익, 하는 소리가 귓가를 덮쳐온다.
그러나 그것을 뒤덮는 것은 화르륵, 타오르는 불꽃의 소리다.
자신의 물줄기는 커다랗게 불타는 저택에 붓는 한 컵의 물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빌어먹을──!!”
그런 세이작의 비명마저도 불길에 잡아먹혔다.
* * *
유성우는 길게 숨을 토해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낸 기분이었다.
이틀간의 고생이 단번에 보상받았다.
하이엘프나 엘프 왕족만이 익힐 수 있다는 정령검법을 인간의 손으로 재현해 냈다는 달성감.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에 웃음이 멈추지를 않았다.
이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가 맞은편에, 바닥에 널브러진 소드마스터에게 다가갔다.
실컷 자신을 죽이기 위해 검을 휘둘러 놓고 바싹 구워진 감상을 듣고 싶었다.
“죽진 않았군.”
마지막에 화력을 조절하긴 했으니까, 재로 만들어버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유성우는 삼정을 돌려보내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만들어냈던 풍경에 모든 엘프가 놀랐다.
대전사가 쓰러졌다는 사실에 더욱 크게 놀랐고.
특히나 베이오르간은 세이작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마구 소리치기 시작했다.
“신성한 결투에서 사술을 쓰다니! 인정할 수 없다! 이 간악한 인간 놈이! 무효, 무효다! 전사들이여, 저놈을 죽여라!”
“나를 죽이겠다고?”
이런 전개를 예상했던 유성우는 이번에는 삼정이 아닌 일생을 뽑아 들었다.
붉은 빛무리가 모여들어 그의 손에 쥐어졌고, 이제는 불꽃이 아닌 새빨간 오러가 피어올랐다.
검뿐만 아니라 그의 전신에서 넘쳐흐르는 오러는 주변의 공간을 집어삼키듯 움직였다.
세이작이 보여주었던 오러를 아득히 넘어섰다.
그는 소드마스터 간에도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오러를 유형화할 수 있다고, 같은 소드마스터라고 해도 같은 선상에 서 있지는 않다.
지금까지 너희들의 대전사를 상대해 주던 건 장난에 불과했다는 걸 그는 전신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대기가 떨린다.
정령들이 동요하기 시작하며, 숲이 술렁거린다.
목이 베일 것만 같은 서늘한 감각에 엘프들이 질겁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유성우, 그만, 진정해라.”
당장에라도 날뛸 것만 같은 야수와도 같은 상태의 유성우의 앞을 막아선 건 슈아넬이었다.
그녀는 유성우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을 이었다.
“추하군, 베이오르간. 그랜드 로터스의 이름에 맹세까지 해두고 나의 대전사를 모욕하는가. 위대한 아버지의 나무가 그대를 비웃으리라.”
“사악한 사술을 써서 결투에서 승리한 것이 그리도 자랑스러운가!”
“사술? 여기에 사술이 어디에 있지? 오히려 나의 대전사는 방금 정령에게 인정받아 크고 아름다운 불기둥까지 뿜어내지 않았나.”
슈아넬의 말에 유성우가 잠깐 기침했다.
“그레이트 세피로트와, 그랜드 로터스에 맹세한 신성한 전투였다. 사술을 썼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인정되리라. 승복하라, 베이오르간!”
그녀의 외침에 베이오르간은 이빨을 뿌득 갈았다.
하이엘프와, 실력이 가늠되지 않는 소드마스터.
전력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쓰러뜨릴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베이오르간은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했다.
“……승복하겠소. 원하는 걸 말 하시오, 하이엘프 슈아넬.”
“원하는 건 한 가지다. 인간들의 일에 간섭하지 마라. 조용히 숲속에서 공존하는 것이다. 이 머저리 엘프들아.”
마지막 말은 딱히 하지 않아도 됐을 것 같은데.
슈아넬의 선언에 의해 그렇게 대전사를 내세운 결투는 종료되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
“유성우, 느꼈지?”
“그래. 그놈들 평범한 엘프가 아니다. 어디서 그런 놈들이 굴러들어온 거지?”
“무슨 소리야?”
슈아넬과 유성우의 대화에 운전대를 잡은 유지우가 물었다.
유성우는 잠깐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슈아넬의 엘프들은 그레이트 세피로트를 섬기고, 놈들은 그랜드 로터스를 섬기지.”
“응.”
“둘은 다른 부모 나무를 섬기지만, 비슷한 생활양식이라 결은 같아야 한다. 관습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엘프라는 뜻이지.”
“응.”
“그런데 이번에 새로 이주해온 엘프들에게서는 슈아넬 쪽의 엘프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근본이 없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유성우의 엉성한 설명에 슈아넬이 덧붙였다.
“모든 엘프는 어머니나 아버지 나무와 연결되어 있어. 그런데 오늘 만난 엘프들은 연결되어 있긴커녕, 독립적인 개체처럼 보였다.”
“그게 문제가 되는 거야?”
“큰 문제지. 부모 나무를 저버렸다는 뜻이니까. 그랜드 로터스에 대해 맹세한 주제에, 사실 그딴 건 믿지도 않는다고 말하는 거랑 다름이 없으니까.”
“슈아넬, 놈들의 그랜드 로터스가 파괴되었을 가능성은 없겠지.”
“아마 그랬다면 더 약했을걸. 정령의 힘도 크게 못 쓰고.”
“그렇다면 모종의 방법으로 부모 나무와의 연결을 자발적으로 끊었다고 보는 게 맞겠군.”
슈아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들이 자신들을 비호하는 부모 나무와의 연을 끊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건 ‘타락’이었다.
제 손으로 부모를 죽인 패륜이나 다름없는 짓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놈들을 계속 이 땅에 둔다면…… 아마도 해가 될걸.”
슈아넬의 말에 유성우가 동의했다. 그들에게서 딱히 목숨을 위협당하는 초조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슈아넬 때처럼, 그들의 부모 나무가 어떠한 위협에 처한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군.”
단순히 심증으로 놈들을 죄다 쳐 죽일 수는 없는 법이지 않은가.
게다가 한국의 여러 숲에 분포되어 있는 것 같으니 놈들을 일일이 추적해서 죽이는 것도 어려웠다.
죽인다고 하면, 어떻게든 한곳으로 몰아서 잡아야 하는 것이었다.
‘……점점 업보가 쌓이는 것 같은데 말이지.’
살생을 줄이고 싶은데…….
세상이 그렇게 두지를 않는다.
유성우는 자신은 절대로 지옥행이라는 걸 다시금 상기했다.
지금 와서 지옥이 별로 무섭지는 않지만, 그곳에 가서 자신이 죽인 사람들을 만나면 그것대로 가슴은 좀 아플 것 같았다.
* * *
엘프들의 난리가 잦아들었다.
송전탑을 복구하는 데 더는 간섭하지 않았으니, 적어도 베이오르간은 슈아넬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었다.
그리고 이 주 정도가 지났고.
“나 프로게이머 할래.”
“프로게이? 여잔데 게이를 어떻게 해?”
“…….”
슈아넬의 싸늘한 눈빛이었다.
소파에 드러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유성우가 개소리하지 말라는 얼굴로 슈아넬에게 받아쳤다.
“신분도 제대로 없는 주제에 프로게이머는 무슨. 헛소리하지 말고 가서 하던 대로 게임이나 해라. 누가 시켜주기나 한대?”
“프로 제의가 왔으니 하는 말이다! 부끄럽지만 내가 이번에 랭킹 50위 안에…….”
슈아넬은 구백 살이나 먹어놓고 정말로 부끄럽다는 듯이 제 코 밑을 손가락으로 훔쳤다.
유성우는 게임 랭킹 50위 안에 들었다는 슈아넬의 말에 눈동자를 굴렸다.
“50위면 잘하기는 했네.”
“하지만 나는 더 잘하는 놈들이랑 붙고 싶단 말이야. 프로 무대로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했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재고할 가치도 없는 헛소리였다.
그가 아예 신경을 꺼버리자 슈아넬이 소파에 있던 유성우의 위로 폴짝 뛰어들더니 말했다.
“입단 시험도 못 보게 하면 집을 덩굴 천지로 만들어버리겠어. 그럼 모기가 잔뜩 몰려들겠지.”
이제는 협박해오는 슈아넬을 보며 유성우는 생각했다.
얘가 제대로 미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