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ordmaster Wants to Live Peacefully RAW novel - Chapter (87)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87화(87/390)
소드마스터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 87화
그랜드 로터스(12)
유성우는 눈앞에 늘어선 산성을 보며 대놓고 걸어갔다.
산성에는 엘프들이 머리를 빼꼼 내민 채 활을 겨누었다.
무수히 많은 화살이 빗줄기를 뚫고 쏟아진다.
피할 곳이 없도록 교묘하게 형성된 화살의 궤적이 그를 죽이기 위해 날아들었으나.
유성우는 검을 몇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하늘을 날던 화살을 모조리 떨어뜨리고는 검을 뻗었다.
넘실거리는 붉은색의 오러가 파도처럼 몰아치며 엘프들이 몸을 숨기고 있던 성벽을 덮쳤다.
버텨낼 수 없는 강대한 충격을 받은 성벽이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엘프들은 토사와 하나가 되어 떠내려왔다.
우르르 쏟아지기 시작한 것들을 피해 발걸음을 옮기던 유성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와 비내음과 섞이는 매캐한 냄새.
탕!
한 박자 뒤늦게 울려 퍼진 그것은 분명한 총성이었다.
유성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총성이 들린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소총을 든 엘프가 있었다. 어디서 구해온 걸까.
그런 걸 깊게 생각할 시간도 없이, 사방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이제는 화살이 아닌 납탄이 유성우의 몸을 꿰뚫기 위해 몰아치기 시작했다.
탕! 탕탕! 타앙!
총기는 괴물들이 나타난 뒤에도 계속해서 쓰여온 훌륭한 무기였다.
한국은 여전히 총기규제였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호신을 위해 들고 다니지는 못했지만.
하급 어비스에서 튀어나오는 괴물들을 쏴 죽이기에는 충분한 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급의 어비스에서 튀어나오는 놈들은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고, 가죽도 두껍기에 화약 무기가 대부분 통하지 않았지만.
인간은 아니었다.
총기는 여전히 괴물보다 인간을 향할 때 가장 위력적인 무기였다.
저등급의 다이버들은 총기 앞에서 맥을 쓰지 못했고, B등급까지도 총탄이 사방에서 쏟아지면 뜨거운 납탄에 의해 뜨거운 구멍이 나리라.
A급이나 S급쯤 되면 마력으로 몸을 보호할 수는 있을 테지만, 장거리 저격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마력을 분출하기도 전에 머리가 뚫리면 그대로 죽을 테니.
놈들이 이런 무기까지 준비해 왔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유성우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엘프들은 사수의 재능을 타고난다.
무시무시한 동체 시력과 활을 당길 근력.
그런 재능을 겸비한 엘프들이 소총을 쥐니 그들은 훌륭한 일등 사수가 되었다.
만약 군대에 갔다면 언제나 만발이었겠지.
‘……이제야 꺼낸 걸 보면 몇 정 없는 것 같군.’
들려오는 총성의 숫자를 세었다.
연속으로 총알은 날아들고 있으나, 여러 방향에서 총 열여덟 정의 총성이 들려왔다.
그러니까 즉, 유성우는 열여덟 정의 소총이 토해내는 납탄을 피하고 있었다.
유성우는 머릿속에서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떠올렸다.
마법사들의 마법은 총보다 느리고, 이만한 속도의 마법은 위력이 약하다.
그러니까 즉,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전투였다.
마법사들이 마나포라면서 쏴대던 권총 형태의 무기가 있기는 했는데, 소총과 비교하면 파괴력이 우스울 정도였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다름없다는 말을 새삼스레 떠올렸다.
“자존심도 없는 새끼들…….”
자신들의 정체성인 활과 정령을 버리고 총을 택하다니.
그리 중얼거리며 옆구리를 노리던 총탄을 일생으로 튕겨낸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반만 버렸네?”
방금의 총탄에, 정령의 힘이 서려 있었다.
어째 묘하게 총탄들의 궤도가 휘어진다 싶었더니.
정령들은 여전히 엘프를 도와 유성우의 목숨을 노리는 중이었다.
성벽이 부서진 곳은 나무들이 별로 없는 훤히 트인 곳이라, 몸을 숨길 곳이 별로 없었다.
‘총은 맞아 본 적이 없어서 견딜지 모르겠군.’
그래서 일단 최대한 튕겨내는 쪽으로 상황을 풀어가고는 있는데.
그를 뒤덮는 화망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엘프들이 총에 점점 적응하며 제 수족처럼 다루기 시작한 탓이었다.
“쯧.”
작게 혀를 찬 그가 총탄 몇 개를 다시금 튕겨내고는 숨을 길게 내뱉었다.
검에 담긴 오러가 점점 짙어지더니, 새빨갛다 못해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미친 새끼들.”
그러고는 제게 다가오는 커다란 폭탄 덩어리를 보았다.
RPG. 대전차 로켓이라 불리는 무시무시한 무기의 탄두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무기를 공수해 온 건지는 둘째 치고, 유성우는 검 끝으로 탄두를 받아냈다.
그러고는 부드럽게 원을 그렸다.
위에서 아래로, 다시금 아래에서 위로.
섬세한 힘 조절로 탄두의 진행 방향을 쏘아낸 쪽으로 되돌렸다.
돌아간 탄두가 커다란 폭발을 일으키며, 빗속에서 흙먼지를 쏟아냈다. 그것들은 이내 빗방울에 쓸려 내려가겠지만 폭음과 연기는 한동안 남을 터였다.
“계속 쏴라!”
다시금 총탄이 쏟아졌다.
구성된 화망이 촘촘하게 그의 목숨을 옥죄었으나, 유성우는 이제 전신에 오러를 일으킨 채였다.
투웅, 투웅, 투웅…….
이번에 그는 총탄을 피하지 않았다. 가만히 서서 그것들을 받아내었다.
그리고 도출된 결과는 총알들이 모두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다.
유성우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오러는 총탄의 진입을 허락하지 않고, 부드럽게 튕겨내었다.
“오러 아머를 총알 막는 데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오러 아머.
휘몰아치는 오러를 갑옷의 형태로 압축해 몸 위에 두르는 기술.
오러를 다루는 솜씨가 소드마스터 중에서도 극히 뛰어나야만 가능한 기술이기에, 그가 아는 한 오러 아머를 사용할 수 있는 마스터는 둘이나 셋 정도밖에 없었다.
개중 하나가 자신이었고.
오러의 소모가 빠르기에 웬만하면 안 쓰려고 했는데, 점점 촘촘해지는 화망을 단시간에 뚫으려면 이것밖에 없었다.
오러를 몸에 두른 그가 움직였다.
붉은 잔상이 대지에 길게 남으며 총을 든 엘프 한 명을 쓰러뜨렸다.
유성우는 한 손으로 소총을 잡고는 총탄을 엘프들에게 쏟아냈다.
한 손으로 총을 쏘는 요령은 빠르게 잡을 수 있었다.
슈아넬과 함께 게임 하던 감각을 살려 총구 끝을 엘프들에게 맞추었다.
그의 총구가 자신들에게 향하자 엘프들은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거나, 엄폐하려 들었으나.
유성우의 총탄은 그들을 놓치지 않았다.
괜히 게임에서 핵으로 정지를 처먹은 게 아니었다.
슈아넬이 왜 너만 정지 받냐고 소리치던 모습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물론 게임과 현실은 다르지만, 유성우의 육체능력은 게임 캐릭터보다 뛰어났다.
그것이 게임과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현실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할 소총을 한 손으로 들고 쏘면서도 전부 맞히는 신기(神技)를.
“젠장할!”
엘프 하나가 총알에 맞는 순간 유성우에게 총탄을 쏘아냈으나, 그는 총을 쏴서 엘프가 쏜 총알을 도탄 시키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스스로 벌여놓고도 어이가 없던 유성우는 입맛을 다셨다.
‘건마스터로 전직해야 하나?’
소총의 탄이 다 떨어진 걸 확인한 그가 소총을 내버리고는 주변에 남아 있는 엘프들을 확인했다.
총을 든 엘프들은 전부 쏴 죽였다. 그렇지 않은 엘프들은 그 틈을 타 전부 뒤로 후퇴한 모양이었다.
주변에 기척이 없었다.
결국에는 더욱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베이오르간, 뭔가 하고 있기는 한 모양이군.’
지금까지 전장에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북한산의 깊은 골짜기 속, 그곳에서 자신을 죽일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
그리 생각한 유성우는 실없이 웃었다. 그리고 이내 소리높여 웃었다. 북한산성이 아주 무너져 내려라 쩌렁쩌렁.
“크하하하하하하하하-!!”
엘프의 피를 잔뜩 뒤집어쓰고, 시체들 사이에서, 비를 맞으며, 시뻘건 기운을 풍기며 웃는다.
비를 너무 많이 맞아서 미쳐 버린 놈처럼 보일 게 확실했다.
그의 웃음소리가 골짜기의 가파른 벽을 타고 메아리쳤다.
메아리는 빗소리 가득한 곳에서 들려오는 귀곡성처럼 바뀌었다.
미쳐버린 자의 광소(狂笑)를 한껏 토해낸 그가 이내 무감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엘프 놈들을 죄다 베어버리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 * *
-캬하하하하하하…….
멀리서부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듣는 순간 전신의 털을 삐쭉 솟게 하는 소리였다.
꺼림칙한 웃음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베이오르간은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미친놈…….”
그 많은 엘프를 죽여 놓고 저런 웃음이 나오는가.
이제야 그는 건드려서는 안 되는 걸 건드렸다는 걸 깨달았다.
저놈은 미친놈이었다.
적을 사냥하는 방법을 알았고, 그만한 힘을 가지고도 있다.
웃음에서 배어 나오는 광기는 이런 일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라는 것이 진하게 묻어나왔다.
이러한 일방적인 살육에 익숙한 자만이 내보일 수 있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소리였다.
“가서 마법 발동의 준비를 끝마쳐라! 놈이 오기 전까지 완성해야 한다! 그래야 놈을 죽일 수 있을 테니까!”
그의 목소리가 천막 바깥까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베이오르간의 목소리를 들은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둘러! 더 빠르게!”
베이오르간도 천막에서 튀어 나가 직접 지휘를 시작했다.
아무리 유성우가 강하더라도, 이 마법만 완성되면 어쩔 도리가 없을 터였다.
-베이오르간, 베이오르간! 너희가 안 나오니 내가 직접 왔다! 당장 나와라, 나와라! 나와서 내 검을 그 심장에 찔러라!
저 멀리서 유성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베이오르간은 이빨을 뿌득 갈며 바닥에 그려진 커다란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장로야, 엘프의 장로야, 어찌 부하들은 내버려 두고 혼자만 살려고 하느냐…….
-아아, 들린다, 아주 잘 들려, 엘프 청년들이 부르는 노래가 계속 들려와…… 아, 엘프는 장수종이니 청년이 아니라 죄다 노년들이겠구나! 하하!
-그들이 살려달라고 빌고 있다, 죽고 싶지 않다고 내게 무릎을 꿇고 빌고 있어…….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나…… 너 같은 빌어먹을, 패륜아 새끼를 장로로 둔 엘프들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고…… 이 씹새야.
저 멀리서 계속해서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시를 위해 퍼뜨려 둔 바람의 정령들이 싣고 오는 목소리였다.
광인의 중얼거림이 엘프들의 귓가를 간질였다.
그리고 이내, 정령들의 소리가 아닌 진짜 목소리가 고막에 똑똑히 틀어박혔다.
“이 귀쟁이 새끼들아, 언제까지 여기 처박혀서 히키코모리처럼 살 거냐. 밖으로 안 튀어 나가고?”
“막아라!”
베이오르간의 외침에 엘프 몇몇이 튀어 나가고, 뒤쪽에 있던 이들이 소총을 들고 사격했다.
커다란 총성이 빗소리 사이에서 울려 퍼진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일순간 붉은빛이 번쩍이더니 달려들었던 엘프들이 육편으로 변했다.
날아온 총탄은 그대로 되돌아가 사수들을 쓰러뜨렸다.
이제 총탄을 쳐내는 것 말고, 그대로 돌려주는 요령에 도달한 것이었다.
엘프들이 허무하게 쓰러진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끝끝내 베이오르간은 마법을 완성해냈다.
바닥에 펼쳐진 마법진이 새하얀 빛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기하학적인 마법진은 공중으로 떠오르고, 이내 3차원적인 형태를 취했다.
마법을 완성해 낸 그는 입가에 미소를 잔뜩 띠며 소리쳤다.
“뒤집혀라, 천지여! 공간은 신의 뜻대로 비틀어지리라!”
마력이 사방으로 퍼지며, 공간을 조작하기 시작한다.
뒤집힌다. 세계가 뒤집히는 감각이 몸에 선명히 느껴졌다.
대마법이 세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이라면 절대로 당해낼 수 없는, 신화시대의 마법이 도래했다.