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79)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79화(79/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79화
그랜드 로터스(4)
베이오르간은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국의 소드마스터.
알려지지 않은 자였다.
하이엘프가 있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베이오르간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고, 대전사끼리의 대결에서도 패배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손실은 메꿀 수 있었다.
자신들의 영역에서 물러난 이후 별다른 제스처가 없어 더는 마주칠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숲에 찾아와 깽판을 놓고 있었다.
그것도 보통 깽판이 아니었다.
죽은 엘프는 없었지만, 죄다 어디 한 군데씩 부러져 있었다.
팔다리가 부러진 이들은 눈물, 콧물을 짜내며 한 엘프를 증오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자신들은 팔다리가 부러져도 말하지 않았는데, 공포에 이기지 못한 한 놈이 베이오르간을 불러버렸다.
급하다는 말에 정령을 타고 날아온 베이오르간은 유성우와 시선을 마주하곤 얼어붙었다.
엘프들의 팔다리가 죄다 부러져버린 참혹한 광경 위에, 한 명의 인간이 서 있었다.
“교활한 늙은이 새끼…….”
“이게 무슨 행패인가! 이건, 정식으로 항의를……!”
“항의? 누구한테?”
유성우는 인상을 팍 쓰고는 베이오르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엘프와 인간이 이런 식으로 손을 잡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엘프도 자존심을 세우려면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했으나, 이번에는 ‘승천교’가 개입하면서 일이 묘하게 흘러갔다.
“항의를 백날 해봐라. 내가 꿈쩍이나 하나. 이 개 같은 새끼…….”
베이오르간에게 가까이 다가간 유성우가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반응하지 못한 그가 넘어져 허우적대자, 유성우는 명치를 지그시 밟으며 말했다.
“네놈 때문에 내 평온한 일상이 박살이 나게 생겼다. 어떻게 보상할 거냐? 이 새끼야.”
놈이 정말로 승천교와 손을 잡은 거라면, 자신과 슈아넬에 대한 정보가 그쪽으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었다.
뭐, 엘프라 사진이나 그런 기록은 남지 않았으리라.
슈아넬이 확인한 결과 그런 마법의 흔적 또한 없었으니, 얼굴이 팔리진 않았다.
하지만 ‘소드마스터’와 ‘하이엘프’라는 단어만으로 놈들의 경계는 높아졌을 테고, 자신을 찾는 이들이 생겼으리라.
“엘프의 장로라고 해서 내가 조금은 존중을 해주려고 했는데, 이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승천교, 알지?”
“……크으읏…….”
“모른다고 하면 손가락을 마디 하나부터 꺾어주마.”
안다고 해도 꺾을 거지만.
어느 쪽이든 꺾이는 선택지밖에 없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베이오르간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말해라.”
베이오르간이 도저히 입을 열지 않으면, 이번에도 슈아넬의 자백제를 쓸 생각이었다.
뿌득.
발에 힘을 너무 줬는지 갈비뼈 하나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와 함께 고통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
베이오르간은 제대로 된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새된 숨만을 겨우 내뱉을 뿐이었다.
정말로 아프면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딱 그 꼴이었다.
이만한 고통을 느낀 것도 처음이었기에 충격은 배로 다가왔다.
“고작 이런 걸로 아파하면 손가락은 어떻게 버티려고 그러나.”
“크아, 아아앗, 그앗…….”
바르작대는 베이오르간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던 유성우가 계속해서 놈에게 승천교에 대해 실토할 것을 종용했다.
“마, 말하겠다, 말할 테니…….”
“미리 말해두지만, 내가 이런 일을 한두 번 해본다고 생각하지 마라. 진실 속에서 거짓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고, 나는 많은 걸 알고 있다.”
사실 잘 모른다.
지레 겁 좀 먹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보통 이런 교활한 놈들은 제 목숨이 경각에 달려도 거짓말로 혼선을 주는 놈들이었다.
베이오르간은 가슴에서부터 올라오는 고통에 힘들어하면서도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아는 것을 천천히 토해내기 시작하는데, 유성우는 들을수록 어이가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 이게 전부네. 정말 이게 전부야!”
베이오르간이 토해낸 진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충격적이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엘프들, 그들은 처음부터 어디에 상륙할지 알고 있었다.
차원과 차원을 잇는 통로, 어비스가 한국에 열릴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정부와의 계약을 통해 숲을 받아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정부에게 건네준 건 엘프들의 비전이라고도 할 수 없는 몇 개의 정령술과 마법뿐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큰 이득을 볼 수 있었지만, 숲을 전부 내줄 만한 가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차원문, 어비스를 연 것은 다름 아닌 승천교의 사제라고 하였다.
유성우는 여기서 그놈들이 상상 이상의 미친 집단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차원문을 여는 힘.
원하는 곳에 어비스를 개방할 수 있는 힘.
그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힘이 아니던가?
‘냉정하게 생각해라.’
선후관계를 바꾸어야 했다.
엘프가 한국에 나타난 뒤 승천교와 손을 잡은 게 아니라, 승천교와 엘프가 손을 잡고 한국에 상륙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힘을 남발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닐 터였다.
차원문을 여는 힘을 여기저기 마구 써댈 수 있다면 이미 지구는 놈들의 손에 넘어갔을 테니까.
한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이다. 그것도 중요할 때 쓸 힘이겠지.
그러니, 지금 당장 놈들을 찾아 찢어 죽일 필요는 없었다.
더 일을 치기 전에 없애 버리기는 해야겠지만 말이다.
‘……이제는 진짜 어쩔 수 없나?’
지금까지 조용히 잘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용히 있으면 안 되는 시점에 다다른 것 같았다.
홀로 나라를 뒤흔들 수 있는 강자는 강력한 억지력이 된다.
이계에 있을 때도, 대마법사나 소드마스터가 있는 나라는 악이 준동하는 일이 적었다.
물론 적었다 뿐이지, 아예 준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준동하더라도 비대칭 전력인 소드마스터나 대마법사가 나서서 죄다 썰어 버리고 불태워버리는데 뭘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유성우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소드마스터였다.
어딘가에 소속되기 싫고,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 방랑하는 소드마스터.
지켜야 할 게 없어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 않은 덕분에 수많은 악을 처리하고 환상을 베는 섬광이 되었으나…….
지금은 지켜야 할 게 생겼다.
지구로 돌아오고 난 뒤 스스로에게, 그리고 부모님에게 한 약속.
하나밖에 남지 않은 가족, 유지우만큼은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것.
해외로 가도 좋을 테지만, 가능하면 유지우가 스스로 일궈낸 것까지 함께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눈에 밟히기 시작하는 귀찮은 놈들까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면에 나서야 했다.
방패수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방패를 든다.
후방의 아군을 지키기 위해서.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쪽에서 암약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뒤에서 움직이는 건 전면에서 움직이는 것보다 배는 많은 수고가 들고, 더 움직이기 힘들어진다.
이름을 숨기고 음지에서 활동하는 게 더 편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건 약한 놈들이나 하는 소리다.
유성우는 스스로의 강함을 알고 있다.
S급이라는 다이버들의 힘을 확인했으니, 아마 자신을 쓰러뜨릴 수 있는 건 전 세계에서 아무도 없으리라 결론지었다.
정체 모를 승천교를 제외하면.
그렇기에, 그만큼 강하기에 차라리 대놓고 활동하는 편이 나았다.
압도적인 무력에 굴복하는 이들이 스스로 제 것들을 가져다 바칠 것이고, 강력한 힘과 지지는 그가 무엇을 하든 명분을 만든다.
갑자기 도심지에서 대학살을 벌이는 일만 아니라면 말이다.
뭐, 대학살을 벌이더라도 권력자들은 명분을 만들어낼 것이다.
자신들의 권력과 압도적인 무력을 위해서 학살을 할 수밖에 없었던 명분을 말이다.
그렇기에, 뒤보다는 앞이다.
어두운 곳보다는 양지다.
다른 이들을 압도하는 강력한 힘은 없던 권력을 만들어내니까.
그런 생각을 이어가던 도중, 유성우는 불현듯 원정대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가슴 속에 깊이 박혀 떨어지지 않는 얼굴들이 갑자기 왜 스쳐 지나가는 것인가.
깊게 생각할 건 또 없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대는 것 같았으니까.
꼴리는 대로 하라고.
하고 싶은 대로, 정한 길을 나아가라고.
“후우.”
유성우는 짧게 숨을 내뱉고는 눈을 깜빡였다.
그의 발아래에 여전히 짓밟혀있는 베이오르간은 그것이 틈이라고 생각했는지, 마법을 발현했다.
유성우의 머리 부근에서 터지는 자그마한 폭발.
반응할 틈새도 없는 것처럼, 무척이나 빠르게 발동한 마법이 유성우를 휘청거리게 했다.
“성우!”
슈아넬이 외치고.
베이오르간이 하늘로 치솟았다.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다른 엘프들을 버리고.
슈아넬이 정령을 불러들여 베이오르간을 붙잡으려 했으나, 유성우가 손을 뻗어 멈춰 세웠다.
“왜?!”
“일부러 보낸 거다.”
작은 틈은 일부러 보인 것이었다.
놈에게 도망칠 시간을 주기 위해서. 설마 동족을 전부 버리는 인정머리 없는 새끼인지는 몰랐지만.
고개를 돌려 여전히 붙잡힌 엘프들을 바라보자, 그들은 배신감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설마 장로가 자신들을 버리고 내뺄 줄은 몰랐다는 건지.
“저런 걸 장로라고 섬기고 너희들도 참 불쌍하구나…….”
슈아넬이 측은하다는 듯이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유성우는 지근 거리에서 폭발이 일어났음에도 오러를 끌어올려 방어한 덕분에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머리카락 끝은 살짝 탔을지라도.
“얘네들은 어떡해?”
슈아넬이 손가락으로 엘프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어머니를 배신한 패륜아 새끼들이 장로에게도 배신당했다.
아무리 적이라지만 측은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너무나도 처참하게 불쌍해서.
“죽이는 게 맞겠지.”
후환을 없애려면 전부 죽이는 게 맞다.
그러나 유성우는 조금은, 더 상냥한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기에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손이랑 발을 뿌리로 칭칭 묶은 다음에 머리만 내놓고 묻어버려.”
“더블유티에프…….”
엘프들은 차라리 죽여달라는 얼굴이었다.
* * *
이튿날, 유성우는 홀로 다이버 라이센스를 갱신하러 왔다.
유성우의 다이버 라이센스는 현재 D급. 예전에 판정을 받아둔 뒤, 한 번도 갱신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그럴 생각도 없었으니까.
힘숨찐 행세할 필요가 없어진 덕분이었다.
대놓고 위세를 드러내는 게 놈들에게는 더욱 위협적이리라.
너희들이 어떻게 해도 자신을 쓰러뜨리지 못하리라는 자신감.
실제로도 그럴 것이고.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라이센스 갱신 시험이 시작되었다. 이전에도 해본 적 있는 기구들.
완력을 측정하기 위한 펀칭머신처럼 생긴 기계를 두들기기 전, 유성우가 물었다.
“이거, 바닥에 잘 고정되어 있는 겁니까?”
“당연하죠. 아무리 세게 쳐도 떨어질 일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함께 들어온 측정관은 우습다는 듯이 말했다.
D급이 갱신하러 온 주제에, 네가 그것을 움직일 수나 있느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갱신해도 어차피 C급일 테니까.
측정관의 말에 유성우는 작게 숨을 내뱉고는, 주먹을 그러쥐었다.
강하게 친다.
하지만, 최대보다는 좀 약하게.
어디까지나 최강의 자리를 차지하더라도 실력의 삼 할은 숨겨야 할 테니까.
“흡.”
유성우가 짧은 숨과 함께 주먹을 내지르는 것과 동시에.
측정기가 산산조각이 났다.
측정관의 말대로 바닥은 잘 고정되어 있었다.
바닥이 뜯기기도 전에 측정기가 부서져서 그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