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83)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83화(83/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83화
그랜드 로터스(8)
세이작의 가슴이 훤히 열렸다.
백우현은 유성우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머릿속에서 여러 번 방금 장면을 돌려보며 생각했다.
‘……중심을 깨부쉈다.’
세이작의 검술은 형태가 존재했다.
유려하며, 우아했으니 그의 검이 지나는 길, 일정한 검로가 존재했다.
유성우는 몇 번 검을 부딪친 것만으로 세이작의 검로의 중심을 파악한 것이었다.
그의 검로가 겹치는 길 한복판, 그곳을 꿰뚫어내는 것으로 세이작의 맹공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가슴이 훤히 열린 세이작에게 다가오는 것은 죽음밖에 없었다.
유성우의 속도라면 방금의 틈으로 심장을 열여덟을 찌르고도 남을 테니까.
그러나 그는 세이작의 심장을 검으로 찌르지 않고, 뒤로 두 발짝 물러나며 말했다.
“더 해봐라.”
“……이 개자식이!”
세이작이 다시금 달려들었다.
그의 얼굴은 수치심으로 한껏 붉어진 채였다.
방금 자신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죽이지 않았다.
세이작은 그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리라 생각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의 공세가 한층 더 강맹해졌다.
검로가 더욱 어지러이 변하고, 정령들이 춤을 추며 그를 보조했다.
이제 백우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검이 되었다.
그 수준이 너무나도 높았고, 빠르고, 강력했다.
그가 볼 수 있는 건 녹색 오러의 잔상에 불과했다.
세이작은 ‘소드마스터’라는 명성에 걸맞은 검술을 내보였다.
다이버 중에서 저것을 견뎌낼 수 있는 자가 있을까. 본신의 힘도 강력하지만 그를 뒤따르는 정령들 또한 강력했기에 살아 있는 재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모든 재해가 단 한 명을 죽이기 위해 쏟아지고 있다.
백색의 재가 하늘로 치솟고,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도 했다.
백색의 세계에서 녹색 잔상과, 붉은 잔상만이 춤을 추듯 어지러이 얽혔다.
백우현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제 눈에도 담았다.
아름답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임이 틀림없었다.
유성우는 저 엘프를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일부러 죽이지 않았다.
두 발짝 뒤로 물러나며 그의 검을 견식할 시간을 더욱 주었고, 그의 모든 것을 백우현에게 보여주려 일부러 수준을 조절했다.
세이작은 소드마스터였으나, 유성우는 그보다 더욱 강한 소드마스터였다.
소드마스터라도 같은 소드마스터가 아니라는 걸 그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약 2분간 이어진 공방전의 끝은 세이작의 가슴이 꿰뚫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세이작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펼쳐내며 다음 경지로 나아가기를 원했으나, 끝끝내 도달하지 못하고 패퇴했다.
자신의 근본을 버린 엘프의 말로라고도 할 수 있었다.
유성우의 붉은 검이 세이작의 가슴을 파고들고, 반대편으로 삐쭉 튀어나왔다.
붉은 검에 붉은 피가 묻어 방울지며 흘러내렸다.
유성우가 검을 뽑아내자 소드마스터의 붉은 혈흔이 백색 세계에 흩뿌려져 그림을 그렸다.
온갖 정령들이 그의 죽음에 슬퍼하며 주변을 맴돌았으나, 이내 유성우가 뿜어내는 기운에 도망갔다.
오래도록 함께해 온 정 따위, 그보다 더 무서운 놈이 있으면 부질없는 것이었다.
일생에 묻은 피마저 바닥에 흩뿌린 유성우가 말했다.
“가자.”
* * *
유성우가 어비스로 들어간 지 몇 분이나 되었을까.
기자들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약 20분.
그들이 주장한 시간은 1시간이었으니, 이제 약속된 시간의 3분의 1이 지나가는 시점이었다.
“우리 내기 하나 할까? 1시간 전에 나온다, 못 나온다.”
“가능하겠냐? 저쪽도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을걸. 1시간이 뭐야, 2시간 뒤에 나와서 이 정도도 잘한 것 아닙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나는 그럴 거라고 본다.”
“오케이, 그럼 나는 한 시간, 너는 두 시간?”
“콜.”
기자들은 마냥 기다리는 게 심심한지, 내기까지 하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내기는 곧 파기되었다.
시커먼 심연의 구멍 어비스가 일렁거리더니 이내 두 명의 인영을 뱉어냈기 때문이었다.
백색 잿가루가 검은 바지 군데군데 묻은 유성우와, 카메라를 든 백우현이었다.
“뭐야? 왜 벌써 나와?”
“설마 도망쳐 나왔나?”
기자들이 그 모습을 보며 의아함을 표했다.
한 시간 이내에 공략한다는 건 들었지만, 아직 그 절반인 30분이 채 되기도 전이었다.
사람들은 유성우가 도망쳐왔으리라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2급 어비스를 20분 만에 공략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악명이 높은 ‘백색 숲’을 상대로.
“그럼 그렇지.”
“언플 오지게 했는데, 존나 까이겠네. 다른 S급들은 어떡하냐? 체면 존나게 깎아 먹어서 욕 더럽게 처먹게 생겼는데?”
기자들이 저마다 웃었다.
유성우가 백색 숲이 두려워 도망쳐 나왔다고.
그러나 앉아 있던 S급들은 그를 향해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S급들의 박수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니, 뒤이어 A급들도 갈채를 보냈다.
유성우의 등 뒤에 있던 시커먼 구멍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그 모습을 감춘 것이었다.
22분 21.12초.
그가 2급 어비스를 혼자서 공략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이 자리에 모든 이들이 경악을 얼굴에 띠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 *
“공략 중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습니다만, 해결했습니다.”
백우현이 말했다.
그리 말하는 그의 등 뒤에서는 스태프들이 카메라와 커다란 화면을 연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누가 안에서 도와준 게 아니냐, 미리 어비스 안을 정리해 둔 게 아니냐, 그런 물음을 해소하기 위해 20분간의 공략 영상을 곧바로 공개하기 위함이었다.
잠시 후 화면과 카메라가 연결되었고, 그가 안에서 찍은 생생한 장면들이 공개되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본국검회의 S급 다이버 백우현이라고 합니다.
-뭐 하냐?
-인사 멘트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꼴값…….
백우현의 꼴값 행동이 공개되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좀 쪽팔린지, 백우현이 붉어진 얼굴을 잠깐 쓸어내렸다.
슬쩍 제 스승인 성운룡이 있는 곳을 보니 싸늘한 시선을 제게 보내고 있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그 시선을 무시하며 재생되는 영상을 지켜보았다.
‘역시 다시 보아도…….’
무시무시하다.
카메라의 프레임으로는 유성우의 움직임을 전부 담을 수 없었다.
아마, 초고속 카메라로도 모든 장면을 담을 수는 없으리라.
유성우의 검은 총탄보다 빨랐으며,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다이버도 아닌 일반인들은 입을 쩍 벌린 채 벌어지는 기괴한 일들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검을 가볍게 휘두른 것 같은데, 나무 뒤에 숨어 있던 백색 구울들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그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비슷한 일이 몇 번이고 벌어졌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구울들이 제 머리를 유성우에게 경외의 표시로 바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하이라이트가 다가왔다.
백우현과 유성우의 자리가 바뀌고, 카메라가 뒤쪽을 비추기 시작한 것이었다.
카메라의 화면에 담긴 것은 유성우의 등과, 로브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습격자의 무리였다.
“뭐야? 저것도 몹이야?”
“몹이라기에는 사람 같은데…….”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던 도중, 유성우의 자세가 낮아진다.
카메라가 유성우의 등이 아닌 그의 등 너머에 있던 이들을 비추었다.
선두에 서 있던 이의 얼굴이 살짝 드러남과 동시에, 세계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갑자기 화면이 새빨갛게 변하자 사람들은 이게 무슨 오류인 줄 알았다. 연결 접촉 불량 같은.
하지만 그게 오류인 게 아니라는 걸 알아챈 건, 화면이 다시금 제 색깔을 찾기 시작했을 때였다.
화면이 백색의 세계로 돌아왔을 때 하늘에서는 잿가루의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가오던 십수 명은 한 명만이 남아 대지에 발을 붙인 채 서 있었다.
“저, 저거!”
“엘프다!”
로브의 후드가 바람에 날아가 드러난 얼굴은 금발의 엘프였다.
금발의 엘프는 낭패라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과격한 언사와 함께 유성우를 공격했다.
검을 휘두르며, 정령을 불러들이고, 그를 죽이기 위해 무슨 방법이든 사용했다.
그러나 유성우는 그것들을 전부 파훼하고는 손쉽게 엘프를 죽였다.
일반인의 눈에는 고전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검을 아는 성운룡의 눈에는 그가 일부러 수준을 조절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세이작의 수준도 대단했다.
본국검회의 장로인 자신도 따라가지 못할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대단한 유성우의 검은 인간을 초월한 것만 같았다.
‘아아, 그래서, 그래서 우현이 네가…….’
그의 검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요즘 어딘가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 같았는데, 그게 유성우와 함께하던 거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비스의 공략.
그에게 위험다운 위험은 없었다.
나무에 숨은 백색 구울들은 다가오기도 전에 머리가 떨어졌고, 바닥에 누워 넓은 공터로 위장한 보스급으로 보이는 백색 구울은 누운 채로 동강이 나버렸다.
유성우는 놈에게서 어비스의 코어인 백색 심장을 뽑아 들고는 백우현과 함께 귀환했다.
미리 알린 대로 백우현은 검 한 번을 뽑지 않고, 촬영에만 전념했다.
유성우의 실력을 카메라에 조금이나마 더 담을 수 있도록 말이다.
2급 어비스치고는 허무한 결말로 공략되었다.
사람들은 좀 더 처절한, 홀로 괴물들과 드잡이질하는 모습을 원했으나 유성우는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나왔다.
영상이 끝나고 난 뒤, 유성우가 마이크를 잡았다.
“나는 어비스 속에서 엘프에게 습격받았다. 저들 딴에는 내가 위협이라고 느낀 모양이지.”
기자회견에서 매국노 새끼들을 죄다 잡아 족치겠다고 선언한 게 있으니 그랬다.
유성우는 그리 말했다.
그런 것치고는 엘프들이 워낙 빠르게 움직인 셈이었지만, 그는 반박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말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언제까지 저 빌어먹을 귀쟁이 새끼들이 우리의 숲에 처박혀 있도록 놔둘 생각인가? 저 새끼들이 송전탑을 부순 덕분에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했었단 말이다.”
정확히는 슈아넬이 격분했다.
엘프 새끼들을 모조리 쳐 죽여 버릴 거라는 과격한 말까지 내뱉었었지.
유성우는 별 신경 쓰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그런 일에 과격하게 신경을 쓰는 척을 해야 했다.
“전기가 끊기면 곤란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랭겜 돌리던 놈이 갑자기 튕겨서 강등당하고, 소설가의 저장 안 된 원고가 한순간에 날아간다.”
정말이나 곤란한 일이었다.
세상사에 별로 관심 없던 하이엘프가 당장 튀어 나가 놈들의 멱살을 잡을 정도로 말이다.
사람들은 묘하게 경험담처럼 보이는 유성우의 말에 공감했다.
일상 속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고통 중 하나인 덕분이었다.
“나는 더는 그런 놈들의 행태를 참을 수가 없어서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그게 아니꼬운 놈들은 나한테 자객을 보내 죽이려 한 것이고.”
뭔가 이래저래 꼬인 것 같지만, 그건 별로 상관없는 사실이었다.
지금 유성우는 나라를 위해 일어난 은거기인, 애국열사, 매국노슬레이어였으니까.
그가 마지막으로 목소리에 힘을 주어 선언했다.
“숲에 짱박힌 이 귀쟁이 새끼들아, 자신 있으면 칼 들고 나와라. 얼마든지 상대해 줄 테니까. 그런데 너희들이 안 나온다면…….”
내가 쳐들어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